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86화 (286/528)

〈 286화 〉 [285화]타이쿤 시티

* * *

도미닉 경은 페드로의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농장으로 달려갔다.

"저건 대체...?"

도미닉 경은 농장의 입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며칠 전, 도미닉 경이 휴식을 취하러 갔을 때만 하더라도 고작 23층에 불과했던 건물은 벌써 120층이 넘어가 올려다보는 목이 다 아플 정도였다.

그만큼 성장은 점점 가속을 받고 있다는 뜻이리라.

도미닉 경은 농장의 엄청난 변화에 놀랐으나, 이내 고개를 저어 제정신을 되찾은 후 농장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 중요한 것은 농장의 성장이 아니라, 야근 선언한 노동 조합의 시위 때문이었으니까.

"페드로!"

"아, 도미닉 경 오셨습니까?"

도미닉 경은 입구에서 도미닉 경을 기다리던 페드로와 만났다.

페드로는 곤란하다는 듯 손수건을 들어 뻘뻘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있었는데, 그의 손은 이상할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페드로의 떨리는 손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페드로에게 말을 걸었다.

"설마... 페드로 당신도 평소보다 일을 더 하던 거였소?"

"...그렇습니다."

페드로는 애써 덜덜 떨리는 손을 등 뒤로 숨겼으나, 차마 고용인에게 거짓을 고할 수는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페드로의 손떨림은, 일 중독으로 인한 중독 현상이었다.

"하지만 저는 저들과 다릅니다. 적어도 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페드로가 애써 변명하듯 노동조합원들과 자기의 차이를 열변했지만, 도미닉 경은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 그만! 페드로. 일단 당신의 일 중독 문제는 차후에 논합시다. 일단은..."

도미닉 경은 페드로의 말을 가로막고는 투명한 유리를 넘어 힐끗 사무실 안을 쳐다보았다.

건물이 확장되며 개편된 장소이자, 인사팀이 쓰는 사무실이었다.

인사팀의 직원들은 긴급한 회의를 하는 중이었던 모양인데, 문을 열고 있어 회의의 내용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물론 인사팀의 처지에서는 단 1초의 일도 허투루 할 수 없다는 듯 빠른 동선을 위해 열어두었던 것이겠지만, 덕분에 도미닉 경은 인사팀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저기, 팀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뭐지?"

"이제 더 이상 승진시키거나 인사 이동시킬 사람이 없습니다!"

"뭐? 추가 모집은! 추가 모집은 어떻게 되었어!"

"그, 그게... 하루에 8시간'만' 일하는 블랙 기업과는 일할 수 없다고..."

"제길! 요즘 젊은 것들은 이게 문제야! 나 때는 말이야, 선배들이 고작 내게 4시간만 일하라고 했다고! 나머지 시각은 쉬거나 일을 배우라는 이유로! 그런데 고작 8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고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

"그러니까요. 저도 6시간밖에 일을 안 했는데. 요즘 애들은 의무만 찾고 권리따위 거들떠도 안 본다니까요."

"아무튼, 일단 승진시킨 이들은 불법으로 추가적인 노동 시간했다는 이유로 승진 취소한 뒤에, 인사 이동시키고 다시 승진시켜. 그럼 하루는 더 벌 수 있겠지?"

"...반나절이 한계일 겁니다. 노동 조합원 전체가, 아니, 회사 전체가 지금 야근 중이기에..."

"...제길. 우리도 일하고 싶단 말이다!"

도미닉 경은 팀장과 팀원들의 대화를 듣고는 어이를 상실했다.

지금 자기가 들은 말이 제정신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인가는 둘째치고, 이들 모두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더 문제였다.

사실, 이 문제는 타이쿤 시티의 아주 깊은 심연을 마주 봐야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타이쿤 시티는 애초에 캐주얼한 시스템이 배정될 예정이었다.

하루에 10분 정도만 일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유토피아.

이렇게 편히 쉴 수 있는 곳에 배정되었던 타이쿤 시티의 주민들은 정말 이곳이 유토피아라고 믿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오래가지 못했다.

너무나도 오래 쉰 나머지, 사람들은 일할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너무나도 캐주얼한 시스템으로 인해 일이라고는 하루에 10분 정도로 끝낼 수 있는 분량이 끝.

나머지 시각은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이후 타이쿤 월드의 사람들은 조금씩 더 많은 노동 시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캐주얼함을 유지한 채 조금 더 복잡하고 성취감 있게 바뀌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노동 시간을 요구했다.

오랫동안 거의 잊은 채 살았던 성취감이란 단어가 고개를 들어 버린 것이다.

10분만 일하고 얻는 뿌듯함과 1시간을 일하고 얻는 뿌듯함, 6시간을 일하고 얻는 뿌듯함은 그 크기부터가 달랐다.

그 뿌듯함에 심취한 사람들은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은 일들을 요구했고, 시스템은 점점 더 많은 일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동 시간의 증가와 성취감이 맞물려 지금의 타이쿤 월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렇게 온종일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히, 히힉! 야근 수당도 없이 야근을 하는 이 기분, 참을 수 없어!"

"어떻게 우리에게 8시간만 일을 시킬 수 있지? 사장은 레트로그라드의 요양원장교가 분명해!"

...도미닉 경은 마치 좀비처럼 기괴하게 관절을 꺾으며 회의실을 나오는 인사팀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야근수당을 챙기지 않으려고 한 사람을 뽑아 사무실의 문을 열게 했다.

사무실의 문은 직원 카드로만 열리는 구조였고, 당연하게도 이 찍히는 시간으로 야근 여부를 파악해 추가 수당이 들어가게끔 조치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무실의 문을 열게 된 직원은 울면서 자리에 앉았는데, 야근 수당을 받게 된 것이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미안하다며 그에게 서류철 두어 개 씩을 더 넘겨 주자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인외마경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도미닉 경이 말문이 막혀 그저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자, 페드로가 눈치를 보더니 도미닉 경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도미닉 경을 보고 레트로그라드의 요양원장교라고 한 저 녀석은 보너스라도 더 넣을까요?"

도미닉 경은 왜 보너스를 주냐고 말하려고 했으나, 생각해 보니 야근하면서도 돈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보너스를 받는 행위 자체가 징계가 될 수 있으리라.

페드로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도미닉 경은 문득 페드로가 왜 손을 덜덜 떨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차렸다.

"...혹시 이미 직원들이 다 일을 해 버리는 바람에, 페드로 당신이 할 일이 없었던 거요?"

움찔. 페드로가 숨을 크게 들이키며 입을 막았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표정이었다.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며 페드로에게 조언을 구했다.

노동조합이나 페드로나 모두 일 중독 상태였으니, 해결책에 대해서 잘 알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페드로. 어떻게 해야 사원들이 그... 야근을 멈출 수 있겠소?"

도미닉 경은 정말 심각하게 그렇게 물었다.

사원들의 모습은 지나친 야근으로 좀비나 스켈레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일했다간 쓰러질 것 같은 그 모습에, 페드로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다른 곳에서 하듯 월급이 아니라 연봉으로 주시는 걸 추천하겠습니다, Sir. 그리고 회사에서 세금을 제한 후로 직원들에게 월급을 준 뒤, 직원들에게 따로 세금을 신고하라고 하십시오. 그럼 이중세를 물어 추가적인 할증이 붙을 것이며,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월급은 기존의 50% 선까지 떨어질 겁니다."

물론 이건 임시적인 조치입니다. 제대로 된 조치가 필요하지요.

"사실 지금, 이렇게 저희 농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과도한 노동 의욕에 있습니다. 이 의욕을 꺾을 방도가 없다면, 아마도..."

페드로는 말끝을 흐렸다.

대신 그는 아직도 덜덜 떨리는 손을 도미닉 경에게 보여 주었다.

도미닉 경은 페드로의 말에 공감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었지만, 타이쿤 시티 시민들의 무의식 속에 있는 바로 저 노동 의욕을 한 번 꺾을 필요가 있었다.

도미닉 경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도미닉 경이 가장 자신 없어 하는 것이었다.

...

도미닉 경이 야근하는 노동조합원들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어딘가에선...

"그러니까, 사업의 확장을 도와달라?"

"그렇소."

두 남자가 어두운 방 안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남자는 간소한 양복 차림에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미중년이었는데, 움푹 파인 눈에 드리운 그늘이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였다.

그런 중년의 반대편에는 역시나 양복차림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단정한 차림의 중년과는 달리 투실투실한 뱃살과 두겹으로 겹쳐진 턱, 탐욕스러운 시선이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사내였다.

얼핏 보기엔 뚱뚱한 남자가 타이쿤 시티의 탐욕스러운 사업가로 보였으나, 사실 이 뚱뚱한 남자는 가차랜드에서 온 사업가였다.

최근 다시 인기를 되찾아 흑자를 기록 하기 시작한 유원지 사업의 확장을 위해 타이쿤 시티로 온 것이다.

"...어떻게 도와달라는 건지 자세히 설명해야 할 텐데."

"간단하오. 부지만 제대로 잡아주시오. 그럼 우리가 그 위에 유원지를 세울 거요. 만일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을 만들 수도 있겠지."

"..."

깊은 눈의 미중년은 뚱뚱한 남자의 제안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이 사업 제휴에 있어서 미중년이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미중년은 뚱뚱한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계약 성립이오, 돈 카르텔로."

"나야말로 고맙소, 마이어."

뚱뚱한 남자는 미중년이 제공하는 땅을 캔버스 삼아, 그의 원대한 꿈을 그릴 생각에 부풀어 껄껄 웃었다.

세계 최고의 롤러코스터를 가진 유원지를 만들려는, 그의 새로운 꿈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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