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 [300화]클랜 워즈
* * *
도미닉 경은 터져 나가는 유리창문의 파편들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이미 도시는 전쟁터로 변한지 오래였고, 상인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기 가게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고치다 말고 다시 무너지기 일쑤였지만, 그런데도 상인들은 가게를 다시 고쳐나갔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런 풍경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클랜. 클랜이라..."
여전히 도미닉 경은 클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고, 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 다른 것이 들어올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클랜에 대해서 몰두하고 있었던지, 어디선가 날아온 폭탄이 도미닉 경의 정수리에 떨어져 폭발했음에도 도미닉 경은 그 폭발을 뚫고 걸음을 옮길 정도였다.
도미닉 경은 클랜에 대해 생각했다.
정확하게는, 지금까지처럼 가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한 논쟁이 도미닉 경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없어도 잘 지냈잖아. 앞으로도 그럴 거야.'
가입 반대측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발언했다.
'아니야. 그래도 베타 테스트라는 새 시대가 오는데, 우리도 바뀌어야 해. 클랜에 가입해야 한다고.'
가입 옹호측의 목소리가 언성을 높였다.
'어차피 나는 탱커고, 능력도 뛰어나. 클랜 시너지가 없더라도, 클랜의 지원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어.'
'살아남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른 거야. 가차랜드에선 가치가 전부잖아? 그 가치를 높이겠다는 건데 나쁠 거 있나?'
'혼자서 이만큼이나 가치를 올려왔어. 앞으로도 가능하겠지.'
'아니. 넌 무사시 씨가 기억나지 않아? 5성을 초월한 그의 기백을 잊은 거야?'
우뚝. 하고 도미닉 경의 발걸음이 멈췄다.
무사시의 기백. 그 무시무시한 붉은 구름과 용이 기억이 난 것이었다.
도미닉 경이 무사시의 기백을 기억하는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겪은 기백 중 가장 강한 기백이어서였다.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서 오랫동안 생각해봤지만, 클랜에 대한 건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건 도미니카 경과 상의해야겠군.
도미니카 경도 클랜이 없었으니, 클랜에 대한 문제를 상의하기엔 적당한 상대일 거라고 생각하며 도미닉 경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이 엉키고 마음이 복잡한 상태에서 얼마나 더 걸었을까?
도미닉 경은 문득 걸음을 옮기다가, 어떤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우리가게 정상영업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반쯤 무너진 건물.
도미닉 경은 주변에 널린 건물의 잔해와 비교하면 나름 멀쩡하지만 그렇다고 안전해 보이지도 않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무심코 그 잔해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커피콩 볶는 향에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이내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하는 풍경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어서 오세요."
가게의 직원일까.
깔끔하게 정장 조끼를 입고 나비 넥타이를 맨 바리스타가 도미닉 경을 반겼다.
도미닉 경은 카운터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건물이 무너져서인지 자리가 거기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메뉴판입니다. 결정되면 말해주세요."
메뉴판을 건넨 바리스타는 행주로 컵에 있는 먼지를 닦아내고 컵을 따뜻하게 데우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이 좋아하는 카라멜 마끼아또가 있었고, 도미닉 경은 바로 카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했다.
"여기 카라멜 마끼아또 하나 주시오."
"네."
바리스타는 곧바로 커피를 내릴 준비하고 카라멜 마끼아또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꽤 실력이 출중했던지, 바리스타가 카라멜 마끼아또를 완전히 제조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 카라멜 마끼아또 나왔습니다."
"고맙소."
도미닉 경은 따뜻하고 달콤한 카라멜 마끼아또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카라멜이 뇌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씁쓸한 커피 향이 엉망인 뇌를 깨웠다.
도미닉 경은 이 카라멜 마끼아또가 꽤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맑아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 더 주시오."
도미닉 경은 아주 호쾌하게 남은 카라멜 마끼아또를 원샷하고는 새로운 카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했다.
뜨거운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으니 목이 뜨거울만도 하건만, 도미닉 경은 기수 특성으로 인한 피해 감소와 방어력, 그리고 저항력으로 버텨 내었다.
"...네."
바리스타는 그런 도미닉 경의 기행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이 원하는데 거절하는 건 서비스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바리스타는 다시 한번 카라멜 마끼아또를 내리며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손님이 흔하지는 않기에 흥미가 동한 것이다.
"손님은 단 것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그렇소."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도미닉 경이 단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페럴란트에서는 조금씩 밖에 먹지 못했던 단맛을 여기선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된 탓이었다.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진 상황이었기에, 도미닉 경은 그 사실을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보통 단 것을 좋아하시는 분은 두 가지지요. 몸을 많이 움직여 당분이 부족하거나, 혹은 머리를 많이 써서 당분이 많이 필요하거나."
바리스타는 도미닉 경에게 새로 나온 카라멜 마끼아또를 내놓으며 말했다.
"손님은 지금, 생각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정확히 보았소."
도미닉 경은 바리스타의 안목에 감탄했다.
그의 말대로 도미닉 경은 지금 클랜 문제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던 것이다.
"사실, 클랜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소."
"클랜 문제요?"
"그렇소. 클랜 문제."
"하긴. 요즘 클랜들끼리 전쟁이니 뭐니 해서 말이 많지요."
여기도 그 전쟁 때문에 이렇게 되었잖습니까. 라고 바리스타는 희게 웃었다.
"아무튼, 클랜 문제라면 당신은 클랜장입니까?"
"아니오."
"그럼 클랜 간부인가요?"
"아니오."
"그럼 곧 합병될 위기에 처한 클랜의 일원?"
"아니오. 난 클랜이 없소."
도미닉 경의 말에 바리스타는 눈을 끔벅였다.
설마 클랜이 없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미안합니다. 클랜에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지라서."
"아니오. 귀찮아서 그런 거지, 미안할 필요는 없소."
도미닉 경은 바리스타의 사과에 손사래를 쳤다.
"그럼 클랜 문제라고 하심은?"
"그게, 요즘 클랜을 들어야 할지 그냥 이대로 없는 상태로 유지할지 고민이오."
"아하."
바리스타는 알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하긴. 클랜에 가입하기엔 지금 만한 때가 없지요."
바리스타는 도미닉 경의 고민을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도미닉 경은 바리스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바리스타의 말을 따르려는 건 아니고, 참고만 할 생각이었다.
"내가 클랜에 가입을 하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그냥 안 하는 것이 좋겠소?"
"하는 것이 좋지요."
바리스타는 도미닉 경의 물음에 즉시 답했다.
"이런저런 혜택들을 제외하고, 클랜이 주는 가장 큰 효과는 바로 사람들을 만나는 만남의 장이라는 거니까요."
도미닉 경은 바리스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말에 꽤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클랜이라는 건 좁게 보면 그저 혜택을 얻고 가치나 올리는 곳 같지만, 사실은 다 사람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쌓기엔 클랜만한 곳이 없지요."
직장과는 다릅니다, 직장과는. 그렇게 말한 바리스타가 히죽 웃었다.
도미닉 경은 반쯤 식은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며 생각했다.
바리스타의 말이 옳은 것 같다고.
그러나 바리스타의 말은 도미닉 경의 머릿속에 있는 저울을 조금 기울게 했을 뿐, 결정을 내릴 정도의 조언은 아니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데도 성실하게 대답해준 바리스타에게 감사했다.
"고맙소. 덕분에 좀 도움이 되었소."
"뭘요."
도미닉 경은 그 자리에서 남은 커피를 주욱 들이켰다.
그리고 빈 잔을 바리스타에게 반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사람에게 조언을 들었으니, 몇몇 사람에게서 추가로 조언을 들어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인벤토리에서 커피값보다 조금 더 많은 크레딧을 꺼낸 도미닉 경이 크레딧을 바리스타에게 건넸다.
"남는 것은 조언비요. 조언 고맙소."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끝으로 가게를 박차고 나갔다.
가게에 남은 것은 폭풍처럼 왔다 간 도미닉 경을 멍하게 바라보는 바리스타와 그의 손에 들린 제법 많은 액수의 크레딧 뿐이었다.
...
베타 테스트 시작 전, 클랜들의 처절한 항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진행되었다.
가차랜드의 상공, 그 너머에 있는 우주 공간에서 전함들이 싸우고 있었고, 가차랜드의 바다 깊숙한 곳에서 해적들과 유령들이 서로에게 칼질하고 있었다.
물량이 최고인 클랜과 기술이 최고인 클랜이 시가지를 박살 내며 싸우고 있고, 동양풍의 사람들이 진법을 펼치며 격돌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세상천지 전쟁통인 상황에서,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전장 가운데서 쭈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땅에 그림이나 그리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소."
"분명히 여기일세. 내 기억이 맞다면."
그들의 말 대로,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이 있는 장소는 바로 도미닉 경이 만나자고 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래, 성 도미닉 경께서 여기서 만나자고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말이오..."
오그레손은 손에 든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말했다.
"일주일이요, 일주일! 우리가 여기서 기다린 지 일주일이나 지났다고!"
분노를 가득 담아 나뭇가지를 짓밟은 오그레손은, 씩씩거리며 아르쿠스를 노려보았다.
"정말 여기가 맞는 거요? 착각한 건 아니고? 꿈이라서 그냥 착각한 거 아니오?"
"아닐세! ...아마도."
아르쿠스는 오그레손의 말에 버럭 화를 내며 부정했으나, 이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간 도미닉 경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소."
오그레손은 아르쿠스의 태도를 보며 화를 낼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
오그레손이 화가 나는 만큼, 아르쿠스도 불안하고 초조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볼 수 있을 걸세. 반드시 볼 수 있을 걸세."
물론, 보지 못한다면... 내 신앙심이 부족한 거겠지. 라고 생각한 아르쿠스는 굳이 이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아르쿠스는 힐끗 왼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르쿠스가 옆으로 치워둔 시스템 창이 하나 있었다.
이는 오그레손도 마찬가지였다.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르쿠스는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지며 불안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아르쿠스는 다시 나뭇가지를 잡고 땅바닥에 성호를 긋기 시작했다.
시스템 창에는, 앞으로 3일이라는 시간이 적혀져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