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 [256화]이상한 나라의 도미닉 경
* * *
도미닉 경은 처방전에 나온 대로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마시고 네 알의 곰 모양 젤리를 먹은 뒤 수면양말을 신고 침대에 들어가 낮잠을 청했다.
남은 곰 모양 젤리는 앨리스가 집에 가기 전에 다 먹어치웠다.
창문에 달린 커튼까지 닫아 놓은 상태였기에 방 안은 제법 어두웠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고 점점 더 편안하게 침대에 몸을 맡기기 시작한 도미닉 경.
마침내 도미닉 경의 깜빡거리던 눈이 완전이 닫히고, 도미닉 경은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을 꿀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잠을.
...
도미닉 경은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스파게티 면으로 된 촉수가 도미닉 경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도미닉 경은 도대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요즘 들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긴 하지만 방금 전까지 집에서 편히 자고 있던 이가 갑자기 수풀이 우거진 정글에서 스파게티 면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해 보라.
말하는 사람도 이해되지 않는데, 듣는 사람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도미닉 경은 일단 이 곤란한 상황부터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미닉 경은 어느새 손에 들린 검으로 스파게티 면을 잘라 내었다.
스파게티 면은 안에서 붉은 아라비아타 소스를 흘리며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스파게티 면의 남은 부분은 고통스럽다는 듯 허공에 아라비아타 소스를 흩뿌리더니, 감히 이렇게 고통스럽게 한 도미닉 경을 향해 그 굵은 촉수... 면을 휘둘렀다.
도미닉 경은 또 언제 들고 있었는지 모를 방패를 들어 올렸다.
텅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충격이 도미닉 경에게 전해졌다.
도미닉 경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촉수를 향해 다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이거 쉽지 않겠군."
방금 전 격돌로 인해 뺨에 튄 아라비아타 소스를 엄지손가락으로 주욱 닦아 맛을 본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엄청난 힘과 유연성을 가진 스파게티 촉수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소스가 굉장히 맛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있잖아."
도미닉 경이 스파게티 면과 기묘한 대치를 이루던 그때, 도미닉 경의 등 뒤 보라색 잎으로 된 수풀 사이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배고픈데, 양보해주면 안 될까?"
도미닉 경은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인원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도미닉 경의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 2등신의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뿔의 길이까지 합치면 3등신 정도가 되는 여자아이였다.
그 소녀는 금발로 된 가발을 쓰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이 그 머리가 가발이라는 걸 알아차린 이유는 바로 그 가발아래로 보라색의 진짜 머리카락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파란색과 하얀색의 조합으로 된 하늘하늘한 드레스와 커다란 리본의 조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귀여움의 극치였다.
도미닉 경은 날뛰는 스파게티 면과 어린 소녀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다만 내가 잡아 줄 테니 기다리시오. 까딱 잘못하면 다칠"
도미닉 경의 허락이 떨어진 뒤, 도미닉 경은 소녀에게 안전하게 있으라고 조언해 줄 예정이었다.
소녀가 갑자기 엄청난 위력의 광선을 쏘아내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 놀라운 광선은 도미닉 경의 바로 옆을 지나쳤는데, 도미닉 경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열기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광선이 사라지자, 도미닉 경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광선이 쏘아진 곳을 바라보았다.
광선은 이 숲에 거대한 길을 뚫어 놨는데, 중간에 산으로 막혀 있는 부분엔 터널이 뚫려 통행에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대단하군."
도미닉 경은 이 엄청난 광경에 감탄사를 먼저 터뜨렸다.
이렇게 광선을 쏘아대는 마족들도 자주 본 적이 있는 도미닉 경이었지만, 이렇게나 엄청난 위력을 가진 광선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감탄과는 별개로, 소녀는 인상을 찌푸린 채 스파게티 면을 손가락으로 들쑤시고 있었다.
"탔어..."
소녀는 울먹이며 바스락거리며 흩어져 버리는 검은 면을 바라보았다.
너무 화력이 센 나머지 스파게티 면이 완전히 타버린 것이었다.
화력의 문제이니 광선의 위력을 조금 낮추면 될 일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소녀는 이 아래로 힘을 낮추는 법을 몰랐다.
도미닉 경은 그런 소녀를 보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째서 이런 숲에 저런 강한 소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소녀 혼자 여기에 두기엔 그의 기사도가 걸렸던 것이다.
그때, 마침 도미닉 경의 배에서 적절한 소리가 났다.
꼬르륵. 하고 주린 배가 울리는 소리가.
"너도 배고파?"
소녀가 도미닉 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소녀는 도미닉 경의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았기에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다.
도미닉 경은 몸체만큼이나 커다란 뿔이 달린 커다란 머리를 보며 목이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주변을 수색해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찾아봅시다."
도미닉 경은 소녀에게 그리 말했다.
"좋아."
소녀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도미닉 경은 바움쿠헨이 가득 열리는 나무 아래에 있었다.
옆에는 여전히 소녀가 있었고, 소녀는 거의 소녀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바움쿠헨을 끌어안고 우물우물 먹고 있었다.
"목말라."
소녀는 열심히 바움쿠헨을 먹다가 목이 막히는지 가슴을 통통 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어디에 마실 것이 없을까 고민했으나, 아직 결정조차 내리지 못한 생각과 달리 몸은 근처의 하얀 나무를 검으로 패어냈다.
하얀 나무에선 하얀 바나나 우유가 졸졸 흘러나왔는데, 도미닉 경은 머리가 셋 달린 치와와가 그려진 머그컵에 그 바나나 우유를 담았다.
"노란색이 아니야."
소녀는 하얀 바나나 우유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잔뜩 있구나."
소녀는 마지막 한 모금까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마셨다.
대견하네.
도미닉 경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소녀는 어느새 근처의 나무 위에 올라가 열매처럼 달린 멜론맛 사탕을 입에 털어 넣었다.
멜론맛 사탕의 단맛을 음미하던 소녀는 이내 가지 위에서 다리를 동동거리며 흔들기 시작했다.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스파게티, 바움쿠헨, 바나나 우유, 멜론맛 사탕...심지어 이 컵도 내가 좋아하는 건데, 위엄이 없다면서 쓰지 못하게 해 버렸어."
도미닉 경은 조용히 소녀의 말을 들었다.
숲의 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한 소녀는, 다시금 도미닉 경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넌, 누구야?"
도미닉 경은 말이 없었다.
...
띠디디디 띠디디디
"...헛?"
도미닉 경은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에서 일어난 도미닉 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꿈자리가 사나웠던 모양이었다.
꿈이었기에 단편적인 것들만 떠올랐다.
스파게티. 멜론 맛 사탕. 광선. 바나나 우유. 치와와.
도무지 이 키워드로 악몽을 꾸기는 어려울 것 같았지만, 도미닉 경은 분명 악몽을 꾼 것만 같았다.
"..."
띠디디디 띠디디디
도미닉 경은 착찹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방금 전부터 소리를 내는 물체를 쳐다보았다.
그건 5시를 표시하는 전자식 시계였는데, 이 시간을 알람으로 맞춰 놨던지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며 버튼을 눌러 알람을 껐다.
그리고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5시. 뭘 하려고 내가 알람을 맞춰뒀더라?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며 천장의 격자 무늬를 세던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문득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이 누워 있던 자리와 그 옆자리를 보았다.
그곳엔 누군가가 잤던 흔적이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도미닉 경은 그 흔적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붉은 스카프와 여우 가면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의 크기를 살폈다.
침대는 두 명이서 자기에 넉넉한 크기였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도미닉 경의 침대와 달랐...
"잠깐. 설마"
도미닉 경은 다급하게 방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국적인 무기들과 닌자 5 콘서트 포스터, 낡아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가득한 토끼 인형, 그 외에도 이런저런 물건들이 있었으나 도미닉 경은 그 모든 것들이 도미닉 경의 방에 없는, 도미닉 경이 모르는 물건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도미닉 경은 도대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요즘 들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긴 하지만
아니, 지금은 이렇게 설명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 주변을 더 살펴보고 정보를 얻는 것이 좋겠어.
도미닉 경은 우선 냉철하게 여긴 어디이며, 왜 자기가 여기에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어라, 여보. 일어났어요? 아침 준비했어요. 내려와서 같이 먹어요."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