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68화 (268/528)

〈 268화 〉 [267화]우리에게도 권리가 있다.

* * *

도미닉 경이 칸쿠 무사와 모종의 거래를 하던 때, 시위대의 중심에는 업데이트에 반대하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가챠 중독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는 검은 피부에 검은 머리를 가진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거나, 괴상망측한 춤을 추거나, 사람들 앞에서 가챠의 위대함에 대한 연설을 하곤 했다.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이 청년이 칸쿠 무사의 아들, 마간이었다.

"이 세상에 가챠없으면♩ 무슨 재미로♬"

"여러분! 가챠야말로 가차랜드의 기반이지 않습니까! 갸챠가 없는 가차랜드는, 그저 랜드일 뿐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마간의 일장 연설에 시위대의 인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현재 마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시위대의 중심이었으며,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가챠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업데이트 철회를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업데이트 문제에 대해서는 블랙 그룹이 관여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외침은 헛된 것이었으나, 사실 이 헛된 시위는 모두 계획된 일이었다.

"모여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우린 꼭 다시 가챠를 되찾을 겁니다!"

마간은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임시로 만들어진 허술한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단상의 뒤로 슬쩍 돌아가 화장실을 가는 척 골목에 숨어들었다.

골목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마간은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긴장이 풀린 듯 골목의 차가운 벽에 털썩 기대어 천천히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마간은 사람들의 앞에서 연설하던 당당한 모습과 달리,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간은 그저 개척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개척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성능도 좋고 외형도 좋은 카드를 희귀 카드를 뽑았던 것이다.

물론 요즘 그 가치가 연일 상한가를 친다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카드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상위권에 들만한 카드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여기까지는.

"그놈의 스킨이 뭐라고."

마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필이면 뽑은 카드가 아름다운 미녀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마간은 홀린 듯 이 미녀에게 어울리는 옷을 선물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그 어설픈 욕망은 바로 오기가 되었으며, 오기는 파멸을 불러왔다.

마간은 현재 무려 억 단위의 가차석을 빚진 상태였다.

그 모든 것은, 스킨을 뽑기 위해 마간이 불법적인 자금을 대출해가며 쌓인 금액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2000가차석, 3000가차석 씩 빌리다 보니 어느새 억 단위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마간은 도저히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채무의 늪에 빠져 서서히 파멸을 기다리던 상황.

그때, 마간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지금까지 마간에게 돈을 빌려준 대부업체, 매스 프로덕션의 간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매스 프로덕션의 간부는 빚이 너무 많으니, 절반을 탕감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간단한 일 하나를 해야 한다고 말했으나,절박했던 마간은 간부의 미끼를 덥썩 물어 버렸다.

그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이런 일인 줄 알았더라면 거절하는 거였는데."

마간은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매스 프로덕션이 원한 일은 바로 선동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매스 프로덕션의 간부는 다음 업데이트에 대한 내용을 미리 알아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가챠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며, 가챠의 규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선동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마간은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당신은 그렇게 선동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만일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저희 쪽에서 바람잡이를 심어놓을 거거든요. 가차랜드의 시민들은 단순하니 쉽게 선동당할 겁니다.'

'그래도...'

'물론 당신이 사람들을 모으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시선만 끌어 주시죠. 시선만. 그 정도는 간단하잖습니까.'

그렇게 말한 간부는 마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사라졌다.

마간은 고민에 빠졌다.

이를 아버지에게 말하고 도움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저 간부라는 이의 제안을 수행하고 절반을 탕감받을 것인가?

마간은 여기서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차라리 아버지에게 말하는 게 나았어. 혼나는 쪽이 더 나았을 거란 말이야."

마간은 침울하게 몸을 웅크렸다.

그는 억 단위의 가차석을 빚 진 상태였고, 이는 아버지라도 쉽게 내지 못하는 양이었다.

마간은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보다 알아차린 뒤 화를 낼 것이 두려웠다.

그 어리석은 생각으로 인해, 마간은 지금처럼 사람들 앞에서 선동하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아버지에게 말해서... 아니야.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마간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만큼 마간은 궁지에 몰려 있었고, 제대로 된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얼마나 머릿속이 복잡했던지, 골목길의 꺾이는 부분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골목에 나타난 사람은 양복을 입고 페도라를 쓴 채 코트를 어깨에 걸친 여성이었다.

페도라에는 150이라는 숫자가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높은 구두굽 소리가 좁은 골목에 울려 퍼졌으나, 마간은 여전히 갑자기 나타난 여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간이 이 여성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마간의 바로 앞에 여성이 서서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마간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존재를 보고 화들짝 놀라 기겁하며 벽에 달라붙었다.

"누, 누구요?"

"마간. 왜 여기에 숨어 있지?"

손을 들어 페도라를 푹 눌러 쓴 여성은 마간을 향해 상냥한 톤으로 말을 걸었다.

물론, 그 상냥함 속에는 음흉하고 악랄한 본심이 숨겨져 있었다.

"가, 간부요?"

"아직 네게 내린 임무가 끝나지 않았을 텐데."

페도라를 쓴 여간부는 품에서 세 장의 계약서를 꺼냈다.

하나는 그가 3억 5000만 가차석을 빚졌다는 문서였고, 또 하나는 그가 돈을 갚지 못할 시 신약의 실험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바로 빚의 절반을 탕감해주는 대신 사람들을 선동하라는 것이었다.

마간은 그 계약서들을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미 사람들을 선동했잖습니까."

마간은 그나마 미약하게 남아 있는 용기를 쥐어짜네어 간부에게 말했다.

"선동만 하면 되었지, 또 뭘 하라는 소리입니까?"

마간의 말에 간부는 말없이 마간을 내려다보았다.

페도라 아래로 슬쩍 보이는 눈빛에는 한심함과 경멸의 감정이 서려 있었다.

"계약에 의하면, 너는 아직 4시간 30분 동안 사람들을 선동해 붙잡아 둬야만 해."

간부는 마간의 얼굴 바로 앞에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 조항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여기. 여기에 말이야. 네가 도망치고 싶어도 계약에 묶였으니 마무리까지 확실하게 해야지."

마간은 말없이 간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필사적인 노려보기는 간부에게 있어서 너무나 우습고 귀여울 뿐이었다.

"하. 감히 그런 눈으로 날 쳐다 봐?"

간부는 마간의 태도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헛웃음은 이내 폭소가 되었고, 폭소는 곧 광소가 되었다.

그리고 광소는, 정색이 되었다.

"니가 미쳤구나?"

간부는 마간의 뺨을 내려쳤다.

마간은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간부를 바라보았다.

아픈 것보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 먼저였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라? 아직도 입을 나불대네?"

간부는 다시금 마간의 뺨을 내려쳤다.

또 한 대. 또 한 대. 또 한 대.

"그, 그만!"

마간은 뺨을 한 대 맞을 때마다 골이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자, 마간은 필사적으로 뺨을 가렸다.

그러나 간부는 뺨을 가리는 마간의 손을 치우고 다시 뺨을 내려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간부는 숨을 헐떡이며 페도라를 다시 눌러썼다.

마간의 얼굴은 완전이 파랗게 부어올라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그만... 죄송합니다..."

"진작 그렇게 고분고분할 것이지."

간부는 품속에서 붉은 액체가 든 병 하나를 꺼냈다.

그건 포션이었다.

마간의 얼굴에 포션을 부어 붓기를 뺀 간부는, 다시 정신을 차린 마간의 멱살을 잡았다.

"이제 알겠지? 너에게 선택권은 없어. 이미 넌 빚의 절반을 탕감하는 조건으로 나와 계약했고, 계약은 이행되어야만 하지."

간부는 얼굴과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마간에게 가까이 들이밀며 씨익 웃었다.

"네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야."

마간은 그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손 놓으시오."

그때였다.

간부는 갑자기 골목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이 골목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했을 텐데!

간부는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실루엣을 보았다.

빛이 역광이라 윤곽만 겨우 보일 뿐이었으나, 기골이 장대한 남자 같았다.

"하."

간부가 마간의 멱살을 털어내듯 거칠게 밀쳐 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던 길이나 가시지? 괜히 의협심에 가득 차서­"

"양산박."

도미닉 경의 짧은 말에 간부의 몸이 뚝 멎었다.

마치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었다는 것처럼.

"양산박의 사람이구려."

"...어떻게 알았지?"

"글쎄."

어디선가 회전초가 골목길로 굴러들어왔다.

아마도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시네마틱]의 효과일 것이다.

도미닉 경이 한 걸음 더 앞으로 걸어가 그림자 아래에 섰다.

그제야 간부는 골목길에 들어선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도미닉 경."

"양산박의 사람들은 뭐랄까... 느낌이 다르오. 기분이 좀 더럽다고 해야 하나."

"하. 듣는 사람이 다 기분이 나빠지는데."

간부는 도미닉 경의 도발 아닌 도발에 발끈했다.

"아무튼, 지나가라고 해도 여기 있는 걸 보면 용건이 있는 모양인데..."

간부는 마간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야? 아니면 이 빚쟁이?"

도미닉 경은 또 한 걸음 다가왔다.

이제 간부와 도미닉 경의 사이는 고작 스무 걸음 남짓.

도미닉 경이 달려든다면 충분히 좁힐 수 있는 거리였다.

간부는 도미닉 경의 갑작스러운 돌진에 대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달려들기보다는 우선 대화로 풀어가려는 듯 손가락으로 마간을 가리켰다.

"저 자에게 볼일이 있소."

그 말에 마간의 표정이 환해졌다.

자신을 구하러 와 준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곧 이어진 도미닉 경의 말에, 마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자를 흠씬 두들겨 패달라는 의뢰를 받아서 말이오."

그건, 마간에게 있어서 최악의 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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