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화 〉 [297화]다시 가차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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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경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에서 도망치는 경험을 한 뒤, 내리 일주일을 앓아 누웠다.
도미닉 경이 이토록 크게 앓았던 적은 어렸을 적 수두에 걸린 적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아픈지는 문을 걸어 잠근 도미닉 경만이 알 수 있겠지만, 그 도미닉 경은 저 문 너머에 있었다.
"...가차랜드에서 이 정도로 아프다는 건 정말 희귀한 일인데."
도미닉 경이 들어간 방의 문 앞에서 도미니카 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손에는 사슴뿔을 달인 보약과 홍삼 한 뿌리가 있었는데, 머슬만 의원이 도미닉 경의 쾌유를 위해 흔쾌히 보내준 선물이었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문 옆에 그 선물들을 내려놓았다.
이미 그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도미닉 경의 쾌유를 기원하며 보낸 선물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도미니카 경은 다시 한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언제 낫는 건지 모르겠네. 적어도 밥은 먹었으면 좋겠는데."
도미닉 경은 벌써 일주일 째 죽을 쑤고 있었다.
무언가 실패하거나 난감한결과가 나왔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도미닉 경이 회복할 때를 대비해 매일매일 죽을 쑤고 있었다.
죽은 쉽게 쉬어 버렸기에 그 죽들은 도미니카 경이 다 먹어치워야만 했지만, 그런데도 도미니카 경은 오늘도 야채와 다진 고기를 넣은 속이 편안해지는 죽을 다시 한번 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보통이 아닌 정성이었다.
"이봐, 도미닉 경! 밖에 나와서 죽이라도 먹어! 그러다가 정말 죽을... 아니, 가차랜드에선 죽진 않지만 그래도 큰일 난다니까?"
도미니카 경은 마지막으로 한 번 기대감을 가지고 문 너머에 있을 도미닉 경을 향해 소리쳤다.
그 정성이 도미닉 경에게 닿은 것일까?
"...그래야겠지."
"!"
문 안에서 도미닉 경의 수척한 목소리가 들렸다.
끼이익하고 경첩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며,무려 일주일 동안 잠겨 있던 문이 열렸다.
"미안하오. 걱정을 끼쳐 버렸구려."
그리고 그 안에서, 도미닉 경이 비척거리며 걸어 나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주일 전에 본 도미닉 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눈이 퀭한 상태로 풀려 있으며, 눈 밑에 그늘이 깊게 드리워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나 사악한 사술이라도 걸린 것일까? 라고 생각해 본 도미니카 경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도미닉 경이 가진 정신력이라면 그 어떤 사술이라도 견뎌낼 수 있을 테니까.
정신력이란 것을 믿지 못한다면, 도미닉 경의 저항력 스탯을 믿어도 좋았다.
"그날 무슨 일 있었어? 일주일이나 아플 정도면..."
도미니카 경이 결국 도미닉 경이 왜 이렇게나 아픈지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말문이 막힌 듯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멍하게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말에는 대답해 줄 수 없다는 듯, 오히려 도미니카 경에게 되물었다.
"그날, 다른 사람들에게 결례를 저질렀구려. 나를 위해서 모였는데 정작 내가 사라져 버렸으니..."
"아, 확실히 다들 난리가 나긴 했지."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이 의도적으로 말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도미닉 경의 성격이라면 몇 번을 되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른 척하고 넘어가 버리는 게 속 편했다.
"그래도 다들 도미닉 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도미닉 경이 갑자기 사라질 이유가 있었겠지. 라며 납득하는 분위기더라고. 아마 지나가던 닌자가 납치해서 집에 데려다 주었다거나. 물론 이건 농담이야. 보통은 갑자기 악마나 나타나 납치했다거나, 드래곤이 나타나 탑에 납치했다는 등의 이야기였지."
그다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니 안심해. 라고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물론 어째서인지 화가 나서 날뛰는 여우 아가씨랑, 그 여우 아가씨가 던진 쿠나이에 고슴도치가 되어 버린 붉은 갑주의 무사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그저 웃고 떠들며 네 성공을 축하하는 분위기였어."
움찔.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반응했다.
도미니카 경이 말하는 것들은 분명 히메와 무사시, 그리고 유원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의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그 세 가지는 꽤 도미닉 경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들이었다.
"...그렇구려. 유원지는 어떻게 되었소?"
그러나 도미닉 경은 언제까지고 그것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타이쿤 시티의 경영자 도미닉 경이라면 그것들에게서 눈을 돌렸을지도 모르지만, 이 일주일 동안 도미닉 경은 다시 가차랜드의 전사 도미닉 경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그리고 가차랜드의 전사요, 페럴란트의 기사인 도미닉 경은, 절대로 눈앞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이가 아니었다.
"뭐, 잘되었지. 유원지의 존재로 인해 레트로 그라드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모양이야. 레트로 그라드 사람들은 가차랜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꿩 대신 닭이라고 타이쿤 시티의 유원지를 찾아오더라고. 돈 카르텔로가 그래도 유원지 운영 경험이 있어서 점점 번영하는 모양이더라고. 나중에 배당금을 받으러 오라고는 하던데"
"뭐, 잘되고 있으면 되었소."
도미닉 경은 돈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도미니카 경의 말을 끊었다.
타이쿤 시티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던 도미닉 경이었으나, 그 돈의 마력에 정신을 빼앗길 뻔했던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돈 이야기는 이제 진절머리가 나는 것이었다.
"뭐, 그 외엔 별거 없었지. 다들 완공식이랑 개장식에 참여해 화려한 유원지를 한 번 구경하고 난 다음엔 다들 하나둘 가차랜드로 돌아왔고. 나는 앨리스가 놀이기구를 좀 타고 싶다고 해서 며칠 더 거기에 있다가 와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몰라."
"유원지에서 놀다 왔소? 앨리스랑?"
"그래. 앨리스랑.그나저나 설마 키 때문에 못 탈줄은 몰랐어. 아, 나 말고 앨리스 말이야. 어느새 키가 더 커서 상한선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못 타더라."
무지 시무룩해져서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고.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말하며 푸흐흐 웃었다.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그런 앨리스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마찬가지로 소리 죽여 끅끅댔다.
"아무튼, 내가 아는 건 그게 다야. 이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데."
"아니오. 덕분에 요 일주일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은 알 것 같소. 고맙소."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도미니카 경의 친절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 맞다. 내가 죽을 좀 쒔거든? 레시피를 보고 만들기는 했는데"
"그러고 보니 방금 전에 죽이라도 먹으라고 소리치지 않았소?"
"그래. 그거. 그 죽이 지금 여기 있다는 말씀. 한 그릇 먹을래? 아니, 먹어. 보니까 다른 걸 먹다간 탈 날게 뻔해. 일주일이나 공복이었으니 말이야."
도미니카 경은 강제로 도미닉 경을 식당으로 안내한 뒤 제멋대로 국자를 휘저어 건더기가 가득한 죽을 도미닉 경 앞에 대령했다.
도미닉 경은 인심 좋은 할머니도 이 정도로 많이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죽이 많았으나, 도미니카 경이 빤히 쳐다보는 탓에 그녀의 정성을 봐서라도 억지로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도미닉 경이 숫가락을 들어 넘쳐나는 죽을 한 숫가락 떠올려 입에 집어넣었다.
죽은 꽤 싱거웠으나, 야채의 아삭함과 고기의 짭짤함이 조화를 이루어 끊임없이 부드럽게 목으로 넘길 수 있는 맛이었다.
도미닉 경은 뜻밖에 먹을 만한 죽을 계속해서 입에 집어넣었다.
"천천히 먹어. 체할라."
얼마나 잘 먹는지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이 체할까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한 그릇을 다 비워 버린 도미닉 경은 입가에 묻은 것들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도미니카 경에게 한 그릇 더 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한 그릇 더 줄 수 있겠소?"
"그래. 많이 먹어."
도미니카 경은 이럴 줄 알고 죽을 넉넉하게 준비했다면서 다시 한번 죽을 한 사발 퍼서 도미닉 경에게 건네주었다.
도미닉 경은 다시금 머리를 박고 꾸역꾸역 죽을 먹기 시작했고, 도미니카 경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런 도미닉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리를 한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극찬이란, 자기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도미닉 경은 극찬 중에서도 극찬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도미닉 경이 두 번째 죽의 절반을 먹었을 때쯤, 도미니카 경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었다.
"아, 맞아. 그거 알아?"
"뭘 말이오?"
도미닉 경은 입에 들어 있던 죽을 꿀꺽 삼킨 뒤 도미니카 경의 말에 대답했다.
도미니카 경은 그런 도미닉 경의 행동을 보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꽤 중요한 정보를 내뱉었다.
"가차랜드에서 베타 테스트가 시작된다고 하더라고."
"!"
도미닉 경은 죽을 먹다 말고 놀란 눈으로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카 경도 그런 도미닉 경의 표정을 보며 즐기는 듯 히죽히죽 웃었다.
꽤 의미심장한 도미니카 경의 모습.
"그런데 그게 도대체 뭐요?"
"그러니까. 그냥 그렇다고."
물론, 도미닉 경도 도미니카 경도 베타 테스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도미니카 경의 의미심장한 태도는 사실, 죽을 잘 먹는 도미닉 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뭐, 이것저것 바뀐다고는 하는데 평소랑 다를 것 없겠지. 아, 죽 더 줄까?"
"부탁하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에게 빈 그릇을 건네며 죽 한 그릇을 더 부탁했다.
이미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머릿속에선 베타 테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알지 못했다.
베타 테스트가 얼마나 가차랜드에서 중요한 일인지를.
물론, 알았다고 해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지금처럼 평온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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