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20화 (220/528)

〈 220화 〉 [219화]던전 4층/3층

* * *

도미닉 경은 정신없이 날아오는 것들을 쳐 냈다.

양측에서 날아오는 단검 탄막을 빗겨내면서, 대포가 쏘아내는 잭과 조 형제를 쳐 내는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이대로라면 도미닉 경이 먼저 지쳐 버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함부로 현재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포가 발사되며 내뿜는 화약의 불빛에 어둠이 살짝살짝 걷힐 때마다 주변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탓이다.

예를 들어 바로 전에 도미닉 경의 왼쪽에 있던 공이 이번에 대포가 발사되며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안 그래도 시야가 나쁜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이렇게 확확 바뀌는 어둠 속의 공간은 그야말로 미로나 다름없는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도미닉 경은 그저 방패를 들어 올려 방어에 전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직 도미닉 경은 히죽히죽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전투를 즐기는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어려운 상황은 도미닉 경을 더 강하게 만들 뿐이었으니까.

몇 번의 대포가 더 발사되었을까?

저 사람들은 참 아프겠군. 나보다 더 말이야.

도미닉 경이 다시금 발사된 잭과 조 형제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변의 상황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도미닉 경이 반짝거리는 빛이 사그라들자마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비출 대상을 잃은 조명이 도미닉 경을 찾아 주변을 어지럽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으윽!"

페리인가, 제리인가?

단검을 던지던 단검 던지기의 달인 형제 중 하나가 어둠 속으로 끌려갔다.

반대편에 있던 다른 단검 형제가 반대편에서 납치당한 형제를 바라보았다.

그 형제의 뒤에는 하얗게 빛나는 이빨과 녹색으로 번들거리는 눈이 보였다.

다시금 대포가 발사되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타지 않은 채, 그저 주변을 밝히려고 쏘아진 대포였다.

단검 형제 중 남은 이가 번쩍이는 불빛 너머로 도미닉 경의 잔상을 보았다.

그는 한 손으로 그의 형제의 멱살을 잡고 땅에 질질 끌고 다니고 있었는데,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발버둥 치는 형제의 모습이 보이더니, 이내 형제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려 남은 단검 형제를 바라보았다.

다음은 너라는 듯, 어둠 속에서 뱀 같은 녹색 눈빛과 하얀 이빨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이익!"

단검의 달인의 무차별적인 단검 투척이 이어졌다.

그의 형제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니, 공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대포의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도미닉 경이 있는 자리를 향해 단검을 던지던 단검의 달인은, 이내 공포에 사로잡혔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도미닉 경이 섬뜩한... 아니,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단검의 달인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대놓고 보였기 때문이다.

단검의 달인의 손이 멈췄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단검을 던지지 않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 빛이 번쩍일 때마다 점점 더 단검의 달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불빛이 번쩍일 때, 도미닉 경은 단검의 달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단검의 달인이 조명 아래에서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손에 단검을 들어 올린 채 사방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한 단검의 달인.

그러나 그의 저항은 헛된 것이었다.

"위험해!"

"조심해!"

대포를 쏘아내던 잭과 조 형제는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거친 손들을 바라보았다.

"...읍!"

그리고 입이 막힌 채, 목을 잡힌 채 어둠 속으로 끌려가는 단검의 달인을 무력하게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어떻게 이렇게 어둠 속에서 단검 형제를 잡아낼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도미닉 경의 동물적인 감각 덕분이었다.

과도하게 행복해진 도미닉 경은, 지금껏 잠들어 있던 야생적인 본능이 깨어나 버렸다.

야생적인 본능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피부에 닿는 바람의 감촉으로 알아낼 수 있었고, 빛과 어둠이 번갈아 가며 그의 시야를 교란했음에도 본능적인 감각으로 공격이 오는 방향을 확인하고 다가갔던 것이다.

괜히 도미닉 경이 농노에서 기사가 된 것이 아니라는 듯, 그야말로 짐승적인 본능을 여실히 드러내는 도미닉 경.

물론, 그 와중에도 기사도는 잊지 않았다.

사실 도미닉 경은 단검 형제를 저 위, 어둠 밖으로 집어던졌을 뿐, 죽이거나 하지는 않은 것이다.

도미닉 경의 피해량으로는 둘을 죽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도미닉 경의 기사도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인간 대포 형제, 잭과 조였다.

도미닉 경이 조명의 가장자리에서 살짝 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음은 너라는 듯, 손가락으로 잭과 조를 가리키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잭과 조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양손을 들고 항복 사인을 보냈다.

탁. 탁. 탁.

하고 다시 무대 전체에 불이 켜졌다.

어둠은 더 이상 도미닉 경을 방해할 수단이 아니라, 도미닉 경이 날뛸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여긴 존 도우의 결단이었다.

"대단하군요, 도미닉 경. 기사라는 이름은 허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기사보다는 괴수에 더 가까운 것 같지만 말이죠."

존 도우가 원형 무대의 가장자리에서 목마를 타며 펜스를 한 바퀴 돌았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여전히 볼 것이 풍부하다는 점이고, 나쁜 소식은, 그 모든 것이 당신을 죽이려 한다는 거지요!"

여전히 어둠에 쌓여 있는 관중석에서 불타는 링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반대편 관중석에서 사자가 튀어나왔다.

아니, 사자가 튀어나와야 했다.

"...왜 안 나오는 거지? 또 겁을 먹었나?"

존 도우가 공중 그네에서 묘기를 부리며 반대편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둠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현재 이성보다 행복함이 앞서는 상황이었기에, 존 도우의 행동을 그저 바라만보고 있었다.

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이봐! 그러니까 오해라고! 니 여동생 살­"

메리가 관중석에서 오해라고 소리쳤으나, 관중석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에 묻혀 존 도우에게는 닿지 못했다.

"도대체 왜 안 나오는­"

존 도우가 어둠 속 보이지 않는 대기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오...빠..."

존 도우의 몸이 멈췄다.

"...제인 도우?"

존 도우가 어둠 속에서 들린 여동생이자 자기 자신이자 아무것도 아닌 사이의 여자에게 되물었다.

"존 도우... 오빠...."

존 도우는 어둠 속에서 들린 소리가 여동생의 소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살아 있었구나! 내가 오해를 했어!"

존 도우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러니까 내가 오해라고 했잖아!"

관중석에서 메리가 존 도우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여기에 온 거야? 분명 너는 나와 같이 있지 못할 텐­"

존 도우가 흥분한 채로 어둠 속의 제인 도우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존 도우와 제인 도우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시스템이 그들을 갈라놓아 평행선에 각자를 놓아버린 것 때문이었다.

이렇게 목소리만이라도 들은 것이 얼마만이던가.

존 도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명 하나를 대기실 쪽으로 비췄다.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 도우는 여동생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조명이 채 대기실에 닿기도 전에, 존 도우가 어둠 속에 먹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깨져나가는 무대.

박수 소리도, 환호성도 없었다.

도미닉 경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존 도우를 만났던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뭉개진 그림 하나와 창밖에 보이는 둥근 달과 함께.

"어리석군, 어리석어."

"존 도우는 도우 맛이 난다!"

"고기가 가득 든 도우!"

"저게... 뭐야?"

메리는 다시 거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마 3층의 보스가 사라지면서, 3층을 클리어한 판정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거미의 모습인 메리는 어둠 속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기에 어둠 속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붉은색 피부를 가진 살점 덩어리였다.

수많은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거대한 살점 덩어리.

도미닉 경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혐오감이 도미닉 경의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그리고 그건, 도미닉 경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었다.

"...마족인가?"

도미닉 경이 붉은 살점 덩어리에게 말했다.

"그렇다."

살점 덩어리의 가장 큰 입이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은 혐오 필터를 켜 놓은 상태였기에, 그 큰 덩어리는 붉은색 모자이크가 된 상황이었다.

"도미닉 경. 맞나?"

또 다른 입이 도미닉 경의 이름을 불렀다.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 맞나?"

"옳다. 그는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다."

"나에게서 승리를 쟁취한 도미닉 경이다."

"내 사랑. 그러나 이제는 아닌 도미닉 경이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람."

그 괴물의 모든 얼굴에 달린 입에서 도미닉 경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 끔찍한 모습에 도미닉 경은 저 존재가 마족이거나 마족의 주구임을 확신했다.

적어도 도미닉 경이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들은 마족의 것이었으니까.

도미닉 경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지금부터 계약에 따라,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을 잡아먹겠다."

"무슨 맛이 날까? 철을 씹는 맛이 날까?"

"오, 내 사랑. 이제 하나가 되는 거예요..."

붉은 피부의 괴물은 모든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모독적인 말을 뱉어냈다.

그리고 그건,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꽤 익숙한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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