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9화 〉 [278화]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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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렇게 벌레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을 줄이야."
양산박의 최고 간부 중 하나이자 미스터 왕의 아들, 왕이는 비행 물체에서 오만하게 도미닉 경을 내려보았다.
"내가 잠깐 본부로 가던 사이에 이런 일을 벌이다니, 대단하다고 박수라도 쳐줘야 하나?"
왕이는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물론, 그의 입만 활짝 웃고 있었을 뿐,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겉으로는 당당한 척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이 비밀기지를 엉망으로 만든 도미닉 경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왕이는 지금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마법사의 실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양산박 본부로 가는 중이었고, 지금쯤이라면 양산박 본부에 도착했어야 정상이었다.
그럼 어째서 왕이가 이 자리에서 도미닉 경을 노려보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비밀 기지에서 연락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
왕이는 부재중에도 비밀 기지를 운용할 수 있도록 연락망을 구축해 두고 있었다.
이상 현상이 일어나면 바로 왕이에게 보고가 올라가 대처를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처음 침입자가 있다는 보고가 올라올 때, 왕이는 무시했다. 부하들을 믿었기에.
최하층에 광학 무기가 뚫고 들어왔다고 했을 때에도 왕이는 무시했다. 그래도 부하들을 믿었기에.
그리고 갑자기 비밀 기지에 거대한 청동 기사상이 떨어져 기지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뚤린 뒤에, 엄청난 출력의 레이저가 내려와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는 말에도 왕이는 무시했다.
아직 보고할 수 있을 정도면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러나 왕이는 마지막 한 마디의 보고를 듣고는 화를 내며 급하게 회항하고 말았다.
'도미닉 경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탱커인 도미닉 경이 잠입도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왕이는 그 말을 듣고 이를 으득 갈았다.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멍청아! 라고 욕이 올라오려던 것을 겨우 참았다.
왕이는 비밀 기지로 돌아와 레이저가 만들어낸 거대한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에 도미닉 경이 있단 말이지.
왕이는 도미닉 경에 대해 한 번 데인 이후, 도미닉 경에 대해서 만큼은 절대로 방심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데도 비밀 기지가 털린 것을 보면, 방심했을 때엔 얼마나 크게 데였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래. 이건 내가 부재중이어서 생긴 불상사다. 내가 있었더라면 달랐을 것이다.
왕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조종사에게 명령해 구덩이 속으로 내려갔다.
방심하지 않겠다면서 오만함을 잃지 않는 이 어리석은 자는, 마침내 최하층이었던 개인실까지 내려온 뒤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도미닉 경과 조제프 준장을.
...
"감히 내 비밀 기지에 침입해 이 난리를 피워? 이게 다 재산 손괴인 건 알지?"
왕이는 도미닉 경과 최소한의 안전 거리를 벌린 채 이죽거렸다.
왕이는 도미닉 경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는 원거리 공격수단이 전무했으며, 그 흔한 이동기 하나 없는 뚜벅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를 벌린 채 도약조차 하지 못하는 곳에 있으면 도미닉 경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까지 양산박의 멍청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똑똑함!
그가 어째서 양산박의 최고 간부인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이 손해를 배상할 거지? 내가 뭘 했다고 말이야."
"저번에 당신들이 내게 한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군."
도미닉 경이 왕이에게 으르렁거렸다.
도미닉 경은 장비 강화 오류 사건 이후 행정부에 항의하러 가던 도중에 있었던 습격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조제프 준장과 양산박의 인원들이 같이 도미닉 경을 습격한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일? 무슨 일?"
그러나 왕이는 도미닉 경의 말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잡아떼기 시작했다.
"행정부를 습격한 자들. 양산박의 일원이더군."
도미닉 경의 말에 왕이가 멈칫했다.
아마 도미닉 경을 영입하기 위해 행정부에 주변에 불을 질렀던 그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곳엔 조제프 준장이 있었고, 여기도 조제프 준장이 있군. 조제프 준장은 그때 그 분이라는 단어를 내뱉었소. 그 말인 즉, 당신이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거겠지."
"저런, 조제프 준장이 내 이름을 팔았나 보군. 배신했다는 말이지?"
도미닉 경은 왕이를 압박했으나, 왕이도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자기는 도미닉 경을 습격한 일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조제프 준장에게 죄를 물어야겠군. 왜 내 이름을 팔아서 도미닉 경과 같은 이의 분노를 샀는지 말이야."
"..."
도미닉 경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왕이의 뻔뻔함은 그야말로 최고 간부급이었고, 그 도미닉 경에겐 그 뻔뻔함을 뚫을 논리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조제프 준장은 그 분이라고만 칭했을 뿐, 왕이라고 직접 언급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다른 세력이 도미닉 경과 양산박의 양패구상을 노리고 벌인 짓일지도
라고 도미닉 경 스스로 생각의 미궁에 빠져들 뻔했을 때, 도미닉 경을 상념에서 구한 건 누군가의 외침이었다.
"왕이, 왕이냐?"
도미닉 경은 미스터 왕의 우렁찬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왕이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조종사를 시켜 바라보던 방향을 바꿨다.
방향을 바꾸느라 잠시 출렁거리는 선체에서 겨우 균형을 잡은 왕이는 아직 흔들리는 시야를 통해 자기의 이름을 말한 이를 찾았다.
"누가 내 이름을 그렇게 막 부르지? 아니, 그 전에 또 한 명이 더 있었다는 건 몰랐는데."
왕이는 자기 이름을 막 부른 이에게 거만하게 말했다.
왕이는 눈을 가느다랗게 뜬 상태로 말을 건 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린 채, 콧소리를 가득 담아 말했다.
"...파파? 아니, 아버지?"
"왕이, 왕이가 맞구나! 정말 왕이였어!"
미스터 왕은 왕이를 보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왕이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는데, 어째서인지 여기에 오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왜 여기에 왔습니까?"
왕이는 그래도 아버지라는 듯 예의를 차린 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를 찾으러 왔단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잖니. 그저 잘 사는지만 보려고 했는데, 설마 네가 최고 간부가 되었을 줄은..."
"그만! 확인했으면 돌아가세요. 잘 있다는 걸 알았지 않습니까."
왕이는 쌀쌀맞게 미스터 왕에게 소리쳤다.
미스터 왕은 그런데도 아들을 만난 것이 즐겁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며 아들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애를 썼다.
"그만! 그만! 그렇게 가식적으로 다가오지 마시지요!"
미스터 왕이 점점 다가오자, 왕이는 발작을 일으켰다.
"그,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이리 보고 대화하는"
미스터 왕은 아들의 분노에 쩔쩔매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말 한마디 더 붙여 보겠다고 노력했다.
그러나 왕이는 미스터 왕의 그런 노력조차 필요 없다는 듯, 있는 힘껏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날 버리고 어느 날 훌쩍 사라진 주제에, 뭘 잘했다고 내 앞에 다시 섰습니까?"
"...뭐?"
미스터 왕은 왕이의 말에 놀라 목소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연락을 먼저 끊은 건 아버지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간부의 직책도, 모든 의무와 권리도 떠넘긴 채 사라진 건 아버지였단 말입니다!"
왕이는 있는 힘껏 미스터 왕을 매도했다.
사실, 이는 왕이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왕이는 미스터 왕의 추천으로 양산박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때, 미스터 왕은 어떠한 이유로 양산박을 탈퇴할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양산박의 인원들과 연락할 수 없다는 조건을 수락한 상황이었다.
양산박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을 숨기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왕이의 처지에선 그게 아니었다.
왕이의 처지에선 미스터 왕이 왕이를 양산박에 끌어들인 뒤, 모든 것을 떠넘기고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 난 양산박의 비밀유지 서약 때문에"
"그래요.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편지는 왜 안 읽으셨습니까?"
"편...지?"
왕이는 여전히 화가 잔뜩 난 채 미스터 왕을 몰아붙였으나, 미스터 왕은 편지에 대한 건 처음 듣는다는 듯 행동했다.
왕이는 그 행동이 가증스러웠다.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분기마다 편지를 보냈다는 걸 말이죠. 몰래 만나자고 우리만의 비밀 암호까지 넣었는데!"
왕이가 씩씩거렸다.
그러나 미스터 왕은 정말 그 사실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처럼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 걸 받은 기억이..."
"됐습니다. 이제 다 지나간 일이죠."
왕이는 미스터 왕의 말을 제지하며 미스터 왕에게 마지막 경고를 내뱉었다.
"자. 고르시죠, 아버지. 지금 당장 돌아가 예전처럼 살던가, 아니면 끝까지 내 앞에서 얼쩡대다가 내 손에 죽으시던가."
왕이가 비열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도 한 때 양산박이셨으니, 아직 그 죄가 남아 있어 죽음은 곧 추방이실 테지요."
그 미소는 너무나도 환했으나, 또 너무나도 어두웠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편하게 해드려야 속이 편하시겠습니까?"
그 모순된 미소를 바라보며, 미스터 왕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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