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 [230화]Beyond the Cut
* * *
상업 지구의 중앙 광장.
방금 전까지 페럴란트에서 온 이들을 찾는다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도미닉 경은 조금 피곤했던지 분수대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잠시 광장의 소음과 상인과 고객 간의 흥정소리들을 듣던 도미닉 경은, 문득 무언가에 놀란 듯 화들짝 눈을 떴다.
"...허?"
도미닉 경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식이로군."
도미닉 경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도미닉 경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폰을 집어넣고, 굳은 표정으로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여러분들은 도미닉 경의 목적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도미닉 경이 누명을 쓸 바로 그 사건의 현장이었다.
...
"뉴비면 뉴비답게 이거나 받으... 아."
총을 든 남자가 관례처럼 주머니에서 초보자들에게 쓸모 있는 물건들을 꺼내려고 했으나, 그가 꺼낸 건 소금에 절여져 미라가 된 누군가의 머리통이었다.
헤드헌팅하다가 주머니에 넣어 둔 걸 깜빡했네. 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인 남자가 뉴비에게 사과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뉴비는 놀랐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히, 히익!"
뉴비는 경기를 일으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뉴비는 골목길로 사라졌는데, 도미닉 경은 저 네크로맨서가 사건의 중심에 있던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확실하군."
도미닉 경이 신문지를 접으며 걸음을 옮겼다.
도미닉 경은 현재 바바리 코트를 입은 상태였는데, 이는 근처에 있던 스킨 가게에서 위장용으로 아무렇게나 산 옷이었다.
물론 가격은 1980가차석으로 아무렇게나 입을 가격은 아니었지만, 도미닉 경은 개의치 않았다.
가차석보다는 도미닉 경의 누명을 벗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은 뉴비가 사라진 골목길에 들어섰다.
이미 뉴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상태였지만, 도미닉 경이 찾는 건 뉴비가 아니었다.
도미닉 경은 다시 골목길의 코너에서 신문을 들어 올린 채 수시로 고개를 내밀어 골목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만일 도미닉 경이 누명을 쓴 게 맞다면, 저 골목 입구에서 또 한 명이 들어올 것이 자명했으니까.
도미닉 경이 의심을 피하고자 옷깃을 더욱 세워 얼굴을 가리고 신문지를 넘기는 척했다.
"여기란 말이지?"
"그래. 여기로 들어갔다니까."
그때, 두 명의 사람이 골목길을 향해 들어왔다.
도미닉 경은 빼끔 고개를 내밀어 그 사람들을 확인하려고 곁눈질을 했으나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오는 빛이 역광이라 그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도미닉 경은 그 윤곽을 파악하는 데에는 성공했는데, 한 명은 총을 든 사내였고, 한 명은 머리에 세 갈래 깃털을 끼운 기사였다.
도미닉 경은 그 사람들을 보자마자 그들이 이 사건의 범인들임을 알아차렸다.
"추적을 걸어 놨으니까 아래 마크를 따라 가면 될 거야. 난 여기까지. 더 이상 같이 움직였다간 걸린다고."
총을 든 남자가 기사의 어깨를 툭 치며 사라졌다.
"...그래. 여기란 말이지."
기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골목길로 향했다.
그는 도미닉 경이 숨은 골목을 지나 거침없이 어디론가 향했다.
"..."
도미닉 경은 말없이 신문을 접었다.
그리고 옷깃을 더욱 여민 채, 그 기사의 뒤를 밟았다.
기사는 너무 흥분했는지 도미닉 경이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신 그는 손에 든 칼을 붕붕 휘두르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는데, 곧 있을 일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은 기사를 따라가면서 그의 모습을 관찰했다.
뒤에서 본 기사는 머리에 삼색 깃털을 꽃은 갈색 단발의 사나이였는데, 톱처럼 생긴 칼과 골판지로 된 방패를 들고 있었다.
갑옷과 의상도 급하게 제작한 듯 여기저기 실밥이 튀어나오거나 옷핀으로 고정된 부분이 보였는데, 얼핏 보면 도미닉 경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물론 자세히 보면 도미닉 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여긴가?"
앞서가던 기사가 갑자기 벌컥 쓰레기통을 열었다.
그러나 그곳엔 쓰레기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그럼 여긴가?"
도미닉 경은 갑자기 여기저기 들쑤시는 기사의 시선을 피해 골목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여기도 아니면... 여기?"
"히, 히익!"
기사가 쓰레기 더미를 발로 걷어찼지만, 거기에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던 쓰레기통의 그늘 아래, 겁에 질린 채 숨어 있던 네크로맨서가 뛰쳐나왔다.
누군가가 뒤쫓는다는 걸 알아챈 뉴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지를 발휘해 구석에 숨었으나, 점점 다가오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와버린 것이다.
"찾았다."
기사가 골판지로 된 방패를 쓰레기 더미 사이로 내다 버린 후 톱날 검을 들어 뉴비에게 다가 갔다.
"뭐, 뭐예요! 왜 절 따라오시는 거죠?"
네크로맨서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너에게 원한은 없단다, 애야."
기사가 톱날 검을 붕붕 휘둘렀다.
톱날과 톱날 사이의 틈에서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뉴비는 더욱 겁에 질려 뒤로 넘어지고 말았으나, 기사는 그 꼴이 우습다는 듯 히죽히죽 웃으며 뉴비에게 성큼성큼 다가 갔다.
"오, 오지 마세요! 금지된 술법을 쓸 거예요!"
"써 봐. 죽으면 그만이지. 애초에 뉴비가 쓰는 기술이 얼마나 강하려고."
기사가 히죽히죽 웃으며 뉴비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뉴비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으앗!"
뉴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고통은 없었다.
뉴비는 마땅히 느껴져야 할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이상함을 느끼고 슬쩍 실눈을 뜨고 기사를 바라보았다.
"으, 으윽!"
뉴비는 기사의 검이 무형의 무언가에 막혀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무형의 막이 기사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
기사는 어떻게든 그 막을 뚫으려 기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막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뉴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 살았다..."
"라고 생각했겠지."
뉴비는 기사의 말에 놀라 기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보이지 않는 막 너머에서, 기사는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내며, 기분 나쁘게 실실거리고 있었다.
뉴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기사가 막에서 검을 떨어뜨린 뒤, 다시금 가볍게 휘둘렀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뉴비를 보호하던 보호막이 깨져나갔다.
"아, 난 이 표정이 제일 좋다니까."
기사가 충격에 빠져 울먹거리는 뉴비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억센 손으로 뉴비의 얼굴을 쥐어 잡으며 말했다.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진 그 얼굴 말이야. 그래. 그 얼굴."
뉴비는 너무나 큰 충격에 빠져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기사에게 붙잡혀 있었다.
"어떻게 뉴비 보호 프로그램을 해제한 거지?"
"그야 간단하지. 이 검은 양산박의 것이거든. 핵은 얼마 전 패치로 막혔지만 아직 다양한 불법 프로그램이... 응?"
기사는 희열에 빠져 누군가의 질문에 나불나불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기사는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 목소리는 뉴비의 것도 아니었고, 기사의 것도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란 말인가?
기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도미닉 경!"
기사는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도미닉 경은 기사의 뒤에 서서 기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도미닉 경은 모자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코트를 벗어 하늘로 집어던지고는,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이미 도미닉 경은 사건의 범인을 알았고, 범인의 동기도 알았으며 범인의 범행 도구까지 알아낸 상태였다.
무엇보다 도미닉 경은, 이미 폰으로 이 모든 것을 녹음, 녹화하며 경찰에게 자료를 보낸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범인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제압하는 것.
현재 도미닉 경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 남아 있었다.
"머, 멈춰!"
"아"
도미닉 경을 사칭한 기사가 다급하게 뉴비를 인질로 삼았다.
"네가 가까이 오면, 이 뉴비는 죽는다! 알고 있겠지?"
"하긴. 그는 뉴비니까."
"그래!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전의 뉴비는 부활 불가능! 더 다가오면 이 뉴비는 그대로 죽어버리는 거야!"
기사가 비열하게 웃었다.
그리고 황급히 눈을 굴리며 도망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으로 변장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모았던 사칭범은 도미닉 경이 탱커이며, 이동 기술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말인 즉, 도망가기만 하면 도미닉 경이 따라잡을 확률은 없다는 뜻이었다.
기사는 슬금슬금 생각해 둔 탈출로를 향해 조금씩 발을 옮겼다.
뉴비는 겁에 질린 나머지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끅끅거리며 울음을 삼킬 뿐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저 묵묵히 그 모습을 노려보았다.
뉴비가 인질로 잡힌 이상,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도미닉 경이 노리는 것이었다.
"어, 어어?"
펄럭. 하고 무언가가 갑자기 사칭범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사칭범은 갑자기 시야를 가린 무언가를 치우려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때, 도미닉 경이 바로 달려들어 인질을 잡고 있던 사칭범의 머리에 방패 모서리를 꽂아 넣는 데 성공했다.
혹시나 상태 이상 기절이 걸리지 않았을까 봐 힘을 실어 세 번의 추가타를 먹인 도미닉 경은, 뒤로 넘어가는 사칭범의 머리에 칭칭 감긴 코트를 회수하며 지그시 사칭범을 밟아 제압을 마쳤다.
"설마 [시네마틱]으로 이런 것도 가능할까 싶었는데, 가능하군."
도미닉 경이 다시금 코트를 걸치며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도미닉 경의 코트 자락을 휘날렸다.
아직 얼떨떨한 상태에 있던 뉴비는 도미닉 경의 중얼거림에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골목길에 들어오는 빛이 역광이 되어, 코트자락을 날리는 도미닉 경의 머리 뒤를 후광처럼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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