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 [208화]진실과 거짓
* * *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저 증거들은 조작된 겁니다!"
"훗.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자네의 말은 그저 공허할 뿐이네."
"그, 그런!"
방금 전부터 나온 증인들과 증거들은 명백히 조작된 흔적이 있었다.
이 증거들이 얼마나 어설프게 조작되었던지 머슬만 의원 외에도 모든 사람이 그것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머슬만 의원이 분한 듯 변호사측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 재판은 그 자체로 사기였고, 짜고 치는 도박판이었다.
그 누구도 도미닉 경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분명히 누군가가 이들을 매수했음이 틀림없다.
머슬만 의원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단 최선을 다해 도미닉 경을 변호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시스템 로그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도미닉 경이 스스로 무죄를 증언할 수 있게끔"
"잠깐! 현재 도미닉 경은 살인, 기물 파손 외에도 치트와 데이터 조작 혐의도 걸려 있네! 자네가 말하는 시스템 로그도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지!"
"크, 큭!"
그러나 머슬만 의원의 말은 다루마 검사의 반격에 막히고 말았다.
이를 위한 치트와 데이터 조작 혐의였나? 라고 머슬만 의원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도미닉 경은 데이터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치트와 조작을 할 수 있을 리가"
"과거 도미닉 경은 버그를 잡았던 경험이 있더군. 그것도 코더의 바로 옆에서! 그때 슬쩍 보고 배웠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만. 정숙하시오!"
재판이 과열되기 시작하자 재판장이 망치를 두드리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여겼는지 바로 선고를 준비했다.
"현재 증인들의 진술이 일관되고, 명백히 모든 증거가 도미닉 경의 범행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미닉 경 측의 진술도 일관성이 있는 바,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현재 재판은 보류합니다. 1주. 1주 후에 다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동안 혹시나 도미닉 경이 도주할 경우를 대비, 도미닉 경은 지하 감옥(Dungeon)에 잠시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도미닉 경이 무죄로 판결날 경우, 1주 동안의 던전 생활은 보상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죄일 경우..."
재판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이 영원한 도미닉 경의 거처가 될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도미닉 경이 재판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도미닉 경의 눈은 그 어떤 불안도, 양심의 가책도 없어 보였다.
재판장은 그런 도미닉 경을 보며 생각했다.
저 눈을 가진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지. 무고하거나, 사이코패스거나.
재판장이 도미닉 경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망치를 세 번 두드렸다.
"이상입니다. 더 이상의 변론은 1주 뒤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해산!"
재판장의 말에 다루마 검사는 웃었고, 머슬만 의원은 이를 악물었다.
1주의 시간 동안 더 유리한쪽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
"죄송합니다."
머슬만 의원이 도미닉 경에게 고개를 숙였다.
"설마 이렇게 대놓고 증거를 조작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머슬만 의원이 고개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지나가는 다루마 검사 측을 노려보았다.
"배심원들을 포섭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도 못 했지요."
머슬만 의원이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을 본 건지 다루마 검사가 비열한 비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머슬만 의원이 침통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죄가 확정된 것도 아니고, 보류지 않소."
도미닉 경이 의아하다는 듯 머슬만 의원에게 물었다.
"일주일이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지 않겠소?"
"물론입니다. 1주라는 시간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미닉 경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겠지요."
머슬만 의원이 도미닉 경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머슬만 의원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부분은, 일주일 동안 도미닉 경이 던전에 갇힌다는 점입니다."
"던전."
도미닉 경이 머슬만 의원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도대체 던전이 뭐요?"
"지하 감옥이지요. 보통은 가차랜드에서도 흉악한 이들을 가두는 감옥입니다만..."
머슬만 의원이 말끝을 흐렸다.
탱커로서 거의 최고의 위치에 있는 머슬만 의원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온갖 괴물과 함정이 가득하지요. 오죽했으면 던전에서 1년을 버티면 바로 5성으로 취급한다는 법률이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5성이 된 사람은 고작 3명뿐이지요. 라고 머슬만 의원이 덧붙였다.
"그런 곳에서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는 겁니다. 도미닉 경.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아무리 흉악범 용의자라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그렇구려."
분노로 가득 찬 머슬만 의원과 달리, 도미닉 경은 다소 담담했다.
사실, 도미닉 경은 이런 일이 익숙한 편이었다.
농노 출신이었기에 얕잡아 본 귀족 기사들이 누명을 씌우는 일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던 일이었으니까.
"신께선 나의 무죄를 알고 계실 테지."
도미닉 경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혹시 다른 '재판'도 있소?"
도미닉 경이 마치 의식의 흐름을 말하듯 말을 뱉었다.
"...그렇군요. 당신은 기사였지요. 제가 법전을 손에서 놓은지 꽤 되는지라 확신하지는 못 하지만... 있습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말은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닌, 확고한 생각의 끝에 나온 의지의 말이었다.
머슬만 의원이 도미닉 경의 말에 내포된 뜻을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결투 재판'이라면 도미닉 경의 무죄를 반드시 증명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상대가 대전사... 그러니까 챔피온을 뽑는 경우인데..."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소."
도미닉 경이 머슬만 의원의 말을 막았다.
머슬만 의원이 도미닉 경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나밖에 없는 눈은 의지로 불타고 있었으나, 다소 담담한 낙담을 포함하고 있었다.
"...1주. 네. 그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에 담긴 생각을 알아차린 머슬만 의원.
도미닉 경이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던전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주시오. 일단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그곳에서 버텨야하니."
"좋습니다.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면, 무죄 판결도 없을 테니까요."
머슬만 의원이 도미닉 경의 말에 긍정했다.
"제가 아는 한 모두 말하겠습니다. 일단"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의 말을 경청했다.
이 한 마디 한 마디가 도미닉 경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
잠시 후.
도미닉 경은 법원 경비들을 따라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한참 동안이나 뱅글뱅글 도는 계단을 내려간 도미닉 경은, 이내 눈앞에 낡고 녹슨 철창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기부터 던전입니다."
법원 경비 중 하나가 열쇠를 꺼내 철문을 열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일주일 뒤에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혹시나 길을 잃으시면, 시스템 창이 이곳을 향해 길을 알려줄 겁니다."
도미닉 경은 법원 경비의 인도를 따라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공간에는 눅눅하고 역겨운 썩은 진흙 냄새가 났다.
그야말로 인권따위는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여기에 발을 디딘 이상 죽어도 여기서 부활하니 혹시나 헛된 짓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헛된 희망을 버리시길 바랍니다였나? 라고 말을 정정한 법원 경비는 이내 문을 닫고 잠갔다.
도미닉 경은 법원 경비 몰래 슬쩍 낡고 녹슨 철창을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철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보기보다 튼튼한 모양이군. 하긴, 그래야 감옥이겠지. 라고 도미닉 경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식사는 어떻게 되는 거요?"
도미닉 경이 문득 떠오른 의문을 말했다.
"그야, 원하시는 때에 사시면 됩니다."
"산다고?"
도미닉 경이 법원 경비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법원 경비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던전엔 던전의 법칙이 있는 법입니다. 여기서 통용되는 포인트를 모아 교환하시면 되는 거지요."
그렇게 말한 법원 경비가 도미닉 경의 뒤를 가리켰다.
"저런 걸 잡아서 포인트를 버시면 됩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의 한 눈이 크게 떠졌다.
도미닉 경이 바라보는 곳, 그 어둠 속에서 여덟 개의 붉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도미닉 경의 머리 크기 정도 되는 붉은 눈들이.
"그럼 행운을 빕니다."
법원 경비가 도미닉 경을 뒤로한 채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이제 도미닉 경은 이 던전에 혼자 남겨졌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여덟 개의 붉은 눈의 생명체가 있었으니까.
이 던전엔, 도미닉 경이 아직 모르는 미지의 생명체가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었다.
...
"하하하! 걸작이네!"
양산박의 비밀기지.
궁수가 수정구를 바라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설마 이런 어설픈 계략이 성공할 줄은 몰랐어!"
궁수가 너무 웃었는지 딸꾹질을 하며 눈물을 닦았다.
이 엉성한 계획을 세운 쪽에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정말 이런 엉성한 계획이 통할 줄이야.
"이 정도면 다음 계획은 없어도 되겠는데?"
"그럴 리가."
검사가 궁수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상대는 도미닉 경이야. 그 도미닉 경이라고. 우리를 몇 번이고 물먹인 도미닉 경이야."
"...그렇지."
검사의 말에 궁수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도 말이야."
그러나 여전히 궁수의 표정엔 장난스러움이 가득했다.
"마법사의 계획엔, 도미닉 경도 어쩔 수 없을 걸?"
궁수가 수정구에 비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눈이 여덟 개 달린 거대한 거미와 대치 중이었다.
"소환술의 대가에게 일주일이 주어지면 어떻게 될지, 우린 알고 있잖아?"
궁수가 다시 히죽히죽 웃으며 검사를 바라보았다.
검사는 말없이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수정구의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