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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13화 (213/528)

〈 213화 〉 [212화]던전 5층

* * *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올리고 곧 일어날 충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예상한 충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내가 말했잖아. 정보가 남아 있다고."

천장에 붙어 깊은 한숨을 내쉰 메리가 도미닉 경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소리?"

"어디서 나는 거지?"

보스의 두 얼굴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균사체로 인해 뻣뻣해진 목은 좌우를 살필 수는 있었으나 위에 있는 메리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그, 지금 네 옆을 봐봐."

도미닉 경은 메리의 말을 듣고 평소대로 시야가 멀쩡한쪽, 즉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거기 말고. 반대편."

"아."

도미닉 경이 다시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방금 도미닉 경이 보스의 설명이 적힌 시스템 창을 치우며 같이 쓸려간 또 하나의 창이 있었다.

[대식가와 미식가 보스를 상대하는 방법을 선택하십시오.]

[1.대식 : 많이 먹기 대결에서 승리한다.]

[2.전투 : 대식가와 미식가에게 안식을 선사한다.]

도미닉 경은 왜 보스가 도미닉 경을 공격하지 않는지 그제야 알아차렸다.

보스 기믹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보스전이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도미닉 경이 기습을 하려고 하긴 했으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아직 비전투 상태인 상황이었다.

도미닉 경은 두 가지 선택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어떤 고민도 없이 2번을 눌렀다.

그러나 전투가 일어날 일은 없었다.

[3번, 미식을 선택하셨습니다.]

[요리 대결이 시작됩니다.]

[심사위원을 찾는 중...]

[NPC 블러디... 아니, '병약한' 메리가 심사를 수락했습니다.]

도미닉 경은 도대체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는 데 한참을 소모했다.

당황한 도미닉 경에게 메리가 다가와 말했다.

"어... 그러니까 선택지 낚시에 걸린 거야. 잘 보면 아주 작게 3번 선택지가 있거든."

도미닉 경이 그 말에 황급히 예전 선택지를 보았다.

[1.대식 : 많이 먹기 대결에서 승리한다.]

[2.전투 : 대식가와 미식가에게 안식을 선사한다.]

˛₃­­­­­­­­­­?

그저 슬쩍 바라볼 때에는 몰랐으나 자세히 보니 2번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로 적힌 무언가가 있었다.

도미닉 경은 시력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이런 글자가 보였다.

[3.미식 : 요리 대결에서 승리합니다.]

"맙소사."

도미닉 경이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정말 아주 작은 글자로 3번째 선택지가 있었다.

분명 도미닉 경이 2번을 누르려다가 너무 마음이 급한 나머지 조금 아래를 눌러 3번이 선택된 것이 틀림없었다.

"가, 감히 앤트리에겛 요리 대결읊 신청해?"

"이 미식가 앤트리에게?"

보스의 두 머리가 도미닉 경을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감히, 이 왕궁 요리사의 정점에 선 자에게 도전을 하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좋다! 너의 그 무모함을 받아들이지!"

"나,나 준비핝다. 대결을 위한 무대를 준비핝다!"

보스가 두 개의 손에 각각 식칼과 숫돌을 들고 갈아내기 시작했다.

쥐떼와 벌레가 득시글거리는 재료들과 썩어 버린 목재들로 만든 식탁과 의자.

그리고 누덕누덕 기워져 너덜거리는 요리사까지 멀쩡한 것이 없는 주방이었으나, 식칼만큼은 요리사의 자존심이라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보스는 또 두 개의 손으로 뒤에 있던 그나마 가장 깨끗한 조리대 두 개를 꺼내 내려놓았는데, 얼마나 세게 내려놓았는지 천장에 있던 먼지와 거미줄이 우수수 떨어질 정도였다.

"...이걸 원했던 것이 아닌데."

도미닉 경이 순식간에 만들어진 요리 대결 장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심사위원으로 왔으니까, 너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현재 심사위원과 도전자 간의 유착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추가적인 심사위원들이 도착합니다.]

"오, 이런. 망할 시스템."

메리가 갑자기 나타난 시스템 창에다 대고 욕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쉽게 쉽게 가려는 메리의 계획은 실패한 듯싶었다.

"미안. 젤리를 받았으니 그만큼 도와주려고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던전 시스템이 그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야."

메리가 도미닉 경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런 메리의 사과에 반응하지 못했다.

저 아래서, 엄청난 기운의 무언가들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도미닉 경이 느꼈던 엄청난 기운의 누군가들이 계단을 걸어올라와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왜 나를 부른 거죠?"

[왕의 유모, 캐서린.]

도미닉 경은 캐서린이라고 불린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수수하지만 엄청나게 겹겹이 쌓인 드레스를 입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깐깐해 보이는 주름과 굳게 닫힌 입이 그녀의 성격을 알려주고 있었다.

캐서린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그 시스템 창이 보여주는 메시지를 전부 읽은 캐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 던전에서 앙트레와 앤트리를 뛰어넘는 요리사는 존재하지 않죠. 이런 큰 대결에 저를 부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로군요."

"뭐, 사실 던전에서 최고라고 해봤자 썩은 요리를 덜 썩은 맛이 나게 조리하는 것뿐이잖습니까."

캐서린의 옆에 여기저기 찢어져 기운 자국이 있는 광대 복장을 한 이가 앉았다.

"안 그렇습니까?"

[종합 예술가, 존 도우]

그는 실눈을 뜬 채 실실 웃고만 있는 남자였는데, 귓등에 알록달록한 물감이 묻은 붓을 껴두고 있었고, 반대편 귓등에는 만년필이 끼워져 있었으며 그의 목에는 나팔이 걸린 줄이 걸려 있었다.

도미닉 경은 새롭게 나타난 인원들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나오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요?"

도미닉 경이 젤리 한 움큼을 메리에게 넘기며 말했다.

"...2층과 4층의 보스들이야. 왕의 유모와... 왕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들이지."

메리가 도미닉 경의 의문에 답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유모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눈에는 강렬한 증오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강렬한 증오가 캐서린에게 닿은 모양이었다.

"...공주님께선 어쩐 일로 이 하층에 내려오신 거지요?"

"하. 내가 가고 싶어서 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문제가 있지요."

캐서린이 깐깐한 표정으로 메리에게 말했다.

"당연히 당신은, 최상층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계약이 있지 않습니까."

"그 계약을 내가 수락한 기억이 없는데."

메리가 날이 선 목소리로 캐서린을 쏘아붙였다.

"당신의 지장이 찍혀 있으니까요. 계약은 유효합니다."

"강제로 내 손을 찌르고 지장을 찌르는 걸 우린 협상이라고 부르지 않아. 가차랜드의 법률 상, 그건 무효야."

"여긴 가차랜드기도 하지만 던전이기도 합니다. 던전에선 던전의 룰을 따른다. 가차랜드 법률 상 더 우선시 되는 것이지요."

메리와 캐서린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가만히 놔둔다면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눈싸움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다행스럽게도 요리사의 말이 그 둘을 떼어놓았다.

"언제 시잙하면 됩니깛?"

"저 애송이에게 당장 주제를 알게 해주고 싶은데 말이죠."

앙트레와 앤트리가 볼멘소리를 내었다.

물론, 균사에 의해서 들끓고 가래 끓는 목소리였으나 그 속에 담긴 불만을 표현하기엔 충분한 말이었다.

"...여기 앉으시지요. 심사위원이지 않습니까. 아니면... 도전자를 도와주기 위해 심사위원 자리를 포기하실 생각이신겁니까?"

캐서린이 메리를 도발했다.

메리가 다시금 캐서린을 노려보았으나, 이내 도발에 넘어가는 순간 상황이 메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메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심사위원 석에 가서 앉는 것뿐이었다.

"공주라고?"

도미닉 경이 걸음을 옮긴 메리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메리가 들었는지, 메리도 도미닉 경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나중에. 나중에 알려줄게. 일단 지금은 요리 대결이 먼저니까."

메리가 심사위원석에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다행스럽게도 거미용 의자가 예비용 의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이왕이면 캐서린과 가장 먼 곳... 그러니까 광대 존 도우의 옆에 앉았다.

존 도우는 거미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지 메리의 하반신, 거미 몸통과 다리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실실 웃기 시작했다.

굳은 표정의 두 사람과 속을 알 수 없는 한 사람.

그렇게 세 명의 심사위원이 자리에 착석하자, 이내 다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요리 대결을 시작합니다.]

[요리 대결의 주제는... 신선함입니다.]

[던전의 요리라는 건 새로움이 부족합니다. 늘 먹던 것이 계속해서 나오는 법이죠.]

[그런 던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신선한 재료와 신선한 레시피가 필요합니다.]

[요리 대결의 심사 점수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얼마나 신선한 재료를 골랐는가? (10점)]

[2. 얼마나 신선한 레시피를 생각했는가? (10점)]

[3.얼마나 신선한 맛이 나는가? (10점)]

[3명의 심사위원이 각각 30점, 총합 90점으로 점수를 매깁니다.]

[그리고 10점은 ARS 점수가 반영되어, 총 100점의 점수로 승패가 결정됩니다.]

[다음으로 전화해 당신의 요리사에게 투표해주세요! 555­8212(발신자 부담 100크레딧.)]

"앙트레! 최대한 신선한 재료를 골라!"

"여기다! 여긿 신선한 버섨이 있다!"

도미닉 경이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요리사 보스에게로 돌렸다.

이미 요리사 보스는 재료를 찾아 썩은 재료들을 뭉개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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