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 [232화]엉망진창인 마법 : 도트 데미지
* * *
도미닉 경은 아침 일찍 일어나 수련에 매진했다.
모두가 밤을 새서 보드 게임을 즐기는 바람에 꽤 정신적으로 피곤한 도미닉 경이었으나, 훈련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얼마나 열심히 허수아비를 향해 방패를 휘두르고 있었을까.
문이 열리며 학살자 왕이 밖으로 나왔다.
"잘 잤소?"
도미닉 경이 방패를 휘두르던 것을 멈추고 학살자 왕을 바라보았다.
학살자 왕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는데, 그의 등 뒤에는 곤히 자는 메리가 업혀 있었다.
왜 말이 없는지 의아해하던 도미닉 경은 학살자 왕의 등에 업힌 메리를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학살자 왕은 도미닉 경에게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만 가 보겠다는 신호였다.
도미닉 경은 역시 조용히 검을 들어 예의를 차렸다.
학살자 왕은 그런 도미닉 경의 배려에 다시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밖으로 나섰다.
도미닉 경은 학살자 왕과 메리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곧 그들이 숲의 포탈을 통해 사라지자, 도미닉 경은 훈련을 마무리하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배웅은 잘했어?"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도미닉 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했던 모양이오. 그 정도로 곤히 자는 걸 보면."
"그렇게 텐션이 높았으니까. 너랑 언제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활발한 아가씨던 걸."
옛날 식으로 말하자면 왈가닥 아가씨지. 라고 말한 도미니카 경이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런 셈이오."
도미닉 경은 부엌에서 가볍게 차 한 잔을 타 단숨에 마셨다.
뜨거운 찻물에 순식간에 잠이 깬 도미닉 경은 이내 샤워하기 위해 새 옷을 꺼냈다.
아니, 꺼내려 했다.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티셔츠가 있을 서랍을 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티셔츠가 단 하나도 없었는데, 도미닉 경은 순간 어제 갈아입었던 옷이 마지막 옷이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도미닉 경은 누명을 쓰는 미래는 바꿀 수 있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는 미래는 바꾸지 못한 것이다.
"...옷을 사러 가야겠군."
도미닉 경은 곤란하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어? 어디 가?"
도미니카 경이 급하게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도미닉 경을 향해 물었다.
"옷 사러 가오. 어제 입었던 게 마지막이었거든."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며 도미니카 경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
도미니카 경은 그럴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거라도 빌려줘?"
도미니카 경이 히죽히죽 웃으며 장난으로 말했다.
도미닉 경도 도미니카 경이 장난을 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 보다는 체구가 작은 편이었기에 옷이 맞을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마음만 받겠소. 그나저나 같이 가시겠소?"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에게 넌지시 같이 외출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도미니카 경은 그 흉악한 흉부를 부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싶지만, 아직 앨리스가 깨질 않아서 말이야. 앨리스가 깰 때까지는 그냥 같이 있으려고."
도미니카 경의 말에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그 외모 때문에 어른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앨리스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그것도 아직 순수한 어린이.
"그럼 뭐 사와야 하는 거라도 있소?"
도미닉 경은 더 이상 도미니카 경에게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도미니카 경이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나갔다가 돌아오는 김에 사 올 생각이었다.
"흠. 멜론... 멜론맛 사탕. 아니면 아이스크림."
도미니카 경은 필요한 것이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고는 그렇게 대답했다.
"앨리스 일어나면 간식으로 주게."
"좋소. 다녀오리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을 유심히 기억하며 어제 산 코트를 대충 걸치고 걸음을 옮겼다.
단지, 여벌 옷을 사기 위해서 말이다.
...
"어쨌든, 전사들의 전당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성공했군."
"설마 그렇게 신비하지만 쉬운 방법일 줄은 몰랐소."
페럴란트에서 온 손님,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얼마 전에 스토리 모드 4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설마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탓에 한참을 그곳에서 헤매고 있었다.
어렵게 가차랜드로 돌아온 둘은 너무 지친 나머지 골목길에 주저앉아 잠시 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양손대검을 지팡이 삼아 기대어 쉬고 있던 오그레손이 반대편 골목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왜 저기에서 저러고 있는 거요?"
오그레손의 물음에 아르쿠스 역시 그 골목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일세."
그곳에는 다른 곳에서 온 손님들인 오크들과 마법 소녀가 있었는데, 마법 소녀는 발바닥을 땅에 딱 붙인 채 쭈그려 앉아 보드카를 홀짝이고 있었고, 오크 두목은 눈을 까뒤집고 혀를 내민 채 양손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제길. 이봐, 주 4일제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이 빌어먹을 옷은 벗겨지지도 않는 건데?"
마법 소녀 벨 플뢰르가 꿈도 희망도 없는 동태같은 눈으로 마스코트인 티라미수를 노려보았다.
"그, 그건 아마도 추가 편성이 아닐까 뿅?"
티라미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한 벨 플뢰르를 달랬다.
"아, 몰라. 난 계약대로 주 4일만 일할 거니까, 나머지는 저 녀석들에게 하라고 해."
"안 된다 뿅! 어린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이미 늦었어. 쟤네들 이미 마법 소녀가 되었다고. 몰라. 난 계약대로 할 거야."
벨 플뢰르는 그렇게 말하며 보드카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목이 타는 듯 쓰라릴 텐데도, 이미 그녀의 속이 더 쓰리다는 듯 크으하고 시원한 트림을 한 벨 플뢰르.
티라미수는 한숨을 내쉬며 벨 플뢰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새롭게 마법 소녀가 된 오크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오오, 이것이 바로 마법...! 달콤달콤 뾰로롱한 느낌이 뇌를 녹이는 기분이다!"
오크 두목이 하늘하늘한 프릴이 달린 치마를 입고 뇌가 녹아내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도미닉 경처럼 혐오 필터를 켜둔 상태라면 모자이크 상태로 검열되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혐오감이 드는 얼굴이었다.
"이건... 이건... 참을 수 없어엇! "
오크 두목... 아니, 오크 마법 소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끔찍한 혼종이 마법 지팡이를 휘둘렀다.
마법 지팡이는 반짝반짝 아름다운 별똥별과 하트가 한껏 뿜으며 제어되지 않은 마법을 마구 쏟아 내기 시작했다.
오크의 엉망진창인 논리와 소녀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마법이 뒤섞여, 마치 먹기 힘든 괴식같이 변한 엉터리 마법이 말이다.
"...저거 말려야 하는 것 아니오?"
그 모습을 반대편에서 지켜보던 오그레손이 아르쿠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말인가?"
아르쿠스 역시 저 마법을 보고 위협을 느낀 상태였다.
그러나 아르쿠스는 저 마법을 막을 방법도, 막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아르쿠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의 마법이 도대체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세가 제법 심상치 않아 보였기에 그 여파에 대비하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뾰로롱. 하고 오크 마법 소녀가 만든 괴상한 마법이 골목길을 넘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마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의 힘은 점점 넓게 확산되어가기 시작했다.
...
도미닉 경은 상업 지구에 도착해 티셔츠를 가득 샀다.
평소보다 티셔츠를 약 20장 정도 더 구입해 인벤토리에 넣어 둔 도미닉 경은 이제 멜론맛 사탕과 멜론맛 아이스크림을 사러 걸음을 옮겼다.
도미닉 경은 디저트 전문점과 편의점, 그리고 사탕가게와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15군데 정도 돌아다녔으나,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멜론 맛만 전부 품절이 된 상태.
도미닉 경은 이제 16번째 가게를 찾아 걸어가는 상태였다.
"도대체 오늘따라 멜론 맛만 품절인 거지? 혹시 방송이라도 탔나?"
도미닉 경이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휴대폰을 꺼내 멜론맛 사탕과 멜론맛 아이스크림에 대해 검색해 기사를 찾아보았으나 관련된 기사는 전혀 없었다.
그저 멜론이 풍작이라 작년보다 멜론 값이 8% 정도 싸졌다는 기사 뿐이었다.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이 기가 막힌 멜론맛 디저트 품절 현상은 이상 현상이 아니라 정말 우연의 일치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도미닉 경.
문득, 도미닉 경은 한 골목을 지나다가 걸음을 멈췄다.
"...페럴란트의 문양... 같은 게 보인 것 같은데."
도미닉 경은 방금 전, 페럴란트의 문양인 햐얀 주목과 흰 까마귀 문양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미닉 경이 쓰던 문장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지만, 그 느낌이 비슷했다.
도미닉 경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뒷걸음질 쳐 다시 골목을 바라보았다.
골목 길에는 마치 오우거처럼 덩치가 큰 용병과 해골처럼 깡마른 성직자가 있었다.
도미닉 경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성직자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손에 성표를 쥐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 성표가 흰 까마귀의 모습임을 알아보았다.
도미닉 경은 저들이 페럴란트에서 온 손님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며 외쳤다.
"페럴란트"
그러나 도미닉 경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도미닉 경의 뒤에서 튀어나온 반투명한 하트와 별들이 마치 해일처럼 도미닉 경을 덮쳐 버렸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은 그 어지러운 별과 하트의 물결에 무심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삑. 삐빅. 삐비빅... 삐빅?"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
[응, 징계나무 이것은... 응? ]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자기 말이 엉터리로 번역되어 시각적인 글자로 보여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삐비빅, 삐빅, 삐비비비비빅?"
귀를 찌르는 8비트음과 함께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