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화 〉 [288화]타이쿤 시티에 드리운 계략
* * *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건 별거 아니지만, 가차월드 VVIP 회원권이야. 지금 가진 게 이것밖에 없군. 그걸 가지고 있으면 가차월드의 모든 놀이기구와 숙박업소, 그리고 노점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을 거야."
돈 카르텔로는 도미닉 경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별거 아니오.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지 않겠소?"
도미닉 경은 그리 말하며 돈 카르텔로를 돌려보냈다.
도미닉 경이 지금은 회사 내부의 문제가 있어서 좀 그러니, 다음번에 자기가 찾아가겠다는 말하자 돈 카르텔로도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돈 카르텔로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
돈 카르텔로가 사라지자, 도미닉 경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턱을 괴고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이내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은 도미닉 경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탐욕스럽고 사악한 웃음이었는데, 평상시의 호쾌하고 사악한... 아니, 환한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계획대로군. 계획대로야."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사장실의 가구라며 괜히 푹신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긴 도미닉 경은, 여전히 히죽히죽 웃으며 계획의 첫 계단을 잘 내디딘 것을 자축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젠 돈 카르텔로가 어떻게 나오느냐인데..."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를 생각했다.
돈 카르텔로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다지 미덥지 않았다.
연이어 사업을 망친 실패한 사업가의 이미지.
탐욕스러운 외모와 무능함의 시너지로 인해 비호감인 이미지.
그러나 도미닉 경은 지금 상황에서 그런 돈 카르텔로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든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미닉 경이 생각한 계략이란 바로... 더는 이 쪽에 미련도 가지지 않을 정도로 망하자는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도미닉 경이 타이쿤 시티에 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건 바로 이 타이쿤 시티에 도미닉 경 소유의 건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이 건물 때문이었다.
적어도 도미닉 경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그렇다면...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건물마저 저당잡힐 정도로 망해서 파산해 버린다면?
더는 미련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진절머리가 나게 된다면?
도미닉 경이 노리는 계획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최대한 돈 카르텔로의 사업에 투자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돈 카르텔로는 익숙하지 않은 사업이었기에 파산하겠지만, 도미닉 경이 공동으로 투자했기에 최소한의 손해만을 입은 채 가차랜드에 있는 가차월드에만 집중한다.
대부분의 손해는 도미닉 경의 농장이 떠안을 것이고, 그렇다면 도미닉 경은 파산을 신청하고 가차랜드로 떠날 생각이었다.
남은 사원들은 제각기 다른 기업에 취업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겠지.
이로써,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가 완성된다.
그야말로 제정신이라면 할 수 없는, 그리고 하지도 않을 놀라운 발상!
그러나 도미닉 경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의 도미닉 경은 너무나도 타이쿤 시티의 삶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기에 제대로 된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
그러나 자세히 보면, 도미닉 경의 계획 자체는 꽤 실현 가능성이 높은 편이었다.
"만일 돈 카르텔로가 갑자기 각성해서 이 사업을 성공한다던가 그러지만 않는다면, 변수는 없을 테지."
도미닉 경은 그리 말하며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돈 카르텔로는 도미닉 경을 만나기 전에 이미 타이쿤 시티의 시장인 마이어를 만난 상태였으며, 이미 엄청난 지원을 약속받았다는 사실 말이다.
도미닉 경은 그러거나 말거나 싱글벙글 웃으며 전화를 통해 페드로에게 노동조합장을 데려오라는 말을 건넸다.
도미닉 경의 계획대로라면 곧 사라질 농장이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이제 회사 내부의 문제는 해결해야 했으니까.
...
"그러니까, 가차랜드는 너무 멀다는 것이 그 이유요?"
"그렇습니다."
농부 후안은 있는 힘껏 억지 이유를 쥐어 짜내 도미닉 경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최소 3박 4일의 휴가 기간. 여기서 하루, 혹은 이틀을 줄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후안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는데, 이는 열심히 설득을 하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만일 설득이 실패할 경우 조합원들이 후안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그들은 후안의 책상을 가장 볕이 잘 드는, 쾌적한 온도와 공기를 가진 장소에 가져다 두리라.
그리고 후안의 업무를 그들이 나눠가지고, 후안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 채 그저 인터넷 쇼핑 몰이나 둘러보도록 하리라.
그렇게 회사의 돈을 축내는 기생충으로 전락시켜 버리리라.
농부 후안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광경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러니 더더욱 눈을 까뒤집고 게거품을 물며 휴가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 정도는 할 수 있도록.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사업과 경영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사람의 말은 잘 들어 주는 사람이었다.
"...좋소. 그렇다면 나도 강제로 가차월드로 휴가를 보내지는 않겠소."
휴. 농부 후안은 도미닉 경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첫걸음은 성공적으로 내딪은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신들의 말로... '불법적인 야근'을 저지른 이들은 용서할 수 없소. 그들은 가차랜드의 가차월드로 휴가를 가게 될 거요. 약 보름 동안."
보름! 농부 후안은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그만큼 도미닉 경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혹했다.
그러나 후안은 이마저도 한 달로 하려던 걸 줄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무려 절반의 기간을 줄여주셨으니, 이 부분은 더 이상 언급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에 대한 휴가도 양보할 수 없소."
"사장님!"
농부 후안이 도미닉 경의 말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꽤 불경스러운 일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후안의 행동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도미닉 경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가차랜드를 오가는 시간이 반나절. 그렇다면 오고 가고는 하루의 반이오. 낮을 기준으로 하면 온전히 하루를 쓰는 셈이니, 하루는 빼 주겠소."
아. 후안은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최선인 이틀은 아니었지만, 하루를 제외하는 것으로도 꽤 만족스러운 협상이었다.
사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도미닉 경의 고집을 생각하면 꽤 선방했다고 생각하면서.
도미닉 경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진 그랬다.
"대신, 하루를 덜 쉬고 싶으면 이번에 타이쿤 시티에 새롭게 개장되는 가차월드에서 휴가를 보내야 하오. 그 외에는 그대로 3박 4일을 적용하겠소."
"...사장님!"
농부 후안은 고작 하루를 줄인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마저도 조건부라는 사실에 버럭 화를 냈다.
사장에게 화를 내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으나, 후안이 생각하기에 이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도미닉 경은 단호했다.
농부 후안은 씩씩 거리면서도 도미닉 경의 하나 남은 눈에 담긴 의지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후안이 아무리 뭐라고 한들 도미닉 경이 이 제안을 철회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농부 후안은 끔찍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당장에라도 포기하고 이 제안에 만족하고 싶었으나, 조합원들의 얼굴을 생각해 그럴 수는 없었다.
후안은 어떻게 해서든 도미닉 경의 틈새를 찾으려고 침묵 속에서 신경전을 벌였다.
그리고 마침내 도미닉 경의 틈처럼 보이는 곳을 찾아낸 후안은 있는 힘껏 의지를 끌어올려 이렇게 말했다
"이틀. 타이쿤 시티의 가차월드를 가는 대신, 이틀을 줄여주시죠. 그럼 저희도 더 이상 불법적인 야근은 하지 않겠습니다."
"...좋소."
도미닉 경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탐욕스럽거나 비열한 것도 아니었고, 사악하거나 간악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내 복지를 성사시켰다는 만족의 웃음이었다.
도미닉 경은 웃으며 후안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후안에게 악수를 건넸다.
"계약은 체결되었소."
"...감사합니다."
후안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도미닉 경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래도 꽤 선방했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말이다.
...
도미닉 경이 타이쿤 시티에 있는 동안, 가차랜드에 있는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는...
"...으. 됐다. 다 했어."
"뭐야. 저번에 잠수함 패치한다고 하더니 벌써 끝났어?"
"응."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코더 하나가 기지개를 폈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코더는 기지개를 켠 코더에게 에너지 드링크 하나를 건네고는 자기도 하나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고 보니 뭘 패치한다고 했더라? 이번에 베타 가기 전에 이것저것 넣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 별 건 아니야."
에너지 드링크를 건네받은 코더가 에너지 드링크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렸다.
요즘 들어 에너지 드링크를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조금 물리는 것 같았다.
"저번에 너무 코드가 깨끗해서 문제였잖아. 그래서 다시 버그를 조금 집어넣었지."
"...뭐?"
"하... 역시 버그가 있어야 뭔가 안심이 된다니까."
동료 코더가 미쳤냐는 듯 코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버그를 심은 코더는 만족했다는 듯, 머릿속이 온통 꽃밭인 채로 눈이 풀린 채 버그 코드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코드들은, 어쩌면 가차랜드와 타이쿤 시티 간의 불화를 조장할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 채 지직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