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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02화 (302/528)

〈 302화 〉 [301화]클랜 워즈

* * *

도미닉 경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미니카 경과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우리가 클랜에 들어가는걸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소."

"아니, 왜 별것 없는 말을 결혼하자는 듯이 진지하게 말하고 있어?"

도미니카 경은 쓸데없이 진지한 도미닉 경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녀는 머스킷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총구를 닦는 것은 물론이고 총알과 화약을 한 발 분량으로 나누는 것까지 세심하게 다루고 있었다.

"보니까 이미 마음을 어느 정도 굳힌 것 같은데?"

도미니카 경은 손에 묻은 탄매를 셔츠에 대충 닦아내며 말했다.

'이건 면 소재야.'라고 적힌 하얀 티셔츠의 옆구리에 검은 손자국이 마치 갈비뼈처럼 그려졌다.

"아마 반쯤은 클랜에 가입하자는 말을 듣고 싶었겠지. 그래서 내게 이렇게 물어보는 거고. 아니야?"

"맞소."

"역시나."

도미니카 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흉폭한 흉부를 내밀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도미니카 경은 평행세계의 도미닉 경이었으니, 도미닉 경의 생각을 알아채는 것 따윈 쉬운 일이었다.

"그럼 뭘 망설이는 거야?"

"...클랜이 없어도 지금까지 잘해 왔잖소. 그 생각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질 못하고 있소. 필요는 할 것 같지만, 굳이 필수는 아닌 그런 느낌 말이오."

"아, 뭔지 알 것 같아. 캔 따개 같은 거지."

도미니카 경은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있을 캔 따개를 생각했다.

복숭아 통조림을 딴다고 샀지만, 정작 그 이후로는 잘 쓰이지 않는 캔 따개.

도미니카 경은 클랜을 그 캔 따개에 비유했다.

"하지만 말이야, 있으면 편한 건 사실이지 안 그래?"

"...그것도 그렇소."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일단 있으면 유용하게 쓸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클랜에 가입하는 것이 옳으리라.

"뭐, 확실히 그러네. 클랜에 가입하느냐 마느냐만 고민하면 되니까. 애초에 클랜에 가입하려고 한다면 갈 곳도 정해져 있었고."

"탱커 노조."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작게 중얼거렸다.

예전에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과의 대화에서 만일 클랜에 가입하게 된다면 탱커 노조에 가입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도미니카 경. 당신의 생각은 어떻소?"

도미닉 경은 마지막으로 마음을 정하기 전에, 도미니카 경의 의견을 물었다.

도미닉 경 답지 않은 신중함이었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취합하는 건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

"뭐, 나는 네가 들어간다고 하면 들어가고, 필요 없다고 하면 그대로 있을 생각이야. 애초에 우린 하나로 묶인... 아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좀 말이 이상하네. 아무튼 태그 매치로 맺어진... 이어진... 에이. 아무튼, 그런 사이잖아?"

도미니카 경은 어떻게 말해도 이상하게 들리는 말에 자기 어휘력을 저주하면서 도미닉 경에게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말이 장황하기는 했으나, 모든 선택권을 도미닉 경에게 넘긴다는 뜻이었다.

"...좋소. 이제 결정할 시간이 온 것 같구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지금까지 미뤄왔던 일에 대한결론을 내렸다.

...

이튿날, 도미닉 경은 탱커 노조 사무실로 찾아갔다.

물론 옆에는 도미니카 경과 함께였으며, 평소처럼 편한 차림이 아니라 제법 차려입은 상태였다.

"어서 오세요! 탱커가 당당해야 파티가 산다! 탱커 노조 사무실에 오신 걸 환영... 어라,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입구엔 판데모니아가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차가울 것 같은 외모와 달리 뜻밖에 서글서글한 미소가 자연스러웠다.

아무래도 이런 접객을 자주 하는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이 여긴 웬일이야?"

판데모니아가 역병이 뚝뚝 흐르는 검을 뒤로 치우며 말했다.

가끔 찾아오는 진상들을 처리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지만, 도미닉 경 같이 중요한 손님에게 보여 줄 만한 것은 못 되었으니까.

"아, 알았다! 탱커 노조에 가입하러 왔구나?"

판데모니아가 히죽히죽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사실, 판데모니아는 도미닉 경이 탱커 노조에 가입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도미닉 경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굳이 탱커 노조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것이 당연했다.

만일 판데모니아 자신이라면, 의리를 지키겠답시고 나서는 것이 아닌 이상 더 나은 대우해주는 쪽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입 신청서라도 줄까? 하하! 농담이­"

"그렇소."

"­야... 뭐?"

판데모니아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생각으로 장난스럽게 가입을 권유했다.

되면 좋고, 안 되더라도 농담이라고 넘겨 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일까?

판데모니아는 도미닉 경의 대답에 잠시 반응하지 못한 채 멍하게 서 있기만 했다.

"우리 가입할 생각이라고. 탱커 노조에."

판데모니아가 멍하게 한참을 서 있자, 도미니카 경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며 그리 말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긍정과 도미니카 경의 재확인을 거쳤음에도 너무 큰 충격에 생각이 멈춘 판데모니아는, 말을 더듬으며 또 이 상황을 확인했다.

"그, 그러니까... 우리 탱커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다른 대형 길드가 그렇게나 많은데?"

"그렇소."

"그렇다니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거의 동시에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어째서?"

판데모니아는 생각이 멈췄던 만큼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은 단 하나의 문장만을 출력했다.

어째서?

어째서 도미닉 경은 그 모든 대형 클랜들을 제치고 탱커 노조에 왔는가?

어째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렇게 직접 탱커 노조 사무실에 와서 가입을 하는가? 우리가 찾아가도 모자랄 판에?

어째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 상황을 당연하닥 여기는가?

"어째서?"

판데모니아가 풀린 눈으로 멍하게 어째서라는 말만 반복해서 말하자,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말을 건넸다.

"예전에 만났을 때를 기억하시오? 카페에서 탱커 노조에 가입하라고 권유했을 때 말이오."

"...아!"

판데모니아는 그제야 머리가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다.

'만일 내가 클랜에 가입한다고 한다면... 그 첫 번째는 탱커 노조가 될 거요. 기사로서 약조하리다.'

도미닉 경이 판데모니아가 건넨 가입 제안을 거절할 때 했던 말이었다.

사실, 판데모니아는 이 말이 그저 입에 발린 말인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밥 한 끼 먹자. 나중에 술 한 잔 하자. 처럼 그저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잊고 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참으로 기사였다.

그는 기사로서 맹세를 했으며,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탱커 노조에 찾아온 것이다.

"...세상에. 잊고 있었어."

판데모니아는 상상도 못 했다는 듯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그만큼 도미닉 경의 행동은 판데모니아의 상상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그래서."

도미닉 경은 한창 감격에 빠진 판데모니아에게 말을 걸었다.

"가입 신청서는 언제 주는 거요?"

"아, 지금 당장 줄게."

판데모니아는 서랍을 열어 탱커 노조 가입 신청서를 한 부 꺼냈다.

원래대로라면 탱커 노조 가입 절차에는 적어도 탱커 노조 간부 세 명의 추천이 필요하지만 애초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차랜드에서 얻은 명성과 이룬 업적들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았던 만큼, 오히려 가입한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할 판.

무엇보다도 이미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탱커 노조 간부 셋의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탱커 노조의 수장인 머슬만 의원과 판데모니아, 그리고 판데모니아의 유모 L­003이었다.

판데모니아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가입 신청서를 건네기도 전에 단검으로 손끝을 따 간부 추천란에 지장을 찍었다.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도장이 있는 곳을 까먹은 데다가, 도장을 찾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빠르다고 여긴 것이다.

"자, 여기 있어. 형광펜으로 표시한 부분에 이름을 적고 서명해주면 돼."

"알겠소."

"뭔가 은행에서 카드 발급받는 기분인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말을 끝으로 조용히 가입 신청서에 이름과 서명을 기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판데모니아는, 책상 아래에 놓아둔 폰으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

"도미닉 경이 우리 탱커 노조에?"

"그렇다니까!"

도미닉 경이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던 그 시각, 탱커 노조 사무실의 대기실에선 난리가 난 상태였다.

판데모니아가 탱커 노조 단톡방에 올린 글 하나 때문이었다.

13:11(27)[대박 사건! 도미닉 경 탱커 노조 가입! :세젤귀 판데모니아]

[브레스 피해욧 : ?](27)13:12

[감바스 감봤으 : ?](27)13:12

[조지아 랫하트 : ?](27)13:12

처음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제일 먼저 달력을 확인했다.

설마 오늘이 만우절인지부터 체크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만우절 농담이 아니었고, 사람들은 판데모니아가 클랜전에 지친 나머지 환상이나 환청을 들은 것으로 생각했다.

최근 클랜 전쟁으로 인해 탱커 노조 소속 인원들도 쉴 틈 없이 대처해야 했었으니, 판데모니아가 정신이 나가도 이상할 것은 없었으니까.

[조지아 랫하트 : 괜찮아? 좀 쉴래?](22)13:15

[메카 니르바나 : 코이츠ww 이젠 환청마저 들리는ww](22)13:15

13:16(22)[아니, 진짜라니까? 잠깐만, 인증함. : 세젤귀 판데모니아]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판데모니아가 올린 한 장의 사진에 역전되었다.

그녀가 올린 사진엔 정말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혹시나 조작되었다고 할까 봐 판데모니아도 구석에 빼꼼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조지아 랫하트 : ? 사쿠라네?](28)13:22

[브레스 피해욧 : 사쿠라여?](28)13:22

[메카 니르바나 : 이왜진?](28)13:23

빼도 박도 못할 증거물의 등장.

탱커 노조의 사람들은 그제야 정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탱커 노조에 가입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사람들은, 마치 서로의 정신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탱커 노조 사무실에 있는 대기실에선, 수 많은 사람들... 아니, 거의 짐승들이나 다름 없는 이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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