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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08화 (308/528)

〈 308화 〉 [307화]동방연합

* * *

"여긴 또 신비하기 그지없구려."

"그러게. 꼭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오색 영롱한 안개와 구름을 뚫고 동방연합의 전진 기지에 도착했다.

도미닉 경은 동방연합이 생각보다 꽤 규모가 큰 클랜이라고 생각했다.

전진 기지라고는 했으나 진지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동양풍으로 지어진 요새와 성벽은 이국적이었으나 튼튼해 보였고, 성벽 안쪽에 있는 건축물들은 목조로 지어졌으나 정교했다.

건물 사이사이에는 벛꽃이나 소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여기가 최전선이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건물들의 마당에는 과녘이나 허수아비가 세워져 있었다.

곳곳에는 오색 영롱한 안개와 구름들이 내려앉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산에는 용이 몸을 칭칭감고 누워 있었고 강에는 금관을 쓴 용신이 물고기떼를 이끌고 수면에 뜬 상태로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으며, 논에는 무쇠 쟁기를 든 오니가 밭을 갈고 있었다.

그야말로 오리엔탈 판타지로 가득 찬 공간.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혀를 내두르며 이 신비한 풍경에 넋을 잃고 있었을 때, 그들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양복의 사내였는데, 도미닉 경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무사시 님께서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운류 가의 닌자 집사였다.

"오랜만에 보는구려."

"그런가요? 저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만."

닌자 집사는 도미닉 경의 말에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닌자 집사는 도미닉 경에게 눈빛으로 어떤 신호를 보냈는데, 이는 조용히 함구해 달라는 뜻이었다.

저번에 운류 무사시를 만났던 일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진행된 일이었으니까.

"그럴 리가. 타이쿤 시티 유원지 완공식에 참석하지 않았소?"

"아, 그때군요. 기억이 났습니다. 도미닉 경은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그런데도 도미닉 경은 그날 만났던 일을 꺼냈다.

사실, 외부적으로 운류 가문이 활동하기는 했었으니 서로의 만남을 부정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여긴 것이다.

닌자 집사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이내 자기 말을 정정했다.

"뭐, 사실 언제 만났다는 게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파견을 왔고, 저희와 함께 칭원을 물리쳐야 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요. 아무튼 도미닉 경, 도미니카 경?"

닌자 집사는 시간이 없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빨리 무사시 님께 가도록 합시다. 작전 계획과 시간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으니."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닌자 집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동방연합 전진기지 사령부.

딱히 어느 느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렴풋이 동양풍의 느낌을 내는 요새의 내부에서, 운류 무사시는 전장의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인주를 먹여 고급스러운 붉은빛이 나는 갑주는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새것처럼 반짝였는데, 그의 등 뒤에는 지옥불이 타오르는 거대한 고통의 차륜이 돌아가고 있었다.

붉게 물들인 오니의 가면과 지옥불이 붙은 채 돌아가는 차륜의 조합은, 무사시를 마치 지옥의 야차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

그야말로 적들을 도륙하는 지옥의 야차.

"여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도착했어요."

그런 무사시의 등 뒤의 그림자 속에서 이치코가 연기처럼 나타났다.

그녀는 여전히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기모노처럼 보였으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무려 총합 백 근, 60kg에 달하는 암기가 숨겨져 있었다.

무려 60kg이나 되는 무게를 들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모습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무사시는 그녀가 이토록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그녀의 기척이나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은신과 잠행의 극의.

그러나 무사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계속해서 작전 지도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곧 준비하리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하세요."

이치코는 무사시를 향해 걱정이 가득 담긴 한마디를 건네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이치코는 그 말 한마디를 무사시에게 건네기 위해 직접 온 것일지도 몰랐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나타났던 것처럼, 그녀는 역시나 소리도 기척도 없이 그림자 속으로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해 달라..."

무사시는 이치코의 말을 곱씹으며 잠시 작전 지도에서 눈을 떼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이치코가 있던 곳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할 말을 빼앗아가지 말아 주시오. 여보."

...

"여기입니다."

닌자 집사는 전진 기지 내부에 있는 요새 중 가장 높은 누각을 가진 요새로 둘을 안내하더니, 이내 한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바로 운류 무사시 님의 거처입니다."

닌자 집사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부디."

그렇게 말한 닌자 집사는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쳐 사라졌다.

"...조금 불친절한데."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소. 다른 일도 아니고 클랜전 중이니 바쁠만도 하지."

도미니카 경은 갑자기 사라진 닌자 집사의 태도에 미간을 찌푸렸으나, 도미닉 경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도미닉 경은 저번에도 이런 느낌이었다는 걸 알기에 그저 빈말로 한 말이었으나, 여긴 동방연합의 본진이나 다름없었기에 말을 조심한 것이다.

혹시라도 닌자 집사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말이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 집사가 폐를 끼쳤군. 미안하네."

"...!"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무언가 대답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끼어든 누군가의 말에 하던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도미니카 경은 도대체 누가 대화 도중 끼어드는지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도미니카 경은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들이켰다.

그림자 진 붉은 오니의 얼굴이 지척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사시 공."

도미닉 경은 덤덤하게 무사시를 불렀다.

비밀리에 만났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공식적인 만남이었기에 상대를 조금 더 존중하면서 말이다.

"미안하네. 온 것은 알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오질 않아서 말일세."

그래서 급한 대로 내가 먼저 왔네. 라고 무사시가 말했다.

도미닉 경은 그런 무사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사시는 새것 같은 붉은 갑주에 붉은 오니의 가면을 쓰고 등 뒤에는 불타는 차륜을 달고 있었는데, 저번에 봤을 때에도 위압감이 대단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위압감이 대단했다.

마치 지옥의 악귀, 야차, 마귀와도 같은 강렬한 기세.

도미닉 경은 무심코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었으나 문득 무사시는 아군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다시 자세를 풀었다.

"...저번보다 더 성장한 것 같군. 도미닉 경."

무사시는 도미닉 경이 들을 수 있을 만큼만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덕분에 말이오. 일주일간 앓았더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져서 말이오."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무사시는 장난처럼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깨달음이라."

도미닉 경은 무사시의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보면 깨달음일지도."

도미닉 경의 말에 도미닉 경을 유심히 쳐다보던 무사시는, 이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론 오니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 분위기로 유추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여성분이 바로 도미니카 경이겠군."

"그렇습니다."

도미니카 경이 무사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니카 경은 무사시와 도미닉 경이 대화를 나눌 때 이미 제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츠키에게 말을 많이 들었네. 무사로서 꽤... '동경'하더군."

"무사로서...?"

도미니카 경은 무사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츠키라고 한다면, 분명 철립을 쓴 그 무사 아가씨를 말하는 것이리라.

도미니카 경의 기억이 맞다면, 그녀는 검술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의 대단한 실력자였다.

도미니카 경의 낮은 시력으로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지는 검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의 경지.

그런 아가씨가 무사로서 나를 동경한다고?

애초에 도미니카 경은 무사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검술의 경지도 그리 높지 않을 뿐더러, 머스킷 의존도가 꽤 높았던 것이다.

"뭐, 그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무사시는 장갑을 낀 채 두 손을 부딪쳐 박수 소리를 내었다.

절그덕. 하는 갑옷 소리와 함께 팡­!하는 박수 소리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중요한 것은 작전 계획과 시간이 아니겠나, 그렇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으로 들어가세. 작전 지도가 거기 있으니, 보면서 이야기해 주도록 하지."

무사시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방 안으로 들어간 무사시의 등을 잠시 바라보더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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