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화 〉 [299화]클랜 워즈
* * *
이렇게 도미닉 경이 클랜 없는 프리랜서라는 사실을 떠올린 건 탱커 노조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클랜이 망해서 갈 데가 없으니 가차랜드 소울즈에 지원서를 넣어봐야겠어."
"그러고 보니 도미닉 경은 어디 클랜이더라? 이왕이면 도미닉 경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데. 도미닉 경과 같은 탱커랑 같이 싸우면 얼마나 든든하겠어?"
"그러네. 도미닉 경은 어느 클랜이지?"
처음엔 그저 의문이었다.
도미닉 경에 대한 궁금증.
"응? 잠깐, 생각해 보니까 클랜 중에서 도미닉 경을 기용하는 곳이 없는데?"
"뭐? 무슨 소리야. 탱커니까 탱커 노조에 있겠지."
"엥? 기사니까 가차랜드 소울즈 소속아니었어?"
"스팀펑크가 많아서 기어트리 클랜인 줄 알았는데."
그리고 그다음은 바로 인지였다.
도미닉 경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잠깐, 그렇다는 말은 도미닉 경이 지금 프리랜서라는 소리 아니야?"
"그렇다는 말은,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소리겠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그 후는 욕심이었다.
도미닉 경은 아직 3성 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차랜드에서 가장 유망한 탱커이자, 심플하고 강력한 특성과 특수 기술을 가진 오버 파워 캐릭터였다.
그런 매물이 아직 신품으로 남겨져 있었으니, 모든 클랜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이 당연하였다.
"도미닉 경은 중세 기사이니, 중세풍의 기사들이 가득한 우리 클랜 가차랜드 소울즈에 오는 것이 합당하다!"
"망자 놈들이 기어코 도미닉 경에게까지 손을 뻗으려고 하는구나! 도미닉 경은 우리 아르카디아 클랜에 오는 것이 맞다!"
"아르카디아 클랜은 스킨의 확장성이 부족하다! 기껏해야 천사, 성기사, 타락 천사가 끝이지 않은가! 그가 스팀펑크 스킨이 많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 기어트리에 오는 것이"
그리고 그 욕심은 지금에 와서 광기로 바뀌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미닉 경은 자기가 데려갈 것이라며 명분을 쌓기 시작한 클랜들.
여기서 누군가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클랜에 가입하지 않았던 기간이 그렇게나 긴 데, 그 사이에 알아차린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는가?
왜 지금에 와서야 도미닉 경을 포섭하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인가?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클랜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에게 클랜 권유하려고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몇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데, 일단 도미닉 경에게 클랜 권유를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사건이 끝나면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이 끝나면 또 사건이 일어났다.
당연하게도 도미닉 경은 바쁘게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고, 도미닉 경에게 클랜 가입을 권유하려던 사람들도 기다리다 지쳐 나가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도미닉 경의 클랜 가입 문제는 잊혀져가는가 싶었으나, 이번에 베타 테스트가 다가오면서 다시 한번 이 문제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여덟 개의 클랜.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차랜드에는 이런 말이 떠돌아다녔다.
베타 테스트에는, 오로지 여덟 개의 클랜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나머지 클랜들은 모조리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물론 이 말의 진위 여부는 가려지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이 말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클랜들끼리의 전쟁이 일어났다.
어차피 여덟 개만 남는다면, 마지막 도박 수를 걸어보자고 생각한 중견 클랜이 그 시작이었다.
그중견 클랜은 다른 중견 클랜들을 잡아먹고 대형 클랜급으로 몸집을 키운 뒤, 마침내 8위 클랜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급하게 급조된 덩치는 물렁하기 짝이 없었고, 결국 그중견 클랜은 8위 클랜의 역습에 와해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중견 클랜이 아직 남아 있나 없나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클랜끼리의 전쟁의 포문을 그중견 클랜이 열었다는 점에 있었다.
클랜끼리 싸워 덩치를 키운 뒤, 상위 클랜을 잡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가차랜드에 팽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확률이 매우 낮은 도박수였으나, 알다시피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그런 낮은 수치의 도박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도미닉 경의 존재란 어떨까?
도미닉 경은 일종의 에이스 카드요, 히든카드요, 와일드카드였다.
도미닉 경의 존재만으로도 클랜 전체에 11% 이상의 피해 감소가 부여됨과 동시에, 상대의 공격대를 막아 낼 수 있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아껴뒀다가 중요한 순간에 꺼냄으로서 역전을 노리는 비장의 한 수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가장 서사가 많은 인물들 중 하나였다.
그렇다는 말은, 도미닉 경이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클랜의 이야기가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도미닉 경의 특성과 특수 능력은 뛰어났고, 그의 스탯은 놀라웠으며, 그의 업적은 눈이 부셨다.
그러니 거의 모든 클랜이 아직 클랜에 가입하지 않은 도미닉 경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론, 도미닉 경을 노리는 클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컨셉이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한 클랜들도 분명히 있었다.
...
"하잇. 와카리마시타."
"...어설픈 일본어로 하지 말게. 컨셉이라곤 해도 싫어할 사람 분명히 있어."
"...네."
도미닉 경과 컨셉도 어울리지 않고, 상황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 부닥친 클랜으로는 동방연합이 있었다.
현재 동방연합은 칭원이라는 클랜과 싸우고 있었는데, 전쟁의 명분은 누가 동양풍 클랜에 적합한가를 가리는 것이었다.
구파일방과 마교, 사교도들을 모두 흡수한 무협풍 거대 클랜 칭원과 나머지를 통합한 동방연합의 싸움.
"이럴 때 도미닉 경이 있었더라면 금방 전투가 끝났을 텐데 말이야."
동방연합의 일원인 닌자가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운류 가문의 닌자들로서, 동방연합의 통신과 정보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컨셉이 맞질 않으니까. 기존의 시너지마저 깨질 수 있다잖냐."
닌자의 옆에는 어린갑을 입고 활을 든 이가 있었는데, 허리에는 띠돈을 둘렀으며 띠돈 끝에는 환두대도를 달고 있었다.
"끙. 동양풍 스킨 하나 주고 어떻게 시스템을 속일 순 없을까?"
닌자는 그런데도 아쉽다는 듯 꿍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닌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는, 도미닉 경이 너무 갈색 머리카락에 녹안인 외국인이었으니까.
"그냥 지금으로 만족하자고."
어린갑을 입은 이가 활로 녹림도 하나를 쏘아 죽이며 말했다.
...
반대로, 시너지따윈 무시하고 억지로 가입시키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방금 전에 언급한 칭원이라는 클랜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도미닉 경은 기사이니 그 자체로 무(?)요, 도미닉 경은 한자로 적으면 도민익(?民?), 즉 도리로서 백성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니 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디 마교도 외부에서 온 회교의 무리일진대, 조금 더 서역으로 무림의 영역을 확장해 간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요."
칭원의 서북공정!
도미닉 경을 얻으려고 칭원은 무리수를 둬가며 억지 명분을 꺼냈다.
"도미닉 경은 반드시 우리가 데려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주장하는 바였다.
도대체 칭원 클랜은 왜 컨셉도 어울리지 않는 도미닉 경을 포섭하려고 하는 것일까?
...
"현재 다른 클랜들이 도미닉 경이 클랜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어."
판데모니아는 머슬만 의원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뭐, 다 예상한 일입니다. 판데모니아."
머슬만 의원은 그런데도 느긋함을 잃지 않았다.
지금 당장 도미닉 경을 붙잡으러 가도 부족할 판에 느긋하게 여유나 부리고 있었으니, 판데모니아는 그야말로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당장 가서 도미닉 경을... 잠깐."
판데모니아는 당장에라도 달려가야 한다며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방 뛰며 언성을 높이던 판데모니아는,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한 생각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혹시 머슬만 의원의 계획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뜬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머슬만 의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인 판데모니아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설마 이 모든 걸 삼촌이 계획한 건 아니겠지?"
"..."
머슬만 의원은 서류를 결재하던 손을 멈추고 판데모니아를 바라보았다.
어디 더 말해 보라는 것처럼.
판데모니아는 그런 머슬만 의원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삼촌은 탱커의 권익을 위해 힘써 왔지. 그건 탱커 노조에 가입한 탱커 뿐만이 아니라, 가입하지 않은 탱커들도 마찬가지였어."
그렇다. 머슬만 의원은 탱커의 권익 향상이 목표였고, 탱커 노조는 수단이었다.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기에 착각하고 있었으나, 머슬만 의원은 탱커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라면 본인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탱커지. 그런 탱커인 도미닉 경에게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이 들어온다면, 당연스럽게도 탱커의 권익은 높아질 것이고... 아니야?"
판데모니아는 제발 아니라고 말하라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러나 머슬만 의원은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판데모니아를 보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의 뜻을 알아차린 판데모니아는, 얼굴을 감싸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삼촌은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리고 지금까지 생각만 하고 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