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화 〉 [305화]첫 클랜전
* * *
"...헛."
도미닉 경은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의 공격으로 인해 빈사 상태가 되거나, 상태 이상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행복한 나머지 본능에 몸을 맡겨 버린 탓이었다.
도미닉 경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미 끝났어. 전부 죽거나 도망쳤거든."
도미닉 경은 몸을 틀어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지친 듯 땅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판데모니아가 있었다.
도미닉 경은 판데모니아의 말에 머쓱하게 검과 방패를 집어넣었다.
"어쩐지 정신이 저절로 차려지더구려."
도미닉 경은 약간의 농담을 담아 그리 말했다.
"도미니카 경은 어디 있소?"
"저기."
판데모니아가 힘겹게 팔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창문을 향해 계속해서 총을 장전하고 쏘는 것을 반복하는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히, 히익..."
그리고 그 창문 너머에서는 누군가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꺄악!"
총이 한 발 발사될 때마다 그 너머에서 신경질적인 비명이 들리는 건 덤이었다.
도미닉 경은 천천히 도미니카 경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판데모니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저렇게 전투적으로 임할 필요가 없다.
"이미 전투는 끝났소."
"응?"
도미니카 경은 활짝 웃는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며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풀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만하시오. 이미 상대의 의욕은 전무하오."
"한 발만. 한 발만 더 쏘게 해 줘. 응?"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니카 경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트리거 해피 상태에 돌입해 버린 것이었다.
도미니카 경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으나, 발사된 이후 재장전도 안 된 머스킷이 다시 발사될 리는 만무했다.
도미닉 경은 이래선 도저히 말릴 수 없겠다 싶었는지, 다급하게 창틀 너머의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당장 항복하시오! 당장!"
도미닉 경은 창틀 너머의 누군가에게 항복을 종용했다.
이는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다.
정말 저 너머에 있는 누군가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한 조언이었다.
도미니카 경은 기사였으니, 항복한 이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 하지 마아안..."
"하지만이고 자시고 항복하시오!"
창틀 너머의 누군가는 차마 자존심 때문에 항복은 못 하겠는지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런 자존심은 다시 한번 재개된 도미니카 경의 사격에 바로 무너지고 말았다.
"찾았다!"
도미니카 경은 근처에 굴러다니던 총탄을 발견하고는 바로 머스킷에 장전했다.
그리고 대충 겨냥하고 쏘아내자, 이번엔 총탄이 창틀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총알이 공기를 찢고 창틀을 뜯어내며 낸 피잉소리가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히, 히익!"
창틀 너머의 사람은 그 총격에 마지막 저항 의지마저 잃은 채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러곤 계속해서 항복을 외치기 시작했다.
"항복! 항보옥! 항복할게요! 제발 그만 쏘시와요!"
도미닉 경은 마침내 나온 항복 선언에 바로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카 경은 총에 총탄을 장전하는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는데, 어느새 그녀는 싸늘한 눈과 무덤덤한 표정으로 창틀 너머를 노려보고 있었다.
"...재미없어."
도미니카 경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총을 홀스터에 집어넣고 총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의 예상대로, 도미니카 경은 기사였기에 항복한 이에 대한 공격을 멈춘 것이다.
그러자 창틀 너머의 누군가가 다리가 풀린 듯 풀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탱커 노조 클랜원 중 몇 명이 창문 너머로 넘어가 창문 너머의 누군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 누군가는 칭원의 사람이었는지 포박을 당한 채 클랜 건물 안에 끌려들어갔는데, 여우 귀와 아홉 개의 꼬리를 보아 방금 전 탱커 노조에 선전포고를 날렸던 그 여인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의 우아하고 단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산발된 머리에 불안한 동공을 가진 초췌한 여인만이 남아 있었다.
그 여인이 연행되어갈 때, 도미니카 경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계단에 대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곧잠에서 깨어난 듯 숨을 들이키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헛?"
도미닉 경은 왠지 그 모습에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사실, 도미닉 경이 겪은 상황과 완전히 같았던 것이다.
도미닉 경은 벌떡 일어나 방패를 들어 올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도미니카 경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전투가 끝났소. 우리 승리요."
"아."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약간의 농담을 던졌다.
"어쩐지 정신이 저절로 들더라."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듣자마자 판데모니아를 쳐다보았다.
판데모니아는 이 상황 자체가 웃긴 지 누워 있는 상태에서 고개를 돌린 채 애써 웃음을 참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판데모니아의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도미니카 경처럼 난리를 피웠다는 소리 아닌가.
도미닉 경은 도대체 자기가 뭘 했는가에 대해서 궁금해했지만, 아무래도 흑역사가 될 것 같았기에 도미닉 경은 그 기억을 조용히 덮어두기로 했다.
"아, 도미닉 경. 정신을 차리셨군요."
도미닉 경은 문득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피가 덕지덕지 문신처럼 묻은 상체를 드러낸 머슬만 의원이 있었다.
"방금 전의 활약은 잘 봤습니다. 마치... 야수 같더군요."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그 말이 짐승처럼 싸웠다라고 번역되어 들리는 듯했다.
"이렇게나 경사스러운 날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다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머슬만 의원은 도미닉 경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그나저나..."
머슬만 의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미닉 경도 머슬만 의원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 탱커 노조 사무실 1층 로비는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여기저기 깨진 창문과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가구들, 그리고 탄피와 모래주머니와 탱커.
그나마 힘이 남아 있는 이들은 비품함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어 바닥을 쓸고 있었고, 조금 더 체력이 남은 이들은 가구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있었다.
그렇다.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탱커들이 아니라 탱커라고 말한 점에서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판데모니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로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가구들은 그 습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는데, 그런 도미닉 경의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머슬만 의원이 말했다.
"클랜 하우스 내에서는 아군의 버프가 적용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가구들은 세계 최고의 방어 버프들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아."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원상태로 돌아온 로비를 바라보며 머슬만 의원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뭘 할 생각이오?"
"무슨 뜻입니까?"
머슬만 의원은 도미닉 경에게 정확한 의중을 물었다.
"상대가 기습 공격을 했잖소. 이후 행보가 궁금한데."
"그렇겠군요. 하긴. 도미닉 경은 이번 클랜전이 처음이시니 궁금한 게 당연하겠습니다."
이번엔 머슬만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슬만 의원은 잠시 도미닉 경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저희는 직접 상대를 공략한 적이 없습니다."
"...?"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클랜전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런 도미닉 경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머슬만 의원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대신 우리는 간접적으로 상대를 공략합니다. 네. 이번에도 그렇겠지요."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의 말에 더욱 알쏭달쏭한 상태가 되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쉽게 말해서 다른 클랜에게 파견을 보내 협공을 한다는 소리입니다."
도미닉 경이 머슬만 의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머슬만 의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가차랜드는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아무리 온건한 클랜이라도 적이 하나둘 정도는 있는 법이지요."
도미닉 경은 그제야 머슬만 의원의 말을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탱커들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는 있지만 전투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다른 클랜과 연합해 탱커, 딜러, 서포터의 비율을 맞춘다는 거요?"
"정확합니다."
머슬만 의원은 이 말을 이해한 도미닉 경이 대단하다는 듯 박수를 쳤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의문이 있소."
도미닉 경은 의문 하나를 풀었지만, 꼬리를 물고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 클랜들과 사이가 나쁜 클랜들은 어떻게 찾는 거요? 모두 외우기도 쉽지 않을 텐데."
"아, 그건 말입니다"
머슬만 의원이 도미닉 경의 의문에 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때, 조합원 중 하나가 다가와 머슬만 의원에게 말을 건넸다.
"심문 결과 나왔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도미닉 경. 잠시..."
머슬만 의원은 도미닉 경에게 양해를 구하고 심문 결과를 먼저 들었다.
"방금 전에 칭원의 클랜원을 심문한결과, 그녀는 칭원의 간부 중 하나로 차오링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마법 딜러라고 합니다."
"칭원과 사이가 나쁜 클랜은? 그건 알아냈습니까?"
"일단 그녀의 말로는 동방연합과 사이가 나쁘다고 하는데, 이건 교차 검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지금 바로 동방연합에 사람을 보내 진위를 파악하세요. 그리고 진짜라고 파악되면, 그 자리에서 연합을 제의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탱커 노조의 클랜원은 머슬만 의원의 말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마 동방연합에 사람을 보내기 위해 간 것일 터였다.
머슬만 의원은 도미닉 경을 보더니, 마침 잘되었다는 듯 손뼉을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적을 상대하는 방법입니다."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을 바라보았다.
머슬만 의원은, 도미닉 경 못지 않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