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93화 (293/528)

〈 293화 〉 [292화]City of Disaster

* * *

"아니 뭐, 내가 부담감에 내일 비가 오길 바랐다던가 그랬던 것은 아니고..."

돈 카르텔로는 도미닉 경의 시선에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가에 대한 변명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대신,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가 방금 전에 한 말에 관심을 돌렸다.

"그나저나 방금 전에 모든 자연재해가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어, 맞아. 신기하기도 하지."

"...돈 카르텔로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시오?"

"그야 가차랜드엔 기상 시스템이 있으니까."

돈 카르텔로는 일기 예보 앱을 켜며 말했다.

"여길 보면 알겠지만, 거의 동시에 우리 유원지에 도착하더라고. 신기하지?"

"그렇다면 왜 여기에 있소?"

도미닉 경은 온갖 재해가 몰려오고 있음에도 여유만만한 돈 카르텔로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당신도 재해에 휩쓸릴 텐데."

"사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

돈 카르텔로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첫 번째로, 이 유원지의 방어 시스템을 믿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돈 카르텔로는 잠깐 뜸을 들이고는 두 번째 이유를 말했다.

"그, 내 어릴 적 목표 중 하나가 자연재해 경험하기였거든. 마침 잘되었다 싶어서..."

도미닉 경은 정말 어이가 없다는 듯 돈 카르텔로를 쳐다보았다.

그건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지었던 표정 중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표정이었다.

물론, 마족과 싸울 때를 제외하고...

"그나저나 어떤 걸 먼저 겪어보는 게 좋을까? 허리케인? 해일? 저기 입에서 불을 뿜는 메카 공룡?"

아니, 마족들과 싸울 때를 포함해서 말이다.

도미닉 경은 지금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 천친난만한 얼간이에게 한 소리하려고 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유원지는 거의 도시의 중심지에 있었다.

그 말은, 모든 재해가 유원지에 도착할 때쯤이면 도시가 초토화 되어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도시가 초토화 된다는 말은 재건에 큰 비용이 든다는 것이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도미닉 경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또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딸깍. 하고 도미닉 경의 폰에서 녹음이 시작되었다.

"돈 카르텔로. 이곳의 총 책임자는 누구요?"

"응? 그건 나지. 왜?"

"아니, 그러니까 대외적인 책임자 말고, 실질적인 책임자가 누구요?"

"...그건 너지."

돈 카르텔로는 잠깐 고민하더니, 손가락으로 도미닉 경을 가리켰다.

실제로 도미닉 경이 이 유원지에 투자한 돈을 생각하면, 도미닉 경의 영향력은 실질적인 사장인 돈 카르텔로 이상이었다.

딸깍. 하고 녹음이 종료되었다.

되었다.

도미닉 경은 혹시라도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까 봐 절대 책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자기 자신을 옭아맬 올가미를 만들었다.

...말이 좀 이상해지긴 했지만, 현실이 그랬다.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만일 이 상황이 모두 끝났을 때, 타이쿤 시티에서는 분명히 이 사태를 책임질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이때, 도미닉 경이 앞으로 나서 이 모든 일은 유원지에서 시작되었노라고 말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이목이 모였을 때, 도미닉 경이 방금 전에 딴 유원지의 실세라는 녹음 증거를 들이밀며 모든 책임을 도미닉 경에게 씌운다.

도미닉 경은 그 모든 책임을 지고, 농장을 팔아 사회에 환원하고 가차랜드로 돌아간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스스로가 세운 계획을 뿌듯해하던 도미닉 경은, 문득 방금 전 돈 카르텔로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돈 카르텔로. 방금 전에 했던 말 있잖소."

"응? 무슨 말?"

"그, 방어 시스템 말이오."

도미닉 경은 방어 시스템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아, 혹시 제시간에 못 맞출까 봐 그러는 거야? 그건 걱정하지마. 저 재해 들이 도착하기 전에 방어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니까."

돈 카르텔로는 쓸데없이 의욕을 불태우며 그렇게 말했다.

"애초에 내가 감리실에 있는 이유도, 방어 시스템의 완성과 점검을 위해서였거든. 이게 마지막에 내 인허가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돈 카르텔로는 손에 든 청사진을 보여 주며 활짝 웃었다.

"방어 시스템이 완성되면, 가차랜드의 가차월드처럼 그 어떤 외침에도 굴하지 않는 행복의 나라가 완성되는 거야. 그럼 저런 재해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지...?"

돈 카르텔로는 도미닉 경에게 유원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방어 시스템을 자랑했다.

돈 카르텔로의 말대로, 가차월드의 방어 시스템을 본따 만든 이 위대한 시스템은 가동하는 즉시 모든 위험과 위협에서 유원지를 해방시킬 것이었다.

그러나 돈 카르텔로의 자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도, 도미닉 경... 어째서...?"

돈 카르텔로는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도미닉 경이 돈 카르텔로의 뒤로 돌아 그의 뒤통수에 방패를 휘두른 것이다.

기습적으로 공격당한 탓에 순식간에 빈사 상태가 된 돈 카르텔로.

돈 카르텔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삐그덕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정신을 잃기 직전, 도미닉 경의 얼굴을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은 싸늘한 눈빛으로 쓰러지는 돈 카르텔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안 되지, 안 돼. 방어 시스템이 완성되는 순간, 이 유원지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 뻔하지 않소."

도미닉 경은 마치 엎어진 개구리처럼 꼴사납게 쓰러진 돈 카스텔로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현재 어떻게든 이 유원지를 망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돈 카스텔로가 방어 시스템을 완성시키는 순간 도미닉 경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곧 정신을 차린 듯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장비를 떨어뜨리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얀 까마귀 맙소사. 내가... 내가 죄를 저지르다니."

도미닉 경은 눈 앞에 펼쳐진 자기 범행 현장을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유원지를 망쳐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돈 카르텔로를 공격해 기절시켜 버린 것이었다.

이것은 도미닉 경이 생각하는 기사도와는 전혀 동떨어진, 마치 노상강도들이나 할 법한 일이었으며, 도미닉 경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는 일이었다.

"미안하오. 미안하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도미닉 경은 완벽하게 기절한 돈 카르텔로에게 사과하며, 돈 카르텔로를 소파 위로 옮겼다.

적어도 딱딱한 바닥보다는 나을 것으로 생각하며 소파 위에 돈 카르텔로를 눞힌 도미닉 경은, 죄책감에게서 도망치려는 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밖은 지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고 있어 빗방울은 거의 대각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빗방울 너머에서는 천둥소리 대신 메카 공룡이 불을 뿜는 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은 메카 공룡을 지그시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으나, 이내 다시 무기를 내렸다.

평소대로라면 이 유원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려 했겠지만, 지금은 반대로 유원지가 망해야만 하는 상황.

도미닉 경은 재앙들을 막아 내려고 뛰어다니는 것보단, 그것들에게서 눈을 감는 선택했다.

물론, 이것이 도미닉 경이 싸우지도 않는 겁쟁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도미닉 경은 현재 다른 것들과 싸우고 있었다.

바로 그의 마음속에 있는 갈등과 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이번만큼은 사업가의 마인드로 생각하겠소. 미안하오."

도미닉 경은 건물 안에 있을 돈 카르텔로에게 전해지지도 않을 말을 내뱉었다.

도미닉 경은 눈앞의 난제들과 싸우라는 심장의 외침을 외면한 채,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이성의 속삭임을 따랐다.

이는 도미닉 경이 가진 기사도와 철저한 계산의 충돌이요, 전사의 무모함과 냉정한 이성의 부딪침이었으며, 그의 끝없는 호승심과 현실이 타협한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도미닉 경의 선택은 옳았을까?

글쎄. 그건 도미닉 경 스스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었다.

적어도 현재 가장 눈에 잘 띄는 메카 공룡은, 어느새 모든 건물들을 박살 내고 불태우며 유원지의 지척까지 다다랐다는 점 말이다.

"■■■■■■■■■­!!!!"

도미닉 경은 메카 공룡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크게 한 번 울부짖은 메카 공룡은 이제 마지막 목표인 유원지를 바라보더니, 그 육중한 다리를 움직여 유원지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비록 도미닉 경 스스로 이 유원지를 파멸로 이끌기로 했다지만,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도미닉 경 혼자서 연루된 일이었더라면 도미닉 경이 이토록 마음이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유원지는 돈 카르텔로과 도미닉 경, 그리고 마이어까지 엮인 상태였으며, 그런 장소를 도미닉 경의 독단으로... 독단으로 망가뜨려야 한다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었다.

"하얀 까마귀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도미닉 경은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그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잠깐 이 죄책감과 죄악감에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그가 잠깐만... 모질어질 수 있도록.

물론, 당연하게도 세상은 잔혹했다.

도미닉 경의 소원은, 이루어 질 수 없었다.

"■■■■■­?!!"

도미닉 경은 메카 공룡의 비명 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메카 공룡은 유원지 안에 들어오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유원지를 망가뜨리지는 못 하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또 다른 공룡에 의해서 움직임이 봉쇄된 상황이었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나타난 또 다른 공룡에게 사로잡힌 메카 공룡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

그리고 그건, 공룡 위에 있는 고블린을 봤을 때 확신이 되었다.

그 고블린은 바로, 정글의 왕이자 레이드 보스인 콩가였다.

"도미닉 경, 사업한다고 들었다! 저 가짜 공룡, 도미닉 경의 사업 방해한다! 나 용서 못한다!"

"...그게 아니오."

"도미닉 경은 걱정하지 마라! 나 돕는다! 가자, 포르티시모 템포스트!"

"그게 아니라니까!"

도미닉 경은 젬베를 두드리며 리드미컬하게 메카 공룡과 싸우는 티라노사우르스를 보며 버럭 화를 냈으나, 콩가는 싸우느라 바빠 도미닉 경의 반응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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