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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41화 (241/528)

〈 241화 〉 [240화]스피드 러너

* * *

"도대체 무슨 원리로 그리 빠르게 뛰어다닐 수 있는 거요?"

"별건 아닙니다. 앞으로 가는 속력을 1, 옆으로 가는 속력을 1이라고 하면 그 대각선은 √2의 거리를 움직인 셈이 되죠. 결국 대각선으로 움직인 제 속력은 √2가 되고, 이 속력은 다시 앞으로 가는 속도와 옆으로 가는 속도로 변해 대각선으로 가는 속도는 2가 되고 그런 식입니다."

"음! 이해하지 못하겠소."

"당연한 일이에요. 가차랜드에서도 저처럼 스피드 런을 주로 하는 사람이 아니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법칙이니까요."

도미닉 경은 8자를 그리며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아아아와 대화했다.

아아아는 벌써 그 어떤 닌자나 쿠노이치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도미닉 경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기 위해 아아아는 도미닉 경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이것 말고도 뒤로 뛰는 것도 있는데, 그건 레트로그라드에서만 가능하죠. 여기선 쓸 수 없으니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레트로그라드?"

"가차랜드와 그 근원은 같지만, 뭐랄까... 옛 향수에 젖어 있는 듯한 도시라고나 할까요."

이상할 정도로 가차랜드에 적의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요. 라고 말한 아아아는 이윽고 한 벽면에서 뜀박질을 멈췄다.

"자, 첫 번째 갈림길이군요."

"갈림길이라니, 막다른 길로 보이는데."

도미닉 경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아아가 서 있는 곳은 세 면이 막혀 있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길이라고는 지금까지 온 방향 뿐인 상황.

그러나 아아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 도미닉 경에게 손사래를 쳤다.

"여긴 글리치부르크니까요. 가차랜드의 상식을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자, 잘 보고 따라 하세요."

아아아는 성큼성큼 골목의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팔과 목, 허리를 고정한 채 그 구석에서 몸을 비비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뭐 하는 거요?"

"잠시만요. 이게 3번 정도 해야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한 기술이라서요. 이러다가 이렇게 하면­"

도미닉 경은 갑자기 벽에 몸을 비비기 시작한 아아아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으나, 아아아는 벽에 몸을 비비면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봤지요? 여기선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벽 너머에서 아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이 놀란 눈으로 아아아가 사라진 구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벽에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벽을 만져 어떤 트릭이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트릭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한 번 따라 해 보세요. 겁먹지 마시고."

벽 너머에서 다시금 아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은 아아아의 말에 다시금 한 발자국 물러나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 듯, 도미닉 경은 구석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몸을 마구 비비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모르겠소."

"괜찮아요. 처음엔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까. 머뭇거리지 마세요.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립니다."

아아아는 도미닉 경을 격려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한참을 구석에 몸을 비비던 도미닉 경은, 마침내 벽을 뚫고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좋아요.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잘하셨어요."

아아아는 도미닉 경의 성공을 순수하게 축하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고맙소. 그나저나 여긴... 방금 전보다 더 기괴한 곳이군."

도미닉 경은 아아아의 칭찬을 받아들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의 너머에는 끝없이 이어진 검은 공간이 있었는데, 도미닉 경의 발에 걸린 돌멩이 하나가 그 검은 공간으로 슬쩍 떨어졌다.

검은 공간으로 떨어진 돌멩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도미닉 경이 어느 정도 떨어졌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슬쩍 내밀자 아아아가 위험하다는 듯 도미닉 경을 잡아당겼다.

"위험해요!"

아아아의 다급한 행동으로 다시 고개를 집어넣은 도미닉 경은, 곧 눈앞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아래를 향해 낙하하는 돌멩이를 볼 수 있었다.

도미닉 경은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만큼 돌멩이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건 무슨 현상이오?"

도미닉 경이 놀랍다는 듯 눈을 끔벅거리며 아아아에게 물었다.

"리스폰이에요. 저 심연에 무한하게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떨어지면 다시금 위에서 나타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죠."

도미닉 경이 멀쩡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아아아는 반들반들한 머리를 매만지며 도미닉 경에게 당부했다.

"이 길은 글리치부르크에서 나가는 가장 빠른 경로라서 그만큼 위험해요."

그렇게 말한 아아아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다시 말을 꺼냈다.

"좀 더 안전한 길로 안내하고는 싶지만, 아쉽게도 제가 아는 길은 스피드 런 전용이라 이런 길 밖에 없네요. 대신 제가 지시하는 대로만 따라오시면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아아아는 도미닉 경에게 꼭 자기 뒤만 따라와야 하며, 절대 지시한 행동 외에 다른 행동은 취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자, 그럼 이제 여기를 지나가죠. 원래대로라면 이곳에서 3시간 30분은 써야 하지만 이 길로 가면 1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아아아는 굳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다시 한번 박수를 치며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아아아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도미닉 경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잠시만요."

아아아는 인상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벽을 넘어 무언가를 확인하고 돌아온 아아아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저기, 도미닉 경?"

"무슨 일이오?"

도미닉 경은 무슨 일 있냐는 듯 아아아를 바라보았다.

아아아는 도미닉 경의 표정에 문제가 생겼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신의 일행이 사라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도미닉 경이 문득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아아의 말대로, 도미닉 경의 주변엔 히메가 없었다.

도미닉 경은 히메가 언제부터 없었는지 문득 생각하다가, 꽤 오래전부터 히메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바라보았다.

물론 방금 전 벽을 뚫고 나온 참이라 보이는 것은 벽 뿐이었지만, 도미닉 경이 바라보는 것은 벽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길을 잃었을 히메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중요한 동료인가요? 중요한 동료라면 다시 돌아가서 구해야지 않겠습니까?"

아아아는 도미닉 경의 반응을 보며 히메가 꽤 중요한 동료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도미닉 경에게 히메를 찾으러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건넸다.

도미닉 경은 착찹한 표정으로 아아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히메를 두고 가기엔 너무 신경이 쓰였던 탓이다.

그렇게 도미닉 경과 아아아는 다시금 벽을 뚫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사라져 버린 히메를 찾으러.

...

그렇다면 히메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도미닉 경과 헤어졌던 것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선 도미닉 경과 히메가 아아아를 따라가기 시작한 지 5분 정도 경과되었을 때로 돌아가야 했다.

히메는 아아아를 쫓아가는 도미닉 경의 등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가고 있었다.

당연히 지금처럼만 쭉 가면 길을 잃을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

물론, 여기가 가차랜드였다면 이 말은 옳은 말이었을 것이다.

현재 도미닉 경과 히메가 움직이는 곳은 글리치부르크.

손 쓸 수 없는 버그와 오류들을 격리시킨 그야말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어라?"

히메는 도미닉 경을 따라가다가 문득 발에 무언가 걸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발에 채인 것은 돌부리나 굴러다니던 깡통 같은 느낌이었는데, 히메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그 장애물을 보지 못하고 걸려 버린 것이다.

그대로 균형감각을 잃고 휘청거리던 히메는, 갑자기 저 멀리서 강렬한 빛이 번쩍거리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도 강렬한 빛에 히메의 생각은 그 순간 잠깐 멈춰버렸고, 그대로 균형감각을 잃은 채 바로 땅에 넘어져 버렸다.

"으, 도대체 뭐가 걸린 거지?"

히메는 쿠노이치임에도 균형을 잃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도미닉 경은 괜찮아요...?"

히메는 방금 전 반짝인 불빛을 생각하며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었다.

히메도 순간 시야가 나갈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기에, 도미닉 경도 멀쩡하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한 것이다.

그러나 히메는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도미닉 경이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 도미닉 경? 장난이죠? 재미없어요!"

히메는 혹시나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새 횃불을 꺼내 불을 붙였다.

방금 전까지 들고 있던 횃불은 땅에 떨어져 꺼져 버린 듯했다.

히메가 다급하게 횃불에 불을 붙이자 그녀의 시야가 넓어졌다.

그러나 넓어진 시야에도 도미닉 경과 아아아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히메는 아무래도 그 번쩍이는 빛에 넘어진 동안 도미닉 경이 상당히 멀리 이동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히메는 조용히 눈을 감고 단련된 청각을 통해 도미닉 경과 아아아의 발소리를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떤 곳에서도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히메는 그제야 자신이 도미닉 경과 떨어져 나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귀와 꼬리가 축 처져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 버그와 오류로 가득한 어두운 세상에서 혼자 남겨졌다는 건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으니까.

"분명히 단서가 있을 거야. 아니, 있어도 일단 여기에서 가만히 있는 게 더 나으려나? 도미닉 경이라면 분명히 이상한 걸 느끼고 찾으러 올지도..."

그렇게 히메가 애처롭게 자리에 주저앉아 이 상황에 대해서 대책을 생각할 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기분 나쁜 눈, 그 번들거리는 눈이 히메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 눈은 한참 동안 기척도 없이 그저 히메를 노려보기만 하더니, 이내 다시금 어둠 속으로 그 모습을 감췄다.

"이, 일단 도미닉 경이 걸어가던 방향을 찾아 걸어가다 보면 다시 만나지 않을까...?"

히메는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어떻게 하면 도미닉 경과 다시 합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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