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 [206화]진실과 거짓
* * *
"아무래도 경찰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루핀 경사가 다시 한번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정확한 이유라도 알고자 루핀 경사에게 물었다.
"도저히 이해되질 않소. 왜 내가 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거요?"
도미닉 경의 머릿속에서 수십 명의 빌런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들도 멀쩡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왜 도미닉 경만 경찰서에 가야 한다는 말인가?
"별 건 아닙니다. 아니, 별일일수도 있겠군요."
루핀 경사가 문 너머에 있을 도미닉 경을 향해 작게 외쳤다.
"치트 행위와 데이터 조작, 사기, 횡령, 그리고 기물 파손 혐의입니다."
도미닉 경이 죄목 하나하나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도미닉 경은 기사였고, 제법 준법 정신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도미닉 경이 저런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뭐야? 고작 그런 거로?"
도미닉 경의 뒤에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다가온 도미니카 경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작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문 너머에서 루핀 경사가 말했다.
"도미닉 경께서 오늘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하셨지요? 이는 피해자들의 진술과 일치합니다. 무엇보다도 저흰 지금 CCTV 영상도 확보한 상황이에요. 그러니 더 이상 혐의를 늘리지 마시고"
도미닉 경이 충격을 받은 듯 눈을 깜빡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문 너머에서 루핀 경사가 하는 말이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도미닉 경의 정신이 저 넓은 우주를 떠다니는 듯 멍해졌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기사였고, 그만큼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곧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 혐의를 증명하기 위해 도미닉 경께선 경찰서로 가셔야하는 겁니다. 거절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이후 도미닉 경에게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루핀 경사의 말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대부분 이렇게 조용하게 있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범죄에 대해서 모르는 척하며 안에서 무기를 꺼낸 채 습격할 준비를 하거나, 혹은 말 그대로 이 상황을 인지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
전자는 범죄자에게서 나오는 폭력적인 성향의 발로였고, 후자는 그래도 비폭력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문 너머에서 도미닉 경이 칼을 뽑아 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지금 상황은 명백한 후자.
루핀 경사는 도미닉 경이 협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좋소. 아무래도 나 자신을 변호해야만 할 때인 듯 하군."
도미닉 경이 문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 거실에서 쉬던 차림 그대로라 여전히 티셔츠와 잠옷 바지 차림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당당했다.
"바로 갑시다. 빨리 내 결백을 증명하고 싶소."
도미닉 경이 루핀 경사에게 그렇게 말하며 문밖을 나섰다.
도미닉 경은 머리에 꽃은 깃털 장식과 안대를 제외하면 그 어떤 장비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자기 결백을 당당하게 증명하는 듯한 행위.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그 당당함에 오히려 도미닉 경을 연행하려던 루핀 경사가 당황할 정도.
그러나 루핀 경사도 가차랜드에서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 중 하나였기에 자연스럽게 도미닉 경을 경찰차로 안내했다.
"스승님?"
앨리스가 문 너머로 도미닉 경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어리더라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도미닉 경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곧 돌아오마.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그렇게 앨리스에게 한마디를 남기고서.
"타시죠."
루핀 경사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도미닉 경은 뒷좌석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꺼운 벽으로 완전히 막힌 운전석.
어디로 가는 지 모르게끔 안에서 밖을 볼 수 없는 창문.
무엇보다도 도주를 우려 했는지 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였다.
"협조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루핀 경사가 운전대를 잡은 듯, 막혀 있는 운전석에서 루핀 경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은 묵묵히 앞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금속의 벽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흔들리는 차 내부에서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오히려 이게 더 나았다.
...
양산박의 비밀 기지.
"이게 먹히네."
"그러게 말이야."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마법사와 궁수가 머리 위로 이모티콘을 떠올리며 히죽히죽 웃었다.
마법사의 앞에는 수정구가 있었는데 그 수가하나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개가 있었다.
정작 그 수정구 중 제대로 불이 들어온 것은 하나뿐이었지만, 마법사와 궁수는 다른 수정구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불이 들어온 수정구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애들도 참 멍청해. 이런 쉬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각은 시간대로 버리잖아."
"양산박에서 비밀리에 양산하던 특수 부대를 전멸시키질 않나"
"차도 살인지계를 노린다면서 오히려 둘 모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버리질 않나"
"하긴. 그 애는 아이큐가 150이 아니라 15니까. 돌고래보다도 못한 애지."
"왕이도 그래. 부끄럽지도 않은 걸까? 나였다면 저기서 구걸이라도 하는 게 덜 창피할 것 같은데."
마법사가 한 명을 까내리면 궁수도 다른 이를 까내렸다.
그야말로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그럴 가치가 있었다.
이들도 양산박의 간부 중 하나였으니까.
"뭐야. 나 없이 무슨 작당모의하고 있어?"
마법사와 궁수가 서로 뒷담화를 하는 사이 문이 열리며 커다란 대검을 든 검사가 들어왔다.
미묘하게 잘생긴 외모에 청룡과 주작, 그리고 현무와 백호가 조각된 화려한 갑옷과 대검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별 건 아냐. 도미닉 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하고 있었지."
"이렇게 쉬운 일을 어렵게 한 다른 애들 이야기도 좀 하고 말이야."
마법사와 궁수가 히죽히죽 웃으며 검사에게 말했다.
"직접 힘을 쓰려면, 그 주변을 노리면 되는데 말이야."
"간접적으로 피해를 주려면 이렇게 힘 있는 이들에게 돈을 쥐여 주면 되고 말이지."
마법사와 엘프가 서로의 마음이 잘 맞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는 하이 파이브를 했다.
그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던 검사가 대충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그 자리에 앉았다.
"물론 일이 잘 풀리는 건 다행이지만 말이지..."
읏차. 하며 정자세로 의자에 앉은 검사는 상자 하나를 꺼내 그 자리에서 개봉하기 시작했다.
"상대는 그 도미닉 경이야. 까딱하다간 우리도 된통 당할 수 있어."
검사가 상자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아무 데도 쓸 곳이 없는 강화 재료 1이었다.
양산박에서 주는 반지를 강화할 때 쓸 수 있지만, 정작 시스템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불법 장비 강화 재료.
"그럴 리가 없잖아?"
"뭐, 우린 잘못하더라도 다른 게임으로 갈아타면 되니까. 추방도 우리에겐 유희나 다름없지."
엘프와 마법사가 여전히 문제가 없다는 듯 웃었다.
불법적인 일에 거리낌이 없는 양산박의 간부들답게, 이미 걸릴 것을 가정하고 계획을 짠 상황.
그들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웃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최악을 가정했으니, 더 나빠질 일이 없다는 생각에 웃는 것이다.
검사가 그런 마법사와 궁수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에 강화 재료를 들고 중얼거렸다.
"그래. 더 최악은 없겠지."
검사가 강화 재료를 쓰레기통으로 던지며 말했다.
그야말로 최고로 운이 없어야만 뽑을 수 있는 최악인 강화 재료를.
...
도미닉 경은 본능적으로 목적지인 경찰서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차의 움직임이 멎었기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의 추리에 대한 답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문이 열리며 루핀 경사가 말을 걸었다.
"나오시죠."
도미닉 경은 담담히 밖으로 나왔다.
문밖에는 그 어느 건물보다도 밝은 건축물이 있었는데, 사방에서 조명을 켠 바람에 마치 스스로 빛나는 듯한 건물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온 도미닉 경이 눈을 찌푸렸다.
그 찰나의 눈부심으로 인해 시야가 잠시 차단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시야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도미닉 경."
그런 도미닉 경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머슬만 의원이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일에 말려드셨다고."
이미 가차랜드 전체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라고 머슬만 의원이 말했다.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정작 도미닉 경과 그 주변인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으니까.
"일단 급한 대로 제가 변호인으로 지원했습니다. 설마 도미닉 경께서 그런 일들하지 않았다고 저는 믿습니"
"중간에 말을 끊어서 미안하오만."
도미닉 경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머슬만 의원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상황이오?"
도미닉 경의 말에 머슬만 의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설마 도미닉 경께선 사건에 대해 듣지 못하신 겁니까?"
"그렇소."
도미닉 경이 머슬만 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머슬만 의원은 잠시 속으로 경찰들을 욕했다.
분명 중간에 뭐 하나를 까먹고 설명을 빠뜨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속으로 욕을하던 머슬만 의원은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돌아와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살인사건입니다. 정확히는 살인사건 외 17건 정도로 기소된 상태입니다."
"살인사건? 기소?"
도미닉 경은 머슬만 의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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