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 [245화]탐욕스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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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경과 히메는 아아아의 인도를 따라 걸어갔다.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아아아를 따라다녔기에 별 불안감은 없었지만, 히메는 달랐다.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일행과 떨어진 경험이 있는 히메는 혹시나 다시 일행과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전전긍긍하던 히메는,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용기를 내서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저, 도미닉 경."
"...? 무슨 일이오?"
히메의 목소리는 모기가 기어들어 가는 듯 작았으나,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제법 가까웠기에 도미닉 경은 충분히 히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불안해서 그런데 말이에요..."
히메는 도미닉 경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용기를 잃었다.
혹시라도 도미닉 경이 부탁을 거절하면 어쩌지?
혹시라도 내 말을 듣고 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어쩌지?
방금 전까지 별별 사건을 겪고, 지금도 그 여파로 불안감으로 가득한 히메의 머릿속은 이미 도미닉 경이 거절할 것을 전제로 생각을 전개하고 있었다.
"...?"
도미닉 경이 그런 히메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자기를 부를 때는 언제고,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충분히 이상하게 생각할 만했다.
도미닉 경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자 히메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히메는 그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도미닉 경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래선 안 돼.
히메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까지 우유부단한 채로 살텐가?
히메는 굳은 의지를 갖춘 채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지금까지 히메는 용기를 내어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건넸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방해를 받았지 않은가.
그러나 히메는 이 순간 그것을 반대로 생각했다.
용기를 냈지만 방해를 받은 것이 아니라, 방해를 받았을 때 바로 체념할 만큼 용기가 부족했던 거라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더 필사적인 용기라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히메는 정말 무모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용기를 끌어올려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 저랑 팔짱을 껴주실 수 있읇!"
너무 떨렸던 탓일까? 아니면 의욕과 용기가 너무 과했던 탓일까?
히메는 그중요한 순간에 혀를 씹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혀를 씹어 버린 히메를 본 도미닉 경이 깜짝 놀라 이렇게 물었다.
"괜찮소?"
"개, 갠차나요."
히메는 혀가 너무 아린 나머지 혀짧은 소리를 내었다.
히메는 또 한 번 세상을 탓했다.
어떻게 용기를 내려고만 하면 귀신같이 방해받는단 말인가?
심지어 자기의 몸마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수준까지 방해가 들어온다는 말인가?
그러나 히메는 곧 고개를 저으며 세상에 대한 불만을 잠시 접어두었다.
그리고 불만 대신 다시 용기를 가득 불어넣은 채 도미닉 경에게 외쳤다.
"아까 전처럼 헤어지기 싫으니까, 제 손을 잡아주실 수 있나요?"
히메는 정말 완벽하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도미닉 경에게 전하는 데 성공했다.
얼마나 완벽했던지, 히메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멍해질 정도였다.
물론 히메가 원하던 바가 팔짱에서 손을 잡는 것 정도로 낮아지긴 했으나 어쨌든 히메에게 있어서 이는 큰 진전이었다.
도미닉 경 한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일지 몰라도, 히메에게 있어서 이건 거대한 도약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 제안을 도미닉 경이 받아들일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으나, 적어도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제대로 할 말을 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도미닉 경은 잠시 앞서가는 아아아를 슬쩍 바라보더니, 다시 히메를 바라보았다.
히메는 자기가 해낸 일에 얼떨떨하면서도 부끄러워서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좋소."
히메가 도미닉 경의 대답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도미닉 경은 히메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오른쪽 손을 내밀고 있었다.
분명 왼쪽 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었기에 오른쪽 손을 내준 것이리라.
물론 히메가 도미닉 경의 오른쪽에 있다는 것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말이다.
히메는 자기도 모르게 도미닉 경의 두 눈... 아니, 하나의 눈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호수 두 개 분의 깊이만큼이나 깊은 눈빛이었다.
히메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도미닉 경이... 정말 내 제안을 받아줬다고?
히메는 지금까지 지레짐작으로 거절당할 것으로 생각했기에 오히려 도미닉 경이 수락했을 때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스럽게도 도미닉 경의 수락에 뇌가 정지해 버린 히메.
"뭐 하는 거요? 손을 잡아달라고 했으면서, 무안하게 손을 이렇게 놔둘거요?"
"...아! 아니에요! 잡을게요! 잡을 거예요!"
도미닉 경은 여전히 히메에게 오른손을 뻗고 있었다.
도미닉 경의 말에 정지해 있던 생각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면서, 히메는 거대한 환희에 빠졌다.
물론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미 히메는 마침내 진전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전율하고 있었다.
원래 첫 발걸음이 어려운 법이지, 이후는 관성에 몸을 맡기면 되는 법.
히메는 그 어렵다던 첫걸음을 떼었으니, 이후의 일은 매우 순탄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히메의 성격상 그 이후의 진전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히메는 세상 못할 것이 없을 만큼의 자신감이 있었다.
"자, 잡아도 되죠? 정말 잡아도 되는 거죠?"
히메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도미닉 경에게 허락을 구했다.
도미닉 경은 그런 히메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당연히 되오. 방금 전에 수락했지 않소."
도미닉 경은 히메와 달리 손을 잡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애초에 도미닉 경은 지금 손을 잡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 던전을 빠져나갈 때, 서로가 방금 전처럼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안전장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기에 히메처럼 이성에 대한 설렘이나 두근거림은 없었다.
그야말로 도미닉 경과 히메가 가진 감정의 온도 차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상황.
그러거나 말거나 히메는 쭈뼛쭈뼛 도미닉 경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하면 서로 헤어질 일은 없을 거 같군. 좋은 제안 해주셨소, 히메 공."
도미닉 경이 히메에게 칭찬을 건넸다.
실제로 도미닉 경은 그저 앞서 가는 아아아를 따라갈 생각만 했었지, 히메처럼 서로의 손을 잡아 흩어질 일을 원천 봉쇄한다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도미닉 경도 충분한 여유가 있다면 그런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도미닉 경은 이동 속도가 느린 편이었기에 앞서가는 아아아를 따라가는 데만 해도 벅찬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렇게 좋은 제안을 한 히메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헤어질 일이 없...어...?"
그러나 도미닉 경의 칭찬은 히메에게 조금 다르게 들렸던 모양이었다.
히메는 도미닉 경이 한 말의 첫 부분만 듣고 너무나 설레고 말았다.
헤어질 일은 없을 거라니. 이 얼마나 로맨틱한 말인가!
당연하게도 도미닉 경이 말한 문장에서 도미닉 경이 전하려고 한 말은 '좋은 제안 했다.'였지만, 이미 온통 콩깍지가 낀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을 곡해해서 들어 버리고 말았다.
"눈꼴시리긴 합니다만, 이제 곧 첫 분기점에 도착할 겁니다. 거기서 아까 했던 벽 뚫기 버그로 넘어간 다음, 공허의 징검다리를 건너면 바로 탈출구가 나올 겁니다."
아아아는 지금껏 앞에서 도미닉 경과 히메가 꽁냥거리는 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솔로 서러워서 살겠나, 라고 투덜거린 아아아는 곧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아아아가 말한 대로, 첫 번째 분기점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여기를 뚫고 지나가기만 하면 거의 다 온 거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여기가 스피드 런 루트로 각광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죠. 그건 조금 있다가 알게 될 겁니다."
아아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벽에 대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여긴 벽이 조금 더 두꺼워서 약간의 추가적인 동작이 필요합니다."
아아아는 이내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상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야말로 괴기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괴기한 움직임을 통해 아아아는 벽에 흡수되듯 쑤욱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당신들 차례입니다! 어서 오세요!"
"세상에, 저게 도대체 뭔가요? 마치 유령처럼 벽을 통과하다니!"
도미닉 경은 이미 한 번 보고 경험까지 했던 버그지만, 히메는 이 버그를 처음 보았기에 정말 펄쩍 뛰며 놀라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그 기묘한 일이 가득한 가차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히메도 깜짝 놀랄 버그였다.
"신기하네요..."
히메는 방금 전 아아아가 지나간 벽을 만져 보았다.
딱딱한 돌로 쌓아진 돌벽.
사이사이 틈은 있었지만, 사람이 지나가기엔 턱없이 크기가 부족해 보인다.
히메는 방금 전 아아아가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해 보았다.
너무나도 신기한 것을 봤기에 당장에라도 따라 하고픈 마음이 든 것이다.
히메는 앉았다 일어섰다하며 상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의 꼬리가 위로 아래로 살랑거리고, 그녀의 귀가 좌우로 까닥거렸다.
그렇게 벽에다가 수십 초를 비비던 히메는 간신히 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
"후아. 정말 진귀한 경험이네요..."
히메는 이 신기한 현상이 재미있었는지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매만졌다.
"자, 이제 다 넘어온 것 같으니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아아아는 벽을 넘어온 도미닉 경과 히메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팔을 쭉 뻗어 다음 코스를 가리켰다.
저게 바로 공허의 징검다리입니다.
도미닉 경은 아아아의 손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허의 징검다리라는 것을 바라본 도미닉 경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지금 저걸 지나가야 한다는 말이오?"
도미닉 경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아아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그래도 보기보다는 난이도가 좀 덜합니다."
아아아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아아아의 확답에 다시금 공허의 징검다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공허와 그 공허 사이에 떠 있는 작은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들을 향해 무언가를 던지는 공허 원숭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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