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 [253화]평화로운 일상
* * *
"오빠!"
"헛."
도미닉 경은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감지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손을 뿌리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도미닉 경의 검 끝이 등 뒤에 있던 이의 이마에 닿았다.
"오, 오빠? 뭐 하는 거야?"
저 멀리 도미닉 경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달려오던 도미닉 경의 여동생 레미는 갑자기 겨눠진 칼 끝에 양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도미닉 경은 한참 동안 등 뒤를 습격한 레미를 멍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미안하다. 갑자기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도미닉 경은 어긋난 호흡을 되돌리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
레미는 도미닉 경에게 한 소리 할까 생각했지만, 이내 도미닉 경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괜찮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로?"
도미닉 경은 레미가 왜 행정부에 있는지 물었다.
도미닉 경이 알기로 레미는 블랙 그룹 소속 연구원이었고, 행정부에 올 일은 딱히 없다고 여겼으니까.
그런 도미닉 경의 물음에 레미는 멋쩍게 양털처럼 복슬복슬한 갈색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실은 이번 사건에 연루되어서 말이야."
"연루되었다고?"
도미닉 경은 놀란 눈으로 레미를 바라보았다.
레미는 도미닉 경의 표정을 보고는 도미닉 경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아니. 범인이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참고인... 그래. 참고인 자격으로 당시 상황에 대해서 진술할 게 있어서 그래."
"아."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이상 레미를 추궁하는 대신 레미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연루되었다는 말은 그 근처에 있었다는 소린가?"
"그래. 당시에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어. 뭐, 휩쓸리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오빠는 왜 여기에?"
"그 이상 현상의 피해자라서 말이다. 뭐, 겸사겸사 세금도 내러 왔고."
"피해자라고?"
레미는 깜짝 놀라 도미닉 경에게 소리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행정부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한 번씩 도미닉 경과 레미를 쳐다볼 정도였다.
레미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도미닉 경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어디에 있었어? 이번 이상 현상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았다던데, 그럼 내가 못 봤을 리가 없는데?"
레미는 당시 도트화가 진행된 장소를 해상도를 일시적으로 높이는 방식으로 지나쳤다.
레미가 지나간 경로는 사건이 일어난 지점의 중간쯤이었기에 완전히 가장자리에 있지 않은 이상 레미가 못 봤을리가 없었다.
혹시 가장자리에서 있었나? 라고 레미가 나름 추리를 한 그 순간.
"글쎄. 갑자기 도트에서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바닥에 빠져 버려서 말이다."
아.
레미는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순간 고개를 돌렸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해상도를 높이면서 안티 앨리어싱을 적용하지 않아 바닥이 뚫렸다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하며.
레미는 유래없이 엄청난 양의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고개를 돌린 덕분에 그 양털처럼 폭신폭신한 머리카락에 가려 도미닉 경이 있는 쪽에선 레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뭐, 이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자. 그나저나 방금 행정부에 그 당시의 상황을 진술하려고 왔다고 했던가? 어디서 하지?"
레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화제를 돌렸다.
도미닉 경은 그 사건으로 인해 글리치부르크에 떨어졌었다.
글리치부르크에서 상당히 고생한 도미닉 경은, 글리치부르크에 대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도미닉 경의 그 결심은 레미에게 있어서 호재였다.
도미닉 경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레미는 바로 도미닉 경의 질문에 대답했다.
"바로 저기. 지금 두 사람이 들어가 있어서 내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야.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음료수나 하나 뽑아 마시려고."
레미는 손가락으로 근처에 있는 작은 문을 가리켰다.
문에는 [취조실 겸 심문실 겸 진술실 겸 아이스크림 제조실 겸 케밥용 꼬챙이 보관실]이라는 명패가 달려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앞의 3개는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뒤의 2개는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진술할 때 식사 시간이랑 겹치면 케밥이랑 아이스크림을 주거든. 예전엔 다른 곳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너무 복도가 복잡하니까 그냥 하나로 합쳐 버렸대."
나도 신기해서 로비에 있는 아가씨에게 물어봤어. 라고 레미가 말했다.
"아무튼, 오빠는 세금 내러 왔다고 했지?"
"아."
도미닉 경은 레미의 말에 본래의 목적을 상기했다.
"아무래도 먼저 들어간 사람들의 진술이 슬슬 끝날 것 같으니까, 먼저 가. 난 좀 쉬면서 음료수 좀 마시게."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응. 나중에 봐."
도미닉 경은 레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
도미닉 경은 계단을 올라가 시야에서 레미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레미도 도미닉 경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손에 쥔 음료수를 마셨다.
"으, 세상에. 진이 다 빠지는군."
"저렇게 꼼꼼하게 묻는 사람은 이단 심판관 이후 처음이오."
"어라? 벌써 끝났어요?"
레미가 진술실에서 나온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을 바라보았다.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진술실에 있는 직원의 집요함과 꼼꼼함에 진절머리가 나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나저나 손은 왜 흔들고 있소?"
오그레손이 손을 흔드는 레미를 바라보며 의문스럽다는 듯 말했다.
"아, 오빠를 만났거든요."
"오빠라면 설마..."
"도미닉 경?"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레미가 깜빡했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레미가 도미닉 경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도미닉 경을 한 번이라도 가까이서 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었고.
"도, 도미닉 경이 어디 있지? 도미닉 경이 어디 있느냔 말이야!"
"진정하시오."
"손을 흔드신 걸 보면 가까이 있었던 것 아닌가? 이럴 때가 아니지. 당장 찾아 뵈야"
"진정하라니까!"
아르쿠스는 도미닉 경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오그레손이 어떻게든 아르쿠스가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르쿠스를 잡고 있었지만, 아르쿠스는 깡마른 체구와 다르게 어디서 그런 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괴력을 발휘했다.
그 모습을 본 레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할걸 그랬네."
도미닉 경이 이상 현상에 휘말렸었다는 말에 당황해 이 둘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레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 난장판을 피해진술실 안으로 도망쳤다.
아르쿠스의 난동은 행정부의 경비들이 와서 밖으로 쫓아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
"네. 납부 완료되셨습니다. 다음부터는 오지 않으셔도 돼요."
도미닉 경은 약도를 따라 도착한 세무청에서 세금을 낸 상태였다.
세무청에서 일하는 직원은 도미닉 경이 건네는 재화와 함께 도미닉 경을 증명할 캐릭터 카드를 건네 받고는 무언가를 컴퓨터에 적었다.
"다음부터 오지 않아도 된다는 건 무슨 말이오?"
"기본적으로 자동 납부니까요. 첫 한 번은 직접 와서 본인 증명과 자동 납부 연동을 해야 해서 말이죠."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잠시만요."
세무청의 직원은 책상 아래로 손을 뻗었다.
직원은 책상 아래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 손을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하면서 직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때, 도미닉 경은 갑자기 감각이 곤두서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직원은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로 책상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는데, 조명의 빛에 살짝 반짝이는 것을 보아 금속 재질인 것 같았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직원을 바라보았다.
직원이 이제 책상 아래에서 손을 빼자 그제야 도미닉 경은 직원의 손에 들린 물건을 유추할 수 있었는데, 그건 총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의 신경이 다시 한번 곤두섰다.
도미닉 경은 직원이 총을 뽑아 들기 전에 등에 멘 방패를 쥐고 직원과 도미닉 경 사이에 벽을 쌓듯 방패를 들어 올렸다.
빵! 하는 소리와 함께 직원의 손에 들린 총에서 짧은 불빛이 번쩍였다.
"축하합니다! 올해 100,000번째 납세자... 엥?"
직원은 총 모양으로 된 폭죽을 터뜨리며 도미닉 경이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방금 전까지는 몰랐으나, 옆에 있던 동료 직원이 수신호를 보내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래서 이벤트 용 폭죽을 터뜨린 직원은, 눈앞에 있는 도미닉 경이 날카로운 눈으로 방패를 들어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은 한참 동안 폭죽이 터지며 휘날리는 종이 쪼가리에 둘러싸인 채 직원을 노려보다가 문득 다시 시간이 제대로 흘러가는지 헛. 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쉬었다.
"그, 죄송합니다. 그 정도로 놀라실 줄은..."
직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총 모양 폭죽을 내려놓았다.
"아니, 아니오. 내가 과민반응을 한 모양이오."
도미닉 경은 숨을 고르며 직원에게 사과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도미닉 경은 오늘따라 그의 감각이 고장 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미닉 경은 손을 쥐었다 펴며 고개를 숙여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몸이 이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