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화 〉 [286화]타이쿤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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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경은 이 미치광이 일 중독자들을 어떻게 다뤄야하나 고민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이 어렵게 내놓은 대답은 바로... 휴가였다.
"이, 이럴 수는 없습니다! 더 많은 일을 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휴가를 준다구요?"
"유급 휴가라니! 유급 휴가라니! 적어도 무급으로 해주세요!"
"3박 4일은 너무 많소! 4시간으로 합시다!"
도미닉 경의 대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양손을 들고 반길 일이었으나, 타이쿤 시티의 일 중독자들에게 휴가라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고위 간부직들은 회사의 결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휴가를 반납했고, 일반 사원들도 '○○○사원이 휴가를 다녀와 사기가 진작되었습니다.'라는 한 문구로 퉁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한사코 사람들에게 무려 3박 4일, 일을 너무 열심히 한 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휴가를 무조건 쓰라고 공지를 내린 상태였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현 노동조합장, 농부 후안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살살 내려쳤다.
이 모든 것들이 회사의 재산이니 함부로 다룰 순 없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안광은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분명히 이건, 우리 노동조합이 불법적으로 야근을 조장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장의 농간입니다."
"사장도 참 영악해요. 불법적인 야근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휴가를 많이 주고, 그런 불법적인 야근을 고발하는 이들에게는 휴가를 줄여 준다니. 이거 완전 좋은 경찰, 위대한 경찰 작전 아닙니까!"
"그, 좋은 경찰, 나쁜 경찰입니다. 총무."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제각기 한 마디씩을 내뱉으며 사장의 행태를 비판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사장이 영악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휴가를 주는 건 다른 회사에서도 사내 규칙으로 정해진 것 중 하나니까요."
"사장이 영악한 이유는... 우리의 휴가지를 가차랜드의 유원지, 가차월드로 지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오, 세상에."
"그, 그럴 수가!"
노동조합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부 심약한 조합원들은 얼굴의 핏기가 싹 가시며 두려워했고, 일부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은 어째서 가차월드라는 말에 이토록 과하게 반응하는가?
"가, 가차월드라니. 그거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잘못한 거 있을 때 엄마가 겁 주려고 만든 상상 속 장소인 줄 알았는데!"
"차라리 레트로그라드로 가는 것이 낫지, 가차월드는...!"
그렇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차월드란, 지옥의 다른 말이었다.
가차월드가 무엇이던가?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담은 보석 상자.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편안함만이 가득한 곳.
어릴 적 꿈을 되살리는 환상의 나라!
그러나 타이쿤 시티의 일 중독자들에게 있어서, 가차월드는 이런 곳이었다.
할 일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만 하는 곳.
심각할 정도로 과도한 휴식과 복지로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곳.
어릴 적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최악의 공간!
노동조합장 농부 후안은 문득 어릴 적 아버지가 해주신 가차월드에 대한 괴담을 기억해냈다.
'아들아, 기억하거라. 절대 가차월드에 가서는 안 된다. 나를 보아라. 난 가차월드에서 보면 안 될 것을 보았고, 해선 안 될 짓을 했기에 이토록 고통받는단다.'
아버지가 셋째 동생을 등에 업고는 해주신 말이었다.
어째서인지 옆에 있는 어머니의 눈치를 마구 보면서 말이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후안이기에 그는 이번 대처가 조금 과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노동조합 내부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이건 너무 과한 처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차월드는 선을 넘었죠!"
"하지만 사장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우리의 '일'아니던가? 사장이 이 조항을 악용하고는 있지만, 악법도 법일세."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사실이죠. 우린 지금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노련한 나이의 직원들은 대체적으로 사장의 말에 순응해야 한다는 쪽이었고, 아직 사회생활을 많이 겪지 못한 직원들은 더 많은 일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물론, 두 무리의 조합원들 모두는 논쟁하는 시간마저 아깝다는 듯 손에 계산기와 노트북을 들고 엑셀파일을 정리하거나 회계 장부의 틀린 부분을 고치거나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노동 조합원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개로 모아졌다.
사장의 행태가 과하니, 좀 더 야근해서 본때를 보여주자.
아니다. 이제 굽히고, 사장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우리가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뒤 야근을 협상해도 늦지 않다.
강경파와 온 건파.
어째서인지 명제가 이상한 것 같았으나, 잊으면 안 된다. 여기는 가차랜드가 아니라 타이쿤 시티였다.
"...조용! 이래선 서로 평행선이야. 입 놀릴 시간에 일 하나를 더 해야 휴가를 가도 마음이 좀 덜 불편할 판에, 이렇게 싸울 필요가 있나?"
농부 후안은 책상을 살살 내려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단, 이번 논제는 서로 한 발자국씩 양보하자고. 내가 가서 사장님께 휴가 기간을 줄여달라고 쇼부... 아니, 협상 해볼 테니까, 일단 우리도 야근을 당분간 줄이는 쪽으로 움직여. 알았어?"
농부 후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던지 말투마저 하대로 바꾸며 제멋대로 이 상황을 종결시켰다.
물론, 조합원들은 큰 불만을 가지지 않고 서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농부 후안은 그들이 뽑은 조합장이었고, 그런 만큼 그의 능력은 검증된 것이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겠지? 안 그런가?"
후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의 손에는 건초더미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어딜 가십니까?"
총무가 놀란 눈으로 후안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후안의 행동은 급작스러웠던 것이다.
"말 나왔으니, 협상 가야지. 빨리해야 빨리 결정날 거 아니야."
그렇다.
후안은 지금 당장 도미닉 경에게 가 휴가 기간에 대해서 협상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손에 건초더미를 든 것은, 사장실로 가는 길목에 있는 건초 창고에 이 건초를 옮기기 위해서였다.
"다들 일하면서 기다리라고. 너희가 왜 날 조합장으로 뽑았는지 보여줘야 할 차례 아니야?"
후안은 그렇게 말하며 순식간에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총무는, 한숨을 내쉬고는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자, 후안이 돌아오면 사내 메신저로 연락 줄 테니까, 다들 일하면서 기다리시게."
사람들은 총무의 말을 듣고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모두 자기 부서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게 자기 부서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엔 후안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그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여전히, 가차월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타이쿤 시티의 시장이자 현재 가장 높은 건물의 소유자인 마이어 시장은 와인잔을 든 채 서류를 결재하고 있었다.
마이어의 반대편에는 마이어에게 끊임없이 서류를 넘겨주는 비서가 있었는데, 비서는 마이어를 위해 한 손엔 와인 병과 치즈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한 손엔 높게 쌓인 서류를 들었으며, 머리에는 온갖 학용품들이 꽂혀 있어 마이어가 원한다면 바로바로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꽤 여유로웠던지, 비서는 마이어에게 말을 걸 수 있을 정도였다.
"뭘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지?"
마이어는 무려 열여섯 개나 되는 모니터로 수백 개의 차트를 확인하고 분석하며 예측하는 상황이었는데, 그의 눈은 마치 꿈을 꾸는 사람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이어는 괜히 이 타이쿤 시티의 시장이 아니라는 듯 여유로운 모습으로 와인을 한 모금 홀짝였다.
그의 평소 지론인 '휴식은 일하면서 해도 충분하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지킨 결과물이었다.
"유원지 말입니다. 그런 혐오 시설을 굳이 타이쿤 시티에 지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비서는 유원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도 그의 손에 들린 와인 병 속 와인은 미동도 없이 잔잔했다.
그가 얼마나 비서로서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외곽이라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최근에 도심에 지어진 농장 문제도 있고"
"그건 어쩔 수 없지. 사람들이 너무 궁지에 몰리면 미쳐버리는 법일세. 나중에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해도, 미쳐 버렸을 때 쉬어 버린 만큼 그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겠지.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푸는 건 괜찮네. 다만, 유원지는..."
마이어 시장은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혹시라도 다른 회사에서 숨겨 놓은 도청 장치가 있을 수도 있기에.
타이쿤 시티의 최고의 회사를 경영하는 만큼, 그는 적이 꽤 많은 편이었다.
"괜찮습니다. 방금 전에 다 확인해 봤지만,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비서는 다리를 들어 허벅지에 달린 도청기 탐지기를 보여 주었다.
도청기'만' 탐지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으나, 여긴 가차랜드요, 타이쿤 시티였다.
비서의 말에 안심하며 방금 전 상장폐지 당한 차트를 끄고 새로운 차트를 켠 마이어는, 별것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알다시피 유원지는 유배 보내기에 딱 좋은 시설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타이쿤 시티의 시민들이 반대를... 설마?"
비서는 유능했다.
마이어 시장의 한 마디에서 결과를 도출한 것을 보면.
"서, 설마... 경쟁자들을 꼬투리 잡아 유원지로 보내버릴 생각이신 겁니까? 그 사이에 저희는 저 앞으로 더 도약하구요?"
비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어 시장에게 물었다.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마이어 시장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업가였다.
마이어 시장은 비서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의미심장하게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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