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 [291화]City of Disaster
* * *
타이쿤 시티는 지금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자연재해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천재지변과, 상상만 했었던 온갖 재앙들이 타이쿤 시티를 덮친 것이다.
"저게 도대체..."
마이어는 타이쿤 시티의 시장들 중에선 꽤 짧은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수십 년 동안 타이쿤 시티의 시장이었다.
그러나 그 수십 년 동안 그 어디에서도 저런 천재지변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저게 천재지변이 맞기는 한 것일까?
우리의 오만을 심판하기 위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이 준비한 종말이 아닐까?
마이어는 시장이었던 기간을 통틀어...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이 무시무시한 공포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면 도미닉 경은 어땠을까?
"아, 세상에. 또 사건인가?"
도미닉 경은 그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러고는 평소대로 검과 방패를 꺼낸 채,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지금, 이 사건에 대해서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딜 가는 건가?"
마이어는 천재지변을 부정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도미닉 경이 곁을 지나가자 말을 걸었다.
도미닉 경은 마이어를 무시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래도 방금 전까지 계약을 한 사람이니 그에 대한 예의 정도는 차리기로 했다.
"유원지로 갑니다."
"유원지?"
마이어는 도미닉 경에게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듯 되물었으나, 도미닉 경은 시간이 없다는 듯 마이어의 되물음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경영인 도미닉 경이 아니라, 페럴란트의 기사 도미닉 경이 출동할 때라며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이다.
...
도미닉 경은 타이쿤 시티에서 가장 논란 거리인 장소, 유원지에 도착했다.
도미닉 경의 농장과는 그리 머지 않은 곳에 있었던 터라, 이 험난한 날씨에도 걸어서 올 수 있었다.
유원지는 내일 완공이 되는지라 아직은 철근이라던가 간판이라던가 마감이 되지 않은 부분이 조금씩 있었으나, 갑자기 일어난 이상 현상으로 인해 인부들이 전부 철수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목숨 걸고 페인트를 칠하거나 하는 일 중독자들이 있었으나, 그런 이들은 곧 동료 직원들의 손에 이끌려 사라졌다.
지금 일을 하나 더 하는 것보다, 지금 일하다가 다칠 경우 3일 이상 쉬어야 하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혹시나 동료가 죽을까 봐, 혹은 인류애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면, 여기가 어디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여기가 바로 가차랜드였고, 여기가 바로 타이쿤 시티라는 것을 말이다.
다만 가차랜드와 다른 점은, 가차랜드에선 죽어도 바로 부활해 다른 일을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지만, 타이쿤 시티에서 죽으면 3일이라는 휴식 기간이 주어진다는 사실이었다.
타이쿤 시티는 죽음이 드물다.
이들에게 죽음이란 실수로 안전장치를 하지 않은 채 공사현상에서 뛰어내리거나, 너무 과로한 나머지 과로사하는 것, 그리고 에너지 드링크를 너무 마신 나머지 배가 터져서 죽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위의 죽음들은 모두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제대로 쉬기만 하면 발생 빈도가 확 줄어드는 종류의 죽음이었다.
그런 이유로 타이쿤 시티의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할 시 반드시 3일 이상을 쉬어야 하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여전히 페인트를 칠하려고 붓을 붕붕 휘두르는 동료를 끌고 가는 직원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돈 카르텔로의 위치를 물었다.
"거기, 돈 카르텔로가 어디 있는지 아시오?"
도미닉 경의 외침에 그 자리에서 멈춘 직원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도미닉 경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아마 감리실에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거기로 간 걸 봤거든요!"
"고맙소!"
"뭘요! 그나저나 지금 자연재해가 들이닥치고 있으니까, 빨리 도망치세요!"
직원들은 그 말을 끝으로 골목을 꺾어 사라졌다.
도미닉 경은 직원들이 말한 대로 감리실로 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표지판이 잘되어 있었기에 감리실로 가는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 비?"
도미닉 경은 감리실로 가던 도중,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을 맞았다.
아무래도 하늘이 엉망인 것이,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것도 자연재해의 영향일까.
도미닉 경은 자연재해에 휩쓸리기 전에 돈 카르텔로를 찾기 위해 좀 더 빨리 걸음을 옮겼다.
...
유원지 공사장 감리실.
돈 카르텔로는 감리사 책상에 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떨고 있는 건 자연재해가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당장 이틀 후가 개장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다.
돈 카르텔로는 지금, 완공식과 개장이 있을 날에 날씨가 별로라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거 완전 순 엉터리잖아!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서 비싸게 샀는데, 우리 유원지가 유명해지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는데..!"
돈 카르텔로는 갑자기 급발진을 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것은 말라비틀어진 손이었는데, 털이나 모양을 보아 아무래도 원숭이 손 같았다.
그 원숭이 손은 손가락을 한 개 펴고 있었는데, 처음에 돈 카르텔로가 이 원숭이 손을 샀을 때엔 세 개를 펴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 말라비틀어진 원숭이 손을 바라보던 돈 카르텔로는, 이내 다시금 원숭이 손을 주웠다.
그래도 세 개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으니, 마지막 소원이라도 빌어볼 심산이었다.
"완공식과 개장식이 잘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줘."
돈 카르텔로는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원숭이 손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변화도 없었다.
그저 여전히 손가락 하나를 편 채 굳어 있을 뿐이었다.
"하, 내가 미쳤지. 내가 언제 이런 것을 믿었다고."
돈 카르텔로는 피식 웃으며 다시 원숭이 손을 뒤로 내던졌다.
원숭이 손이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갔다.
쾅!
원숭이 손이 쓰레기통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난 소리였다.
당연하게도 원숭이 손이 낸 소리는 아니었다.
"여기 있었구려, 돈 카르텔로."
도미닉 경이 감리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였다.
"어, 어? 도미닉 경. 여긴 무슨 일로?"
돈 카르텔로는 갑자기 나타난 도미닉 경에 자기가 뭘 잘못했나 싶어 말을 더듬었다.
도미닉 경은 성큼성큼 걸어 돈 카르텔로의 어깨를 붙잡더니, 앞뒤로 흔들며 자백을 강요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뭐, 뭐가? 뭘 했다고!"
도미닉 경이 짐작하는 범인은 바로 돈 카르텔로였다.
돈 카르텔로의 악운이라면, 분명히 이런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정신적으로 피곤한 도미닉 경의 엉망진창인 추리였지만...
끼이익.
휴지통 안에 들어간 원숭이 손이, 마지막 손가락을 접는다.
그 말은, 완공식과 개장식을 도와줄 수 있는 이가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원숭이 손은 제대로 소원을 들어 주었다.
다만, 그 과정이 조금 달랐을 뿐.
어떻게 보면,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가 빈 소원대로 움직였을 뿐이지 않을까.
글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손가락을 접은 원숭이 손은, 어느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
...
"흠, 그러니까 원숭이 손에 소원을 빌었는데, 그게 바로 유원지가 유명해지게 해 달라는 소원이었다는 거요?"
"그래. 짐작 가는 건 그뿐이야."
돈 카르텔로는 도미닉 경의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말했다.
돈 카르텔로는 자기 잘못을 자각하지 못했으나, 무의식적으로 잘못했다는 건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 카르텔로, 당신도 아닌 모양인데... 흠... 그냥 버그일 수도 있겠소."
도미닉 경은 원숭이 손의 효과를 잘 몰랐기에 그저 소원을 비는 부적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돈 카르텔로가 범인임을 알아맞췄음에도,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 사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었다.
사건에 휘말렸다는 생각에 성큼성큼 걸어오기는 했지만, 사실 이 상황 자체는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도미닉 경의 목표는 있는 힘껏 망해서 가차랜드로 돌아가는 것이지 않는가.
어떤 이는 그냥 돌아가면 되지, 왜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도미닉 경은 기사였다.
명분이 없다면, 후퇴는 불명예라고 무의식에 새겨져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냥 도망친다는 걸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튼 도미닉 경의 목적은 정말 다시는 이곳에 눈길조차 돌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자연재해 자체는 도미닉 경에게 호재인 셈이다.
"그나저나 참 이상하기도 하지. 모든 자연재해가 다 여기로 몰려들고 있다니."
"...지금 뭐라고 했소?"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의 말을 듣고는 다급히 돈 카르텔로의 어깨를 잡았다.
"어, 어? 자연재해가 이 유원지로 몰려들고 있다고...?"
"...!"
도미닉 경이 눈을 부릅 뜨자, 돈 카르텔로가 어째서인지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외면했다.
도미닉 경은 다시금 의심이 머리를 드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돈 카르텔로가 무슨 짓 했다는 의심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