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 [257화]이상한 나라의 도미닉 경
* * *
"아 하세요, 여보. 아"
도미닉 경은 상추 위에 쌈무를 올리고 고기와 무말랭이, 그리고 쌈장이 올라간 쌈을 건네는 히메를 보고 문득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입에 들어오는 쌈의 감촉을 곱씹으며 알아차렸다.
아, 이거 꿈이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미닉 경은 자각몽을 꾸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히메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히메는 머리를 푼 채 소매가 넓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는데, 기모노는 검은색과 금색으로 된 용과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머리의 끝은 자를 대고 자른 듯 일자로 단정하게 잘려 있었는데, 기름을 발랐는지 흑단처럼 윤이 났다.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히메는 그런 도미닉 경의 그윽한 눈빛에 볼을 붉히며 얼굴을 매만졌다.
"아니, 이 모든 게 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꿈만 같은 시간이긴 하죠."
히메는 소매로 입을 가리고 도미닉 경의 농담에 꺄르르 웃었다.
도미닉 경은 현실에서의 히메의 성격을 생각하며 확실히 여기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히메 공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적극적으로 도미닉 경에게 다가올 리 없었으니까.
...
히메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은 도미닉 경을 만난 이후부터 계속해서 꾸던 꿈이다.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히메는 이제 현실의 도미닉 경보다 꿈속의 도미닉 경이 더 친숙할...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꿈은 잠에서 깨어나면 흩어져 사라진다.
그러나 그 일부는 남아 있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꿈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거의 완전한 꿈 하나를 만들어 버린 히메는 이제 깨어나도 꿈속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 있었고,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다른 말로, 현실과도 같은 망상이라는 소리였다.
이 날도 그랬다.
최근 도미닉 경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아 아버지께 훈련을 도와달라고 말한 날이었다.
운류 무사시는 기뻐하며 전심전력으로 히메를 상대했고, 히메는 단 세 합 만에 뻗어 기절하고 말았다.
검은 닿지도 않않으며, 검의 풍압에 의해 생긴 일이었다.
그야말로 검술의 달인 같은 면모였고, 히메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으나 운류 무사시는 한 가지 사실을 깜빡했다.
히메가 기절했으니, 아무리 멋진 모습을 보여줘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무튼, 히메는 기절한 참에 잠시 골아 떨어졌는지 꿈을 꾸었다.
언제나 꾸던 꿈이었다.
문이 하나 있고, 뒤에는 건물들과 자기 부상열차가 있었다.
백화점과 기차역이 있었으며, 저 건물들 하나하나마다 그 안이 가득 차 있었다.
오랜 시간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며 생긴 하나의 세계였다.
그러나 히메는 이 꿈의 세계에서 이 문 너머를 가장 좋아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히메는 문의 손잡이를 쥐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식탁이 있었다.
아직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면 꿈속의 도미닉 경은 아직 위에 있는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이 꿈을 반복해 꾸면서 히메는 꿈속의 도미닉 경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꿈속의 도미닉 경은 대개 집 안에 있었으며, 침실, 거실, 욕실, 주방 중 한 군데에는 반드시 있었다.
물론, 이는 히메의 무의식적인 욕망의 발현이었다.
히메가 도미닉 경과 결혼할 경우 하고 싶은 일들이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히메는 따로 꿈으로 풀이하는 심리학을 배운 적이 없으므로 이런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히메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현실에서는 도미닉 경에게 고백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여기가 꿈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저기 앉아 있는 도미닉 경이 꿈속의 가짜 도미닉 경이라는 것을 아는 이상 부끄러울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누가 남의 꿈을 엿보겠으며, 그 누가 자기 망상을 알아차리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히메는 오늘은 어떻게 꿈속의 도미닉 경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지 생각하며 머리를 풀었다.
그래. 오늘은 현모양처가 되자. 라고 생각한 히메는 순식간에 옷과 머리가 바뀌었다.
과연 꿈... 이라고 하기엔 현실에서도 스킨을 갈아입을 수 있으니 그다지 놀라운 광경은 아니었다.
히메는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향했다.
거실과 주방엔 도미닉 경이 없었다.
히메는 욕실로 향했다.
운이 좋다면 도미닉 경과 어떤 해프닝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말이다.
물론, 히메의 기대는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욕실에도 꿈속의 도미닉 경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곳은 하나인데...
히메가 고개를 들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저 계단을 올라가면 침실이 있었다.
도미닉 경과 히메의 사랑이 가득한 침실이라는 것을 알리듯 침대는 둘이서 자기에 넉넉한 편이었으나, 히메는 단 한 번도 그 침대를 써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도미닉 경을 눈에 담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눈을 감고 잘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너무 집착하는 여자 같으려나."
히메가 생각해도 꿈속의 히메는 너무 과격하고 대담했다.
물론, 히메 자기 생각이었다.
히메는 계단을 오르며 피식 웃었다.
꿈속인데 조금 과격할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한 히메가 마지막 계단을 올라 침실 앞에 서자, 침실에서 알람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어라. 평소랑 조금 다르네.
그렇구나. 현모양처가 되기로 했으니까 아침에 깨우는 것부터 시작인 거구나.
히메는 꽤 디테일한 꿈속 세계관에 다시금 놀라며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리고 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히메가 생각한 대로 도미닉 경이 있었다.
좋아. 여기서 현모양처답게. 자연스럽게.
"어라, 여보. 일어났어요? 아침 준비했어요. 내려와서 같이 먹어요."
히메는 방긋 웃으며 꿈속의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었다.
꿈속의 도미닉 경은 마치 건들면 연기처럼 사라질 것 같이 불안정했으나, 어째서인지 이번 꿈에서는 그 형체가 명확했다.
너무 많이 똑같은 꿈을 꿨나 봐. 아니면 얼마 전에 도미닉 경과 글리치부르크를 탐험한 탓인지도.
그렇게 생각한 히메는 방긋 웃으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아침부터 멋진 건 어쩔 수 없네요. 저는 엉망이 된 모습이 싫어서 먼저 일어나는데."
으, 세상에.
히메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으나, 이내 오히려 그 오글거림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꿈인데,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내려와서 아침 드세요. 그, 혹시... 내려가기 전에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
히메는 부끄러워하며 도미닉 경에게 다가가 살포시 껴안았다.
꿈속의 도미닉 경은 예전에 꾸었던 꿈들처럼 미동조차 없었지만, 히메는 꿈속에서라도 이렇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
"아 하세요, 여보. 아"
도미닉 경과 히메는 주방에 있는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꿈속에서 먹는 것이기에 배는 부르지 않겠지만, 히메는 아침밥을 먹는 도미닉 경을 보며 오히려 배가 부르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다는 뜻이었다.
히메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해 보고 있었다.
쌈을 싸서 도미닉 경에게 먹이기도하고, 은근슬쩍 볼이 빵빵한 도미닉 경을 흐뭇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이것도 나름 귀엽지 않을까?
도미닉 경을 빤히 바라보던 히메는 문득 도미닉 경 역시 자기를 빤히 쳐다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건넸다.
어차피 꿈속의 도미닉 경에게서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아니, 이 모든 게 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꿈만 같은 시간이긴 하죠."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입을 가리고 웃었다.
...잠깐.
"...도미닉 경?"
"무슨 일로 부르시오?"
"..."
히메의 물음에 꿈속의 도미닉 경이 또 대답했다.
"...말을 할 수 있네요?"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
도미닉 경이 답했다.
"내가 눈이 하나 없지, 입이 없는 것이 아니라서 말이오."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째서 도미닉 경이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꿈인가? 아. 꿈이지.
여긴 내 꿈이니까, 도미닉 경을 향한 내 마음이 환청처럼 들리는 건가?
아니면, 혹시 꿈을 조작할 수 있는 이들이 사건을 일으켜서 진짜 도미닉 경이 내 눈앞에 있는 건가?
수많은 가설과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의 속도만큼이나 히메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아닌가? 혹시 내가 사실 아버지와 대련하다가 쓰러지는 꿈을 꾼 거고, 사실은 도미닉 경과 같이 있다가 졸아버린 것은 아닐까?
여기가 현실이고, 저기가 꿈인 것은 아닐까?
히메는 점점 더 생각의 깊은 골로 빠져들었다.
그것도, 가장 엉뚱한 방향으로.
히메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단서가 너무 없었으니까.
그나마 단서라고 할 법한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꿈속의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당연하게도 자기가 진짜라고 말할 테지만, 그래도 히메는 일말의 희망을 걸고 꿈속의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도미닉 경!"
히메는 도미닉 경을 부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운 히메로서는, 이렇게 크게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실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도미닉 경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히메는 눈을 슬쩍 뜨고 꿈속의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꿈속의 도미닉 경은 곧 흩어질 듯 말 듯 연기처럼 몽실몽실한 상태였는데, 예전에 꾸었던 꿈들 속의 도미닉 경과 같았다.
휴. 다행이야. 여긴 꿈속이었구나.
히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의 도미닉 경에게 실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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