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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88화 (288/528)

〈 288화 〉 [287화]타이쿤 시티에 드리운 계략

* * *

도미닉 경의 농장 건물의 177층... 아니, 이제 178층에 위치한 사장실.

명품 양복을 입은 도미닉 경은 창문 너머로 179층의 아찔한 높이를 잠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180층이나 되는 도미닉 경의 건물은 주변보다 약 50층... 51층 정도 차이가 나고 있었는데, 근처에서는 가장 빠른 성장세였다.

적어도 이 블록 내부에서는 183층이나 되는 건물을 가진 건 도미닉 경이 유일했으니까.

타이쿤 월드에서 생각하지도 않았던 부를 얻게 된 도미닉 경.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제 타이쿤 시티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저 별생각 없이 받았던 건물 하나를 운영하는데도 이렇게나 힘들다니.

칸쿠 무사가 괜히 도미닉 경에게 건물 하나를 거저 넘겨준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어렵게 관리하는 것보다는, 그냥 다른 이에게 넘겨주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래선 그냥 장사치지, 기사라고 부르지도 못하겠군."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의 지원가 중 하나이자 제국의 총독이었던 쟈코모 드 베누치를 생각했다.

그는 장군으로서의 명성보다 장사꾼으로서의 악명이 더 자자한 사람이었다.

명예와 명성보다는, 돈과 효율을 따지던 사람이었다.

물론 마족들의 침공 당시엔 모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다시 군문에 발을 들인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도미닉 경은 그런 정치가나 장사꾼보다는... 전사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런 숫자와 종이의 산이 아니라, 피의 강과 머리의 산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식을 얻는 부류의.

"...조만간 가차랜드로 돌아가야겠어."

도미닉 경은 더 이상 타이쿤 시티에 볼일이 없는 상태였다.

사실 도미닉 경은 그저 타이쿤 시티에 있는 건물을 보러 온 것이었지, 이렇게 경영에 깊게 발을 들이려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도미닉 경은 페드로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페드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을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흠. 혹시 노동 조합에서 온 사람이오?"

"절반은 맞췄습니다, Sir. 두 사람이거든요."

"두 사람?"

도미닉 경은 휴가 문제로 노동 조합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또 하나의 손님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네. 본인을 돈 카르텔로라고 소개하더군요. 말하면 도미닉 경이 알 거라면서..."

"아."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가차랜드의 유원지, 가차월드의 현 소유주가 아니던가.

사업이 잘 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문득 자기가 돈 카르텔로를 만났을 때 어떤 이득이 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빨리 가차랜드로 돌아가야겠군."

"네?"

"아니, 혼잣말이었소. 그나저나 누가 먼저 왔소?"

도미닉 경은 페드로에게 먼저 온 손님을 물었다.

"돈 카르텔로입니다. 용건은 사업과 관련된 거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할까요?"

"노동조합에서 온 사람은 어떻소?"

"노동조합장 후안은 잠시 기다릴 수 있을 겁니다. 사장님께서는 바쁘시다고 했더니 시간이 되는 대로 불러달라고 하더군요. 농작물의 품질에 따른 분류 체계를 완성하러 간다고 합니다."

"...그럼 돈 카르텔로를 부르시오. 응접실이 몇 층이었지?"

"사장실 바로 아래에 있으니, 지금쯤 193층일 겁니다."

"그럼 도착할 때 197층이겠구려. 알겠소."

도미닉 경과 페드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도미닉 경은 바로 아래층인 197층에 내렸고, 페드로는 돈 카르텔로가 있을 1층으로 향했다.

잠시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엘리베이터의 전광판에 202층이라는 숫자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익숙한 이가 나타났다.

두 겹 이상 접힌 턱, 무시무시할 정도로 둥근 몸매, 탐욕스러워 보이는 얼굴.

바로 돈 카르텔로였다.

"도미닉 경! 요즘 잘 나간다, 잘 나간다 하더니 정말 잘 나가고 있었군 그래! 옷이 아주 비싸 보이는군."

돈 카르텔로는 도미닉 경의 옷을 칭찬하며 친근하게 접근했다.

사실, 돈 카르텔로는 가차월드 사건 때 개과천선했으니 도미닉 경과 그리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그의 동생인 돈 카스텔로 만큼은 아니지만, 돈 카르텔로도 도미닉 경과 아는 척 정도는 할 수 있는 사이인 것이다.

"고맙소.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소?"

도미닉 경은 바로 본론을 듣기를 원했다.

도미닉 경의 성격 자체가 미사여구를 꾸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는 사업을 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뭐, 일단 앉아서 이야기해도 될까?"

돈 카르텔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소파를 가리켰다.

"이게 지대가 높으니까 숨쉬기가 불편하네."

아.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건물의 높이가 무려 213층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앉으시오. 커피라도 드리리까?"

"녹차. 요즘 단 거랑 카페인을 줄이고 있거든."

돈 카르텔로는 카페인을 핑계로 커피 대신 녹차를 시켰다.

물론 녹차에 든 카페인이 더 많았지만, 돈 카르텔로는 그런 걸 알 정도로 똑똑한 인물은 아니었다.

도미닉 경과 돈 카르텔로의 앞에 각각 카라멜 마끼아또와 녹차가 놓였다.

녹차는 얼음이 가득 들어 시원한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땀을 흘리고 있으니 몸 좀 식히라는 배려인 듯싶었다.

"고마워. 아주 시원하구만."

얼음이 든 녹차를 한입에 털어 넣은 돈 카르텔로가 도미닉 경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별말씀을. 그나저나 무슨 일로 여길 찾아온 거요?"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가 진정되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본론을 물었다.

물론, 돈 카르텔로도 복잡한 미사여구를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바로 본론을 내뱉었다.

"같이 사업 하나 하지 않을래?"

"사업?"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업에 흥미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도미닉 경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러나 돈 카르텔로는 그 행동을 관심 있다는 것으로 해석했는지,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이번에 내가 사업을 확장하는데 말이야, 그 첫걸음으로 바로 이 타이쿤 시티를 골랐거든."

아. 도미닉 경은 문득 오늘 아침에 신문에서 본 기사를 기억했다.

'가차랜드의 자본이 타이쿤 시티를 침식하고 있다.'였던가. 그런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 기사에선 도미닉 경을 중심으로 여러 사업가가 타이쿤 시티에 진출하고 있다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아마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돈 카르텔로인 모양이었다.

"사업이라고 함은, 가차월드 말이오?"

"그렇지."

"꽤 잘나가는 모양이구려. 지금까지 적자를 만회했다는 뜻 같은데."

"물론이지. 적자를 넘어 흑자로 전환된 지도 꽤 되었어. 유원지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도미닉 경의 무엇을 보고 동업을 제안 한다는 말인가?

"뭐, 돈이 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알다시피, 난 사업을 확장시켜 본 경험이 전무해. 특히나 타이쿤 시티는 가차랜드와 성격이 다르다고 하더군. 그런 곳에서 이미 성공한 사례가 있는데, 당연히 그 사례를 배우는 게 맞지 않겠어?"

돈 카르텔로는 도미닉 경의 사업적 수완과, 자기 자본이 합쳐지면 못 할 것이 없다며 호언장담했다.

"생각해 봐. 내게 조언 한마디만 하면, 가차월드 안에 있는 핫도그 가게에 밀가루 몇 톤이 배달될 거야. 일시불로 말이지. 또 한마디를 해주면 이번엔 사탕 가게에서 설탕을 잔뜩 주문하겠지. 사탕수수 밭이나 사탕무 밭을 몇 개는 살 수 있을 가격의 설탕을!"

돈 카르텔로의 말은 도미닉 경이 조언만 해주면 유원지에서 소모되는 모든 식료품을 도미닉 경의 농장에서 사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돈 카르텔로는 약간의 조언만 있으면 타이쿤 시티에서 승승장구할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근거는 없었지만 말이다.

도미닉 경은 돈 카르텔로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황당해하며 돈 카르텔로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득, 도미닉 경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 카르텔로는, 한 때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사업을 벌이는 족족 망했다.

지금이야 그나마 돈 카스텔로의 도움으로 제법 유원지 운영에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유원지 하나를 운영하는 것과 두 개를 운영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것도, 이렇게나 쉬는 것이 싫다며 경기를 일으키는 타이쿤 시티의 사람들을 상대로는 더더욱.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하나로 엮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일반적인 가차랜드 시민이나 타이쿤 시티의 시민이라면 이런 것들을 하나로 엮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도, 타이쿤 시티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의 소유자였다.

다른 말로는 딱히 선입견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랬기에 도미닉 경은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을 엮어 하나의 계략을 떠올렸다.

어쩌면, 돈 카르텔로를 도와주면서도 벌써 227층을 넘긴 농장의 성장을 멈추고 사원들의 일 중독을 고치면서 도미닉 경 자신은 가차랜드로 돌아갈 방법을.

그리고 그건, 적어도 도미닉 경이 생각하기엔 아주 훌륭한 계획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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