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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59화 (259/528)

〈 259화 〉 [258화]이상한 나라의 도미닉 경

* * *

도미닉 경은 히메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지기 전, 갑자기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고 아래로 끌어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마족의 곤봉에 맞았을 때처럼 붕 뜬 느낌을 받은 도미닉 경은 이내 주변의 풍경이 치즈가 늘어나듯 주욱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구겨진 골판지 위에서 깨어났다.

"여긴...?"

도미닉 경은 아래에 깔려 완전히 구겨져 버린 골판지를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골판지로만 만들어진 곳 같았는데, 한 면에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모든 골판지 그림들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것이 골판지로 만들어진 인형극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이 그 작은 무대에 다가서자 골판지로 된 무대 뒤에서 기괴한 모습을 한 골판지 광대가 나타났다.

그 광대의 손으로 보이는 부분에 실을 달고 있어 아래에 골판지로 된 인형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광대는 도미닉 경에게 무대 앞에 있는 골판지 의자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골판지 의자는 과연 도미닉 경의 무게를 버틸 수 있을까? 라고 기대하듯 눈을 빛내는 광대.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그 골판지 의자에 바로 앉아버렸다.

아마 여기가 꿈속이라서 그렇겠지. 꿈속에서 개연성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는 별개로, 골판지 광대는 도미닉 경이 앉은 골판지 의자가 주저앉지 않아 조금 실망한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 인형들을 자세히 보았다.

골판지에 하얀 종이를 붙여 크레파스로 칠한 인형이었는데, 이 골판지 인형을 만든 사람은 손재주가 그리 좋지는 않은지 여기저기 딱풀로 인해 울어 버린 자국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골판지 인형들은 골판지 광대와는 달리 꽤 귀여웠는데, 도미닉 경은 그 인형들이 누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도미닉 경이 이 인형들이 누구와 닮았는지 생각하려던 찰나, 광대의 팔이 움직였다.

광대의 머리와 팔엔 줄이 매어져 있어 저 어두운 천장에 매여져 있었는데, 줄은 아주 얇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광대는 양손을 인형극 무대의 위 쪽, 즉 광대의 얼굴 쪽으로 들어 올렸다.

무대에 있던 인형들이 한데 엉키며 딸려 올라왔으나, 광대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골판지를 하나 들어 올렸다.

[프롤로고스 ­ 평화]

도미닉 경은 무심코 그 글자를 보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가차랜드의 글자가 아니었다.

바로 페럴란트의 글자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광대는 엉켜 버린 줄들을 풀며 다시 연극을 이어 나갔다.

너무 심하게 엉켜 버린 나머지 끝까지 풀리지 않는 줄도 있었으나 광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골판지로 된 모형 가위를 들어 엉킨 줄들을 싹둑싹둑 잘라 내었다.

줄이 끊어진 골판지 인형들은 힘없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골판지 광대는 그런 인형들을 대충 옆으로 쓸어 버렸다.

어느새 무대 옆에 준비되어 있던 골판지 상자가 인형들을 삼켰다.

골판지 상자 안에서 미약한 비명과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상자의 열린 부분으로 빨간색종이가 튀어 올랐다.

광대는 상자를 닫는 걸 깜빡했다는 듯 상자의 열린 부분을 닫고 다시금 인형극을 이어 나갔다.

"..."

광대는 평화로운 마을을 그린 골판지 배경을 무대 뒤에 꽂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켰는데,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은 그 인형들에게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광대는 이내 주인공 격인 네 사람의 인형을 등장시켰는데, 그 인형은 다른 인형보다 2배는 큰... 골판지였다.

건초더미용 포크를 든 키가 큰 남자와 등이 살짝 굽은 여자, 갈색 머리의 남자아이와 양털처럼 복슬복슬한 머리의 여자아이.

밝은 배경과 인형들의 활기찬 연기 덕분에 극의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

골판지로 된 커튼이 닫혔다.

그리고 다시 커튼이 열리자, 이번엔 광대가 새로운 골판지를 들고 있었다.

[1장. 헤어짐.]

엉성한 페럴란트 어로 적힌 엉성한 골판지를 뒤로 집어던진 광대는, 이내 노을 진 평야와 마을이 반반씩 섞인 배경에 네 사람을 등장시켰다.

건초더미용 포크를 든 키 큰 남자와 등이 조금 굽은 여자, 복슬복슬한 머리털의 여자아이는 마을 쪽에서, 키가 큰 갈색 머리의 남자아이는 평야 쪽에 서 있었다.

도미닉 경은 이 연극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렸다.

당장에라도 무대로 뛰어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도미닉 경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골판지 의자의 팔걸이에는 골판지로 된 밧줄이 매어져 있었는데, 실제 밧줄보다 더 억세게 매어져 있어 차마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도미닉 경이 발버둥 치는 동안, 남은 이들이 떠나간 남자아이를 그리워하며 1장이 끝이 났다.

[2장. 비극.]

광대는 도미닉 경의 발버둥이 마음에 든다는 듯 새로운 골판지를 들었다.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이번 장에서 일어날 일을 알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의 예상대로, 평화로웠던 마을 그림은 불타오르고 무너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기서 광대는 새로운 그림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을 그림을 불태워 버리는 강수를 두었다.

모든 것이 골판지였기에 까딱하면 이 모든 것이 불타오를 것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적당한 시기에 불타던 마을 배경을 빼내었기에 그럴 일은 없었다.

귀엽게 그려진 검은 군세가 마을로 들어섰다.

아니, 이제 여기는 마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방금 전의 화재로 마을이 전소되었으니까.

마족들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무대 뒤편으로 돌아갔는데, 광대는 다시 무대 옆에 있던 상자를 열고 마을 사람들 역할의 골판지 인형들을 모조리 그 상자 안으로 집어넣었다.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톱니바퀴가 맹렬하게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붉은색종이를 마구 내뿜는 상자를 멍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도미닉 경은 입술을 짓이겼다.

마침내 모든 마을 사람 인형이 상자 안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광대는 상자를 닫아 두고 다시 골판지 커튼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커튼이 열렸을 때, 광대는 [3장. 거래.]라고 적힌 골판지를 들고 있었다.

그곳에선 도미닉 경... 아니, 다시 마을로 돌아온 갈색 머리의 남자아이가 울부짖고 있었고, 곱슬거리는 머리의 여자아이는 광대의 손에 들려진 채 무대 밖에서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비극적이어라.]

광대는 인형극 무대의 커튼을 닫으며 그렇게 적힌 골판지를 들어 올렸다.

[에필로고스 ­ 재회.]

광대는 마지막으로 골판지를 다시 한번 들어 올리더니, 상체를 숙이고 팔을 휘둘러 크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뒤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아마 방금 전 불타던 마을 그림의 불꽃이 어딘가 옮겨붙은 모양이었다.

이 순간, 도미닉 경은 온몸이 밧줄 그림이 그려진 골판지로 둘둘 감싸진 상태였는데, 눈만큼은 아직 골판지가 가리지 않아 이 모든 것을 생생히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광대는 그런 도미닉 경에게 다가와 도미닉 경의 품속에 여자아이의 골판지 인형을 집어넣고 손을 툭툭 털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 광대를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광대는 평소와 다른 반응에 놀라 과장되게 펄쩍 뛰었지만, 이내 도미닉 경이 눈 마저 골판지에 가려지자 비웃듯이 고개를 뱅그르르 돌렸다.

불타오르는 골판지 무대가 있는 골판지 무대 위에서, 도미닉 경과 골판지 광대는 불타올랐다.

...

"헛."

도미닉 경은 또다시 다른 곳에서 깨어났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꿈속에서의 기억은 깨어나면 흩어져 버리니까.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런데도 그 꿈들 중 일부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도미닉 경은 실외기와 게이밍 LED가 가득한 뒷골목에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세탁기가 올라간 가게의 지붕에 걸터앉아 지금 상황에 대해서 떠오르는 의문들을 정리했다.

어째서 이런 생생한 꿈을 꾸는가?

어째서 이렇게나 다양한 꿈을 꾸는가?

어째서 나는 이 모든 꿈들을 꾸면서 단 한 번도 깨지 않는가?

도미닉 경은 광선검을 든 사무라이와 인공 지능을 활용한 마법사들 간의 싸움을 구경했다.

사무라이들 뒤에서 정령의 힘을 담은 화살을 쏘는 유미 궁수들이 나타나면 마법사들은 기관총을 단 상어를 탄 공룡을 탄 락스타 좀비를 소환하는 식이었다.

도대체 이건 무슨 꿈인 거야?

도미닉 경은 이 엉망진창인 꿈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도미닉 경은 이 꿈이 자기 꿈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가 꾸기엔 여긴 너무... 미래 지향적이었으니까.

도미닉 경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꿈에 대한 비밀에 대해 깊게 탐구하던 와중, 골목길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려 다가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코뿔소의 머리를 한 거구의 사내였는데, 커다란 일체형 선글라스와 검은 양복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물론 코뿔소 머리도 인상적이긴 했으나, 여긴 꿈이었기에 오히려 평범한 것이 더 인상적인 편이었다.

"...누구요?"

도미닉 경은 다가온 코뿔소 머리의 남자에게 대답했다.

도미닉 경은 그다지 그 남자를 경계하지는 않았는데, 남자에게서 적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코뿔소 머리의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어쩌면 이 사람들이 지금 꾸는 꿈의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도미닉 경은 지붕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뭐 하는 거요? 당장 갑시다."

도미닉 경은 코뿔소 남자에게 길을 재촉했다.

당연하게도, 목적지는 회장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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