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화 〉 [276화]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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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경은 열린 문을 통해 개인실로 들어섰다.
개인실의 입구는 그 큰 입구와는 다르게 굉장히 평범하고 소박했는데, 어째서인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아하니 신발은 벗고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구려. 일단 벗고 들어가면 내가 정리하리다."
미스터 왕은 도미닉 경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말했다.
도미닉 경은 무심코 신발을 벗으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적 기지 안에서 예의를 차릴 필요가 무엇이 있던가?
그런데도 일단 신발장에 신발을 수납한 도미닉 경과 미스터 왕은 현관을 넘어 거실로 나왔다.
"...조제프 준장?"
도미닉 경은 거실에 서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황후의 복장을 걸치고 있었으나 머리를 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꾸미고 있던 도중인 모양이었다.
"도, 도미닉 경? 여긴 어떻게 들어왔죠?"
도미닉 경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 조제프 준장은 여기에 있어선 안 될 인물들이 있자 당황하며 손가락질했다.
"그, 현관으로 들어왔소."
도미닉 경은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사실, 지금 상황을 표현하기엔 그 이상의 표현은 필요하지 않았다.
"현관? 현관은 분명 자물쇠로 잠겨 있을 텐데..."
"열고 들어왔소."
"!"
조제프 준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뒷걸음질 쳤다.
"미, 믿을 수 없어요. 그 난제를 풀었다고? 양산박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도 풀지 못했던 것을?"
도미닉 경은 조제프 준장이 너무 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했으나, 곧 미스터 왕이 독성 가스실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괴전파로 인해 양산박의 인원들은 배신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해진다고 하던가.
아무래도 오랫동안 양산박의 하수인이 되었던 조제프 준장도 그 괴전파의 피해자인 모양이었다.
"저희도 열 수 없어서 포기했던 보안을 풀었다니, 믿을 수 없"
"잠깐, 잠깐. 그럼 지금까진 어떻게 다닌 거요?"
도미닉 경은 조제프 준장의 말에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개인실의 유일한 입구를 쓰지 못했다면, 조제프 준장은 어떻게 여기에 있다는 말인가?
"창문을 통해서 다니죠. 저기 로켓 발사기가 보이나요? 저걸로 폭발 점프를 시도해서 말이에요."
"...계단이나 사다리는 없소?"
"그게 뭐죠?"
도미닉 경은 조제프 준장과의 대화를 통해 조제프 준장의 지능이 확실히 떨어진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
도미닉 경은 일단 조제프 준장과 대치를 하며 주변을 살폈다.
조제프 준장 외에 다른 사람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아쉽게도 마스터를 찾는 거라면 늦었어요. 방금 전 외출했으니까요."
"마스터?"
"양산박의 고위 간부, 왕이 말이에요."
"!"
조제프 준장의 말에 미스터 왕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도미닉 경을 제치고 조제프 준장을 추궁하듯 말을 뱉었다.
"왕이! 왕이라고 했소?"
"그래요. 양산박의 여섯... 아니, 이젠 다섯인가? 여섯? 아무튼 기둥 중 하나죠."
조제프 준장의 말에 미스터 왕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살아 있었구나. 게다가 고위 간부까지 되다니..."
미스터 왕은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양산박을 나오며 양산박과의 정보가 단절된 탓에 아들의 소식도 끊겼었으나, 마침내 다시 아들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이다.
"잠깐, 그렇다는 말은 이 기지의 관리자가 당신의 아들이란 소리 아니오?"
도미닉 경은 미스터 왕이 채 놓친 부분을 지적했다.
"...그렇게 되는구려."
미스터 왕은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그런 미스터 왕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이내 검과 방패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양산박에게 한 방 먹여주기로 마음먹었소. 그리고 가장 쉽게 양산박에게 한 방 먹이는 방법은 바로 고위 간부를 처치하는 거지."
도미닉 경의 말에 미스터 왕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미스터 왕은 어떻게든 도미닉 경에게 계획을 바꾸자고 말하고 싶었으나, 도미닉 경의 말이 더 빨랐다.
"그러나 미스터 왕, 당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렇기에 나는 한 번의 기회를 줘볼까 하오."
도미닉 경은 주저앉은 미스터 왕을 일으켜 세웠다.
"당신 아들을 설득해 보시오. 그리하여 양산박과 불법적인 일에 손을 떼겠다라고 말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를 건드리지 않으리다."
"...고맙소."
미스터 왕은 도미닉 경의 제안에 감사를 표했다.
적어도 그렇게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는 것 자체가 관대한 제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도미닉 경 자체만 본다면 양산박은 충분히 도미닉 경을 처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미닉 경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같이 비범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도미닉 경과 친한 히메는 가차랜드에서 가장 큰 닌자 가문인 운류 가의 딸이었고, 도미닉 경의 동생인 레미는 블랙 그룹의 회장이 아끼는 인재였다.
탱커노조 출신의 머슬만 의원이 그의 뒷배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행정부도 도미닉 경에게 호의적인 상황이었다.
그뿐일까? 도미닉 경과 면식이 있는 돈 카스텔로와 돈 카르텔로 형제는 블랙 그룹 2인자의 아들들이었고, 도미닉 경 자신도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퇴근만 안 시킬 뿐이지 자사 직원 보호만큼은 가차랜드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시스템 인더스트리였으니, 비록 말단 경비에 불과한 도미닉 경이라도 여차하면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리라.
종합해 보면, 도미닉 경은 무려 가차랜드의 세 날개 모두와 연이 있으며, 만일 도미닉 경이 마음만 먹으면 양산박 전체는 무리더라도 절반을 처리하는 것 정도는 무리도 아닐 것이라는 게 미스터 왕의 결론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가차랜드의 시민들 중에서는 이 사실 중 일부만 알 거나 아예 그냥 잘나가는 탱커 정도로만 아는 사람도 많았으나 그나마 정보에 밝은 미스터 왕은 도미닉 경에 대한 진실의 일부를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도미닉 경은 그럴 생각은 없이 그저 미스터 왕이 부탁했기에 들어 준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잠깐, 둘이서 무슨 대화하는 거죠?"
도미닉 경과 미스터 왕이 왕이의 처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때, 조제프 준장이 기분 나쁘다는 듯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양산박의 간부는 겨우 탱커 하나에게 털릴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늙은이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서 바뀔 것도 없구요. 그런데 벌써 이긴 것처럼 굴다니, 참 어리석군요."
조제프 준장은 갑자기 정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확실히 양산박의 최고 간부정도 되는 인물이 고작 3성인 도미닉 경과 도미닉 경보다 조금 약한 수준의 미스터 왕, 둘을 상대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오만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제가 지원군을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각은 좀 걸리겠지만, 여기가 최하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빠져나가는 데에도 한참일 텐데."
미스터 왕의 표정이 굳으며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확실히 조제프 준장의 말이 맞았다.
다른 지원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잠입을 위해 둘만 도착한 상황.
머릿수를 믿고 체력싸움으로 간다면, 도미닉 경은 몰라도 미스터 왕은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과거 양산박의 죄가 아직 시스템상에 기록된 상태였기에, 미스터 왕의 죽음은 곧 추방이었다.
과연 준장이라는 걸까?
자기 스스로 붙인 칭호기는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그녀는 지금 준장의 이름이 아깝지 않은 전략가였다.
...양산박 중에서는 말이다.
"자, 어떻게 하실 거죠? 참고로, 저는 최대한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당신들을 전력으로 붙잡을 생각입니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렇게 말한 조제프 준장은 갑자기 입고 있던 황후의 복장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장교복으로 변신한 조제프 준장.
그녀의 뒤편에서 괴이한 복장을 입은 괴인들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양산박의 하급 잡졸들인 모양이었다.
아마 방금 전 대화할 때 몰래 지원군을 부른 거겠지.
"모두 상대의 체력을 빼는 데 집중해! 사로잡아서 왕이님께 바치면 포상을 내리실 거다!"
조제프 준장의 말에 괴인들이 끼이끼이 거리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치 맡겨달라는 듯 말이다.
미스터 왕은 갑자기 들이닥친 괴인들을 보자마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을 통해 도망갑시다! 거기라면 아직 괴인들이 오지 못했을 거요!"
미스터 왕은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외쳤으나,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굳은 표정으로 조제프 준장을 바라보았다.
"조제프 준장."
"무슨 일이죠?"
"하나만 물어보겠소."
"뭐죠?"
조제프 준장이 난동을 부리는 괴인들을 진정시키며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을 바라보는 조제프 준장의 눈빛은 복잡해 보였으나, 도미닉 경은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왕이라는 자는, 여기를 완전히 빠져나간 거요?"
도미닉 경의 물음에 조제프 준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관용을 베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요. 오늘 고위 간부들 회의가 있다고 했으니 지금쯤 여길 벗어났을 거예요. 그건 왜 물어보는 거죠?"
도미닉 경은 조제프 준장의 말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도미닉 경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약속은 지킬 수 있겠군. 혹시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소?"
"...? 물어보시죠."
조제프 준장은 하나 정도라면 더 물어봐도 상관없겠지라고 생각하며 도미닉 경이 말하길 기다렸다.
"지금 몇 시요?"
"지금이요? 잠시, 지금 시간이"
조제프 준장은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조제프 준장은 차마 도미닉 경에게 시간을 알려줄 수 없었다.
반짝반짝하게 닦은 시계의 유리에, 도미닉 경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은 웃고 있었다.
손에 회중시계 하나를 들고서 말이다.
그래.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제프 준장은 고개를 들어 도미닉 경이 왜 웃고 있는지, 손에 든 회중시계는 무엇인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도미닉 경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 오기 전에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소. 이와 똑같은 문제였지. 지금이 몇 시인가?"
그리고 그건, 방금 전 도미닉 경이 물어본 질문에 대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답이었다.
"그리고 여동생이 이렇게 말했소. 고로시(?し)라고."
조제프 준장은 도미닉 경에게 그 농담은 별로 안 웃기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정말 재미없는 것은 지금부터였다.
조제프 준장의 앞에, 가느다란 빛줄기가 나타났다.
땅속에 있는 비밀기지, 그것도 최하층에 절대 들어 올리 없는, 엄청난 밀도의 빛줄기가.
도미닉 경은 그 빛줄기가 나타남과 동시에 열어두었던 회중시계를 탁하고 닫았다.
여전히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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