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19화 (219/528)

〈 219화 〉 [218화]던전 4층/3층

* * *

도미닉 경과 메리는 문을 넘어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다.

화려한 그림과 예술품들이 가득한 복도.

벽에 걸린 호랑이 가죽과 바닥에 깔린 화려한 융단을 보아, 이곳은 3층이 맞는 듯싶었다.

"참 피곤한 보스였어."

메리가 가면을 고쳐 쓰며 말했다.

세계가 바뀌었으니, 메리의 모습도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무래도 저기가 보스 방 같네."

메리가 한 곳을 가리켰다.

도미닉 경이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자, 그곳에는 크고 화려한 문이 도미닉 경을 환영하듯 열려 있었다.

그 문 너머에서는 광대 복장을 한 이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아무렇게나 팔을 휘둘러 현대 미술과도 같은 광기를 보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도미닉 경이 메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앞세운 채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손님들이군요."

존 도우가 도미닉 경의 기척을 느끼고 붓을 멈췄다.

그리고 몸을 빙글 돌려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5층에선 잘 대접받았습니다. 제인 도우도 만족하더군요. 눈앞에 그 요리를 만든 사람이 있다면 당장 사랑에 빠져 버렸을 겁니다."

물론 그러지 않아도 사랑에 빠져 버렸겠지만 말이죠. 라고 존 도우가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왔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겠죠. 4층과 3층을 번갈아 가며 운 좋게 마지막에 고른 방이 제 방이었거나, 아니면..."

존 도우의 시선이 도미닉 경과 메리의 뒤편, 복도에 열린 문에 닿았다.

"제 동생이자 저이자 아무 관계도 아닌 이를 해치우고 뒷문으로 왔거나."

존 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그리던 그림은 초상화였는데, 한 여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후자군요. 그렇지요?"

존 도우의 입술이 광대까지 승천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알다시피, 그녀는 병든 마음을 가지고 있어 사랑도 뒤틀려 있지요..."

존 도우가 도미닉 경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쓰러져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잠깐, 일단 우리 말을 좀­"

"참 좋은 날씨죠. 완벽하게 둥근 달, 구름이 조금 껴 있어 신비한 밤하늘..."

메리가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했으나, 이미 존 도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자기 할 말만 하기 시작했다.

"이런 좋은 날에 가 버린 동생은 행복할까요? 아니면 여전히 죽어 버린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할까요?"

존 도우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도미닉 경이 필사적으로 변명하려는 메리를 막아섰다.

어차피 3층의 보스 존 도우를 격퇴해야 2층으로 갈 수 있었다.

애초에 서로 적대해야만 하는 관계였다.

존 도우가 커다란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여전히 날씨는 좋네요. 밝은 달. 신비한 밤..."

도미닉 경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이런 좋은 날에 당신들은..."

존 도우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번뜩 눈을 뜨며 도미닉 경을 노려보았다.

"아쉽게도, 지옥에나 가겠군요."

존 도우의 눈에서 줄기줄기 불길이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암전되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탁. 하고 존 도우가 있는 자리에 조명이 쏟아졌다.

존 도우가 어둠 속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늘 밤, 이곳에서 세계 최고의 서커스가 벌어집니다!"

탁. 탁. 탁. 하고 조명이 순차적으로 켜지며 다양한 것을 보여준다.

불타는 링, 물구나무 서는 곰, 커다란 공과 대포, 그리고 공중 그네까지.

어둠 속에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 여러분들께서는 참으로 행운아이십니다! 저희가 어렵게 이 분을 모셨기 때문이죠! 도미닉­ 경­!"

존 도우가 양팔을 뻗어 한 지점을 가리키자, 그곳에 조명이 켜지며 도미닉 경이 나타났다.

도미닉 경은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두워지고, 갑자기 눈이 부시도록 불이 켜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나쁜 시야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수많은 서커스의 달인들과 도미닉 경의 전투가 벌어집니다! 그야말로 피가 튀고, 살이 벗겨지는 잔혹한 서커스! 노약자와 임산부는 눈을 가리십시오! 너무 자극적일 테니까요!"

존 도우가 울부짖듯 관객석을 향해 외쳤다.

도미닉 경은 언제 공격이 시작될지 몰라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경계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대비할 수는 없는 법.

"첫 번째 서커스의 달인은, 바로­"

존 도우가 말을 길게 끄는 사이, 도미닉 경은 갑자기 뒤통수를 가격하는 엄청난 충격에 휘청거렸다.

도미닉 경의 스탯을 확연히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피해량과 관통력이었다.

존 도우가 휘청거리는 도미닉 경을 비웃으며 마저 소개를 끝마쳤다.

"서커스의 마스코트! 불곰 테디입니다!"

도미닉 경은 흐릿해진 시야를 바로잡으려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무시무시한 앞발을 가진 거대한 불곰이 있었다.

...

도미닉 경이 3층의 보스와 조우한 그때,화려한 연회장의 구석, 판자로 가려 둔 버그 공간.

그 공간에서 사악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연회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가면 무도회장을 가득 채운 검은 기운은 이내 온 세상을 검게 물들였고, 곧 세상은 윤곽선만 겨우 보일 정도로 검게 변했다.

그 어떤 것도 제 빛깔을 끝까지 간직하지 못했으나, 이 검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색깔을 가진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판자를 부수고 가면 무도회장이었던 장소로 기어나왔다.

"이쪽이란 말이냐?"

아, 그 사악한 붉은 것이 말했다.

그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었으나, 그것이 그 말을 내뱉자 그 말은 모독적이고 불온하며 끔찍한 소리가 되었다.

"그래. 흔적이 그쪽으로 이어지고 있어."

사악한 붉은 것의 또 다른 입이 그리 말했다.

"고작 피와 살을 제물로 받은 것 치곤 너무 과하게 일하는 것 아닌가?"

또 다른 얼굴이 사악한 문장을 외쳤다.

"하지만 계약은 계약이다. 과거에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

또 하나의 얼굴이 떠올라 궤변을 늘어놓았다.

"배고프다! 빨리 그걸 먹어야 한다!"

"아니다! 잘못 먹으면 탈난다! 그런 걸 먹을 순 없다!"

두 개의 얼굴이 떠올라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그 얼굴들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자세히 보아도 어째서인지 알 수 없는 얼굴들이었다.

얼굴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사이, 붉은 것은 앞으로 나아갔다.

사악한 붉은 것은 수많은 것들의 비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것은 검은 공간 위를 붉게 물들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붉은색이 문을 비집어 부수고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그것이 사라지자 다시 가면 무도회장은 원래의 빛깔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색이 사라지거나, 너무 과하게 칠해진 부분이 생겨났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

"흐."

도미닉 경이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가볍게 웃었다.

불곰 테디의 후려치기는 도미닉 경의 방어력을 가볍게 웃도는 것이라서, 도미닉 경은 간만에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도미닉 경의 생존 본능이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도미닉 경은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기 시작했다.

"우와... 기분 나빠..."

도미닉 경이 피를 뚝뚝 흘리며 실실 웃자, 메리가 무섭다는 듯이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뒤로 세 발자국 물러났다.

마음 같아선 더 물러나고 싶었지만 벽이 등에 닿는 바람에 더 이상 뒷걸음질 칠 수 없던 것이다.

도미닉 경의 앞에는 불곰 테디가 두 발로 일어난 채 도미닉 경을 마주 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도미닉 경을 다시 공격할 것 같은 자세로 선 불곰 테디.

그러나 불곰 테디가 도미닉 경을 공격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이미 도미닉 경의 공격에 쓰러진 상태였다.

도미닉 경의 방패치기로 터진 기절 효과로 인해 선 채로 쓰러진 상황이었기에, 곧 불곰 테디는 기절 효과가 풀리자마자 뒤로 넘어갔다.

"...대단하군요! 놀랍습니다! 서커스의 마스코트, 불곰 테디가 선 채로 쓰러지다니! 그야말로 놀라운 일격!"

존 도우가 어느새 공중 그네에 탄 채로 발을 휘저으며 확성기를 두드렸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아직 쇼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죠! 다음 공연은 바로 날아가는 인간 포탄 형제, 잭과 조!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단검 던지기의 달인들인 페리와 제리가 나옵니다!"

존 도우의 외침에 따라 세 군데에 조명이 비춰졌다.

한 곳에는 커다란 알록달록한 대포와 함께 두 명의 건장한 남성이 주변을 향해 손을 들고 있었고, 나머지 두 곳에선 단검을 저글링하는 두 난쟁이가 나타났다.

"과연 우리 도미닉 경은 이 이심전심의 형제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모두 집중해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사방에서 다시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심해. 두 개의 기믹이 동시에 나왔어. 그만큼 상대하기가 껄끄러울 거야."

메리가 도미닉 경에게 충고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메리의 말이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이미 머리와 심장을 가득 메운 행복함이 그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즐거워진다는 소리로군."

도미닉 경이 제멋대로 메리에게 대답했다.

그의 말과 동시에, 대포에 들어간 잭과 조 형제 중 하나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발사되었다.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눈앞에 다가온 근육질의 남성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아직 보스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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