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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36화 (236/528)

〈 236화 〉 [235화]비트 뎀 올(Bit Them All)

* * *

[오그레손 : "괜찮은 거요? 도대체 이게 다 뭐람!"▷▷]

[아르쿠스 :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네!"▷▷]

오그레손과 아르쿠스는 이상하게 변한 자신들의 모습에 기겁하며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물론, 이는 다 계획이 있어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아르쿠스는 성직자인 만큼, 신학교에서 여러 가지 지식을 배웠다.

그중 2학년 2학기 교양과목 중 하나, '저주와 변이'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일단 저주나 변이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그 자리를 벗어나 저주와 변이의 권역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아르쿠스가 이렇게 자세히 기억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기말고사에서 변별력 문제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때 아르쿠스는 '일단 저주에 대해 파악하고 해주를 시도한다.'라고 적는 바람에 성적이 떨어져 장학금을 놓쳤었...

아무튼,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일단 이 변이가 일어나는 지역에서 벗어나 나름 익숙한 3D의 세상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오크 마법 소녀의 마법은 엉망진창이었기에 가차랜드의 일부에서만 그 효과가 발현된 모양이었다.

[아르쿠스 : "여기까진 저 괴기한 저주가 퍼지지 않은 것 같군. 일단 저주의 권역을 벗어났으니, 이제 해주를 시작하세."▷▷]

[오그레손 : "당장 합시다. 더 이상 이 모습으로 있기는 싫소. 어쩐지 소름이 끼치는군."▷▷]

아르쿠스는 무언가 주문을 외우더니, 이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돌아왔군. 역시 이건 저주나 변이 계열이었던 거야. 옛날에 내게 C­를 주셨던 교수님께 괜히 감사한 마음이 드는군.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교수 평가에서 별 5개를 드리는 거였는데­"

[오그레손 : "그만! 그만하고 나도 빨리 이 저주에서 해방 시켜 주시오! 혼자만 저주 걸렸소?"▷▷]

오그레손의 투덜거림에 아르쿠스는 똑같은 주문을 외워 오그레손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물론 중간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오그레손이 들고 있던 양손 검은 여전히 도트화 되어 있었지만, 오그레손의 본체는 문제없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휴. 이제야 뭔가 살아 있는 것 같소."

오그레손은 그 덩치에 걸맞지 않게 아이처럼 주저앉아 큰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이 저주가 풀리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저건 어쩌지요?"

오그레손이 힐끔 저주에 걸린 지역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여전히 네모난 픽셀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사람들은 방금 전 오그레손과 아르쿠스처럼 도트로 된 상태였다.

"내 힘으론 힘드네."

아르쿠스가 씁쓸하게 말했다.

"지금 우리 둘의 저주를 해주하는 것만 해도 내 체력이 바닥이 난 것이 느껴지네. 저 정도 저주를 해주하려면... 그래.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것 같­"

"와 세상에. 방금 그거 어떻게 풀었어요? 코더는 아닌 것 같은데?"

"원시적인 코딩 방식인가? 아. 아니지. 저거 그거구나. 신성력."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문득 자기들을 향해 말을 거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머리가 마치 양털처럼 폭신폭신한 소년과 소녀가 있었는데, 아르쿠스는 이 소년 소녀들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오그레손은 그들이 주점에서 만났던 이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밴시 박사와 팬텀 박사였다.

"어? 그때 만났던 사람 아니오!"

오그레손이 반색하자, 밴시 박사... 아니, 레미는 눈을 찌푸리며 오그레손을 보았다.

분명히 상대는 반갑다는 듯 인사하고 있었지만, 레미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 전에 만났던 적이 있었던가요?"

레미가 오그레손에게 묻자, 오그레손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우리가 도미닉 경을 찾는다고 했을 때 도움을 주신 분 아니오."

"아."

레미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페럴란트에서 오신 분들이었구나. 어쩐지."

"그나저나, 방금 전에 우리에게 코더인가 코딩인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소?"

아르쿠스 주교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겠소?"

"별 건 아니에요. 그냥 뭐... 일종의 마법의 언어로 쓰는 마법이라고 알고 계시면 편해요."

레미는 아르쿠스 주교의 물음에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사실 코더와 코딩에 관한 건 가차랜드의 시민들 중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지식이었으나, 어째서인지 눈앞에 있는 이들에겐 자세하게 말하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꽤 제대로 된 대처였으며,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간섭이 이루어진 결과였다.

아르쿠스 주교와 오그레손은 가차랜드의 시민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현재 콜라보 이벤트로 인해 가차랜드에 잠시 머무르는 이들이었고, 그런 만큼 그들은 이 이벤트가 끝나는 즉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만 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갔을 때, 가차랜드의 지식으로 그들의 세계가 엉망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 차원에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라 은밀하고 보이지 않는 간섭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완벽하게 정보의 습득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가차랜드의 중앙 시스템은, 그에 대한 대처도 이미 준비한 상태였다.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아르쿠스 주교는 레미의 말에 나름 납득을 한 상태였다.

물론 정식으로 가차랜드의 마법에 대해 배운 이들이라면 레미의 말에 딴지를 걸지도 몰랐으나, 아르쿠스 주교는 가차랜드의 마법에 대해서는 무지했고, 무엇보다도 그는 신학교에서 마법에 대해선 전혀 배우지 않았다.

그나마 4학년 1학기 때 전공 필수 과목으로 마법과 신학의 비교라는 강의를 들은 적은 있었으나, 그는 그때 최소한의 학점만 챙기고 졸업하자는 생각에 F만 면했던 상황.

당연하게도 마법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지한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이러다간 제시간에 돌아가지 못하겠는걸."

"그러니까 점심시간에는 간단히 먹자고 했잖아. 갑자기 왜 SNS에 올라온 맛집 탐방에 빠져가지고­"

레미와 팬텀 박사는 각자 다른 이유로 투덜거리며 8비트 상태로 변한 지역을 바라보았다.

항상 레미와 팬텀 박사의 뒤를 따라다니는 안드로이드 제로가 없다는 사실에서 나름 유추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현재 안드로이드 제로는 업데이트 중이었다.

저번 업데이트 이후 갑자기 발생한 발열 문제로 시야가 누렇게 변하는 현상을 수정하기 위해 공업 지구에서 새로운 부품을 사서 돌아가던 두 사람.

업데이트에 필요한 부품은 이미 몇 시간 전에 다 사놓은 상태였지만, 시간이 좀 남았다고 생각한 둘은 조금 먼 곳까지 움직였다가 그만 이상 현상에 고립된 것이다.

물론 다른 곳으로 돌아서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으나, 현재 상업 지구 일부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발생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네. 이거 뚫고 가야겠어."

레미가 팬텀 박사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눈앞의 이상 현상을 바라보았다.

"시스템은 멀쩡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해상도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네."

"일단 그럼 3840X2160?"

"4K네. 너무 과하지 않아? 일단 1920x1080 정도로 합의보자. 랜더링 문제도 있잖아."

레미와 팬텀 박사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이 상황을 타개할 회의를 시작했다.

"...도대체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오그레손이 귓속말로 아르쿠스에게 물었다.

이미 집중한 상황이라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분위기상 소곤소곤 말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르겠네. 아무래도 아까 말했던 코딩이란 마법의 언어를 쓰는 모양인데..."

아르쿠스도 난감하다는 듯 오그레손에게 대답했다.

"우린 할 게 없군. 저 구석에 가서 잠시 앉아 있도록 하세."

아르쿠스는 오그레손에게 근처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오그레손은 어차피 할 것이 없다는 아르쿠스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뒤, 이미 벤치로 걸어가기 시작한 아르쿠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아직 무언가 알 수 없는 이론에 대해서 심도 깊은 토론을 하기 시작한 레미와 팬텀 박사를 슬쩍 바라보았다.

"지금 픽셀 수가 대충 얼마지?"

"잠깐만... 아, 나왔다. 304X224. 적힌건 320X224인데, 가차랜드 화면 비율 때문에 잘렸어."

"좋아. 해상도는 알았으니 이제 이걸 어떻게 원래의 화질로 되돌리냐는 건데..."

열띤 토론을 이어 나가는 레미와 팬텀박사의 모습에 도대체 알 수 없는 말이라며 한숨을 내쉰 오그레손은, 이미 벤치에 앉아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아르쿠스 주교의 옆에 앉아 계속해서 두 박사를 바라보았다.

"­좋아. 이렇게 하면 그래픽이 깨지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오겠어."

"하지만 좀 복잡한데. 좀 더 간단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빨리 돌아가서 제로의 업데이트를 끝내야 하잖아."

오그레손이 멍하게 둘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계속해서 화질을 되돌릴 방법을 간구한 레미와 팬텀 박사는, 이내 해결책을 찾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현되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대책을 회의한 지 2시간 30분 만의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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