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화 〉 [270화]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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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경이 매스 프로덕션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사무실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도미닉 경에게 집중되었다.
도미닉 경은 말없이 사무실 내부의 인원들을 한 번 훑어보았는데, 하나같이 인상이 험악하고 힘 좀 쓸 것 같이 생겼다.
물론, 가차랜드에서 외모와 능력치는 별개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그 외모만으로 압도할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지?"
문 옆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모히칸의 사내가 도미닉 경에게 찾아온 용무를 물었다.
도미닉 경은 키가 꽤 큰 편이었으나, 모히칸의 사내는 도미닉 경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위압적으로 도미닉 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빚을 상환하러 왔소."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 보다도 더 심한 압박감 속에서도 있어 본 베테랑 기사였다.
"믿기 힘든데."
모히칸의 사내 옆에 있던 올백머리의 사내가 끼어들었다.
"우리에게 돈을 빌려간 놈들 중 제대로 갚은 녀석은 없지. 그냥 상환 기간 늘려달라고 온 거 아냐?"
올백머리의 사내의 의문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 의문에 변명이라도 할 법도 하건만, 도미닉 경은 말없이 3억 5000만 가차석이 든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좋아. 확실히 갚을 만큼의 돈은 있어 보이는군. 잭팟이라도 터졌나?"
올백머리의 사내가 도미닉 경이 그렇게나 많은 돈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현실을 부정했다.
분명히 도박장에서 호구 하나 잡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올백머리의 사내는 사무실에 서 있던 어리바리한 남자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일단 상환하러 온 것은 확실하니, 사장실에 있는 보스... 아니, 사장에게 알려야 했으니까.
"사장님이 없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겠구만. 아주 똑똑해. 갑자기 찾아와서 이러면 우리가 대처할 방법도 없이 빚을 상환받아야 하니까."
올백머리의 사내는 제멋대로 도미닉 경에 대해서 후한 평가를 내렸다.
"잠시 차라도 한잔하지 그래? 서류니 뭐니 준비해야 할 것들이 좀 되거든. 사장님도 얼마 전부터 경찰에게 쫓기... 아니, 서류 정리하시느라 바빠서 말이야."
올백머리의 사내가 싸구려 녹차 티백을 우려낸 종이컵을 사무실 가운데 있는 탁자에 놓고는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마시기 싫으면 그냥 앉아서 기다리지 그래?"
"야 임마. 우리 그런 쪽으론 손 떼기로 했잖아! 우리도 이제 양지 기업이야 임마!"
"내가 뭘 어쨌다고."
모히칸 머리가 종이컵에 담긴 녹차를 세면대에 버리면서 새 녹차를 꺼내 왔다.
"진짜 나도 요즘 그런 일엔 손 뗐다니까?"
올백머리의 사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과연 양산박의 일원들이란 말인가?
도미닉 경은 묵묵히 서서 이들의 면면을 지켜보았다.
양지의 대부업체를 지향한다면서 하는 행동도 그렇고 굉장히 음지의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이 가차랜드에서, 음지는 대부분 양산박의 것이었다.
"그래서, 안 앉을 거야?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는데?"
"상관없소."
"아니, 진짜라니까? 하루를 그냥 날릴 수도 있어. 요즘 서류가 너무 많아서 사장님마저 밥을 못 먹고 계시다니까?"
"상관없소. 그때는 그냥 밀고 들어가면 그만이니."
"하, 그게 쉬울 것 같"
도미닉 경의 객기에 비웃음을 날리며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려던 올백머리의 남자는 고개를 들어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움찔. 하고 올백머리의 사내의 움직임이 멎었다.
능글맞게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건네던 올백머리의 남자는, 도미닉 경이 환하게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못할 것 같소?"
도미닉 경은 자신이 있었다.
도미닉 경은 탱커였고, 시스템상에서 적힌 공격력이 낮았기에 날뛰더라도 꽤 지루한 장기전이 될 확률이 높았다.
어차피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면, 몸이라도 풀리도록 날뛰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미닉 경은 전투를 마다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도미닉 경은 저들이 도미닉 경의 도발에 발끈해 달려들기를 원하고 있었는데, 명분과 전투를 모두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미닉 경이 혹시 모를 전투에 미소를 지을 때,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생겼다.
도미닉 경의 특수 능력 [시네마틱]이 발동되고 만 것이다.
올백머리의 남자는 음산하게 웃고 있는 도미닉 경의 기세에 압도되어 숨 쉬는 것마저 잠시 잊고 있었다.
아니, 여기 매스 프로덕션 사무실에 있는 모든 이들이 도미닉 경의 기세에 압도되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갑자기 창밖에서는 어둑어둑한 비구름이 잔뜩 몰려들더니, 이내 세찬 빗줄기와 함께 천둥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탁. 하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정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쾅!
그런 소리와 함께 번개가 건물 바로 옆에 내려쳤다.
번쩍이는 번개의 빛으로 도미닉 경의 얼굴이 잠시 드러났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살인마의 눈이다!
올백머리의 남자는 방금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혹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죽는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올백머리의 남자는 뒷걸음질 치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기에 푹신한 등받이에 조금 더 파묻힐 뿐, 도미닉 경과 멀어질 수는 없었다.
"저기..."
그런 올백 머리의 남자를 구원한 것은, 어리바리한 남자였다.
"사장님께서 손님 들이시랍니다."
어리바리한 남자는 갑자기 정전이 된 건물에 놀라 사장실의 문을 조금 열고 소리쳤다.
"도미닉 경, 사장실로 오세요."
어리바리한 사내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도미닉 경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누가 배전반을 건드렸는지 건물에 불이 돌아왔다.
여전히 빗줄기는 거세게 창문을 때리고 있었으나, 천둥소리는 조금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좋소. 생각보단 빠르구려."
도미닉 경은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사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올백머리의 사내는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사장실로 걸어가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위압감은 어디 갔는지 도미닉 경의 미소는 잔잔하고 은은하기만 했다.
잘못 본 건가? 라고 올백머리의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로 들어가면 되는 거요?"
"아, 네."
도미닉 경은 어리바리한 사내가 문을 막고 있자 완곡한 표현으로 비켜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어리바리한 사내도 눈치가 있어 도미닉 경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소."
어리바리한 사내는 문고리를 잡고 도미닉 경이 들어가기를 기다린 뒤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하."
올백머리의 사내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봐봐. 장난 안 치길 잘했지?"
모히칸 머리의 남자는 도미닉 경이 손도 안 댄 녹차를 들고 한 번에 들이켰다.
적당하게 식은 탓에 먹기 불편하지는 않았으나 너무 티백을 오래 둔 탓인지 떫은맛이 강했다.
"...기세가 장난이 아니군. 저런 기세를 가진 사람은 몇 없었는데."
올백머리의 남자가 도미닉 경의 위압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정신 승리를 선택했다.
"그래도 기세만 그렇겠지. 싸우면 분명 내가 이길"
올백머리의 남자가 자기 정신을 보호하려고 말을 꺼낸 그 순간, 갑자기 다시 건물이 정전되었다.
순식간에 사무실은 어둠에 삼켜졌고, 갑작스러운 어둠에 놀란 나머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정전.
쿠릉. 하고 저 멀리서 천둥 치는 소리와 빗줄기가 유리창문을 때리는 소리만이 사무실에서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리였다.
"하, 하하. 또 정전이네. 건물이 낡았나..."
올백머리의 남자는 갑자기 일어난 정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유를 부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차마 숨길 수 없는 떨림이 있었다.
그때, 오싹. 하고 올백머리 남자의 등줄기에 싸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오싹한 감각에 올백머리의 남자는 감각이 경고하는 방향으로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
그리고 그 방향에 시선이 향한 올백머리의 남자는 두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곳에는 이 어둠 속에서도 형형히 빛나는 하나의 눈이 있었다.
쿠릉. 하고 천둥 치는 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건물 옆에서 번쩍하고 엄청난 빛과 함께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올백머리의 심장도 쿵 하고 내려앉았다.
번개의 빛에 드러난 눈의 정체는, 바로 도미닉 경의 시선이었다.
섬뜩하고 오싹한 포식자의 시선.
그 무시무시한 위압감에, 올백머리의 남자는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다.
...
"저기, 커피 두 잔 부탁하오."
"아. 네!"
도미닉 경은 어리바리한 남자에게 커피 두 잔을 부탁했다.
한 잔은 자기가 먹을 것이었고, 한 잔은 눈앞의 사장이 먹을 것이었다.
"고맙네. 내 억지를 들어 줘서."
어둠 속에서 사장이 도미닉 경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어두워지면 움직이질 못하겠단 말이지. 손님께 폐를 끼쳤군."
"여, 여기 있습니다!"
어리바리한 남자는 순식간에 이 어둠 속에서 커피 두 잔을 타왔다.
하도 커피 심부름을 많이 하다 보니 동선을 모두 외워 버린 것이다.
실제로 어리바리한 남자는 눈을 감고 움직였으나, 그 동선은 최적화가 된 상태였다.
"그래. 돈을 갚으러 오셨... 아니지. 통성명부터 해야 예의지. 실례했소. 나이가 드니 여러 가지를 깜빡하는구려."
노인은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도미닉 경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반갑소, 도미닉 경. 매스 프로덕션의 사장"
쾅! 하고 다시금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번쩍하고 터져 나온 번개의 빛에 어둠 속 노인의 모습이 얼핏 드러났다.
"'미스터 왕'이오."
그곳엔, 변발을 한 채 청나라식 복식을 입고 수염을 기른 노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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