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51화 (251/528)

〈 251화 〉 [250화]글리치부르크 후일담

* * *

"그러니까... 불법적으로 데이터 마이닝해서 그 정보를 대형 클랜에 팔려고 했다?"

"네!"

"그리고 그걸 자수하려고 이렇게 당당하게 경찰서로 왔다?"

"네!"

"아이구야..."

자베르 경감의 후배, 루핀 경사는 마치 마약이라도 한 듯해맑게 헤실헤실 웃으며 자기 죄를 고하는 여성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성은 구슬 아이스크림을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그 식감이 재밌는지 꺄르르 웃기까지 했다.

루핀 경사는 눈앞의 여성이 정말 마약이라도 했나 싶어 채혈까지 해 분석해봤지만 이 여성의 피는 마약 성분은커녕 술이나 담배 성분조차 검출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채혈하는 데 최대한 협조를 한 여성은 여전히 맑은 얼굴로 경찰서 자판기에서 파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루핀 경사는 도주의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 거절했지만, 그럼 대신 좀 뽑아달라는 요청에는 응했다.

"...마침 자수 독려 기간이었으니 약간의 참작은 들어갈 겁니다. 문제는 바로 이건데..."

루핀 경사가 진술서를 들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글리치부르크에 들어간 건 그렇다고 칩시다. 실제로 데이터 마이너들이 각자 백도어를 알고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업데이트 정보를 미리 취득한 것도 그렇다고 칩시다. 보아하니 전에도 이쪽으로 범죄 이력이 하나 있으니까요."

루핀 경사는 그래도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을 제외시켰다.

그렇게 명확한 부분을 모두 덜어내자, 루핀 경사의 손에는 두 장의 진술서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말랑말랑 쫀득쫀득 힐링되는 검은 벽이나, 쫀득쫀득 터키 아이스크림 같은 이야기는 왜 넣은 겁니까?"

"그야... 말랑말랑 쫀득쫀득 했으니까요?"

광부가 루핀 경사의 말에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루핀 경사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바로 이것이었다.

바로 이 진술 때문에 눈앞의 여성이 마약을 한 건 아닌지 의심을 한 것이다.

그러니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말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이 여성이 그냥 해맑게 미쳐 버린 거거나, 아니면 정말 그런 것을 본 것이거나.

루핀 경사는 전자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당신을 데려온 코더들이 한 말에 따르면, 글리치부르크에는 검은 벽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버그와 오류가 가득한 글리치부르크기에 존재는 할지도 모른다고 살짝 운을 뗐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쫀득쫀득 말랑말랑한 검은 벽에 대해선 절대로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혹시나 해 두 코더들과 현장을 다시 나가 보았습니다만, 당신이 말한 검은 벽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두십시오."

"하지만 있었는 걸요. 그 폭신폭신하고 탄력 있는 검은 벽이."

루핀 경사는 여전히 헤실헤실 웃는 광부를 노려보았다.

"진술이 아무리 일관된다고 해도, 전문가와 현장에 나가 본 사람들의 증거가 우선입니다. 우긴다고 진실이 되지는 않아요."

"검은 벽은 어긋난 걸 고쳐요."

광부는 루핀 경사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제 할 말만을 하기 시작했다.

"제 성격이 삐딱해지고, 제 마음이 뒤틀려 있으니까, 검은 벽이 와서 모든 걸 바로잡은 거예요. 글리치부르크도 마찬가지예요. 겉은 몰라도 곪아가던 속이 다 깨끗해졌어. 그건 말랑말랑하고 푹신푹신한 거예요."

그렇게 말한 광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앞으로 쏠리며 그녀의 표정을 잠깐 가려주었다.

"그나저나 이거 더 사도 돼요?"

광부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이제는 비어 있는 구슬 아이스크림 통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광부의 표정은 해맑기 그지없었다.

루핀 경사는 왜 자베르 경감이 자기에게 이 골치 아픈 사건을 떠밀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

글리치부르크의 내부.

현재 글리치부르크에는 수백 명의 코더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키 큰 코더와 키 작은 코더처럼 소수의 인원만 내려보내 이상 유무만 파악했겠지만, 이번 사안은 그 무게가 달랐다.

[글리치부르크의 절반이 '정상적'으로 작동 됨.]

이것은 키 작은 코더가 과장에게 건넨 보고서의 일부였다.

이 보고서를 전달받은 과장은 굳은 표정으로 그 위의 차장에게 이 보고서를 올렸고, 차장도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채 부장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

마침내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임원급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간 그날, 곧바로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나머지 절반을 수리하라거나, 혹은 아직 절반이나 작동되니 수리는 조금 더 있다가 하자는 말을 했겠지만, 글리치부르크는 그 느낌이 조금 달랐다.

지구로 따지면 작동을 멈춘 체르노빌이 갑자기 절반 이상 정상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들린다면 어떤 느낌일까.

적어도 지금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임원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글리치부르크의 버그와 오류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부류의 것들이었다.

잘못 건드렸다간 가차랜드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이 사라질 수도 있었고, 기껏 최적화가 된 지역들이 렉과 버퍼링으로 가득한 지옥이 될 수도 있었으며, 가장 심한 경우 가차랜드 자체가, 가차랜드를 넘어 가차랜드가 속한 세계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대위기.

임원들은 갑자기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글리치부르크의 코드들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알기 위해 글리치부르크로 갈 자원자들을 뽑았다.

총 500명의 1차 자원단이 뽑혔는데, 그중에는 이사급이나 부장급의 고위직도 있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특성상 코더로서 고위직에 올라간 이들이 많았고, 그들 중에서는 글리치부르크에 있는 버그들을 만들고 격리한 자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니 글리치부르크의 일을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500명의 코더들은 글리치부르크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글리치부르크의 어둠이 다소 걷혀 있던 것이다.

사실, 글리치부르크의 어둠은 버그와 오류의 산물이었다.

글리치부르크에 조명이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감마값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어 있던 탓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한두 걸음 거리만 겨우 보이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의 글리치부르크는 무려 조명 없이도 주변의 사물의 윤곽이 보일 정도로 밝아진 것이다.

"...이거 불안한데."

가장 먼저 글리치부르크에 도착했던 코더가 미간을 찌푸렸다.

일반인에게 있어서 무언가가 잘 작동한다는 뜻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더에게 있어 잘 작동한다는 뜻은, 건드리면 탈이 난다는 뜻과도 같았다.

버그와 오류가 있어도 일단 작동은 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반면, 완벽하게 잘 잘동한다라는 것은 코더에게 있어서 불안한 일이었다.

버그와 오류가 없다는 뜻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코더들은 이 공간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공간은 정말 인간미 없게 완벽한 데이터로 채워져 있었으니까.

"으헉! 저길 봐! 무려 144줄이나 완벽한 코드로 채워져 있어!"

"그게 문제가 아냐! 지금 여기 최적화 코드가 정말 최적화 되어 있다고! 너무 꼬여 있어서 항상 칼로 잘라버리고 싶었는데!"

코더들은 이 무시무시한 현상에 몸을 떨었다.

완벽한 코드라는 것은, 그만큼 코더들에게 있어서 코스믹 호러나 다름없었다.

"조용! 조용!"

코더들 사이에서 동요가 심해지자,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코더가 소리쳤다.

그는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이사였는데, 그 나이만큼이나 직급도 여기에서 가장 높았다.

"두려울 것 뭐 있나! 완벽한 코드가 있다고? 그럼 배우면 된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해 둬!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사는 다른 코더들과는 달리 감격이 벅차올랐다.

코더 생활을 수백 년, 수천 년은 해 온 이사였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돌아가는 코드를 보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코더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코딩을 하던 자신도 완벽한 코드를 볼일이 드물었으니, 아직 햇병아리 같은 수십 년짜리 코더들은 보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공포에 빠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사는 이내 기분이 나빠졌다.

나 때는 말이야, 이렇게 완벽한 코드를 보면 꼭 저런 완벽한 코드를 완성시키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던 자기 시대와 달리, 요즘 코더들은 나약해 빠졌지 않은가.

그러나 이사는 그런 생각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며 다른 코더들을 격려했다.

스스로 꼰대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다른 이들에게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완전히 완벽하진 않군. 최종의 최종의 최종 파이날 찐막 라스트(3) 정도의 완성도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사의 곁에 있던 부장급 코더가 되물었다.

"보게. 여길 보면 여기가 너무 완벽한 나머지, 다른 OS와 호환이 되지 않아. 오로지 글리치부르크에서만 쓸 수 있는 코드란 말이지. 이건 가차랜드에서 쓰지 못해."

"그렇...군요."

부장급 코더는 이사가 가리킨 곳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이사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글리치부르크는..."

"온전히 다른 운영체제가 되어 버린 거지."

이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차랜드의 의존도를 줄여 버리고 독립성을 크게 향상시킨 걸세."

"그, 그렇군요."

이사의 말에 부장급 코더가 식은땀을 흘렸다.

글리치부르크는 가차랜드의 쓸모없는 부분들을 격리하는 용도였다.

그렇기에 독립성이 강해진다는 말을 들은 부장급 코더는 감히 웃을 수 없었다.

독립성이 강해진다는 것은, 더 이상 가차랜드에서 간섭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였으니까.

글리치부르크가 독립해 버린다면, 그 많은 버그들과 오류들은 이제 어디에 버려야... 아니, 격리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곳을 고친 인물은 아주 영리한 모양이군."

"네?"

"절반만 고쳤어. 완전히 고치면 독립된 프로그램이 된다는 걸 아는 게야. 가차랜드에서 독립되지 않을 정도로만 개선시켰어. 그 말은, 그도 가차랜드의 상태를 잘 알고 있다는 거지."

이사는 날카로운 추리를 했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러나 사실은 검은 슬라임이 움직인 범위가 딱 절반이었기에 생긴 일이었지, 이사의 말처럼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 한 번 보고 싶군.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님보다 더 실력이 좋을지도. 이사는 그 뒷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사님! 여길 보십쇼! 아무래도 이게 데이터 마이너가 진술한 '검은 벽'의 잔해인 것 같습니다!"

"뭐? 지금 당장 가겠네!"

이사는 저 멀리서 한 코더가 외치는 소리에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 코더의 손에는 끈적끈적한, 그러나 탄력성이 있는 검은 물질이 들려져 있었다.

차마 분해되지 못한 검은 슬라임의 잔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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