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 [254화]평화로운 일상
* * *
도미닉 경은 식은땀을 흘리며 도망치듯 세무청을 뛰쳐나왔다.
물론, 손에는 사은품으로 받은 5L짜리 섬유 유연제가 든 종이 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도미닉 경은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자기 양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한두 번이라면 모르겠으나 시도 때도 없이 몸이 위험 신호를 보낸다는 건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
도미닉 경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지금 겪는 증상을 검색해 보았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떨립니다. 오한인지 섬뜩함인지 모를 감각이 자꾸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지라 잠도 못 자겠네요. 어떻게 하면 나을까요? 마나 10 겁니다.]
[마나 냠냠.]
[병원 가세요. (작성자의 채택을 받은 답변입니다.)]
"병원?"
도미닉 경은 멍한 표정으로 화면에 떠 있는 답을 바라보았다.
그래. 병원이 있구나.
도미닉 경은 아주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도미닉 경도 병원의 개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기사들은 고급 인력이었다.
가차랜드에서 본 소설 중에선 기사가 소모품처럼 나오는 불쏘시개도 있었으나, 페럴란트의 유명한 시인 랑켈이 '기사는 그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모래시계와 같다. 기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기사로서 완성되어가는 시간, 그리고 완성된 후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까지 둘은 닮아 있다.'라고 할 만큼 기사는 그 하나하나가 몸무게만큼의 은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런 기사였기에 전장에서 사망하거나 부상 후유증이 생기지 않게끔 전장에는 항상 고용된 의사들이 따라다녔다.
물론 도미닉 경이 생각하는 것은 야전 병원의 개념이었지만, 병원이라는 개념을 알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병원이라."
도미닉 경은 지도 앱을 켜 가까운 병원을 검색해 보았다.
도미닉 경은 고통을 감내하고 역경을 이겨 내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일지도 모르는 걸 굳이 참을 필요는 없으니까.
...
도미닉 경은 소아과, 정형외과, 성형외과를 거쳐 그나마 지금 상황과 관련이 있을 법한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정신과라는 이름답게 안에는 온갖 인간 군상들이 가득했는데, 가차랜드의 특성상 적당한 정도의 정신 이상은 개성이나 특성이라며 넘어갔기에 여기 있는 이들은 정말 가차랜드에서도 가장 미치광이인 사람들이었다.
"전 수면 양말이 좋아요."
"아, 맞아요. 따뜻하죠? 그거."
"따뜻하다라...? 수면 양말을 데워서 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
"심각할 정도의... 에휴. 됐습니다."
"뭐야. 포기하지 마요."
"아이고, 죄송해요. 이분은 자기가 의사인 줄 아는 환자라서요."
"간호사. 밥은 아직인감?"
"자, 셋을 세면 당신의 정신은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하나, 둘, 셋!"
"워매! 술병을 휘두르면 어째유!"
도미닉 경은 이 엉망진창인 로비를 지나 카운터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누벨바그 정신과입니다. 혹시나 환자를 확보, 격리, 보호하려고 하시거나 뭐 그런 건 여기서 한 블록 옆에 정신 병원이 따로 있으니 거기로 문의해 주세요. 여긴 벌써 꽉 찼거든요."
카운터에 있는 간호사는 환자들을 돌보는 것에 지쳤는지 축축 쳐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담을 받으러 왔소만."
"...?"
도미닉 경이 상담을 위해 내원했다고 말하자, 갑자기 간호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창백하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져 이제는 투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저, 잠시만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상이 생겨 상담을 위해서 왔소."
도미닉 경은 간호사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방문한 목적을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간호사가 왈칵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시오?"
도미닉 경은 폭포수처럼 눈물을 흘리는 간호사를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뇨, 별 건 아니에요. 그냥... 그냥 이렇게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오랜만이라서..."
간호사는 간만에 만난 '정상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이'의 등장에 너무나도 감격했다.
그녀는 자기가 여기서 10년 정도 일하면서 제대로 말을 걸어 준 건 도미닉 경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군. 퇴근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것 아니오."
"그게, 전 유령이라서요. 그것도 지박령이요."
간호사는 카운터의 책상을 뚫고 도미닉 경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책상과 겹쳐진 몸은 반투명한 상태였는데, 도미닉 경은 조명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유령이었다.
"여길 벗어날 수가 없어요. 아는 사람도 없어서 의사님께서 제삿상을 올려주는 조건으로 여기서 일하고 있죠."
유령 간호사는 침울하게 다시 데스크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상담하려고 오셨다고 하셨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마침 한가하던 참이거든요."
그렇게 말한 유령 간호사는 데스크 뒤편의 벽을 뚫고 하반신만 내민 채 안쪽에 무어라고 소리쳤다.
안쪽에서 남자와 여자가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유령 간호사는 다시금 도미닉 경에게 돌아와 환한 미소와 함께 접수되었다고 말했다.
"네. 저기 저 방에 바로 들어가시면 돼요. 옆에 복도로 들어서서 첫 번째 방이에요. 닥터 누벨바그라는 명판이 있으니까 찾기 쉬우실 거예요."
도미닉 경은 유령 간호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내받은 곳을 향해 걸어갔다.
닥터 누벨바그라고 적힌 명패를 확인한 도미닉 경이 노크를 두 번 하자, 안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도미닉 경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고급스러운 책상과 의자, 진단서 작성용 컴퓨터와 잡다한 장식들이 있었는데, 의자 뒤에 있는 책장엔 Attachment in Psychotherapy라던가 아동 심리학, 사회 심리학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 있었다.
"도미닉 경 고객님 맞습니까?"
그리고 그런 풍경 속에는 털이 숭숭난 거한이 있었는데, 의사라기보다는 뱃사람에 더 가까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마 저 사람이 닥터 누벨바그인 모양이지.
그렇게 생각한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무슨 일로 오셨 아니지. 내 정신 좀 봐. 일단 여기 앉으시죠."
닥터 누벨바그는 도미닉 경에게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도미닉 경은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자, 이제 다시 물어보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게"
도미닉 경은 갑자기 몸이 위험신호를 보낸다고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위험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닥터 누벨바그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그러셨습니까?"
"어제부터."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위험 신호가 나타납니까? 그저 서늘한 감각이 드나요? 아니면 몸이 반응하는 쪽?"
"둘 다요."
"그렇군요. 그럼 혹시 최근에 과하게 일하거나 움직인 적이 있습니까?"
"..."
도미닉 경은 누벨바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도미닉 경이 느끼기에는 그다지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바람에 과하게 움직인 건 맞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자, 마지막으로 언제 주무셨습니까?"
"어제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소."
"잔 시각은요?"
"8시간쯤."
"평소엔 몇 시에, 얼마나 주무십니까?"
"새벽 쯤에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많으면 네 시간 정도 자오."
도미닉 경의 대답에 누벨바그가 잠시 침묵했다.
이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는 누벨바그가 컴퓨터에 진단을 적는 소리뿐이었다.
잠시 진단을 작성한 누벨바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단 조심스럽지만, 병의 원인을 찾은 것 같습니다."
누벨바그는 그 털이 숭숭난 팔들을 책상 위로 올리더니, 양손을 깍지 끼고 깍지 너머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수면 부족이시군요."
"수면 부족?"
도미닉 경은 누벨바그의 말에 반문했다.
"가차랜드에서는 잠을 잘 필요도 없잖소. 습관처럼 잠을 자고 있기는 하지만"
"물론 육체는 그렇지요."
도미닉 경이 변명하듯 말하자 누벨바그가 도미닉 경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나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도미닉 경은 외부에서 온 사람이지요?"
도미닉 경은 누벨바그의 말에 담긴 뜻을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페럴란트에서 가차랜드로 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 상태는 보통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에게 자주 나타나거든요."
누벨바그가 도미닉 경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계속 이야기해도 괜찮겠냐는 의도였다.
도미닉 경은 그런 누벨바그의 행동에 계속 이야기하라는 듯 손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가차랜드에서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되지만, 가차랜드 토박이가 아닌 이상 그 욕구를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잠은 일종의 방어기제이자 회복기제이기 때문이지요."
"방어와 회복."
도미닉 경은 누벨바그의 말을 곱씹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여관에서 100G를 주고 잤을 때 모든 체력과 마나가 회복되는 것이고, 복잡하게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육체와 정신의 괴리감이"
누벨바그는 어려운 말을 마구 섞어가며 나름 쉽게 설명한다고 했지만, 도미닉 경은 누벨바그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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