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 [264화]막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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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게임 개 잘하네! 아주 극찬할 수밖에 없게 만드네!"
아 그러게 왜 뚜벅이를 고름? ㅋㅋ응 도미닉 경 이동기 없죠? 도붕이죠?
"야. 너 밴. 나를 놀리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도미닉 경을 놀리는 건 참을 수 없어요!"
성좌 아임 낫 리틀은 오늘도 방송을 하며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오늘의 게임은 조금만 잘못해도 팀원들이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는 효자 양성 게임 '하프갓'이었다.
선지자의 부재 이후 선지자의 후계를 자처하는 종파들이 선지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자의 성기사를 챔피온으로 내세워 반신화시켜 싸운다는 컨셉이었는데, 아임 낫 리틀은 당연하게도 최근 업데이트된 도미닉 경만 플레이했다.
다른 캐릭터들은 손이 많이 갈 뿐 더러, 컨트롤에 자신이 없는 아임 낫 리틀에게는 도미닉 경이 가장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 왕귀 타이밍이죠? 군단의 영광까지 뽑았으니 이제부터 도미닉 경의 턴이죠?"
아임 낫 리틀은 방금 전 세 챔피온의 협공을 받아 본진에서 회복 중인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상점 창을 열었다.
도미닉 경은 후반을 바라보고 뽑는 픽이었다.
도미닉 경은 비록 이동기는 없었지만, 우직하게 한 라인을 밀어내거나 난전에서 상대의 주력 딜러를 막는 등 아주 다재다능한 챔피온이었다.
지속적인 너프로 인해 아이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단점은 있었으나, 반대로 말하면 아이템만 갖춰지는 순간 그 어떤 챔피온보다 강해진다는 뜻이었다.
"어라? 여러분, 잠시만요. 전화가 와서 좀 받고 올게요."
그렇게 행복 회로를 돌리던 아임 낫 리틀의 전화기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아임 낫 리틀은 곧 있으면 도미닉 경이 부활하기에 전화 소리를 무시하려고 했으나, 발신자 이름에 적힌 이름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버렸다.
아임 낫 리틀은 방송용 마이크와 캠을 끄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렇게 전화를 주는 건 좋은데 왜 하필 이런 때 전화를 하는 거지?
아임 낫 리틀은 그렇게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아스트로무스 님. 무슨 일이세요?"
아임 낫 리틀은 최대한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지만, 같은 성운의 수장이기도 했으니 더더욱 태도는 공손해졌다.
"네. 네. 합방이요? 세상에! 당연히 좋죠! 그나저나 다섯이라고 하셨어요? 누구인지 미리 알 수 있을까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감히 필멸자의 귀가 들을 수 없고, 필멸자의 뇌로는 담을 수 없는 위대한 언어가 들려왔다.
필멸자라면 누구라도 그 목소리에 감화되거나 미쳐 버렸겠지만, 아임 낫 리틀은 성좌 자리는 트럼프 카드로 딴 것이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네. 아, 역시.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 시간에 가챠코드에 접속할게요. 네. 아뇨, 제가 감사하죠. 네.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아임 낫 리틀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새 편집자 도망갔나 보네."
아임 낫 리틀은 거의 확신에 찬 채 그렇게 말했다.
아임 낫 리틀은 아스트로무스의 전 편집자 중 하나로서 그의 성격을 잘 알았다.
아스트로무스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그 성격이었는데, 그는 광적으로 디테일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자막 바를 픽셀 단위로 고쳐야 하고, 중간중간 나오는 이펙트는 반드시 프레임 단위로 정확한 타이밍에 나와야 하며, 화면 전환에 필요한 시간도 프레임 단위로 계산해서 집어넣어야 속이 풀리는 성좌가 바로 아스트로무스였다.
그의 그런 편집증적인 디테일에 질린 편집자들은 그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도망가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아스트로무스와 가장 오랫동안 일을 했던 이가 바로 아임 낫 리틀이었다.
다른 편집자들이 3일에 한 번 바뀔 때, 그녀는 무려 3년하고도 2개월 동안 그의 광적인 디테일을 견뎌왔던 것이다.
심지어 편집을 그만둔 이유도 방송하고 싶어서였으니, 방송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아스트로무스의 편집자였을지도 몰랐다.
아스트로무스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아스트로무스는 아임 낫 리틀의 편집자로서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동시에 그녀의 방송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아스트로무스도 자기의 성격을 잘 알았고, 그런 성격을 잘 받아주는 아임 낫 리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이렇게 편집자가 도망치는 날이면, 아임 낫 리틀에게 전화해 합방이나 광고를 주선하며 방송을 키워주고, 그녀에게 편집을 같이 맡기는 것으로 두 욕구를 한 번에 충족시키고는 했다.
아임 낫 리틀은 어차피 밖에 나가지도 않는데 잘되었다며 컴퓨터 옆에 있는 달력에 빨간 펜으로 합방 날짜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때, 아임 낫 리틀은 문득 자기가 무언가를 까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게임."
아임 낫 리틀은 황급히 게임 화면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화면 가득 패배라는 단어가 떠올라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확인을 누르자 결과창으로 이동하며 결과창 구석에 있는 채팅창에 효심 가득한 부모님 안부가 가득 올라왔다.
"...망했네."
아임 낫 리틀은 힐끗 방송 채팅창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고의적 자리 비움이죠? 트롤이죠?나!락!나!락!어뷰징 핵 다 꺼져~ 이젠 AFK야~응, 열심히 해 봐~ 자리 비우면 그만이야~
아, 역시.
아임 낫 리틀은 그녀를 물어뜯을 생각에 신난 시청자들의 채팅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오랜만에 성좌들이 회동을 가졌다.
그것도 가챠 라이브를 통한 생방송으로 말이다.
회귀를 빙자한 서버 리셋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물론 저번 회담 이후 고작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참석하는 성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그 회담이 가챠코드를 통한 온라인 회담이었음에도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상상 이상의 규모를 보여주는 가챠튜버, 아스트로무스 인사드립니다."
와! 아스트로무스!슬라임 바람 풍선으로 행성 가두기 또 보여주세요!
"아쉽게도 오늘은 다른 컨텐츠를 할 예정이라서요. 오늘은 합방을 좀 해볼까 합니다."
합방요?슬라임 바람 풍선으로 행성 가두기 해주세요! 2트!
"저기 계속 저에게 슬라임 바람 풍선으로 행성 가두기 해 달라는 분 밴 해주시구요. 아무튼 오늘의 게스트 소개해드리겠습니"
[엄청난 규모의 군집체 님께서 통 큰 1000가차석!][반갑다 가챠튜브 똥강아지들아.]
"아, 컷! 컷! 이러면 영상으로 쓰지 못하잖습니까! 2트 가겠습니다. 2트."
온몸에 우주를 담은 거인 아스트로무스는 다시 한번 게스트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가챠튜브 시청자 여러분들. 언제나 상상 이상의 규모를 보여주는 가챠튜버, 아스트로무스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합방을 할 예정인데요, 지금부터 한 명씩 소개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스트로무스는 여기서 한 템포를 쉬고 한 명씩 순서대로 이름을 불렀다.
"핫한 뷰티 가챠튜버시죠. 최근 게임 쪽으로도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미의 화신'님입니다."
"안녕하세요! 미의 화신입니다."
"다음은 가챠튜브에 수학 강의 영상을 올리시는 대치동 1타 강사...가 아니라 가차동 1타 강사, '부정 다각형'님입니다."
아스트로무스는 성좌 하나하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임 낫 리틀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참느라 애를 썼다.
사실, 합방이라고는 했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아는 성좌들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성운에 사는 이들이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아임 낫 리틀은 모르는 사람과 합방을 할 시 답답해지는 면이 있었기에 그 사실을 기억한 아스트로무스가 아임 낫 리틀을 배려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임 낫 리틀은 지금 아스트로무스가 소개하는 순서가 가챠튜버 구독자 수 순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스트로무스에게서 오늘 합방을 하는 멤버에 대해서 언질을 받았기에 미리 정보를 모아 뒀던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아임 낫 리틀의 순서는 마지막이라는 소리였다.
여기 모인 가챠튜버들은 기본이 100만이 넘어가는 초 거대 가챠튜버들이었고, 아스트로무스는 혼자서 1억 3000만이 넘어가는 엄청난 가챠튜버였으니까.
고작 최근 깔짝 성장했음에도 15만을 오가는 아임 낫 리틀이 끼기엔 조금 초라한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임 낫 리틀님."
"안녕하세요. 아임 낫 리틀입니다. 작지만 게임 방송하고 있구요, 오늘 합방 즐겁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아임 낫 리틀은 아스트로무스의 말에 바로 준비된 멘트를 꺼냈다.
"아, 채팅창에서 알아보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맞습니다. 아임 낫 리틀은 제 예전 편집자 중 한 명이시죠. 약 1200개 정도의 영상을 편집하셨던 분입니다."
"그랬어?"
미의 화신이 아임 낫 리틀을 바라보았다.
"그 근성 때문에 우리 성운에 가입한 거잖아."
"몰랐어. 내가 친해졌을 땐 5만이었나? 꽤 성장했을 때니까. 과거까지는 몰랐지."
부정형의 성좌가 미의 화신을 타박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설정'이었다.
방송에서의 케미를 위해 이렇게 하자고 둘이 합의를 본 상황인 것이다.
"아무튼, 여기 모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합방을 한다고 해 놓고 합방의 주제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러네. 모인다는 말에 신나서 그냥 수락했는데."
"그러니까 네가 허우대만 멀쩡한 깡통 소리를 듣는 거야."
"뭐?"
부정형의 성좌와 미의 화신이 서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스트로무스는 자연스럽게 진행을 이어 나갔다.
"사실, 이건 혼자서 할까도 생각했습니다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 큰 거 오나?큰 거 오나?
아스트로무스는 잠시 채팅창의 반응을 살폈다.
채팅창에선 아스트로무스의 태도를 통해 무언가 큰 것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조용히 있던 덩굴로 엮인 성좌가 말했다.
"감질나게 기대 높이지 말고."
"그러도록 하죠."
아스트로무스는 덩굴로 엮인 성좌의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별 건 아닙니다."
아스트로무스는 담담한 어투와 행동으로 캠 옆에 PPT를 띄웠다.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이.
"다음 업데이트에 대한 프리뷰라고나 할까요."
"엥. 존나 별 건데요."
아임 낫 리틀은 아스트로무스의 말에 당황한 나머지 비속어를 꺼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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