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화 〉 [289화]타이쿤 시티에 드리운 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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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경은 가장 중요한 지출에 들어가는 돈을 제외한 나머지 여유분을 모두 돈 카르텔로의 유원지에 쏟아부었다.
무식할 정도로 많은 자본은 모든 것을 해결했다.
자재가 부족하면 가차석으로 사면 되었고, 건물을 올릴 시간이 아까우면 즉시 완료권을 사서 바로 건설을 완료시켰다.
물론 이렇게 자재를 가차석으로 사는 건 그다지 효율이 높지 않고, 즉시 완료권 역시 일반적인 건설 비용보다 약 세 배는 비쌌으나 도미닉 경은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유원지에 돈을 부어넣었다.
수익성? 미래성?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지금 도미닉 경이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저 지금 가진 것들을 모두 내다 버리고, 가차월드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타이쿤 시티의 CEO가 아니라 가차랜드의 기사 도미닉 경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는 타이쿤 시티에 미련을 가지지 않게끔 조치를 취해야 했고, 도미닉 경은 그 조치로... 처참하게 망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사업에 손을 대는 족족 망한 마이너스의 손, 돈 카르텔로와 협업을 하며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지폐를 가득 채운 채 유원지 건설 현장으로 가는 덤프 트럭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이 소유한 농장 건물을 바라보았다.
농장 건물은 이제 300층을 돌파했지만, 과한 지출 덕분인지 성장 속도는 눈에 띌 정도로 느려진 상태였다.
"이제 변수만 없으면 모든 것이 다 제자리로 돌아가겠지."
도미닉 경은 백금색으로 번쩍이는 농장 건물 앞 광장에 비치된 벤치에 앉아 맑은 물을 내뿜는 분수대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이나, 멍하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도미닉 경은 문득 이 광장 근처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손목을 들어 손목 시계를 확인한 도미닉 경은 이미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걸 깨달았고, 광장에 사람이 없는 이유는 다들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누구도, 도미닉 경 처럼밖에서 여유롭게 멍한 채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이제 들어가도록 할까."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도미닉 경이 할 일은 이미 페드로가 다 한 상태였지만, 어째서인지 눈치가 보이는 탓이었다.
페럴란트의 용맹한 기사 도미닉 경의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회사원 같은 모습이었다.
아마 이런 사실을 도미닉 경도 아는 탓에, 도미닉 경은 최대한 빠르게 이 사업에 미련을 버리고 가차랜드로 돌아가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도미닉 경이 이런저런 생각하며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고 있을 때.
"실례합니다. 혹시 도미닉 경 되십니까?"
도미닉 경의 앞에 깊은 눈의 미중년이 나타났다.
...
도미닉 경의 농장 1층에 있는 사내 카페.
도미닉 경은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이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채 자리에 앉았다.
잠깐 서로 말없이 커피를 마시던 둘.
이 어색한 침묵을 깬 건 마이어가 먼저였다.
"일단 제 소개하지요. 이 타이쿤 시티의 시장인 마이어라고 합니다."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오."
자기를 타이쿤 시티의 시장이라고 소개한 마이어는 도미닉 경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도미닉 경은 그 손을 마주 잡으며 눈앞의 미중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이어라면 도미닉 경도 잘 알고 있었다.
타이쿤 시티의 시장이자, 어쩌면 그 대단한 블랙 그룹의 아성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마이어 그룹의 총수.
아직은 확고한 2인자 그룹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그래도 마이어 그룹의 명성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명한 분께서 어찌 나를 찾아왔는지 궁금하구려."
"그렇군요.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되어서 그만 실례를 하고 말았습니다."
마이어는 굉장히 비즈니스적이고 정치적인 말투로 도미닉 경을 상대했다.
그리고 도미닉 경에 대해서 제법 조사를 했는지, 미사여구도 없이 바로 본론을 내뱉었다.
"유원지에 투자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소."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도미닉 경이 유원지에 쏟은 돈을 계산하면, 유원지 지분의 60% 정도는 도미닉 경의 것이리라.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유원지 건설에 자본과 정보를 대고 있지요."
"당신도?"
도미닉 경은 놀란 눈으로 마이어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마이어는 무슨 생각으로 망할 것이 분명한 유원지 사업에 투자했단 말인가?
설마 마이어도 도미닉 경처럼 기업 경영에서 은퇴를 하려는 것일까?
도미닉 경은 온갖 생각을 떠올렸으나 마땅히 이거다 싶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놀라는 것을 보니, 제가 잘 투자한 모양입니다."
"아니, 그"
"속이려들지 마시지요. 도미닉 경은 현재 이 타이쿤 시티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는 이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 이가 남들 몰래 투자를 한다? 이건 분명히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서였겠지요."
"그, 아니"
"이미 다 들통났습니다, 도미닉 경.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저 마이어의 안목은 속이지 못합니다."
도미닉 경은 마이어의 말을 들으며 답답함을 느꼈다.
만일 여기가 전장이었더라면, 도미닉 경은 정신 차리라면서 주먹을 한 대 날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는 타이쿤 시티. 그런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도시였다.
도미닉 경은 마이어의 말에 말문이 막혀 어버버거렸다.
마이어의 말은 그럴싸하게 들렸으나, 도미닉 경의 의중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마이어는 그런 도미닉 경이 당황한 모습을 보며 자기가 정답에 도달했으며 주도권을 빼앗았다고 생각했는지, 거만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에게 하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도미닉 경, 내가 제안하나 하려고 하는데."
이 깊은 눈의 미중년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도미닉 경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도미닉 경은 투자하면서 지분으로 받았다고 하더군. 아마...35% 정도?"
도미닉 경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마이어의 예측은 거의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도미닉 경이 투자한 돈이면 유원지의 70%는 살 수 있었으나, 돈 카르텔로가 운영권을 위해 자기가 과반수를 가져야 한다며 51%를 가져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에겐 자네와 돈 카르텔로가 가진 지분을 제외한 14%의 지분이 있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마이어가 지분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돈 카르텔로는 참으로... 재밌는 사람이더군. 내게 땅을 빌리는 값으로 이 지분을 줬네."
"흠."
도미닉 경은 마이어의 말에 문득 신문에서 본 기사들이 떠올랐다.
'마이어 시장의 부동산 신화!'
'타이쿤 시티의 부동산 1위에 빛나는 마이어!'
'마이어 시장의 지나친 라인 독점. 이대로 괜찮은가?'
도미닉 경은 그 기사들을 떠올리며 마이어 시장이 땅부자라는 것을 기억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저 지분은 정말로 땅을 빌려주고받은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마이어는 잠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든 잔을 매만지더니,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땅을 빼 버리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도미닉 경은 마이어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이군."
마이어는 마치 체크메이트를 외친 사람처럼 히죽거렸다.
"말 그대로일세. 자네들의 성과에, 내가 초를 치면 어떨 것 같냐는 말이지."
도미닉 경은 잠시 마이어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마이어가 땅을 뺀다라.
그래서 유원지가 불법 건축물이 된다라.
...나쁘지 않군.
도미닉 경은 마이어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있는 힘껏 망할 생각으로 투자를 하던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은 곧 호재였다.
도미닉 경은 속으로는 내심 기뻤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채 마이어를 바라보았다.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매우 평온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대단하군. 역시 타이쿤 시티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경영인이다 이건가."
마치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평온한 도미닉 경의 얼굴을 본 마이어는 혀를 내두르며 도미닉 경의 담력을 칭찬했다.
"이런 심지라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겠군 그래."
마이어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그리고 얼음 하나를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말을 이어갔다.
"좋아. 땅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하지. 사실, 나도 유원지는 기대하고 있으니까."
마이어는 도미닉 경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 전에 보여 준 담력 하나만 보더라도, 그는 큰 경영인이 될 자질이 충분했으니까.
얼치기처럼 행동하는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랐다.
그렇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기에, 마이어는 도미닉 경에게 솔직하게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부류는, 괜히 돌려 말하다가 걸리면 골치가 아파지니까.
"자네, 내 지분을 사갈 생각은 없나?"
도미닉 경은 그 제안에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마이어를 쳐다보았다.
마이어가 꺼낸 말은, 도미닉 경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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