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화 〉 [298화]클랜 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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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이 준 죽을 먹고 회복한 뒤 오랜만에 밖으로 외출했다.
모두 알고 있었겠지만, 정성이 담긴 죽을 먹을 경우 액션 포인트(AP)가 3 회복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오랫동안 가차랜드를 떠나 있어서인지,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지는군."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의 시내를 산책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햇볕은 따스했고, 바람은 선선했으며, 거리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와플이라."
도미닉 경은 새롭게 생긴 와플 가게에 관심을 보였다.
몸이 회복되고나니 몸은 에너지가 부족하다며 도미닉 경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당분이 땡기고, 탄수화물이 든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생크림 가득한 와플은, 그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음식이었다.
"생크림 와플 하나 주시오. 사과잼을 가득 넣어서."
도미닉 경은 인벤토리를 열어 크레딧을 꺼낸 뒤, 와플 하나를 구매했다.
도미닉 경의 요청대로 사과잼을 가득 넣은 와플은 보기만 해도 달달할 것만 같았다.
도미닉 경은 통통할 정도로 생크림이 가득 들어 있음에 감탄했으나, 언제까지 감탄만 할 수는 없는 노릇.
도미닉 경은 맛을 보기 위해 와플을 입으로 가져갔다.
도미닉 경의 이빨이 와플을 베어 물려는 찰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도미닉 경 뒤에 있던 건물이 터져 나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와플가게 옆에 있던 만두 가게였다.
도미닉 경의 이빨이 허공을 갈랐다.
방금 전의 폭발로 인한 충격으로 도미닉 경의 와플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것이다.
도미닉 경은 잠시 빈 손을 멍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또 사건의 가장자리에 말려든 모양이었다.
"이야, 손님께선 그래도 운이 좋으시네요."
도미닉 경이 시무룩한 상태로 한숨을 내쉬자, 와플가게의 점원이 도미닉 경을 위로했다.
"요즘 클랜들이 마구 날뛰고 있어서 말이죠. 아무래도 베타 테스트가 다가오다 보니."
"베타 테스트?"
도미닉 경은 인벤토리에서 크레딧을 꺼내 다시 점원에게 넘겨주었다.
점원은 익숙하다는 듯 크레딧을 받고는 순식간에 와플을 제조해 도미닉 경에게 건넸다.
"지금까지는 알파 테스트였으니까요. 이제부터 진정한 가차랜드가 시작되는 거지요."
와플 가게의 점원은 그렇게 말하며 짤주머니에 생크림을 채워 넣었다.
"아무래도 이런저런 실험을 하는 알파 테스트와는 달리, 베타 테스트부터는 방향성을 가지니까요.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말입니다..."
점원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마치 대단한 비밀을 말한다는 듯 상체를 기울이고 손으로 입 가를 가린 뒤 속삭였다.
"베타 테스트부터, 클랜 위주로 재편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클랜 위주로?"
"네. 이미 가차랜드에선 유명한 이야기죠."
그러면 비밀이 아니지 않나? 라고 도미닉 경은 생각했으나, 그래도 도미닉 경이 몰랐으니 어떻게 보면 비밀이라고 할 수는 있었다.
"뭐, 그래서 클랜들이 지금 날뛰고 있는 겁니다. 아마 최종적으로 여덟 클랜 내외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들으며 와플을 우적우적 씹었다.
클랜이라. 그러고 보니 처음 가차랜드에 도착했을 때 그런 것이 있다고만 알았지, 지금까지 미뤄왔던 것 아니던가.
"클랜. 클랜이라..."
도미닉 경은 와플 가게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초토화된 거리에서 클랜에 대해 생각하며 와플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마지막 조각은, 아주 달았다.
...
"클랜. 클랜이란 말이지..."
도미닉 경은 엉망이 된 거리를 벗어나면서도 계속해서 클랜에 대해서 생각했다.
얼마나 그 클랜에 대한 생각에 몰두했던지, 반대편에서 오던 이를 보지 못하고 부딪칠 정도로 말이다.
"아얏!"
"...? 아. 미안하오. 괜찮... 레미?"
도미닉 경은 갑자기 찾아온 충격에 놀라 그제야 상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은 상념에서 벗어나자마자 부딪친 사람에게 사과부터 했는데, 놀랍게도 부딪친 사람은 도미닉 경의 동생, 레미였다.
"으, 아파라... 어라? 오빠?"
레미는 도미닉 경과 약 2미터 떨어진 곳에서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넘어져 있었다.
도미닉 경과 레미가 부딪친 상황에서 큰 덩치에 갑옷까지 입은 도미닉 경보다는 가벼운 몸무게에 오랜 실험으로 약해진 체력을 가진 레미가 쓰러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여기에 둘의 신체적인 스탯 차이까지 감안하자, 레미는 거의 날아가듯 튕겨 나 버린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 레미를 머쓱하게 쳐다보더니,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미안하다. 다른 생각하다가 보질 못했네."
"아. 뭐, 그런 거로 하자. 응."
레미는 도미닉 경의 사과받아들이는 둥 마는 둥 했다.
도미닉 경은 그런 레미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언가 바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도미닉 경은 레미에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혹시 바쁜가?"
"응? 아. 아무래도. 지금 클랜전이 진행 중이거든. 그것도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을 병합하는 빅 매치야."
"클랜?"
도미닉 경은 또 한 번 나온 클랜이란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지금 가차랜드는 클랜 열풍인 모양이었다.
"그래. 빌어먹을 기계성애자... 미안. 기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매뉴팩토룸이라는 클랜이랑 싸우고 있어. 아무래도 우리 뤼미에르 클랜의 기술들이 탐이 났나 봐."
"뤼미에르 클랜이라."
"응. 혹시 촉수의 탐구자랑 백수의 거인이라는 성좌 님들을 알아? 이번에 그 두 분이 손을 잡고 만든 클랜인데, 꽤 대우가 좋아서 이번에 가입했어."
도미닉 경은 어딘가 익숙한 이름들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과거 3지역에서 싸웠던 성좌 둘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굴더니, 어째 친해진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는 무슨 클랜이야? 지금까지 오빠가 들어간 클랜을 들은 적이 없네."
"무소속이다."
"무소속(none)이라는 클랜이 있던가?"
"아니, 그냥 가입 자체를 아직 안 한 상태라."
도미닉 경의 말에 레미의 눈이 끔뻑였다.
"에이, 설마. 지금까지 클랜 보너스를 받지 않고 있었다고? 진짜?"
"그래. 클랜 보너스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구나."
혹은 들었는데 잊어버렸거나 말이다. 도미닉 경은 뒤의 말을 굳이 꺼내지는 않았다.
"...와. 세상에. 그런데도 지금, 이 성능이라고? 아니지. 오히려 클랜에 들지 않아서 지금처럼 강하게 책정된 건가? 모르겠네..."
도미닉 경의 말을 들은 레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클랜에 들어가면 꽤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었다.
성장에 필요한 지원은 물론이고, 스토리 모드를 빠르게 밀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인연 스토리 등 정말 많은 곳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도 도미닉 경은 그런 클랜의 도움 없이 지금의 자리에 올랐으니, 도미닉 경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잠깐 도미닉 경의 클랜 문제로 황당해하던 레미는, 곧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직 그녀는 클랜전 중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으니까.
"으, 이렇게 다른 생각할 시간이 없는데. 아무튼 오빠, 나중에 이야기하자. 혹시 클랜에 가입할 생각이 있으면 뤼미에르 클랜도 한 번 생각해 줘. 물론, 오빠랑 컨셉은 안 맞지만 그건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 볼 수 있을 테니까."
"박사님? 현재 C5 구역이 적에게 점령당했습니다. C2 구역이나 D8 구역으로 지원을 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 벌써 밀렸어? 으, 아무튼 지금은 좀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일단 한 방 먹이고!"
레미는 더 이상 클랜전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는지, 안드로이드 제로의 충고에 정신을 차리고 바로 전장으로 뛰어갔다.
가는 도중 손목에 찬 시계를 쾅 내려친 레미의 행동과 동시에 저 멀리서 궤도 폭격이 떨어졌지만, 도미닉 경은 그 광경보다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었다.
바로 클랜에 대한 이야기였다.
"클랜. 클랜이라..."
도미닉 경은 오늘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를 말을 다시 한번 되뇌이며 그 자리에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
사실, 도미닉 경만 이런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클랜에 대한 생각만 하는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 이번 클랜전의 결과야, 삼촌."
"아, 고맙습니다."
탱커 노동 조합의 실질적인 리더, 머슬만 의원은 판데모니아가 건네주는 서류를 받아들였다.
서류에는 여덟 개의 클랜과 싸운 전투의 결과가 낱낱이 적혀 있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탱커 노조의 승리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우린 사실상 베타 테스트에서 살아남는 건 확정이잖아. 그런데 굳이 다른 클랜을 줄일 필요가 있을까?"
판데모니아는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머슬만 의원에게 자기 생각을 전했다.
"규모를 키우려는 거라면 다른 클랜들이 싸우는 걸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난입하면"
"우린 규모를 키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판데모니아."
머슬만 의원이 판데모니아의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우리는 가지치기를 하는 겁니다. 대형 클랜들이 작은 클랜들을 병합하려고 헛짓 하지 않고 대형 클랜들끼리 싸울 수 있도록, 우리는 약간의 도움을 주려는 것뿐입니다."
"...그게 우리 탱커 노조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야?"
"그렇죠."
판데모니아는 머슬만 의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머슬만 의원은 언제나 탱커들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하는 일이었으니, 판데모니아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머슬만 의원의 행보를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좋아. 그렇다면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진 않을게."
"사실 좀 더 의문을 가져도 좋습니다만. 이렇게 서로 대화할 기회가 적지 않습니까, 요즘엔."
"그건 그렇지."
머슬만 의원은 베타 테스트가 다가옴에 따라 더욱 바빠졌다.
가차랜드 행정부에서는, 최대한 가차랜드에 올 충격을 줄이려고 노력중이었으니까.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라고 생각한 판데모니아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탱커라고 하니까 말인데, 삼촌."
"네."
"도미닉 경, 아직 클랜 가입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
뚝. 하고 머슬만 의원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머슬만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판데모니아를 바라보았다.
차마 그 생각을 못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판데모니아는 지금까지 살면서, 머슬만 의원이 지은 표정 중 가장 멍청한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탱커 노조는, 도미닉 경이 아직 프리랜서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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