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 [231화]Beyond the Past
* * *
"이게 다 뭡니까?"
도미닉 경의 신고로 급하게 달려온 자베르 경감이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사건 현장을 바라보았다.
최근 자베르 경감은 알 수 없는 부조리로 인해 제대로 된 사건에 손을 대지 못하던 상태였다.
정의감으로 가득한 자베르 경감으로서는 겨우 주차 딱지나 떼고 교통 정리나 하는 무난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매분 매초 피와 살이 튀는 격렬한 사건 현장으로 다시 복귀하기를 꿈꿨다.
그러던 차에 마침 도미닉 경에게서 걸려 온 신고 전화는, 마치 운명처럼 자베르 경감을 자극했고, 그 어떤 이들보다 먼저 사건 현장으로 출발한 것이다.
당연히 자베르 경감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질 수밖에.
"내가 알기로 가차랜드의 법률에서 뉴비를 공격하는 일은 아주 큰 범죄라고 들었소."
도미닉 경이 사칭범을 깔고 앉은 채 자베르 경감에게 말했다.
아직 시네마틱의 영향이 남아 있던 건지, 도미닉 경의 얼굴은 골목의 어둠에 감싸져 표정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렇군요. 피해자와 가해자는 누구입니까?"
자베르 경감이 수첩을 꺼내 사건의 진상을 적어 내려갔다.
"난 억울해! 난 그저 겁만 주려고 했단 말이야! 이건 과잉 진압이야! 폭력이라고! 고소할 거야!"
도미닉 경을 사칭한 범인이 헛된 발버둥을 쳤으나, 도미닉 경은 그저 조용히 방패를 들어 사칭범의 목을 내려찍었다.
목에 전달된 충격과 기절 상태 이상이 겹쳐 사칭범은 켁켁거리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미라가 된 머리를 보고 놀라서 달아났어요. 그러다가 이 골목에서 길을 잃었는데..."
"아하!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요?"
네크로맨서로 보이는 뉴비는 자베르 경감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속사포처럼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불안한 눈으로 제압된 사칭범을 바라보았는데, 사칭범은 당장에라도 풀려나 자기 목을 조를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건의 진상이 거의 밝혀지고 있던 그때였다.
"저깁니다! 뉴비가 죽은 곳이! 저기로 도미닉 경이 들어갔 엉? 도미닉 경?"
골목길의 저편에서 방금 전 총을 든 남자와 경찰 하나가 달려왔다.
총을 든 남자는 골목으로 도미닉 경이 들어갔다며 경찰에 신고를 한 상황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이 경찰도 양산박의 뇌물을 받은 부정 경찰이었다.
총을 든 남자가 도미닉 경에게 제압된 동료를 바라보았다.
왜 여기에 '진짜' 도미닉 경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듯,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가 왜 여기에 있지?"
자베르 경감이 반대편에서 달려온 배불뚝이 경찰에게 말했다.
"자네 오늘 연차 쓴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게..."
배불뚝이 경찰이 말이 궁한 듯 그저 눈알만 굴려댔다.
아무리 봐도 배불뚝이 경찰보다는 자베르 경감이 더 연차도 높고, 계급도 높아 보였다.
"망했네."
총을 든 남자가 한탄을 내뱉었다.
도미닉 경으로 분장한 이가 뉴비를 죽인다.
이후 총을 든 남자가 사건 현장을 발견한 척하며 뇌물을 받은 경찰을 부른다.
뇌물을 받은 경찰은 사건 현장에 도착해 모든 정황을 도미닉 경에게 불리하게 조작한다.
그러나 도미닉 경으로 분장한 이는 도미닉 경에게 사로잡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뇌물을 받은 경찰은 진짜 경찰인 자베르 경감에게 꼼짝도 못 하고 있었고, 총을 든 남자는 이런 상황에 나타나 오히려 수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간단하게 도미닉 경에게 누명을 씌울 함정이, 역으로 그들을 옭죄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상하군. 다들 손 들어. 취조를 해 봐야겠네."
자베르 경감이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 둘을 향해 걸어갔다.
부패한 경찰과 총을 든 남자는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저는 그저 신고받고 왔을 뿐입니다."
"휴가였잖나."
"물론 휴가 기간입니다만, 뭐 두고 간게 있어서요. 잠시 사무실에 들렀다가 전화가 울려서 저도 몰래 출동한 겁니다."
배불뚝이 경찰은 스스로 뇌물을 받았다는 걸 숨기고 마치 뼛속까지 경찰인 것처럼 자신을 꾸미기 시작했다.
자베르 경감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배불뚝이 경찰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심증은 있었지만, 실제로 가끔 정의감에 가득한 선후배 경찰들이 휴가를 반납하고 현장에 달려가는 일이 종종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자베르 경감 자신도 그런 사람이었다.
자베르 경감은 후배 경찰에 대한 의심을 풀기로 했다.
나중에 조사 결과가 나오면 모르겠지만, 일단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대신 자베르 경감의 눈이 향한 곳은 바로 총을 든 남자였다.
"자네는 방금 여기에 마치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말하던데"
"그, 그건"
총을 든 남자는 눈을 굴리며 이 상황을 타개할 거짓말을 생각해냈다.
어떻게 해야 좀 더 그럴싸하게 변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어떻게든 죄를 줄이고 싶었던 사칭범이 한숨을 내쉬며 자베르 경감에게 물었다.
"그, 있잖습니까. 저... 모든 것을 실토하면 좀 감안 해 주실 겁니까?"
"너!"
"그건 자네가 얼마나 협조적이냐에 따라 다르지."
자베르 경감은 건수를 잡았다는 듯 총을 든 남자의 발언을 막으며 사칭범에게 다가 갔다.
총을 든 남자는 점점 더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궁지에 몰린 남자는, 최악의 방법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했다.
바로 도망을 치려던 것이다.
"이대로 도망쳐서 숨은 다음에 얼굴과 이름을 바꾸면 아무도 모를 엇!"
총을 든 남자는 있는 힘껏 달렸으나,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에 시야가 막혀 달리던 그대로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아, 내 모자. 거기 있었군."
도미닉 경이 총을 든 남자를 습격한 모자를 보며 말했다.
처음 사칭범을 제압할 때 던졌던 모자는 골목의 용권풍을 따라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충분히 과학적인 설명을 할 수는 있으나, 그냥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시네마틱]이 일으킨 기적이라고 치자.
"제기랄!"
"당신은 현장에서 도주하려다 체포당했다. 자세한 내용은 서에 가서 이야기하지."
자베르 경감은 제멋대로 자폭해 버린 총을 든 남자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방금 전 수갑을 채운 도미닉 경 사칭범과 총을 든 남자를 굴비 엮듯 엮어 경찰차에 태웠다.
"정말 고맙소, 도미닉 경. 다음번에도 부탁하오."
자베르 경감은 경찰차에 타기 전, 도미닉 경에게 악수를 건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 멀리 경찰차가 멀어져 갔다.
도미닉 경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 경찰차를 바라보더니, 이내 모자를 푹 눌러쓰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코트에 손을 집어넣으며 집이 있는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건 해결이로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도미닉 경의 등 뒤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
도미닉 경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응? 돌아왔네? 페럴란트에서 온 사람들은 찾았어?"
"아."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무언가를 빼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를 고치면서 페럴란트에서 온 이들에 대한 걸 깜빡 잊은 것이다.
"깜빡했소."
"뭐, 그럴 거로 생각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찾는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거든."
도미니카 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도미닉 경은 무언가 기묘한 데자뷰를 느꼈다.
마치 전에도 이런 일을 겪은 것 같은...
아.
도미닉 경은 바뀌기 전의 과거를 기억해냈다.
그때도 이렇게 집에 돌아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만 같다.
도미닉 경은 기시감을 느끼며 도미니카 경에게 물었다.
"혹시 앨리스가 하루 자고 가기로 했소?"
"어떻게 알았어?"
도미니카 경이 눈을 깜빡이며 놀랐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그저 씨익 웃었다.
"다 아는 수가 있소."
"아, 스승님!"
"그래. 하루 자고 가거라."
"하루 자고 가도 되... 네?"
앨리스가 놀란 듯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는 갑자기 미래를 보는 듯 행동을 예측하는 도미닉 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도미닉 경이 정말 미래에서 돌아왔으며, 방금 과거를 바꿨다는 사실을 말이다.
...
"있다가 보드게임 한 판 어떠냐. 카'툴루인가 뭔가 그거 재밌어 보이더구나."
"어? 스승님, 카'툴루 아세요? 언제 해 보셨어요?"
앨리스가 싱글벙글하며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똑똑똑. 하는 소리가 현관에서 들렸다.
그 예의 없는 소리에 거실에 있던 셋이 동시에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것도 변하지 않은 건가?
도미닉 경은 한참 동안 현관 쪽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리려무나. 아무래도 손님이 온 것 같으니."
"아, 네!"
"대신 도미니카 경에게 룰을 알려주고 있거라."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한 뒤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 너머를 향해 외쳤다.
"누구요?"
"저기, 도미닉 경 맞으신지요?"
문밖에서 다소 예의 바른 말이 돌아왔다.
이 밤중에 예의없이 찾아온 것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공손한 말투였다.
"..그렇소만."
도미닉 경이 문 너머의 사내에게 말했다.
그러나 문 너머의 사내는 도미닉 경을 안심시키려는 듯 더욱더 부드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 그렇군요. 전 자베르 경감님 아래서 일하는 루핀 경사라고 합니다. 별 건 아닙니다만"
아, 설마 이것도 그대로란 말인가?
도미닉 경이 곤란하다는 듯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그러나 문밖에서 루핀 경사에게서 들린 것은, 확연히 다른 미래였다.
"오다가 길을 잃은 분들을 만나서요. 도미닉 경을 찾는다는 말에 자베르 경감님께서 저보고 직접 데려달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이 분들을 아시는지...?"
도미닉 경은 멍하게 문밖에서 들린 소리를 되새겼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문을 열어 버리자, 그곳에는 도미닉 경이 잘 아는... 혹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 보였다.
"안녕, 도미닉 경?"
검은 머리카락을 한 창백한 소녀가 도미닉 경을 향해 팔을 흔들었다.
"그, 청첩장 주려고 왔어. 이번에 이이랑 결혼하거든."
"음."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려 소녀의 옆에 있는 거한을 보았다.
마치 곰을 닮은, 야성적인 매력이 있는 근육질의 남성이었다.
"사실 그냥 청첩장만 보내려고 했는데, 네 집 주소를 모른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내서 말이야. 주소를 알 겸 그냥 직접 오기로 했어."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는 히죽히죽 웃으며 도미닉 경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곳엔 '학살자 왕 & 메리, 결혼합니다.' 라는 문구가 고풍스럽게 적혀 있었다.
"축하하오."
도미닉 경이 메리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들어와서 이야기나 좀 나누는 것이 어떻겠소? 아무래도 궁금한 것이 많아서 말이오."
도미닉 경은 그가 던전을 빠져나온 이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젤리는 있어?"
메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째서인지 젤리가 그렇게 땡기더라고."
"물론이오."
"그럼, 실례합니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메리는 학살자 왕의 옆구리를 한 번 쿡 찌르고는 도미닉 경의 집 거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도미닉 경이 타준 코코아를 마신 둘.
도미닉 경은 몸과 마음이 모두 풀린 것처럼 살짝 늘어진 둘에게 궁금했던 점을 쏟아 냈다.
"어떻게 던전을 빠져나왔는지, 그리고 지하에 있던 그 아티팩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티팩트?"
도미닉 경의 말에 메리가 오히려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아티팩트?"
"...시간을 되돌리는 검 말이오. 자루와 날이 뒤바뀐"
"시간을 되돌린다니. 세상에. 무슨 그런 사기 아이템이 다 있어?"
메리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런 게 있었으면 당장 우리가 썼을 걸? 더 예전에 이렇게 대화해볼걸, 하고 말이야."
도미닉 경은 메리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끼고 학살자 왕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학살자 왕도 그 아티팩트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는 듯, 그저 눈을 깜빡이고만 있었다.
"...별거 아니오. 내가 다른 것과 헷갈렸나 보오."
도미닉 경은 마침내 예전에... 아니, 또 다른 미래에 메리가 한 말을 기억했다.
많은 이들이 썼지만,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는 말.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은 그 말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어떻게 둘이 결혼하게 된 거요?"
"아, 그게 말이지. 알고 보니까 내가 오해를"
도미닉 경은 메리와 학살자 왕의 말을 경청하며 미소 지었다.
모든 것이 다 잘 풀렸다고 생각하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