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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61화 (261/528)

〈 261화 〉 [260화]대담한 대답

* * *

"왜 말이 없으시오?"

도미닉 경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을 추궁했다.

"아니, 적절한 답변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말일세."

회장은 잠시만 기다려보라는 듯 손사래를 치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이렇게 말했다.

"'헐.'이라는 말은 이미 유행이 지났다는 건 알겠네. 그런데 '몰?루'라는 말이 지금 유행하는지 몰라서 말일세."

"그게 중요한 거요?"

"중요하지. 까닥 잘못하면 시간 선이 다 꼬여 버리거든."

뭐, 꼬이면 다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회장은 활짝 웃으며 나팔처럼 모은 손을 입 가에 대었다.

"아무튼, 자네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라는 걸세."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도미닉 경을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도미닉 경에게 이상이 생겼을 때를 기다린 셈이지."

"그래. 겸사겸사 현역에 돌아온다는 핑계를 대고 말이야."

회장의 세 목소리가 제각각 답변을 내놓았다.

목소리들은 살짝 들떠 있었는데, 어찌서인지 도미닉 경의 반응을 흥미롭게 보는 느낌이었다.

아마 도미닉 경의 입에서 거짓말이라는 단어나 이 상황에 대한 부정의 말이 나오길 기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럼 되었소."

그러나 회장의 악취미적인 기대와는 달리 도미닉 경은 이 일에 대해서는 납득하고 넘어갔다.

회장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도미닉 경에게 되물었다.

"정말 이 정도로 끝?"

"그렇소."

"뭐 거짓말이라거나 그런 생각은 안 드나?"

"당신은 회장이잖소.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를 모를 리가 없지."

도미닉 경은 오히려 되묻는 회장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설마 내게 거짓말을 한 거요?"

"아니, 그럴 리가. 절대로."

"그럼 더 물어볼 필요가 무엇이 있겠소? 당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그 한 마디로 충분한 대답이 된 거요."

회장은 그 말에 위스키가 가득 든 잔을 들고 창문 가의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재미없는 사람이로군."

회장은 창 앞에 놓인 테이블에 팔을 걸친 채 도시의 야경을 안주삼아 위스키를 홀짝였다.

"그나저나 왜 나를 여기로 부른 거요?"

도미닉 경은 조금 전 물었던 질문을 다시 되물었다.

물론, 그 속에 있는 의미는 달랐다.

"고작 이런 시시한 농담이나 하려고 부른 것은 아닐 것 아니오."

"...그렇긴 하지."

회장은 손에 든 위스키 잔을 두어 번 돌렸다.

보석을 녹인 듯 반짝이는 호박색 액체가 잔의 표면을 따라 흘러내렸다.

"좋아.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회장은 잔에 남은 술을 주욱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네를 부른 건, 이번 업데이트 때문일세."

도미닉 경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회장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번 업데이트와 도미닉 경을 만나는 것이 무슨 연관 관계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이제 설명해주려고 했으니까."

회장은 박수를 세 번 쳤다.

마치 무언가 대단한 것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도미닉 경은 회장의 행동에 잔뜩 긴장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지?

집사가 튀어나오나? 아니면 빔 프로젝터가 켜지나?

혹시 증강현실로 된 무언가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러나 도미닉 경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박수를 세 번 친 회장은 그냥 품속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낸 것이 전부인 것이다.

"이게 바로 SF태그를 달아 놓고 SF요소는 반 티스푼 정도 넣은 악독한 작품들의 명단일세."

회장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가장 윗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뉴 테­

"농담일세. 한 번 이 농담을 해 보고 싶었는데, 마침 타이밍이 맞아 한번 해봤네."

회장은 피식 웃으며 종이를 넘겼다.

그리고 넘겨진 종이에는 [6성, 혹은 한계 돌파?]라고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아래에도 작은 글들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6성이 되면 적당히 좋아질 수도 있고 굉장히 좋아질 수도 있다.]라고 적힌 글을 천천히 읽어내리던 도미닉 경은, 그것마저 그냥 회장의 농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래는 보지 말게. 위가 중요한 거니까."

노망나서 그래. 이해해 줘. 라고 청년의 목소리가 말했다.

회장은 뒤늦게 아랫부분은 아무런 내용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가차랜드는 5성까지 있네. 레벨 시스템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사라졌지. 너무 과도하게 치솟는 스탯 인플레이션을 막지 못해 오히려 재미가 없어졌거든."

"스토리 모드를 거의 밀지 않은 도미닉 경은 모르겠지만, 원래 이 스토리 모드도 지속해서 업데이트가 되고 있어. 물론, 성급에 따라서 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지."

"여기서 문제가 생겼네. 지금까지 5성을 달성한 인원들은 이미 스토리 모드를 모두 밀어 버린 상황에서,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질 거야. 전력 질주하듯 달려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건 너무 불만인 셈이지."

회장은 제각각 한마디를 꺼내더니, 이내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쉽게 말해서 고인물들을 위해 성급을 확장시킨다는 걸세."

도미닉 경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여전히 의문이 가득했다.

회장은 도미닉 경의 질문에 말을 돌릴 뿐,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날 보는 것과 무슨 상관이오?"

도미닉 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힘들수록, 짜증이 치밀어 오를수록 웃는 도미닉 경의 습관이 발현된 것이다.

"...좋아. 본론만 말하겠네."

회장은 힐끗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사실 회장은 오랜만에 직위와 상관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나타난 것에 너무 신난 나머지 말이 많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반응에 너무 과하게 갔다는 생각이 든 회장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6성이 되어 줄 생각이 있나?"

"...? 그게 무슨 소리요?"

회장은 도미닉 경에게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꺼냈으나, 그 말의 무게는 회장의 태도와는 달리 전혀 가볍지 않았다.

"고작 3성인 내가 무슨 자격으로 6성이 된다는 말이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 거요? 최대한 빨리 5성을 넘어 6성에 도전하라는 것이오?"

도미닉 경은 회장에게 더 설명해 보라는 듯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회장은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고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한 말 대로일세. 6성이 될 생각이 있나?"

회장은 도미닉 경이 한 말이 맞다는 듯 다시 한번 제안 했다.

"...이해되질 않는구려."

도미닉 경은 회장의 말에 순식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생각은 도저히 정리되지 않았고, 복잡해진 머릿속은 더욱더 헝클어진 실타래가 되어갈 뿐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도미닉 경은 혼자서 생각하는 것으론 결론이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회장에게 물었다.

"왜 내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거요?"

도미닉 경의 말에 회장은 언제 다시 채웠는지 모를 술잔을 들어 올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자네의 팬일세. 그것도 자네가 모든 것을 이룩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유능하고 부유한 팬이지. 당연히 팬의 처지에서는 있는 것을 다 들이부어서라도 스타의 성공을 바란다. 당연한 것 아니겠나?"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는 스타고, 나는 팬일세. 그것도 자네를 저 최고의 자리에 올려줄 수 있는 팬."

"이건 내게 부담이 좀 가는 제안이긴 하지만 그만큼 자네를 믿는다는 뜻이기도 해."

"원한다면, 자네는 가차랜드의 간판 스타가 될 수 있는 거야."

여러 갈래로 갈라진 회장의 목소리가 도미닉 경에게 속삭였다.

"자, 말 한마디면 자네는 바로 6성이 될 수 있어. 자네가 원하는 대로, 이 가차랜드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고."

도미닉 경은 그 달콤한 속삭임에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혹은 거절할지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가는 어떻게 되는 거요?"

도미닉 경은 슬쩍 왼손을 아래로 내리며 회장의 심중을 떠보았다.

"대가? 그건 아주 사소한 거지."

"팬의 조공에 대가가 왜 필요하겠나?"

"다만 여기에 싸인이나 한 장 해주게."

도미닉 경은 회장이 건네는 하얀 종이 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내리고 있던 왼손을 들어 올려 허리춤에 찬 검을 역수로 잡고 뽑아 회장을 향해 휘둘렀다.

회장이 든 종이가 갈라지며 불타올랐다.

도미닉 경이 조금 전부터 고민하던 것이 바로 이거였다.

언제 공격하느냐.

"...이게 무슨 짓이지?"

"당신은 진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이 아니로군."

"그게 무슨 소리­"

회장은 도미닉 경의 말에 버럭 화를 냈으나, 그의 말보다 도미닉 경의 검이 더 빨랐다.

도미닉 경의 검이 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장의 목에 닿았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세상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아, 들켰네."

조금 전까지 회장이었던 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거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회장이었던 이는 깨진 차원의 조각을 유리처럼 버적버적 밟아대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지?"

"분석은 완벽했다고!"

"우리가 몇 번이나 교차 검증을 했는데."

도미닉 경은 우수수 떨어지는 차원의 조각들 사이로 회장이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회장으로 변장했던 것.

"한번 말해 봐. 어떻게 안 거지?"

그건 바로, 페럴란트를 습격한 바로 그것들.

마족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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