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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11화 (211/528)

〈 211화 〉 [210화]엔터 더 던전

* * *

양산박의 비밀 기지.

"...이것도 마법사의 계획인 건가?"

검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하지만 마법사도 다 생각이 있어서­"

궁수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저 거미가 마법사가 소환한 소환수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둘은 도미닉 경에게 호의적인 거미의 모습을 보자 혼란에 빠진 것이다.

어째서 이들은 이렇게나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가?

이는 검사와 마법사, 그리고 궁수의 관계를 알아야 했다.

셋은 겉으로 보기엔 하나의 팀이었으나, 그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저 친할 뿐, 서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파티도 '자동 사냥'을 돌려놓았을 뿐이었고, 자기 강함에만 몰두하기에 정작 서로의 스킬이나 스텟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검사와 궁수도 마법사가 소환수를 부린다는 사실만 알았지, 무슨 소환수를 부리느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관심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아."

그때였다.

궁수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 맞아. 이건 함정이야."

"함정이라고?"

"그래. 함정. 마법사는 가장 중요할 때에 도미닉 경에게 한 방을 먹이려고 연기를 하는 거야."

궁수가 과감하게 헛다리를 짚었다.

"생각해 봐. 방금 전에 우리도 들었잖아. 저 안에서 7일은 사실상 700일이야. 그 말인 즉, 초반에 습격해 체력을 빼두더라도 2년 동안 충분히 쉬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는 거지. 마법사는 그 사실을 알고 후반을 도모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중요한 순간, 그 마지막의 마지막에 도미닉 경의 모든 걸 망치려고 말이야!"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생각.

그러나 검사는 그런 궁수의 말이 나름 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과연 지력에 모든 스탯을 투자한 마법사다운 계획이다."

궁수와 검사가 다시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마법사가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똑똑한 마법사가 하는 일이니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

"제길, 제길! 제길!"

던전의 이끼가 가득한 벽면, 그 갈라진 틈 사이.

비단으로 된 마녀 모자와 노출도가 높은 의상을 입은 마법사는 불안한 듯 손톱을 물어뜯으며 욕을 내뱉고 있었다.

"도대체 저 괴물은 뭐야? 던전 초입부터 뭐 저런 괴물이 있는 거야?"

마법사가 초조한 눈으로 틈 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짙은 어둠만이 가득했는데, 마법사는 목적을 잃은 눈으로 그 어둠 속을 마구 훑어내렸다.

"계획은 완벽했는데, 어째서...!"

마법사가 다시 손톱을 물어뜯었다.

실수로 손끝을 세게 베어무는 바람에 피가 나기 시작했으나, 마법사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바로 저 너머에 있을 그 괴물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생긴 일이었다.

마법사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이 던전에 들어섰다.

소환수를 잔뜩 소환해 도미닉 경의 체력을 최대한 빼낸다는 계획.

실제로 그녀의 소환수들은 하나같이 도미닉 경을 상대하기 쉽게끔 엄선한 작고 날랜 동물들이었다.

그러나 마법사의 완벽한 계획은 도미닉 경이 들어오기도 전에 틀어지고 말았다.

그 거미 때문에.

"...그렇게 끔찍한 건 본 적이 없어..."

마법사가 갈 곳 잃은 시선으로 어둠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마법사는 다리가 많은 것들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곤충, 전갈, 지네, 그리고 거미 같은 것들.

특히 거미를 유독 싫어하는 마법사에게 있어서, 커다란 거미는 그 크기만큼이나 더 싫었다.

무엇보다도 마법사가 그 커다란 거미를 싫어하는 이유는 더 있었다.

그건 바로, 그 거미가 마법사의 소환수들의 천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작고 날쌘 동물들로 구성된 마법사의 소환수들은 거미줄에 걸리자마자 아무것도 못 하고 거미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물론, 잡아먹혔다는 건 마법사의 생각이었다.

거미는 포식자니 잡힌 동물들이 멀쩡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마법사가 만난 거미의 처지에선 종족 차별적인 발언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마법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계획을 바꿔야겠어."

마법사가 입술을 짓이기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입술에서 핏줄기가 한 가닥 흘러내렸다.

"내가 가진 최고의 패를 꺼내야만 해..."

그렇게 중얼거린 마법사가 틈새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의식용 칼을 꺼내 손끝을 베어낸 마법사.

그녀는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피로 된 마법진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

"이 탑은... 아니, 이젠 던전이지. 이 던전은 아래로 6개의 층이 있어. 내가 있는 곳은 제일 위에 있는 6층이야. 그리고 우린 5층으로 가는 길이고."

메리라고 불린 이가 계속해서 도미닉 경에게 정보를 주었다.

"과거를 바꾸는 검은 지하 1층에 있어. 그러니까... 여기서 6층 아래인 거지."

메리는 스스로 그렇게 말해 놓고 계산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포인트는 무엇으로 수급하면 되는 거요?"

도미닉 경도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메리에게 물었다.

메리는 좋은 질문이라며 어둠 속에서 히죽히죽 웃는 소리를 내었다.

"다양한 것으로 포인트를 얻을 수 있어. 가장 편한 방법은 길 가던 스켈레톤이나 좀비를 잡는 거지. 일용직 노동자들이라 매일 포인트를 얻거든."

물론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꼭 잡을 필요는 없어. 라고 메리가 말했다.

"다음은 내게 물건을 파는 거지. 사실, 이건 그렇게 추천하지 않아. 아까도 말했지만 내 통장에 포인트가 별로 없어서 말이야."

"마지막으론 보스를 잡는 거지. 각 층마다 있는 보스 중 하나를 잡고 보상을 얻는 거야. 내가 가장 추천하는 방법이지."

메리의 말에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할 만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물건들이 비싸게 팔리오?"

도미닉 경이 인벤토리를 열며 그렇게 물었다.

인벤토리 내부에는 장비류만이 X표가 쳐져 사용할 수 없었을 뿐, 나머지 잡다한 물건들은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었다.

"뭐, 상인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난 단 거려나."

메리가 어둠 속에서 입맛을 다셨다.

"단 것?"

"그래. 초콜렛이나 사탕같은 거."

젤리면 최고고. 라고 메리가 덧붙였다.

"사실 이번에 젤리 비가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건, 그건... 정말 최고였을 거야."

메리가 인터넷에서 사귄 친구가 한 말을 떠올리며 침을 뚝뚝 흘렸다.

사실 메리는 단 것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SNS에 올라온 디저트를 보며 나름 꿈과 희망을 키워온 것이다.

"적어도 비리고 쓴 것들 보다는 100배 나을 거야. 인간이라던가, 아니면 쥐 나 지네 같은 거­"

메리가 꿈이 가득한 목소리로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도미닉 경이 잠시 침묵했다.

메리는 도미닉 경이 겁에 질렸다고 생각해 황급히 말을 돌렸다.

"오, 그러니까 그게, 널 잡아먹겠다는 말은 아니었어. 그냥 난 단 걸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게 아니라..."

도미닉 경이 메리의 변명에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 대량으로 팔면 더 좋은 가격에 매입하는지 궁금해서 그랬소."

"응?"

도미닉 경은 다시 인벤토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과거 젤리 호우 때 요정들에게 정보를 사고도 남아 인벤토리 구석에 놓아둔 젤리와 사탕, 그리고 인절미 가루와 설탕이 있었다.

그것도 이 던전 한 층을 가득 채울 정도의 양이.

...

"말랑해! 달아! 이게 젤리구나!"

도미닉 경은 눈앞에서 게걸스럽게 젤리를 먹는 메리를 바라보았다.

거미줄로 짠 비단을 걸치고, 길고 흑단 같은 머리카락과 투명할 정도로 창백한 피부를 가진 소녀였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외견이었으나, 그녀의 하체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거미의 몸통에 여덟 개의 쭉 뻗은 다리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 그녀의 눈은 인간처럼 두 개였는데, 여덟 개의 눈이라고 생각한 붉은빛은 사실 두 개의 눈과 여섯 개의 루비 머리 장식이었다.

그녀는 양손이 끈적해질 정도로 가득 젤리를 쥐고 송곳니가 인상적인 입에 젤리를 마구 밀어 넣고 있었다.

"천천히 드시오. 아직 한참 남았으니."

"하지만... 하지만 이거 보관할 곳이 없는걸! 먹어서 뱃 속에 보관하는 수밖에 없는걸!"

메리는 볼멘소리로 도미닉 경에게 투덜거렸다.

그녀는 도미닉 경이 젤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자마자 바로 모든 포인트를 털어 도미닉 경에게서 젤리를 매입했다.

정말 있는 포인트를 모두 긁어내는 바람에 그녀가 가지고 있던 가방도, 상자도 모두 포인트화되어 도미닉 경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가진 것은 이제 젤리 몇 덩이가 전부였다.

그것이 그녀의 손이 끈적거리는 이유였고, 그녀가 젤리를 게걸스럽게 배에 밀어 넣는 이유였다.

"그나저나 그 정도 포인트로 괜찮아? 더 필요한 건 없어?"

메리가 순수한 눈빛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이런 진귀한 음식을 매우 싼 포인트로 주었으니, 그만큼 더 챙겨주고픈 마음이 든 것이다.

"그렇다면..."

도미닉 경이 힐끗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보았다.

"첫 층의... 그, 보스라고 불리는 이가 어떤 이인지 궁금하오."

도미닉 경은 지금 당장 중요한 정보를 물었다.

"그건 내가 아는 한에서 말해 줄 수 있겠어."

메리가 가능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5층의 보스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5층의 보스는 말이야­"

도미닉 경은 그녀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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