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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47화 (247/528)

〈 247화 〉 [246화]탐욕스러운 것들

* * *

"저기가 여길 빠져나갈 수 있는 곳입니다."

아아아가 위를 올려다보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도미닉 경과 히메는 아아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는데, 작은 바위들이 나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징검다리의 끝자락에 작게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별 같네요."

히메가 공허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불빛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죠. 별거지 같은 거죠."

하지만 아아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여기는 원래 1지역 7스테이지였습니다. 가차랜드에 들어올 간절함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고난의 구간이었죠."

"검증의 구간?"

"네. 검증의 구간. 원래 이 스테이지의 명칭은 고난의 탑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이 징검다리... 당시엔 계단을 오르는 것이 유일한 클리어 조건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할 만 했습니다만... 하고 아아아가 말끝을 흐렸다.

"이게 1지역 7스테이지였다고...?"

도미닉 경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이 공허한 공간에 놓인 징검다리들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세지는 않았지만 놓아진 바위만 해도 수만, 수십만 개는 되어 보였고, 높이를 대충 가늠해도 수백 미터는 되어 보였다.

이런 곳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고역인데, 오르는 이들을 방해하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선으로 올라가는 바위들의 가운데, 나선의 중심에는 공허에 잠식된 원숭이들이 공허 속에서 무언가를 집어던졌는데, 공허의 검은 공간 내에서는 그들이 던지는 것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다.

그들이 던지는 것을 피하려면 공허 원숭이들이 무언가를 던지려는 움직임을 보고 파악하거나, 아니면 이미 날아오는 것을 감으로 찾아 피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도미닉 경은 여기에 도착한 이후부터 계속 들린 뱀이 쉭쉭 거리는 소리나 함정이 철컹거리는 소리가 신경 쓰였다.

아주 미약한 소리였지만, 공허의 공간은 그 미약한 소리가 온전히 전달될 만큼 고요했으니까.

"1지역 7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사람이 있긴 한 거요?"

도미닉 경이 그 잔혹할 정도의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다.

도미닉 경은 잠시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보았다.

도미닉 경은 시스템상으로 탱커라 점프나 달리기에 큰 보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3성이었기에 스탯의 보조로 제법 높이 뛰어오를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징검다리 사이를 지나갈 수 있는지 가늠했는데, 조금 넉넉하게 건널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대로 말하자면 스탯이 조금만 부족했어도 빠져나가지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로군."

"네?"

"아, 아니오. 혼잣말이었소."

도미닉 경이 기억하기로 1지역은 이른바 가차랜드의 기본적인 시스템을 알아가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3성인 도미닉 경조차 고전할 정도로 난이도 높은 스테이지가 있었다고?

심지어 도미닉 경은 다른 3성과 비교해서 스탯이 조금 높은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를 겨우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 가차랜드에 도착해 스테이지를 깨는 사람들에겐 도저히 깰 수 없을 것이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도저히 뉴비가 깰 만한 난이도는 아니기도 했다.

그런 도미닉 경의 생각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아아아가 도미닉 경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꺼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난이도가 높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바위들도 좀 더 넓었고, 간격도 이렇게 멀지 않았으며, 높이도 이렇게 높지 않았죠."

"그럼 어째서 이렇게 된 거요?"

"버그 때문이죠."

아아아는 도미닉 경의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가차랜드 초창기에 만들어진 장소다 보니, 해상도에 대한 설정을 깜빡한 겁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초창기 가차랜드는 해상도가... 개판이었죠."

과거를 잠시 회상한 아아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전 지금이 더 좋습니다. 자유도가 높아졌다는 말은, 곧 스피드 런 루트가 다양해진다는 거니까요. 하나만 파기엔 조금... 정신병이 걸릴 것 같아서 말이죠."

사족이 길었군요. 라고 말한 아아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튼 해상도가 확장되면서 1지역 7스테이지에 버그가 일어난 겁니다. 기존에 있던 오브젝트들은 그대로인데, 해상도만 높아져 생긴 문제였죠. 오브젝트와 오브젝트 사이가 예전 해상도와 확대된 해상도의 비율만큼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아아아는 고난으로 가득했던 1지역 7스테이지를 회상했다.

12분 30초 안으로 클리어를 해야 별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었지만, 아아아가 7스테이지를 도전했을 때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스테이지가 뒤틀려 있던 상태였다.

"뭐, 그래도 코더들이 알아차려서 다행이었죠. 결국 코더들은 1지역에서 7스테이지를 떼어내고, 나머지 부분들을 통폐합해 5개의 스테이지를 남겼습니다. 이건 제가 옆에서 팝콘 뜯으며 봤어요. 꽤 장관이었거든요."

공간을 통째로 들어내어 코더 여덟 명이 짊어지고 가는 거 보셨습니까? 왜 옮기는 데 다른 장비를 쓰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게 더 싸게 먹힌다고 하더라구요. 라고 잠시 낄낄 거린 아아아.

"아무튼, 여기가 글리치부르크를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인 이유도 그겁니다. 버그로 인해서 뒤틀리긴 했지만, 핵심적인 건 남아 있는 탓이죠. 바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스토리 모드 로비로 이동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

도미닉 경은 아아아의 말에 왜 여기에 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명확히 풀렸다.

"그럼 이제 여기를 올라봅시다."

아아아는 다시 크게 심호흡하며 가장 먼저 징검다리를 건넜다.

"여기선 떨어지면 바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최대한 집중하세요."

그렇게 말한 아아아는 능숙하게 바위와 바위 사이를 오가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과 히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아아아의 움직임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뭐 하십니까? 빨리 올라오세요!"

아아아가 공허 원숭이가 던진 무언가를 점프로 피하며 소리쳤다.

그 말에 멍한 상태에서 벗어난 도미닉 경과 히메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갑시다."

"네."

도미닉 경은 히메에게 먼저 가라는 뜻의 손짓을 보냈다.

도미닉 경은 스탯이 꽤 높았으나 히메처럼 날렵하지는 못했기에 먼저 갈 경우 히메의 진로를 막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히메는 그 행동이 도미닉 경의 배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먼저 가겠다는 듯 고개를 까닥이고는 순식간에 바위들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과연 쿠노이치다운 날렵한 움직임.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안전할 정도의 거리를 벌린 히메를 잠시 바라보고는 마침내 앞의 바위를 향해 폴짝 뛰었다.

앞선 두 사람이 바위에 착지할 때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으로 도미닉 경의 착지는 제법 큰 소리가 났다.

"...이거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군."

도미닉 경은 발을 내디딘 충격에 위아래로 조금 흔들리는 바위 위에서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두 번째 바위를 향해 도약했을 때에는 거리감을 잘못 생각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끝자락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공허는 어두웠고, 끝이 없었기에 거리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가, 도미닉 경의 눈이 하나라 입체적인 것에 약하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 역경을 헤치며 계속해서 바위를 하나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

슬라임은 어두운 공간 속을 꿈틀거리며 전진했다.

사실, 슬라임이 어떠한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했을까?

슬라임은 계속해서 이동하는 와중에도 근처에 있는 고장 난 것들을 삼키고 있었다.

오류에 걸려 그래픽이 깨진 배경들, 버그로 인해 어딘가에 끼이거나 파묻혀 버린 물건들은 물론 오류로 바이러스라고 인식된 핵심 파일과 어딘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용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문서까지 슬라임은 가리는 것 없이 삼켰다.

그렇게 슬라임의 몸속에 들어간 물건들은 제각기 다른 시간 동안 슬라임의 몸속에서 체류하다가 밖으로 뱉어졌는데, 어째서인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바뀌어 있었다.

슬라임은 그렇게 버그와 오류로 점철된 물건을 하나씩 먹을 때마다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갔는데, 도미닉 경과 만났을 때에도 이미 거미전차보다 크던 몸체는 이제 축구장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까지 불어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듯 물건들을 삼키고 뱉어내기를 반복하는 슬라임.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났을까?

슬라임은 갑자기 어느 장소에서 더 이상 전진을 멈췄다.

이미 거대해진 슬라임은 관성에 따라 앞으로 쏠렸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는데, 작았을 때라면 귀여웠을지도 몰랐지만 거대해진 지금은 마치 거대한 괴수가 공격하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움직임이 멎자, 슬라임은 자기 앞에 있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건 글귀와 도형이 가득 새겨진 삼각 기둥 모양의 구조물이었는데, 자세히 보면 삼각형의 한 변만 봐도 10미터는 되어 보였고, 기둥의 높이는 글리치부르크의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기묘한 삼각 기둥에는 잠시 흘낏 보는 것만으로도 거꾸로 된 오망성과 육망성, 그리고 정13면체가 있었는데,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도형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도형들로 가득 새겨져 있었다.

슬라임은 그 도형들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순식간에 몸을 날려 그 기둥을 몸속으로 삼켜 버렸다.

삼각기둥에서 갑자기 검은 기운이 튀어나와 저항하기는 했으나,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슬라임에게서 벗어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결국 삼각기둥에 붙어 있던 검은 기운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슬라임의 점액에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슬라임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기둥을 삼킨 듯 끌어안은 듯 기묘한 상태에서 점점 더 몸을 불려 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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