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화 〉 [261화]깨어나기 위한 여정
* * *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분석도 완벽했고, 변신도 완벽했는데!"
도미닉 경은 우수수 떨어지는 파편들 사이로 마족을 노려보았다.
마족은 머리가 셋이었는데, 각각 노인, 청년,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그 머리들과 몸은 분리되어 달군 놋쇠로 된 수레바퀴에 꿰어져 있었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마족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꿈을 이용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듯했다.
꿈만 다루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정보를 얻고 분석하며 변신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정신적인 피해, 혹은 복합적인 피해를 입히는 타입일지도 몰랐다.
"그거야 간단하지."
도미닉 경은 단칼에 마족의 목을 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마족에게 대답했다.
기습에 실패한 이상 이미 마족이 다음 공격에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기에, 틈을 찾기까지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처음엔 그저 의심이었다. 갑자기 팬이라며 승급을 시켜준다는데, 좀 이상하다고 여겼지."
도미닉 경은 등에 멘 방패를 왼손에 들고, 왼손에 역수로 들고 있던 검을 오른손으로 옮겼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도 필요 없다는 말에 더욱 의심이 들었고, 싸인을 해 달라는 말에 심적으로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건 마족들이 인간들을 속여 계약할 때 써먹는 방식이었으니까."
남은 건 확인 뿐이었지. 라고 도미닉 경이 중얼거렸다.
"고작 그 정도로 검을 휘둘렀단 말이냐? 진짜라면 어쩌려고!"
"물론 그 정도로 끝은 아니지."
도미닉 경은 마족의 말에 반박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은 고작 이런 걸로는 죽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도미닉 경은 당당하게 그리 말했다.
실제로 도미닉 경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그 순간이 강렬했던 탓에 도미닉 경은 그 당시의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았으나,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처럼 '어정쩡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 반대로 내가 묻고 싶군."
도미닉 경이 검을 들어 마족에게 겨누었다.
아직 흩날리는 차원의 파편이 유리 조각처럼 반짝여 도미닉 경의 뒤에서 후광처럼 비치었다.
"이름 모를 마족이여, 너는 대체 어떻게 여기에 잠입한 거지?"
"그걸 알려줄 이유가 있나?"
마족은 세 개의 머리 모두 비열하게 웃으며 도미닉 경을 곁눈질 했다.
그러나 이 마족의 등에선 연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는데, 마족을 사냥하는 도미닉 경의 위세에 압도 된 상태였다.
다만 마족 특유의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 마족은 소환의 형태로 강림한 슬라톤 벡스와는 다르게 그냥 우연찮게 가차랜드에 도착한 이였다.
얼마 전, 콜라보 이벤트로 인해 각자의 차원이 연결되었을 때, 이 머리가 셋인 마족도 같이 휩쓸려 들어왔다.
어느 차원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가차랜드에 도착한 마족은 일단 살 길을 마련해야 했다.
사람도 어떤 사람은 새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브로콜리를 좋아하며, 어떤 사람은 바게트를 좋아하듯 마족들도 식성이 다 달랐다.
그리고 이 마족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특히나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착각했을 때, 바로 무저갱으로 떨어뜨려 완전히 의욕을 잃어버리는 것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물론, 가차랜드에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차랜드는 시스템의 관리하에 있었기에 사소한 능력치의 변동도 모두 기록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최고의 자리에 올려도 떨어뜨리는 것이 쉽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가차랜드의 시민들은 대개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 드는 성격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차랜드의 시민들은... 대개 따서 갚으면 된다는 마인드가 그 기저에 깔렸었다.
어차피 죽지도 않는 거, 복권을 사든 가챠에서 대박이 터지든 언젠가는 딴다는 마인드.
하루하루 일일 알바하면서도 하루하루 모든 돈을 가챠에 꼴아박... 가챠에 소비하는 것이 가차랜드의 본질이자 일상이었다.
덧붙여, 가차랜드의 사람들 중에는 떨어짐은 곧 반등신호요, 올라감은 곧 상한가라는 이상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의욕이 없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마족이 원하는 것은 최고의 자리에서 떨어져 망가지는 것이었지 그냥 의욕이 없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야말로 차갑고 잔혹한 현실의 벽.
그러나 마족은 포기하지 않고 대안을 찾았다.
그리고 그 대안이 바로 이 꿈이었다.
이 마족은 다른 이들의 꿈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꿈을 개변하는 수준은 불가능했지만 살짝 건드리거나 그 내용을 보는 것은 가능했다.
그렇게 꿈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을 엿보며 정보를 모은 뒤에는 이렇게 꿈속으로 불러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마저도 시스템의 보호 수면 중 안심보호 프로그램 으로 인해 쉽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는 여러 꿈들을 경유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바로 너라는 뜻이지, 도미닉 경. 어찌 보면 난 거짓말을 한 게 아니야. 자네에 대해 관심이 많... 헛."
마족은 생각한 것을 입으로 나불나불 털어놓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빠지면 중얼거리면서 고민하던 버릇 때문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에 그의 버릇은 마족을 배신했다.
"이렇게 내게서 정보를 빼가다니, 아주 대단한 녀석이로군."
"아니, 그냥 중얼거리다가 제멋대로 털어놓은 거 아닌가?"
도미닉 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마족에게 말했다.
자기 스스로 제멋대로 말해 놓고는 왜 화를 낸단 말인가.
"...아무튼! 내 본 모습을 본 이상 너를 살려 둘 수 없다! 육체가 아무리 영원히 부활한다고 해도 영혼이 사라지면 의미가 없지. 이 꿈속에 들어온 것이 너의 패배다."
마족은 양 주먹을 마주치며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해 제멋대로 달려드는 것 같았으나, 도미닉 경은 방심하거나 얕보지 않고 방패를 들어 올리며 마족을 노려보았다.
...
잠시 후.
"살려주십쇼."
마족은 도미닉 경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싹싹 빌고 있었다.
"뭐든 말할 테니 더 때리지만 말아 주십쇼. 더 맞았다간 추방당할 것 같습니다."
머리가 셋 달린 마족은 뜻밖에 허당이었다.
도미닉 경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약한 마족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달려들기에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모습에 숨겨둔 한 수가 있는 줄 알았으나, 그저 수준 차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달려든 불나방이었다.
"살려만 주신다면 종이라도 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마족에게 자비란 없다. 다만 정보를 준다면 아프지 않게 죽여주지."
"그 아니, 감사합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마족은 도미닉 경의 말에 뭐라고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의사 결정권은 도미닉 경에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자비까지는 버리고 싶지 않았다.
"방금 전 선배의 모습을 보았다. 여긴 누구의 꿈이지?"
"그, 그 사람의 꿈이 맞습니다. 저는 그저 꿈의 틀만 빌려왔을 뿐이지요. 본체는 아마... 지금쯤 숙직실에 누워 낮잠을 자는 게 아닐까요?"
마족은 자세한 상황은 모르기에 추측성으로 내뱉었지만 그 추측은 거의 정확했다.
왈록은 현재 회사에 출근한 상태로 낮잠을 즐기고 있었고,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서 감자칩과 맥주, 그리고 도넛을 먹으며 일일 드라마를 보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꿈이 깨져 버렸는데, 문제는 생기지 않는가?"
"큰일은 없을 겁니다. 꿈에서 깨어날 뿐, 현실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전히 여기에 있는가?"
"그건 제 영향력 때문입니다. 꿈속에 잡아 둘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날 풀어 주면 살 수 있는데 왜 아직도 잡아 두고 있지?"
"그건 말입니다..."
마족이 비굴한 표정에서 바로 악독한 표정으로 태세를 바꿨다.
"너에게 한 방 먹여주려는 속셈이었지! 하하하!"
마족은 또 한 번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었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마족을 밀쳐 냈으나, 마족은 개의치 않고 도미닉 경을 끌어안으려고 애썼다.
"자폭이다! 어차피 추방될 게 뻔하니 네 영혼에 상처라도 내고 가야겠다!"
마족은 끈질기게 들러붙어 도미닉 경의 허리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족의 몸이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 울룩불룩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이 마족을 떼어내려고 칼을 들어 마구 찔러댔으나, 마족은 고통도 잊은 듯 마구 웃어제꼈다.
그렇게 마족을 떼어내려고 노력하던 도미닉 경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폭발 직전의 마족에게 나지막이 한마디를 던졌다.
"그, 꿈속이라는 말은 너도 영혼 상태라는 말 아닌가? 그렇다면 추방이고 뭐고, 영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아."
마족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갑자기 겁에 질려 자폭을 취소하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거대한 폭발이 산산조각이 난 꿈의 세상 위로 퍼져나갔다.
도미닉 경이 산산조각이 난 꿈의 세상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무너지기 시작한 꿈의 세상의 틈새 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눈을 감고 있는 거인이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를 어디서 본 기억이 있었다.
아마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회장을 만났던 그때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