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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94화 (294/528)

〈 294화 〉 [293화]City of Disaster

* * *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져 아플 정도로 퍼부어댔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 빗줄기 속에서도 저 먼 곳까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는 도미닉 경이 시력이 좋다거나, 혹은 스탯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

그건, 이 빗방울을 증발 시킬 정도로 거대한 에너지를 머금은 메카 공룡 때문이었다.

메카 공룡이 입에서 브레스를 뿜었다.

지금까지의 붉은 화염은 장난이었다는 듯 최고 출력으로 내뿜어진 푸른 불꽃.

그 엄청난 불꽃은 모든 것을 태울 듯 콩가에게 쏟아졌으나, 콩가는 코웃음을 치며 템포스트의 목줄을 잡아당겼다.

템포스트는 날아오는 브레스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푸른 불꽃은 템포스트를 손쉽게 삼켰으나, 그렇다고 해서 템포스트와 콩가가 손쉬운 상대라는 것은 아니었다.

"템포스트­!"

화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에 휩싸인 템포스트가 불길을 뚫고 나왔다.

템포스트는 순식간에 스텝을 밟으며 메카 공룡의 옆으로 이동한 뒤 메카 공룡의 목을 물었다.

대다수의 생물들은 목이 약점이었고, 목을 물면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포식자 템포스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메카 공룡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메카 공룡은 등에 있는 판넬들에 에너지를 응축시킨 뒤 템포스트의 눈을 향해 레이저를 쏘아내었다.

"...피해라, 템포스트!"

콩가는 레이저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는 급하게 고삐를 당겨 메카 공룡에게서 템포스트를 떼어내었다.

레이저는 템포스트의 비늘 몇 개를 스쳤을 뿐이었기에 다행스럽게도 템포스트는 멀쩡했다.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메카 공룡이 무슨 종류인지 몰라서 그저 공룡이라고 했으나, 콩가는 공룡에 대해서 해박한지 바로 이 메카 공룡의 원전이 스테고사우르스임을 알아보았다.

"이 비열한 스테고사우르스가!"

"■■■■■■­!!!"

메카 스테고사우르스는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듯 신소재 강철로 뒤덮인 꼬리로 땅을 탁탁 내려쳤다.

그 모습은 마치 챔피온이 도전자를 마주 보는 시선과 같았으며, 고수가 하수에게 세 번의 공격을 양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하게도, 콩가와 템포스트는 그 모습에 크게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고작 기계와 융합한 공룡따위가 진정한 왕 앞에서 왕 행세를 하는 꼴이 보기 싫었다.

"템포스트! 지금부터 제대로 가자! 일단은... 마 단조로 간다! [Rush E Minor]!"

템포스트는 천천히 젬베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하얀 까마귀 맙소사."

도미닉 경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리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거의 폭풍처럼 변한 환경 속에서도 메카 스테고사우르스와 콩가의 싸움을 잘 볼 수 있었다.

그의 북소리는 유원지 전체에 울려 퍼졌으며, 북의 진동에 따라 내리던 빗방울이 멈칫둠칫 했으니까.

그러나 메카 공룡도 만만치 않았다.

"■■■■■■­!"

메카 공룡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전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주변 환경은 이미 비에 젖어 충분히 전류가 잘 통할 상황이었으나, 메카 공룡의 선택은 바로 먹구름을 향해 전류를 쏘아내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처음에 왜 저 메카 공룡이 전류를 하늘로 쏘아 보냈는지 몰랐으나,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늘에 가득한 먹구름들 사이에서 전류가 튕기고 튕기고 또 튕기며 점점 규모를 키워나가더니, 유원지 전체를 덮을 만큼의 거대한 번개 폭풍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콩가는 이미 번개를 다룰 줄 아는 자였다.

번개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콩가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콩가는 이미 젬베의 사운드 이펙트를 EDM,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으로 바꾼 상태였다.

일렉트로닉, 즉 전기의 효과로 전기에 대해 면역을 가지게 된 콩가와 템포스터.

"어림없다! 네 모든 것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콩가는 상대의 공격을 카운터 친 후 이 기세를 몰아가겠다는 듯 좀 더 북의 템포를 끌어올렸다.

얼마나 템포가 빨라졌던지, 이제 콩가의 팔은 거의 16개로 보일 정도였다.

북의 템포가 빨라질수록, 점점 더 자연현상들이 콩가에게 복종하기 시작했다.

물론 콩가 자체의 그릇이 작아 고작 반경 10m 정도였으나, 그 정도 만으로도 콩가는 거의 신이나 다름없었다.

빗방울은 콩가의 리듬에 맞춰 허공에 멈췄다가 떨어졌다.

구름들은 4박자마다 천둥을 일으켰고, 번개는 서로 다른 높이에 떨어지며 일렉트로닉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콩가만이 이렇게 활약하는 것은 아니었다.

콩가의 충직한 애완 티라노사우르스 포르티시모 템포스트도 당연히 활약했다.

템포스트는 전류를 방출한 뒤 잠시 전원이 내려가 있던 메카 스테고사우르스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콩가가 끌어내는 내면의 힘을 끌어올려, 있는 힘껏 메카 스테고사우르스의 목을 다시 한번 물어뜯었다.

"■■■■■■­?!■■■■■■­!!"

메카 스테고사우르스는 그 엄청난 치악력을 뿌리치기 위해 최대한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고작 기계의 힘을 빌린 스테고사우르스의 근력으로는 공룡의 왕, 템포스트의 치악력을 이길 수 없었다.

메카 스테고사우르스는 마지막 발악으로 브레스와 전기를 동시에 내뿜었다.

방금 전의 푸른 불꽃보다는 약한 붉은 불꽃이었고, 전기도 방금 전보다는 위력이 약했으나 아직 피와 살로 이루어진 템포스트에게는 굉장히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물론, 콩가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말이다.

"하하! 우리의 승리다! 그래, 그래!"

콩가는 있는 힘껏 환호하며 젬베를 내려쳤다.

"자, 다음 곡으로 간다! [Take the B­Train]!"

콩가가 소리치자 메카 스테고사우르스는 움찔했다.

기계의 도움으로 높은 지능을 가지게 된... 스테고사우르스 치고는 높은 지능을 가지게 된 메카 스테고사우르스는 콩가가 외친 말에서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메카 스테고사우르스는 위험을 감지하고 강제로 전류 방출과 브레스를 끊어 버린 뒤 뒤로 물러났다.

콩가의 다음 기술에 대비를 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메카 스테고사우르스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었다.

푹.

메카 스테고사우르스의 심장이 있는 곳에, 거대한 통나무가 박힌 것이다.

그것도, 끝을 뾰족하게 깎은 명백하게 준비된 것이 확실한 통나무가.

메카 스테고사우르스에게 제대로 된 표정이 있었더라면, 분명 지금쯤 믿을 수 없다며 경악하고 있겠지.

콩가는 그렇게 생각하며 메카 스테고사우르스를 비웃었다.

"넌 이미 내 기술에 걸려든 거다. 네 기대를 배신(Betray)했거든."

세상에! 여기서 우리는 콩가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 고블린인지 알 수 있었다.

배신?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고블린 세계에서 배신은 숨 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종의 자연현상이었으니까.

콩가가 머리가 좋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콩가가 영어로 된 언어유희를 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세상에, 굉장히 똑똑하군. 하긴. 그러니 레이드 보스가 아니겠나."

이 언어유희를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었던 도미닉 경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

메카 스테고사우르스는 비겁하다는 듯 알 수 없는 한마디를 툭 던지고 힘없이 쓰러졌다.

그 누구도 메카 공룡이 내뱉은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을 테지만... 아니, 템포스트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테지만,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은 그 말이 자동으로 번역돼서 들리는 것 같았다.

메카 공룡은 쿵. 소리와 함께 땅에 그 차가운 몸을 뉘었다.

그리고 천천히 가루가 되어 빗물과 섞여 땅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겼다! 이겼어! 이로써 그 누구도 우리, 콩가와 템포스트를 이길 수 없어! 적어도 공룡 중에선 말이다!"

콩가는 거친 숨을 쉬며 헉헉대다가, 이내 메카 공룡을 완전히 처리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엄청나게 기뻐했다.

콩가는 템포스트 위에서 폴짝폴짝 뛰며 코사크 댄스를 추고 있었고, 템포스트도 신이나는 건 마찬가지인지 셔플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물론, 도미닉 경은 춤을 추지 않았다.

도대체 왜 콩가와 템포스트가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도미닉 경은, 아직도 춤을 추고 있는 콩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내일 있을 완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왔다는 말이오?"

"그래! 도미닉 경이 투자한 유원지이니 와서 얼굴을 좀 비춰달라고 했다!"

"누가 말이오?"

"자기를 돈 카르텔로라고 소개한 남자가!"

도미닉 경은 전투가 끝나고 제대로 내리기 시작한 비를 피해 콩가와 함께 근처 적당한 건물 안에 들어갔다.

마침 거기는 푸드코트였던지, 아니면 인부용 식량 창고였던지는 모르겠으나 템포스트를 넉넉히 먹이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있었다.

템포스트는 변온동물이었기에, 배부르게 먹고 졸린 나머지 그 자리에서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물론, 학계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도미닉 경은 콩가에게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 질문에 콩가는 돈 카르텔로가 불렀노라고 말했다.

도미닉 경은 착찹한 표정으로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콩가는 도미닉 경과 그리 많이 친하지는 않은 사이였다.

애초에 그저 길 가다가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였다.

그러나 돈 카르텔로는 그런 콩가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 말은...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초대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봐야겠지."

도미닉 경은 여전히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내일 있을 완공식에 참석하려고 모였을 이들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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