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06화 (206/528)

〈 206화 〉 [205화]예기치 못한 손님

* * *

도미닉 경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응? 돌아왔네? 페럴란트에서 온 사람들은 찾았어?"

"아."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무언가를 빼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1하면서 페럴란트에서 온 이들에 대한 걸 깜빡 잊은 것이다.

"깜빡했소."

"뭐, 그럴 거로 생각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찾는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거든."

도미니카 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저녁 준비나 도와. 오늘 앨리스가 여기서 자고 가기로 했거든."

"자고 간다고?"

"그래. 옷은 걱정하지마. 내 옷을 빌려줬으니까."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옷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곳엔 'REPUBLICA DOMINICANA'라는 글귀가 있었다.

평소에 자주 입던 티셔츠가 아니다.

아무래도 새롭게 꺼낸 것 같았다.

"어디서 저런 센스가 없는 티셔츠를 구하는지 모르겠소."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티셔츠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심플하게 글자만 적힌 티셔츠였기에 그다지 호불호가 갈리지 않았지만, 도미니카 경의 강인한 흉부로 인해 글자가 자꾸 깨지고 있었다.

"뭐, 너는 센스가 넘친다고 생각하나 봐?"

도미니카 경이 볼멘소리를 내었다.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의 말에 자기 티셔츠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도미니카 경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옷들.

"뭐, 그렇긴 하오."

그럴 거면 차라리 아무 프린트도 되지 않은 단색 티셔츠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도미닉 경은 갑옷을 벗으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갑옷을 거치대에 걸치고 난 이후, 도미닉 경은 평소대로 목욕탕으로 향했다.

거칠게 움직였더니 땀이 좀 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다른 이들에게서 냄새난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 도미닉 경은 나름 청결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물론, 페럴란트의 기준으로 말이다. 기본적으로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 사람이었고, 페럴란트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니까.

목욕탕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도미닉 경은 안대를 벗은 자리부터 말끔히 닦아내기 시작했다.

과거엔 곪은 살과 고름으로 가득했을 빈 구멍.

가차랜드에 온 이후부터는 어째서인지 더 이상 곪지도, 아프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관리는 제대로 해야만 했다.

다시금 깨끗한 안대로 눈을 가린 도미닉 경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꽤 잘생긴 편이라고 스스로 만족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은 도미닉 경.

옷까지 말끔하게 갈아입은 도미닉 경이 거실로 나오자, 이미 그곳엔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가 코코아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승님의 옷을 빌려입기는 했는데, 뭔가 불편해요. 가슴 쪽은 남는데 어깨가 너무 끼는 것 같은..."

"뭐, 앨리스 너는 나보다 덩치가 큰 편이니까."

"...소녀가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앨리스가 도미니카 경의 말에 시무룩해졌다.

한창 귀엽고 예쁜 걸 좋아할 나잇대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애초에 기사처럼 몸 쓰는 일엔 체격이 전부란다. 너처럼 강인한 골격을 가진 인물들이 기사로서는 대성하는 법이지."

"정말요?"

"아, 왔네. 코코아? 커피?"

"커피로 부탁하오."

도미닉 경이 거실 소파에 앉으며 앨리스에게 말했다.

앨리스는 자기 체형이 기사에 걸맞은 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이 앨리스를 바라보고는 속삭이듯 도미니카 경에게 말했다.

"옷이 좀 작지 않소? 아니, 큰 건가?"

도미닉 경이 앨리스가 입은 티셔츠를 보았다.

도미닉 경만큼이나 큰 키에 아이답지 않은 체구.

그래서인지 도미니카 경의 티셔츠를 입은 앨리스는 배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앨리스는 역시나 유아 체형이었고, 아직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도미니카 경처럼 흉악한 흉근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어깨는 꽉 끼고, 가슴은 헐렁하고, 배꼽은 드러난 이상한 상태가 된 것이다.

"뭐야, 도미닉 경, 아닌 척하면서 그런 걸 신경 쓰네?"

도미니카 경이 히죽히죽 웃으며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린아이가 배를 드러내고 다니면 탈나는 법이오. 아무래도 내 옷이라도... 아."

도미닉 경이 자기 옷이라도 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문득 도미닉 경은 지금 가진 옷 중 스킨이 아닌 것이 고작 두 벌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것도 한 벌은 방금 벗어던졌고, 한 벌은 지금 입고 있었다.

그 말인 즉, 현재 도미닉 경에겐 남은 옷이 없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도미닉 경이 머쓱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내 옷은 무리인 것 같소."

"하긴. 이런 부분에선 너 답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역시나 평행세계선이라고 해야 하나..."

도미니카 경이 피식 웃었다.

도미닉 경과 달리 도미니카 경은 옷이 제법 많았다.

그랬기에 앨리스에게 옷을 빌려줄 수 있었으리라.

여전히 앨리스는 이 헐렁한 듯 꽉 끼는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스승님들이랑 같이 하루를 보낸다는 사실이 꽤 즐거운 것 같았다.

실제로 앨리스는 수학여행 이벤트 날 밤 느끼던 기분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밤새 놀아도 돼요? 침대에서 방방 뛰어도 될까요?"

앨리스가 저녁이라는 사실도 잊고 활기차게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마치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보여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얼마든지. 가끔은 이렇게 자유롭게 뛰노는 것도 훈련이 될 수 있단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이 집주인으로서 허락을 한 뒤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았다.

"뭘 하고 놀아야 할지는 모르겠구나."

"...! 혹시 같이 놀아주실 건가요?"

앨리스가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기사 중의 기사라 밤 중에 놀 거나 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이지."

도미닉 경이 앨리스에게 말했다.

"하긴. 우리도 어렸을 땐 저렇게 놀고 싶었으니까. 건초더미 무너진다고 절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말에 동의했다.

앨리스가 그 말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구석에 둔 가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안에서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가장 위에 있는 무기들을 아무렇게나 꺼낸 앨리스는 이내 가방 아래에 깔려 있던 것을 꺼냈다.

대부분 꽤 이름값 높은 보드게임들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항상 들고 다녔어요! 대부분 같이 할 친구가 없어서 못 했지만요."

앨리스가 약간 시무룩하게 말했다.

기억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아직 학교에 다니는 나이였다.

"친구들은 다들 워액스 40k니 데미 가디스니 리그 오브 스톰이니 하는 게임을 하느라 같이 할 시간이 없는 거지만요."

앨리스가 스스로 내뱉은 친구가 없다는 말에 아차싶어 변명을 하듯 말했다.

실제로 앨리스는 그 마왕과 친구가 될 정도로 친화력이 좋지 않던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앨리스의 말실수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소파 앞에 놓인 탁자를 향해 자리를 조금 당겨 앉았는데, 그 탁자에 앨리스가 보드게임을 하나 올려 두었다.

'카'툴루'라는 제목의 보드게임이었다.

"이건 카'툴루 라는 게임인데요, 룰은 이래요. 서로 자원을 가지고 시작하는데요, 그 자원을 가지고 마을을 짓고 발전시켜서 먼저 10점을 공양하면 이기는­"

앨리스가 싱글벙글 룰을 설명하기 시작한 그때였다.

똑똑똑. 하는 소리가 현관에서 들렸다.

그 예의 없는 소리에 거실에 있던 셋이 동시에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밤에,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

도미닉 경은 한참 동안 현관 쪽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리려무나. 아무래도 손님이 온 것 같으니."

"아, 네!"

"대신 도미니카 경에게 룰을 알려주고 있거라."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한 뒤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 너머를 향해 외쳤다.

"누구요?"

"저기, 도미닉 경 맞으신지요?"

문밖에서 다소 예의 바른 말이 돌아왔다.

이 밤중에 예의없이 찾아온 것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공손한 말투였다.

"..그렇소만."

도미닉 경이 문 너머의 사내에게 말했다.

그러나 문 너머의 사내는 도미닉 경을 안심시키려는 듯 더욱더 부드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 그렇군요. 전 자베르 경감님 아래서 일하는 루핀 경사라고 합니다. 별 건 아닙니다만, 혹시 오늘 외출을 하셨는지...?"

"그렇소."

스스로 루핀 경사라고 밝힌 사내에게 도미닉 경이 대답했다.

실제로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에서 온 이들을 찾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녔으니까.

"그렇다면 상업지구, 공업지구, 외곽 순환 도로 중에 가신 곳이 있습니까? 아, 별 건 아니구요. 그저 확인 절차입니다."

"...그렇소."

루핀 경사의 말에 도미닉 경이 긍정했다.

실제로 도미닉 경은 사실상 가차랜드 전체를 다 돌아다닌 셈이었으니까.

"이런, 이런...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아봐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시오."

루핀 경사가 문 너머에서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제가 당신을 경찰서로 연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도미닉 경이 말없이 문 너머를 향해 노려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루핀 경사는 현재 분위기를 바꿔 도미닉 경에게 적대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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