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207화]진실과 거짓
* * *
"그게 무슨 뜻이오?"
도미닉 경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살인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가차랜드에서는 가치가 충분하다면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었고, 그만큼 목숨 값이 싼 편이었다.
심심하면 일어나는 것이 결투였고, 심심하면 보이는 것이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죽더라도 '아, 세상에. 방금 죽어서 어깨가 뻐근하군. 목욕탕이나 가서 찜질이나 해야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가차랜드였다.
그런 곳에서 살인으로 기소를?
"어이가 없다는 건 잘 압니다."
머슬만 의원이 침울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 건... 그 무게가 다릅니다."
뉴비를 살해해, 완전히 가차랜드에서 삭제해 버린 사건이니까요. 라고 머슬만 의원이 말했다.
"...뭐요?"
도미닉 경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요?"
도미닉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머슬만 의원에게 되물었다.
뉴비는 시스템에게 한 달 정도를 보호받는다.
이 보호기간은 아직 가치를 입증하지 못한 뉴비가 자기 가치를 드러내도록 돕는 기간이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은 그 어떤 시민도 뉴비를 건드릴 수 없다.
아니, 뉴비는 보호해주고 가르칠지언정, 절대로 건드리거나 해를 끼치면 안 된다.
그야말로 뉴비는 신이다. 라는 마인드.
이건 얼마 전까지 뉴비였던 도미닉 경도 대놓고 느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뉴비에 대한 범죄는 가중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머슬만 의원이 힐끗 경찰서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경찰서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더 큰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문제가 재판까지 간다면... 일이 너무 커진다는 거지요."
도미닉 경이 머슬만 의원의 말을 듣고 침묵했다.
도저히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가만히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도미닉 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머슬만 의원이 안경을 고쳐 쓰며 서류철을 꺼내 들었다.
"일단, 퍼져나간 소문에 대해서 먼저 알려드려야겠군요."
머슬만 의원이 서류를 펼쳤다.
"현재 소문을 퍼뜨린 사람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
도미닉 경이 페럴란트에서 온 손님들을 찾던 그 시각.
골목길에서는 한 사람이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거리를 뛰어다니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기꾼."
불만을 토한 남자는 도미닉 경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바로 이 남자가 도미닉 경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증언한 소문의 근원지였다.
"사기 특성에, 사기 기술에, 스탯까지 빵빵하다니. 아무리 탱커를 우대한다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그가 들고 있는 총을 볼 때, 그는 원거리 딜러로 보였다.
"저렇게 단단하면 우리 같은 딜러는 뭐 하라고. 진짜 이건 너무한 거잖아."
사실 이 남자는 치명타 특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적을 한 방에 죽여 버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극딜에 미친 딜러 지상주의의 표본.
사실 그가 도미닉 경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가 한 방에 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서였다.
"이래선 딜러들이 설 자리가 없... 음?"
총을 든 남자가 문득 어정쩡한 자세로 어리버리하게 거리를 걷는 이를 발견했다.
그는 해골모양 랜턴이 달린 커다란 관을 메고 손에는 흙이 묻은 삽을 들고 있었는데,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의상도 그렇고 저 어정쩡한 태도도 그렇고 뉴비가 확실했다.
"...소환 계열 법사인가? 네크로맨서?"
총을 든 남자가 히죽거리며 그 어리바리한 뉴비에게 다가 갔다.
"이봐! 거기!"
"에? 네? 저요?"
그래. 이거지. 총을 든 남자가 희열에 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어리바리한 뉴비의 모습은 가차랜드의 삶에 큰 자극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너 말이야. 뉴비지?"
"뉴비?"
뉴비가 어수룩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머리에 쓴 양초달린 모자가 살짝 기울어졌다.
"그래. 이 가차랜드에 처음 온 이들 말이지."
총을 든 남자가 히죽거리는 걸 멈추지 않고 뉴비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뉴비가 그 기세에 놀라 움찔하며 한 발자국 멀어졌으나, 총을 든 남자는 그 뉴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바짝 붙었다.
"뉴비면 뉴비답게 이거나 받으... 아."
총을 든 남자가 관례처럼 주머니에서 초보자들에게 쓸모 있는 물건들을 꺼내려고 했으나, 그가 꺼낸 건 소금에 절여져 미라가 된 누군가의 머리통이었다.
헤드헌팅하다가 주머니에 넣어 둔 걸 깜빡했네. 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인 남자가 뉴비에게 사과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뉴비는 놀랐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히, 히익!"
그러나 뉴비는 남자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놀라 나자빠졌다.
그리고 눈물 콧물을 모조리 쏟아 내며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도망치고 말았다.
"...사과도 못했는데."
남자가 머쓱한 듯 다시 머리를 긁었다.
따라갈까 생각도 해 봤지만 아무래도 뉴비가 더 패닉에 빠질 것 같아 그만둔 남자.
대신 그는 저 멀리 도망치는 뉴비를 보며 입맛을 다시기만 했다.
이런 기회 흔하지 않은데. 라고 생각하며.
"...응?"
저 멀리 뉴비가 골목으로 사라진 걸 확인하고 몸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저거... 그놈인가?"
총을 든 남자가 뉴비가 사라진 골목으로 따라들어가는 누군가를 보았다.
뉴비를 쫓아간 사람은 갈색의 긴 머리에 삼색 깃털 장식을 한 기사였는데, 이 가차랜드에서 그런 모습을 한 사람은 총 든 남자가 알기로 단 하나였다.
"도미닉 경이 왜 뉴비를 따라가지?"
총을 든 남자가 찜찜한 표정으로 둘이 사라진 골목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왜 따라가는지 확인이라도 해보자."
총을 든 남자가 도미닉 경이 사라진 골목을 따라 들어갔다.
으슥하고 어두운 골목에 들어서자, 총을 든 남자는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으, 세상에. 아무리 골목마다 느낌이 다르다지만 이건 너무한데...?"
남자는 으스스한 기운에 몸을 오소소 떨며 골목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갔을까?
"뭐, 뭐야?"
총을 든 남자의 발에 무언가가 툭 걸렸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발에 걸린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골목에 뭘... 허억!"
남자가 그 무언가의 정체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낮아진 시야로 인해 그 무언가와 시선이 마주쳐 버린 남자.
남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바로, 방금 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뉴비였다.
뉴비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썩은 생선처럼 땅에 드러누워 있었다.
처참하게 깨져 버린 보호 프로그램과 함께.
...
"...이게 그가 한 증언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죄명은 뭐요?"
"가차랜드 곳곳에서 갈색의 단발에 삼색 깃털을 단 기사가 나타나 난동을 부렸다는군요. 이 또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도미닉 경이 이마를 탁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도미닉 경은 상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들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더더욱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차랜드의 법률 상 증언만으로는 유죄를 선언하지 못합니다. 명백한 증거가 없는 이상"
"그 증거."
머슬만 의원이 한창 도미닉 경을 안심시키려고 할 때,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있는 것 같군."
도미닉 경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흰 머리를 뒤로 단정히 넘기고 귀족들이 입을 법한 하늘하늘한 예복을 입은 남자가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지팡이를 짚고 도미닉 경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루마 검사."
머슬만 의원이 다루마 검사라고 불린 이를 노려보았다.
"설마 당신이 여기 있을 줄이야... 그렇다면"
"그래."
다루마 검사가 머슬만 의원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 사건, 벌써 재판까지 준비 중이지."
다루마 검사의 말에 머슬만 의원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 사건, 너무 커진 것 같습니다. 하필 다루마 검사라니..."
머슬만 의원이 골치 아프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속삭였다.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저 귀족처럼 차려입은 남자가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그렇군."
다루마 검사가 도미닉 경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만하게 도미닉 경을 올려다보며 목의 크라밧을 우아하게 정돈하며 말했다.
"이미 당신을 위한 형벌이 준비가 되었네. 이제 필요한 건... 자백이지."
"다루마 검사!"
이미 도미닉 경을 죄인 취급하는 다루마 검사의 행동에 버럭 화를 낸 머슬만 의원.
"...나는 죄가 없소."
도미닉 경이 거만하게 바라보는 다루마 검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다루마 검사는 이런 시선이 익숙하다는 듯 짜증 나는 표정을 지으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 발언, 허세로 볼 수 있겠군 그래."
"...다루마 검사. 아직 도미닉 경이 범인이라고 확정된 게 아닙니다. 누명일 수도 있어요."
"아, 그렇지. 하지만 범행을 저지르고 잡아 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왜 외면하는가?"
머슬만 의원과 다루마 검사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의원이기 전에 나도 변호사요. 배지를 가지고 있지. 당신의 말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107가지는 지적할 수 있다는 말이오."
"물론, 그 발언을 할 기회가 있을 때에야 가능하겠지만 말일세."
다루마 검사가 머슬만 의원의 말을 비웃으며 몸을 돌렸다.
"더 있을 필요는 없겠군. 곧 있을 재판에서 보세."
"그 전에 죄가 없음을 증명할 거요."
"그러시든가."
다루마 검사가 마지막까지 도미닉 경과 머슬만 의원을 비웃으며 떠났다.
머슬만 의원은 손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는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이 사건,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머슬만 의원의 안경이 반짝였다.
"의원직을... 아니, 변호사 배지를 걸고 말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