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 [259화]Welcome, Sir Dominic
* * *
"여깁니다."
도미닉 경은 코뿔소 머리의 남자를 따라 리무진을 타고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치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건축물처럼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였는데, 도미닉 경은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건축물이 조금 더 안정적이었더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라? 너 왜 여기 있냐?"
도미닉 경은 그 건물의 입구에 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이의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선배?"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왈록이 있었는데, 평소의 인간의 모습과는 달리 근육질에 날개가 달린 악마의 모습으로 도넛을 먹고 있었다.
"이거 꿈 아닙니까? 꿈에서 왜 선배가..."
"뭐? 그런... 아."
왈록은 도미닉 경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도미닉 경의 뒤에 있는 코뿔소 머리의 남자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하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 새로 뽑힌 보안팀장이 눈치를 주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건 '보안'이 중요한 일인 모양이었다.
"음, 뭐. 그렇지. 꿈이지. 개꿈이라서 그래. 아마 그럴 거야."
왈록은 있는 힘껏 꿈이라는 것을 어필했으나 안타깝게도 왈록에겐 연기 재능이 거의 0에 수렴했다.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왈록의 연기가 어색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척했다.
왈록이 저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 시점에서, 도미닉 경은 여기가 진짜 꿈인지, 아니면 꿈을 빙자한 새로운 스테이지나 던전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만 가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코뿔소 머리의 남자는 도미닉 경에게 넌지시 원래의 목적을 상기시켰다.
도미닉 경은 코뿔소 머리의 남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잊을 뻔했소."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은 왈록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선배, 나중에 봅시다."
"그래. 가차랜드에서 보자고! ...아차!"
왈록은 끝까지 말실수를 하며 손바닥으로 입을 마구 내리쳤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그런 왈록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건물에 들어서자, 아주 고풍스럽고 화려한 로비가 도미닉 경을 반겼다.
황금과 백금, 비단과 벨벳으로 장식된 이 화려한 로비에는 실크로 된 턱시도를 입은 직원들이 있었는데,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사무적인 분위기와 달리 여기는 마치 카지노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어서 오세요, 팀장님. 회장님께 가십니까?"
"그래."
로비에서 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안 장치를 통과해야 했는데, 보안 장치 옆에 있는 직원이 도미닉 경의 몸을 수색하며 코뿔소 머리의 남자에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몸 수색을 받으며 인벤토리 내부에 있는 것들도 다 꺼내놓아야 했는데, 보안 직원은 위험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도미닉 경에게 모든 짐을 돌려주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는 건 알지만 이게 제 일이라서요."
"...위험한 걸 찾는다면서 칼과 방패는 왜 그냥 두는 거요?"
도미닉 경은 여전히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과 등에 메어져 있는 방패를 가리켰다.
"그런 건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요."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직원이 사무용 커터칼을 들고 들어간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도미닉 경은 직원의 말을 통해 이 건물에서 도미닉 경의 무기는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깁니다."
이미 보안 장치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코뿔소 머리의 남자... 보안팀장은 도미닉 경이 보안 장치를 넘어오자마자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목에 걸려 있는 카드키로 엘리베이터의 문을 연 보안팀장이 다시 카드키를 층수가 적힌 버튼들 아래에 대었는데, 그러자 엘리베이터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음에도 고속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무릎이 굽혀질 만큼 강한 중력에 약한 신음을 내었으나, 탱커 답게 견뎌낼 수 있었다.
"이제부터 행동에 주의해주십시오. 이 문만 넘어가면 바로 회장님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그곳은 고급스러운 융단이 깔린 긴 복도였다.
복도의 좌우에는 이 회사의 자랑인 듯한 사진들이 크게 인화되어 걸려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한 사람의 얼굴만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사진마다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사진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고, 어떤 사진은 사이즈가 맞지 않아 촌스러운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어떤 사진에선 꽤 높아 보이는 사람과 악수를 하고 있었고 어떤 사진에선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채 왕좌에 앉아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사람... 어쩌면 사람들일 얼굴들을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그들이 하나같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은 한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높은 사람과 악수를 하는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은 '닌자 스피릿츠 : 운류가의 전운'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미닉 경은 운류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는데, 잠시 고민하던 도미닉 경은 운류라는 단어가 이상 현상에 휘말려 도트가 되었을 때 히메에게 붙어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운류...?"
도미닉 경은 다시 다른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자베르 경감과 괴도 슈퍼 디럭스], [아슈트라니아 전설 : 마왕 투아 르 반트의 부활]과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꽤 익숙한 이름들에 괜히 마음이 심란해진 도미닉 경은 이내 마지막 하나만 더 보자는 생각에 바로 옆의 그림으로 넘어갔다.
"회장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그 그림을 자세히 볼 기회는 없었다.
보안팀장이 도미닉 경을 불러내었기 때문이다.
"...가겠소."
도미닉 경은 보안팀장이 가리킨 문으로 걸어갔다.
문 너머의 존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으니까.
보안팀장은 도미닉 경이 문 너머로 지나가자마자 문을 닫았다.
회장을 알현하는 것은 도미닉 경에게만 허락된 것이지, 자신한테 허락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대신 보안팀장은 방금 전 도미닉 경이 보려고 했던 그림으로 걸어갔다.
"언제 봐도 대단한 카리스마란 말이지."
보안팀장이 보는 것은 왕좌에 앉은 남자의 사진이었는데, 그의 손에는 [페럴란트 연대기]라고 적힌 CD가 들려져 있었다.
그것도 1, 2, 3 세 장이나.
...
도미닉 경은 뒤에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꽤 넓은 공간으로 된 방은 한 면이 통짜 유리로 되어 있어 시내를 바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따뜻한 톤의 커튼과 밝지만 가볍지는 않은 목재 가구들로 이루어진 방은 훈훈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차가운 도시의 불빛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왔군."
도미닉 경이 한참 이 우아한 방 안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도미닉 경의 감각이 조금 이상하다고는 해도 누군가의 접근을 못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도미닉 경의 등 뒤에 서 있던 사람은 굉장히 비싼 양복을 입은 노인이었는데, 가진바 카리스마가 매우 대단해 도미닉 경이 위축될 정도였다.
바로 그 도미닉 경이.
"그리 놀랄 필요는 없네. 자네를 해할 생각은 없어."
물론, 너도 날 해칠 수 없지.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회장이오?"
"그래. 구면이지?"
회장은 히죽 웃으며 찬장에서 위스키와 잔을 꺼내 들었다.
도미닉 경은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이 사람이 바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에 너무 큰 충격으로 숨어 있던 기억이 깨어난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
"가차랜드에선 나를 그렇게 부르더군."
다른 곳에선 또 다르게 부르지만. 청년의 목소리가 도미닉 경의 귓가에 속삭였다.
회장은 잔에 위스키를 가득 담은 채 비싸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일단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겠네. 자네를 한 번 보기 위해서는 꿈을 거치는 수밖에 없었거든."
창조주도 못 알아보는 망할 AI 같으니. 어린아이와 청년이 동시에 분노했다.
"아무튼 여기까지 왔으니 당분간은 중앙 시스템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거야."
"...날 왜 여기까지 데려온 거요?"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옆집 할아버지처럼 분위기를 바꾼 회장을 멍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본래의 목적을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힘을 들여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면, 어떠한 이유가 있을 텐데."
도미닉 경의 날카로운 질문에 회장이 좋은 질문이라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좋은 질문일세. 그건 바로, 내가 자네를 한 번 보고 싶었으니까."
"보고... 싶었다?"
"그래. 쉽게 말하자면, 팬이라는 소리지."
도미닉 경은 회장의 말에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고작 팬심에, 자기를 한 번 보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좋소. 당신이 내 팬이라 날 보고 싶었다고 치겠소. 다만 이렇게 당신과 내가 만나기 위해선 엄청난 계획이 필요할 텐데."
"그렇지. 꽤 큰 계획이었지."
"그렇다는 말은 미리 준비했다는 뜻일 테지. 설마 내 감각이 이상해진 것도 당신 때문이오?"
도미닉 경의 말에 회장은 침묵을 지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