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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52화 (252/528)

〈 252화 〉 [251화]평화로운 일상

* * *

글리치부르크에서 올라온 도미닉 경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최근 들어 이상할 정도로 연속적으로 사건에 휘말린 탓에 누적된 피로가 꽤 컸던 것이다.

아무리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강인한 도미닉 경이었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원래 모든 것이 그렇지 않던가.

고기도 막 도축한 이후에 휴지기를 거쳐야 더 맛이 좋아지고, 차도 물을 부은 뒤에 살짝 식을 때까지 우려내야 맛이 살았다.

사람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강한 자극 이후에는 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다녀왔소."

"어서 와. 멜론 맛 아이스크림은­"

집에 도착한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인사를 받으며 방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보려고 했으나, 도미닉 경의 눈 아래에 깊게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누가 보더라도 도미닉 경은 휴식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사 올 상황이 아니었나 보네. 오늘은 푹 쉬어. 어차피 일도 없으니."

도미니카 경이 방으로 들어가려는 도미닉 경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도미닉 경은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갑옷을 갑옷 거치대에 걸쳐두고 침대에 바로 누웠다.

원래대로라면 대충이라도 씻은 뒤에야 드러눞겠지만, 그만큼 도미닉 경은 지쳐 있었다.

잠시 멍하게 푹신한 침대의 감각을 만끽하던 도미닉 경은 문득 폰을 꺼내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대부분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온 것들이었으나, 대체적으로 이번에 일어난 일에 대한 해명문과 사과문, 그리고 보상안 제안 들이었다.

아무래도 내일은 행정부에 들려야겠군.

도미닉 경은 이번 이상 현상에 대한 행정부의 보상안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행정부의 제안은 아주 교묘한구석이 있어서, 신기하게도 도미닉 경이 생각했던 보상안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을 제안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조금 더 보상을 제안 해볼까 생각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도미닉 경이 생각하기에도 행정부의 제안은 딱 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메시지들을 다 확인한 도미닉 경은 몸에 힘을 풀며 침대에 몸을 맡겼다.

도미닉 경의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이 침대에 떨어져 가볍게 튀어 올랐다.

"...?"

폰 안에 있던 검은 슬라임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란 듯 휴대폰 액정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별일 아니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슬라임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S.P.Y앱으로 돌아갔다.

도미닉 경은 졸린 눈을 깜빡이며 잠시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내가 뭘 하려고 오늘 밖으로 나갔더라?

티셔츠를 사려고 나갔던가?

티셔츠는 샀던가?

아, 샀었지. 내일은 그럼 새 티셔츠를 입을 수 있겠네.

처음엔 이렇게 정상적인 생각의 흐름이 이어지다가, 이내 도미닉 경이 눈이 감겼다.

페럴란트에서 잘난 척하던 마법사가 뭐라고 했더라?

메어리­부른스트 방적식을 이용해 가로 좌표와 세로 좌표를 구한 뒤 아스트라마이카 적분으로 높이 값을 구한댔던가?

그 마법사가 어떻게 되었더라?

실전 한 번 겪고 나서는 전장에서 좌표값을 계산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정신병으로 의가사 제대 했었던 것 같은데.

의가사 제대가 없잖아, 페럴란트에서는.

도미닉 경은 눈을 끔벅였다.

점점 더 의식이 암전되고 있었다.

그럼 멜론 맛 사탕과 티셔츠가 내일 행정부에 찾아가 보상을 수령하겠지 뭐.

아.

도미닉 경은 그 생각하자마자 자신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무 생각이나 막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졸리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틀렸다.

졸리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 순간, 사실 도미닉 경은 이미 완전히 골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은 그날, 동양풍의 무복을 입고 사이보그화 된 불 뿜는 랩터에 올라타 우주 전함들을 노획하는 해적­마법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

...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아침.

도미닉 경은 창문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아침 햇빛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아침 7시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늦잠을 잤군."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피곤했다고는 하지만 아침 수련 시간을 통째로 잡아먹을 정도로 늦잠을 잘 줄은 몰랐던 것이다.

도미닉 경은 수련을 빼먹었다는 죄책감에 괜히 기사도에 대해 중얼거리기 시작했지만, 내심 푹 잔 탓에 개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젯밤 꾼 꿈이 뭐였는지는 자세히 기억하지 못 하지만 우주에 별자리처럼 늘어놓았던 형광 공룡의 영롱함과 감자칩으로 된 바삭바삭한 달이 기분 좋았다고 느끼면서 말이다.

"뭐야, 벌써 일어났네?"

도미닉 경이 한창 개운한 몸과 마음에 행복함을 느끼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도미니카 경이 들어왔다.

도미니카 경은 구운 빵과 얇게 구운 고기, 그리고 반숙으로 익힌 달걀 후라이를 담은 접시와 우유 한 잔이 든 유리잔을 들고 있었다.

"아침?"

"고맙소."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에게 마침 내가 아침을 먹을 건데 같이 먹겠냐는 뜻을 가진 함축된 언어를 내뱉었다.

도미닉 경은 그 함축된 언어에 내포된 뜻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는 도미닉 경을 위해서 준비된 또 하나의 접시와 잔이 있었다.

아마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을 위해서 미리 준비해 둔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은 식탁에서 의자를 빼내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포크로 반숙으로 익힌 계란 노른자를 찍었다.

계란 노른자가 터지며 노란 내용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자, 도미닉 경은 빵을 찢어 그 흘러내리는 노른자물에 빵을 찍어먹었다.

"그런 부분은 나랑 다르네."

반대편에서 도미닉 경이 빵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도미니카 경이 고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도미니카 경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도미니카 경은 계란 노른자를 터뜨리는 것까지는 똑같았으나 빵 대신 얇게 구운 고기를 찍어 빵 위에 올려 먹고 있었다.

"뭐, 평행세계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지 않소."

애초에 성별이 다른 데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다를 수 있지. 라고 도미닉 경이 말했다.

"뭐, 그것도 그러네."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말에 동의하며 다시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나저나, 어제 안 씻었지? 혹시나 해서 온수 틀어놓긴 했는데, 씻을 거야?"

"그래야 하지 않겠소? 아침에 운동했다고 치고 씻으면­"

흠칫.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도중 어째서인지 오한이 들었다.

기묘한 감각을 느낀 도미닉 경이 빵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도미니카 경이 당황한 듯 도미닉 경을 따라 거실로 나왔다.

도미닉 경은 혹시나 해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심지어 마당 너머 숲까지 자세히 바라보았지만 도미닉 경의 감각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미닉 경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도미니카 경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혹시 뭔가 못 느꼈소?"

"느끼다니? 뭘?"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말에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그러나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이 느낀 기묘한 느낌을 받지 못했기에 도미닉 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미니카 경이 이상하다는 듯 도미닉 경을 쳐다보았다.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식은땀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동공이 축소된 채 마구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피로가 다 가시지 않은 모양이야. 오늘은 푹 쉬는 것이 좋겠네."

도미니카 경은 그런 도미닉 경을 걱정하며 오늘은 쉬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행동을 통해 자신이 과민반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야 할지도."

도미닉 경은 다시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에게 위험을 알리던 감각은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미안하오. 요즘 사건이 많아 피로가 많이 쌓인 모양이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에게 방금 전의 급발진에 대해 사과하며 다시 식탁에 앉았다.

아무래도 조금 더 잠을 자는 것이 나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

도미닉 경의 저택 앞에 우거진 숲.

"후후후... 여기인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여성이 나무 꼭대기에 서서 도미닉 경의 저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여기가 도미닉 경의 저택이란 말이지...으흐. 으하하하!"

수상해 보이는 여성은 이곳이 도미닉 경의 저택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수상한 모습.

한참을 그렇게 웃던 여성은 이내 천천히 웃음을 멈추더니, 가벼운 도약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후후후... 도미닉 경..."

수상한 여성은 수상한 웃음을 지으며 도미닉 경의 저택으로 한 발자국씩 천천히 다가 갔다.

"도미닉 경이 이것을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후후후..."

수상한 여성은 이내 도미닉 경의 저택 앞에 있는 우편함에 꽁꽁 밀봉된 편지 봉투 하나를 밀어 넣었다.

한참을 그 봉투를 보며 히죽히죽 웃던 여성은 이내 도미닉 경의 집을 한 번 바라보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자리, 남아 있는 봉투에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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