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12화 (212/528)

〈 212화 〉 [211화]던전 5층

* * *

도미닉 경은 5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거 알아? 여긴 사실 거대한 첨탑이었어. 이름도 던전이 아니라 도살자의 첨탑(Spire of the Slayer)였지. 도살자 왕이 이웃 나라의 공주를 납치해 감금해 두던 곳이야."

병약한 메리가 도미닉 경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주절거렸다.

그런 그녀의 입가에는 끈적거리는 젤리 조각들이 붙어 있었는데, 이는 도미닉 경이 정보를 얻는 대신 준 것들이었다.

만족스럽게 젤리를 우걱우걱 씹어먹은 메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6층은 원래 공주가 납치되어 있던 방이란 소리야. 당연히 그 어떤 위험도 없어야만 했지. 공주가 다치면 안 되니까."

가위나 핀, 물레 같은 것도 쓰지 못하게 했다니까. 너무하지 않아? 라고 중얼거린 메리.

그러나 도미닉 경은 메리의 투덜거림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른 것에 전혀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5층에서 나는 끔찍한 냄새 때문이었다.

5층에서는 마치 수조에서 이끼가 썩는 냄새가 났다.

도미닉 경은 어지간한 냄새는 견딜 수 있었으나, 이 토할 것 같은 냄새는 전혀 적응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냄새는 뭐요?"

"응? 무슨 냄새?"

도미닉 경이 너무 역한 나머지 헛구역질했다.

그러나 메리는 이 끔찍한 냄새를 맡지 못하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아. 오늘 저녁은 맑은 감자 수프인가 봐."

메리의 안색이 환해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니,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음식이지."

첫 번째는 당연히 이 젤리야. 라고 메리가 말하고는 젤리 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이 냄새가 감자 수프에서 난다면 난 앞으로 감자를 먹지 못할 것 같소."

도미닉 경이 투덜거렸다.

꽤 긍정적인 성격의 도미닉 경에게 있어, 이 투정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5층에서 나는 냄새가... 강렬했다.

한 손으로 코를 막은 채 계단을 마저 내려가는 도미닉 경.

마침내 5층의 바닥에 마지막 걸음을 내디딘 도미닉 경.

바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도미닉 경이 인상을 찌푸렸다.

"여긴... 도대체 뭐요?"

도미닉 경이 보는 광경은 뜻밖에 평범하다면 평범한 것이었다.

바로 온갖 종류의 음식 재료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간단했다.

정상인 재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야채들은 시들시들 말라비틀어져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과일들은 벌레들과 초파리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가관인 것은 육류와 어류였는데, 고기들은 곰팡이가 핀 채로 부패해 질척거리는 상태였고, 생선들은 안에 내장조차 손질되지 않은 상태로 썩어가 몇 초에 하나씩 배에 찬 부패 가스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이 냄새의 근원지가 바로 저 썩은 식재료들에게서 나는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내가 감자 수프를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메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구석에 있던 싹이 튼 감자를 하나 들어 올렸다.

"독이 있어도 맛은 있으니까."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메리가 어깨너머로 감자를 집어던졌다.

질퍽. 하는 소리와 함께 식탁 위에 있던 말라비틀어진 아기 돼지 통구이의 썩은 살점에 감자가 파고들어 사라졌다.

"여긴 도대체 뭐요?"

도미닉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엄청난 후각적 공격은 평범한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엄청난 의지를 갖춘 초인이 오더라도 인상을 찌푸리고 코를 틀어막을 것이 분명했다.

"5층은 요리사들이 있었어."

메리가 고기 안쪽에서 튀어나오는 구더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6층에 있는 공주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절대 식은 요리를 입에 대지 않았지. 그래서 도살자 왕은 그런 공주를 위해 5층 전체를 하나의 주방으로 꾸몄어. 세상의 온갖 식재료와 최고의 요리사들을 집어넣은 꿈의 주방을 말이야."

물론, 이건 던전이 되기 전의 이야기. 라고 작게 덧붙인 메리가 도미닉 경에게 다시 말했다.

"지금은 미각을 느끼지 못하는 좀비들이 되었어. 이건 던전이 되어서가 아니야. 던전이 된 이유 때문이지."

그렇게 말한 메리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이상을 말하기엔, 도미닉 경이 지급한 대가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튼, 5층엔 요리사들밖에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보스도 요리사고 말이야. 그 말인 즉, 그다지 어려울 건 없다는 뜻이지."

"과연. 이해했소."

도미닉 경이 썩어가는... 아니, 이미 썩어 버린 식재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더는 못 있겠군. 당장 앞으로 전진합시다. 빨리 4층으로 내려가야겠소."

도미닉 경이 황급히 식재료 창고를 빠른 걸음으로 벗어났다.

이 엄청난 악취로 인해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으니까.

순식간에 열린 문 중 하나로 나간 도미닉 경.

메리는 그런 도미닉 경을 따라가다가 문득 식료품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도미닉 경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

도미닉 경이 방패에 묻은 점액들을 털어내며 말했다.

"그리 어렵지는 않구려."

"애초에 요리사들이었으니까. 전투가 쉬운 건 당연한 일이지."

메리가 천장에 매달린 채 젤리 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입 주변이 끈적끈적해질 정도로 먹었음에도 여전히 달콤함을 느끼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메리.

"아쉽구려."

도미닉 경은 타격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좀비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조리용 복장을 입고 있는 좀비들은 충분히 위협적이었지만 지금까지 온갖 역경을 헤쳐나온 도미닉 경에게 있어선 너무 약한 적이었다.

격한 움직임에 살짝 당이 떨어진 도미닉 경이 젤리 하나를 입에 털어 넣었다.

가차랜드의 자연이 만들어낸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단맛이 나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물론 이미 엄청난 악취에 후각이 마비되어 그저 설탕 덩어리나 다름없었으나, 도미닉 경은 나름 만족하며 다시 다음 방을 향해 움직였다.

다음 방에 도착하자 도미닉 경이 들어온 문이 닫히더니, 이내 곳곳에서 좀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불쌍한 녀석들이지."

메리가 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며 묵념했다.

"시스템이란 굴레에 갇혀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메리가 도미닉 경에게 투덜거렸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묵묵히 삭은 옷을 입은 좀비들을 방패로 쳐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좀비들은 너무 약해서, 도미닉 경의 낮은 공격력에도 픽픽 쓰러졌다.

그렇게 방 안에 있던 좀비들을 전부 처리한 도미닉 경.

"그래. 차라리 어설픈 동정보다는 무자비한 안식이 더 나을지도 몰라."

메리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좀비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지난 방들을 거쳐오면서 메리의 행동 패턴을 다 꿴 상태였다.

"당이 떨어졌소?"

도미닉 경이 묻자, 메리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는 반은 거미였다. 평범한 사람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혹은, 시스템의 굴레가 메리에게 당분이 빨리 떨어진다는 설정을 붙인 걸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외출이라 그런가, 에너지가 빨리 떨어지는 기분이야."

메리가 도미닉 경을 힐끗 곁눈질로 쳐다보더니, 이내 도미닉 경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문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까지 지나온 낡고 허름한 문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두꺼운 해골문이었다.

"저기, 도미닉 경. 정보 하나 필요하지 않아?"

메리가 도미닉 경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이미 물질적인 것을 모두 도미닉 경에게 저당 잡혀 있는 상황에서, 메리가 더 많은 젤리를 얻기 위해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정보를 파는 것뿐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다음 방이 보스 방인 것 같은데, 추가적인 정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도미닉 경이 메리를 쳐다보았다.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이미 수많은 교환을 통해 도미닉 경은 5층의 보스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은 상태였다.

"이미 보스의 이름까지 알려주지 않았소.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말도 했고. 심지어 그의 집에 있는 은식기 수까지 알고 있소."

"그, 그거 말고! 패턴이나 숨은 트릭 같은 거 말이야!"

메리가 다급히 도미닉 경을 설득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지. 5층의 보스은는­ 자, 잠깐! 잠깐만!"

메리가 도미닉 경에게 맛보기로 정보를 살짝 풀려고 했으나, 도미닉 경은 용맹하게 보스 방의 문을 열었다.

[도시락 괴담의 주인, 수석 주방장 재단(Sous Chef Poundation)의 일원, 피자 가게의 경비원을 괴롭히는 자,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적 있는 스프의 달인, 스테이크와 스파이크를 구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왕실 요리사.]

[BOSS : 대식가 앙트레 & 미식가 앤트리]

도미닉 경이 문 안으로 들어서자, 엄청난 길이의 보스 소개문이 떠올랐다.

도미닉 경은 그 소개문을 대충 옆으로 치우며 전방에 있을 보스를 바라보았다.

"으우으...배콟프다악...신선한... 신선한 요리가 필요핽..."

"요리... 요리를 만들어야 해... 공주님께 아침 식사를 드려야 해... 하지만 마음에 드는 재료가 하나도 없어..."

눈앞에 있는 보스는 엄청난 크기의 시체 덩어리였는데, 여기저기 누덕누덕 기워붙여 너덜너덜한 상태의 거한이었다.

그는 반씩 쪼개진 머리에서 각기 다른 말을 내뱉고 있었는데, 그 쪼개진 머리의 중간엔 거대한 버섯이 자라나 쪼개진 부분을 이어 주고 있었으며버섯 위엔 낡은 요리사 모자가 올려져 있었다.

"오늙은 뭘 요리하낢?"

갈라진 얼굴의 한쪽 면이 말했다. 혀가 균사로 인해 굳어 버렸는지 발음이 마구 뭉개지고 있었다.

"감자 수프. 그나마 좋아하시니까."

갈라진 얼굴의 다른 면이 말했다.

이쪽은 상당히 이성적인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이 보스를 향해 조심스럽게 방패를 들고 다가 갔다.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한 뒤, 순간적으로 달려들어 기습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여긴 주방이었다는 것 말이다.

그것도, 엉망진창인 주방.

딸그랑.

하는 소리에 도미닉 경이 순간적으로 발아래를 보았다.

땅에 떨어져 있던 국자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걷어차 버린 것이다.

"오, 이런."

도미닉 경이 탄식을 내뱉었다.

이렇게 된 이상, 기습은 물 건너 간 것이다.

국자가 낸 소음에 보스가 도미닉 경의 침입을 감지하고 소리를 질렀다.

"저, 저 신선한 고기로 피자를 만들어 공주님께 드리자!"

"감자 수프는 질렭셔! 고기! 고기가 들어간 무언가가 먹고 싪어!"

누덕누덕 기워진 거대한 시체 덩어리 요리사가 네 개의 팔에 각각 요리도구를 들고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