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242화]데이터 마이너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히메를 협박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아니, 그녀는 헤드랜턴을 단 안전모를 쓴 광부였는데, 허리춤에는 다이너마이트와 수통이 달려 있었고, 손에는 곡괭이를 들고 있었다.
"제기랄, 여기까지 발각된 거야? 아니면 그냥 내가 과민반응해 버린 건가?"
광부는 흙먼지로 새까맣게 변한 손톱을 초조하게 물어뜯으며 힐끗 히메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히메가 밧줄에 묶여 제압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갱도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설치하는 안전 끈 같았다.
"아직 다음 업데이트 정보를 얻지 못했단 말이야. 정보를 얻어야 빚을 갚을 수 있는데...!"
광부는 현재 마이너스를 찍고 있는 가차석 계좌를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가차랜드에서는 재화가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는 없었으나, 극히 예외적인 일부 상황에서는 가능했다.
다른 이들에게 재화를 빌린 후 갚지 않은 상태거나, 혹은 불법적인 재화의 사용으로 그만큼의 재화를 회수당하거나.
광부는 후자의 경우였다.
"제길, 생각만 해도 화나네? 내가 도대체 뭘 했다고 이런 제재를 해?"
광부는 갑자기 급발진하며 버럭 화를 내었다.
"아니, 업데이트 전에 데이터 마이닝으로 이득 좀 볼 수도 있지, 뭘 쪼잔하게 그런 걸 가지고...!"
데이터 마이닝.
가차랜드에서의 데이터 마이닝이란, 업데이트 전에 나타난 상호작용 불가능한 물체들을 통해 미래를 알아내는 직업이었다.
어쩌면 가차랜드에서는 예언자, 혹은 선견자에 비교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제각각 다른 가치를 추구하듯, 데이터 마이닝을 하는 데이터 마이너들도 제각각 추구하는 것이 달랐다.
대부분의 데이터 마이너들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음 업데이트를 알아보기 위해 정보를 찾는다.
그러나 일부 데이터 마이너들은 호기심보다는 이윤을 택했다.
데이터 마이닝으로 얻은 정보를 통해 미래를 알아내어 가치가 올라갈 물건들을 사재기해 이득을 취하거나, 양산박 등 불법적인 일하는 이들에게 정보를 팔아넘겨 재화를 얻는 것이 그들의 주된 가치요, 관심사였다.
당연하게도 히메를 제압한 광부도 후자, 이윤을 추구하는 데이터 마이너였다.
그것도 미래를 예측해 미리 관련된 물건을 싹쓸어갔다가 찔끔찔끔 팔아 돈을 번 되팔이, 사재기꾼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한탄을 내뱉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사재기로 신고당해 그동안 번 재화를 모두 압수당한 상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27만 가차석 중에서 2만 가차석 정도는 어디 숨겨두는 건데."
광부가 입맛을 다셨다.
물론 그녀가 아무리 재화를 어딘가에 숨겼다가 취득한다고 할지라도 시스템의 관리하에 있는 한 바로 압수당했겠지만, 그런 생각이 가능했더라면 이런 불법적인 데이터 마이닝엔 손도 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일단 저 닌자가 문제인데..."
광부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벽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히메가 묶여 격리된 공간을 보았다.
광부는 히메를 묶어 근처에 있는 방에 가뒀는데, 들어가는 입구와 벽의 이미지가 같아 겉으로 보기엔 출입구가 없는 밀실처럼 보이는 방이었다.
히메는 얌전히 묶인 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광부는 얌전히 있는 히메의 태도에 만족하면서도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풀어 주자니 날 신고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이걸 쓰자니 돈이 아깝고..."
광부가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든 검은 카드를 바라보았다.
검은 카드에는 No.030000343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카드가 바로 해킹된 계정 아이디인 모양이었다.
"제길, 괜히 찔려서 일만 더 커졌잖아!"
광부가 다시 급발진하며 곡괭이를 땅에 집어 던졌다.
제 분에 못 이겨 씨익씨익거리는 광부.
"경찰도 아니면서 이런 곳에 왜 와! 괜히 오해했잖아!"
광부는 이제 히메를 향해 말로 모든 분노를 쏟아 내었다.
당연히 목소리는 최대한 죽인 채였다.
아무래 화가 나더라도, 그리고 이 글리치부르크에 아무리 사람이 없더라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있는 힘껏 화를 내면서 목소리는 한없이 작게 내는 것.
불법적인 데이터 마이닝을 하며 생긴 그녀의 작은 버릇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어쩌지."
광부는 있는 힘껏 분노를 표출한 이후 마음이 좀 후련해졌는지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죽이느냐, 풀어 주느냐의 딜레마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이내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 그냥 두고 가면 되잖아! 그럼 내가 들킬 위험도 없고. 게다가 이 비싼 해킹된... 아니, 비밀 무기도 아낄 수 있고. 일석이조네!"
광부는 해맑게 웃으며 좋은 생각이라는 듯 자신을 칭찬했다.
"어유, 도대체 얼마나 머리가 똑똑하길래 이런 대단한 생각을 다 했을까?"
그렇게 자화자찬하던 광부는, 이내 히메를 버려두고 어둠 속으로 훌쩍 떠났다.
그녀에게 있어선 모르는 사람 하나의 가치보다 돈이 더 소중했으니까.
"..."
그러나 광부는 몰랐다.
그녀를 바라보는 검고 끈적한 무언가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그녀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
도미닉 경과 아아아는 한참 동안이나 어둠 속을 걸었다.
"이상하구려. 도대체 왜 히메 공이 보이질 않는 건지..."
"어쩔 수 없죠. 글리치부르크는 가차랜드만큼이나 넓으니까요. 길을 잃으면 찾기가 쉬운 건 아닙니다."
도미닉 경은 아아아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글리치부르크는 도저히 사람이 살 곳이 못되었다.
쓸데없이 공간은 넓고, 온갖 버그와 가차랜드 사람들이 찾지 못했던 수수께끼와 이스터에그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글리치부르크는 너무 어두웠다. 애초에 사람이 올 것을 상정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광열비는 아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겠지만, 그 애처로운 노력은 도미닉 경이 알 바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어두운지 모르겠소. 횃불을 들어도 고작 열 걸음 정도만 보일 정도라니..."
도미닉 경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아아아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아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크게 웃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죠. 예전에는 상하좌우 한 칸... 그러니까 반경 2미터 정도만 겨우 보였습니다. 지도도 없고, 횃불을 들어도 '어둠'속성 타일만 지나갈 수 있었지 시야가 넓어지거나 하진 않았죠. 그래도 많이 발전한 겁니다."
물론, 지금도 지도는 없지만요. 라고 나름 회심의 유머를 날린 아아아.
"하지만 당신은 모든 길을 기억하고 있지 않소."
"당연하죠. 제가 이곳에서 0.1초를 줄이기 위해 10년씩 연습했는걸요."
아아아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엄청난 말했다.
"스피드 러너들이 만든 비공식 지도가 있어요. 어디에 버그가 있고, 어디에 이스터에그가 있는지 이정표를 기록한 지도가. 삼천에 달하는 인원이 사백 년에 걸쳐 만들어낸 걸작이죠."
도미니 경은 경악스럽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아아아를 바라보았다.
단 하나의 최단 경로를 위해 삼천 명이 사백 년에 걸친 노력했다고?
도미닉 경도 꽤 의지가 강한 편이었지만, 눈앞에 있는 스피드 러너에게 비하면...
"아, 물론 저는 마지막 30년 정도만 참여했습니다? 스피드 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죠. 아직 가차랜드 글리치 런 랭킹 14위 밖에... 이런, 사족이 길었네요. 아무튼 일단 그 히메 공... 이라는 동료가 어디로 갔는지 유추를 해봅시다."
그렇게 말한 아아아가 한 자리에 섰다.
"여기가 바로 글리치부르크의 중앙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네킹 하나가 있죠? 주변엔 나무가 있구요. 왜 이 어두운 공간에 나무가 있는지는 묻지 마세요."
도미닉 경이 아아아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자, 과연 네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나무들과 오른팔을 뻗어 손바닥을 내보이는 마네킹이 하나 있었다.
"여기도 글리치부르크를 나가는 문 중 하나예요. 다만 8방향에 있는 8개의 수수께끼 중 하나를 풀고, 수수께끼를 풀고 나온 미로를 돌파한 뒤, 난수표로 가득한 퍼즐을 푼 뒤 나오는 토큰 하나를 얻어 이 마네킹에게 쥐어 준 뒤 그걸 3번 더 반복하면 됩니다."
"...듣기만 해도 어지럽소."
"당연하죠. 현재 버그 사용 없는 정규 루트 스피드 런 1위가 122일 7시간 21분 43초 11이었어요."
도미닉 경은 여러모로 대단한 기록에 입을 꾹 다물었다.
글리치부르크를 정식으로 가장 빨리 탈출한 사람도 무려 122일이 걸릴 정도였으니, 이런 퍼즐 요소에 약한 도미닉 경은 수십 년은 매달려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제가 글리치 루트로 길을 안내해 드리고 있었습니다만... 아, 잠깐만요. 글리치부르크 전체를 가볍게 훑어보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도미닉 경은 아아아의 말을 듣고 난 이후에야 히메를 찾으려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아아의 말에 너무 귀를 기울인 나머지 잠시 그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도미닉 경이 무어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아아아는 대각선으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가속도를 붙여 거의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미닉 경은 몇 번을 봐도 경이로울 정도의 속도에 혀를 내둘렀으나, 감탄으로 가득한 도미닉 경의 눈이 채 세 번 정도 깜빡이기도 전에 아아아가 다시 도미닉 경 앞으로 도착했다.
도미닉 경은 무언가 두고 갔는가 보다하고 생각했으나, 그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어딘가 갇혀 있는 모양입니다. 일단 연결된 길은 다 확인했는데 없었거든요. 그럼 몇몇 고립된 방에 있다는 뜻이죠."
아아아는 순식간에 그 넓은 글리치부르크를 모두 돌아봤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런 아아아의 말에 도미닉 경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눈을 깜빡이며 멍한 표정을 짓는 것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글리치를 사용한 스피드 런 랭킹 14위의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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