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 [204화]가차랜드 41 후일담
* * *
"끙. 이번 판은 재미가 없네."
"솔직히 말하자면 3성 탱커가 여기서 날뛰는 게 말이 안 되지."
스토리 모드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41 스테이지가 끝나고 남아 있던 사람들과 관전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것이다.
평소라면 전략과 전술에 대한 토론이나 가볍게 술 한 잔 마시러 갈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오늘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도미닉 경의 파티가 1000포인트를 모을 동안 다른 파티가 모은 포인트는 고작 0.
그야말로 퍼펙트 스코어로 게임이 끝난 탓에 전략이고 전술이고를 떠나 허무함만이 이들의 가슴에 남아버린 것이다.
서펜트 클랜의 저격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도미닉 경의 파티를 보면 그다지 강한 파티는 아니었어."
"그렇긴 하지. 사실 정석적인 지휘관딜러지원가 파티였으니."
"내가 그레고리랑 술친구라서 아는데, 그때는 이 정도로 강하진 않았다고."
그레고리와 술친구라고 밝힌 해골이 투덜거렸다.
"안정성이지. 안정성."
텐구 가면을 쓴 포병이 당이 떨어진다는 듯 각설탕을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도미닉 경이란 작자는 아군 전체에 피해 감소가 적용되는 패시브가 있어. 내가 보기에 오늘은 9퍼센트에서 12퍼센트 사이 정도로 피해가 감소되는 것 같던데..."
텐구 가면의 포병이 거의 정확한 수치를 추산해냈다.
딜러들 중 일부는 자기 딜에 취해 그 수치를 일일이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텐구 가면의 포병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게 문제가 아냐."
화약통을 들쳐 메고 이야기에 끼어든 스모 선수가 말했다.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사실 저번 딜러가 특성 3개를 달고 날뛸 때도 그러려니 했어. 그런데 아무리 탱커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스모선수가 화약통을 강하게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가차랜드의 특성상 충격만으로 화약통이 터지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들이 움찔거리기엔 충분한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도미닉 경의 특성은 하나잖아. 기술도 그거 하나고."
양 갈래머리를 한 미치광이 화학자가 말했다.
"심플한 특성. 심플한 기술. 그게 전부잖아."
"그래서 더 문제인 거지."
스모선수가 화학자의 말에 반론했다.
"단순한 만큼 패치가 쉬울 것 아니야. 그런데도 패치를 하지 않는다는 건..."
스모 선수가 고개를 돌려 시스템 인더스트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가차랜드가, 망조가 들어간다는 증거 아닐까?"
그의 말에 주변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스모 선수의 말은 그 누구나 장난처럼 하는 말이었으나, 그 누구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이었으니까.
"아무튼, 이제 가자고. 오늘 건 그냥 자연재해 만났다고 생각하고."
스모 선수의 말을 유심히 듣던 사무라이가 상황을 수습하며 말했다.
여기서 당당하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41에 참석했던 드래곤 클랜과 서펜트 클랜의 인원이 하나둘 스토리 모드 로비를 빠져나갔다.
...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빠져나가는 그 시각, 도미닉 경은 아직 41에 남아 있었다.
주가슈빌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잔뜩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말해 줄 때가 온 것 같소."
도미닉 경이 주가슈빌리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숙청]을 거침없이 썼으며, 무슨 이유로 그렇게 언덕에 집착한 거요?"
"아, 그렇지."
주가슈빌리가 깜빡했다는 듯 말했다.
"별일은 아니오, 콤라드. 그저... 업적을 욕심냈을 뿐이오."
"업적?"
"그렇소. 업적."
주가슈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거 말이오."
주가슈빌리가 마침 떠오른 시스템 창을 가리켰다.
[망치와 낫으로 망가진 시스템이 자본과 민주적인 절차로 인해 다시 소생했습니다.]
[밀린 정산을 시작합니다...]
[당신들의 파티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네. 핵과 버그를 썼던 추방자들의 기록을 합쳐도 말이죠.]
[도미닉 경 : 3개의 업적이 추가되었습니다.]
[[퍼펙트 41] : 41에서 다른 파티가 단 1포인트도 얻지 못한 채 게임을 끝냄.(0.00%만이 이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반올림))]
[[41=?] : 41에서 10분 내로 게임을 끝냄.(7.33%의 인원이 이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존주의자 : 41] : 41에서 살아남은 채로 게임을 끝냄.(67.74%의 인원이 이 업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도미닉 경은 눈앞에 떠오른 업적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목 애호가(Neck Romancer)] 업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라고 도미닉 경이 생각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도미닉 경에게 주가슈빌리가 말했다.
"지금까지 웬만한 업적은 다 깼는데, 이 업적만 없어서 말이오."
그 말과 함께 주가슈빌리가 곰가죽 코트를 펼쳤다.
그러자 그 안에는 훈장의 모습을 한 업적들이 배 아래 따개비처럼 달려 있었다.
"업적을 그렇게 모아서 어디에 쓰는 거요?"
도미닉 경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그 업적들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아진다오, 콤라드."
주가슈빌리가 씨익 웃었다.
그건, 가차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기의 한 단편이었다.
...
도미닉 경이 41에서 빠져나오자,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다른 이들은 돌아가거나 다른 스테이지로 향한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도 이만 가 보겠소. 다음에 또 볼 수 있길, 콤라드."
주가슈빌리와 그의 일행도 도미닉 경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스토리 모드 로비를 나갔다.
혼자 남은 도미닉 경은 시스템 창이 보여주는 보상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이 로비에는 도미닉 경 밖에 없...
"그, 마왕님?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테니 이제 그만 울음을 그치시지요."
"..."
도미닉 경은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로비에는 도미닉 경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왕 뚜 르 방과 참모장도 있었다.
마왕 뚜 르 방은 땅에 주저앉아 마치 나라를 잃은 듯, 하늘이 무너진 듯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참모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 뚜 르 방이 이렇게 슬픔에 잠긴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오?"
도미닉 경이 너무나도 서럽게 우는 마왕 뚜 르 방에게 관심을 가졌다.
"...너로군."
참모장이 도미닉 경을 경계하며 말했다.
도미닉 경이 나타날 때마다 나쁜 일만 생긴다고 생각한 참모장의 무의식이 행한 일이었다.
물론 그 '나쁜 일'의 대부분이 참모장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잊어버린 상태였다.
"내가 너에게 그걸 말할 것 같으"
"왜 이리 서럽게 우는 거요?"
참모장에게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대화의 대상을 마왕으로 바꿨다.
"하! 마왕님의 가장 충실한 부하인 나도 지금, 이렇게 애를 먹는데, 네놈이 대화가 가능할 리가"
"!"
참모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도미닉 경을 바라봤으나, 참모장의 기대와는 달리 마왕은 곧바로 도미닉 경에게 달려가 그의 다리에 매달렸다.
마왕에게 있어서 참모장이 엄격하고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였다면, 도미닉 경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편견이 박혀 있는 탓이었다.
마왕은 그대로 도미닉 경에게 손짓 발짓을 하며 버둥거렸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도미닉 경은 마왕의 고차원적인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신 도미닉 경은 눈썰미가 꽤 좋은 편이었기에 이런 대략적인 행동으로도 비슷한 답을 도출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지금 보상으로 얻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 못 받아서 슬프다는 거요?"
"!"
도미닉 경의 말에 마왕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뿔 끝에 달린 테니스공이 아니었더라면 도미닉 경이 마왕의 뿔에 큰 부상을 당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격하게 말이다.
도미닉 경이 마왕을 보며 생각했다.
애초에 도미닉 경은 41 스테이지를 어떤 이유가 있어서 깬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인 즉, 보상에도 크게 관심은 없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도미닉 경이 무의식적으로 마왕에게 말했다.
"혹시 뭘 가지고 싶었던 거요? 필요하면 드리리다."
"!"
마왕이 울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정말? 정말 줄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눈빛에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
마왕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참모장은 이 어이없는 상황에 놀라 굳은 자세로 어버버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구려..."
도미닉 경이 마왕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마왕은 익숙하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폴짝 뛰어올라 도미닉 경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리고 시스템 창을 가리키며 여기서 고르면 된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렇구려. 여기서 알려주면 되겠구려."
도미닉 경이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흔들림에 마왕이 순간 휘청거렸으나, 마왕다운 순발력으로 다시 도미닉 경의 어깨에 안정적인 자세를 잡은 마왕.
그날, 마왕은 그토록 원하던 머리 셋 달린 치와와를 얻을 수 있었다.
도미닉 경에 대한 호감도가 약간은 오른 것은 덤이었고.
...
"상투스, 상투스, 상투스 도미니쿠스 인 익셀시스..."
도미닉 경마저 사라진 41 스테이지엔 여전히 두 사람이 남아 있었다.
방금 본 놀라운 영광에 놀라 계속해서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는 아르쿠스 주교.
"...이제 갑시다. 이미 기도는 충분하잖소."
그리고 역시나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오히려 주교의 상태를 걱정하는 오그레손.
아르쿠스가 수척한 표정으로 오그레손을 바라보았다.
오그레손의 눈동자에 비친 자기 모습은 차마 멀쩡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그레손이 그 광기에 가득한 눈빛에 놀라 변명하듯이 말했다.
"그, 도미닉 경에 대한 찬사를 하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좀 더 말끔한 모습으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거요."
아르쿠스가 오그레손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오그레손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신성하고 위대한 전사들의 전당에서 이런 꾀죄죄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불경일지도 몰랐다.
"그렇군."
아르쿠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격하게 기도를 올렸던지, 로브의 무릎 쪽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일단 가서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해야겠네. 자네의 말이 맞아. 이런 신성한 곳에서 이런 추태를 부리다니..."
"...뭘 잘못 먹었소? 아니지. 같이 다녔으니 뭘 잘못 먹을 시간도 없었을 텐데...?"
오그레손이 갑자기 변한 아르쿠스의 행동에 놀라 눈을 끔벅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쿠스는 여전히 신앙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나가는 길은 어디지?"
그 당당하고 신실한 말에 오그레손이 다시 한번 눈을 끔벅였다.
오그레손이라고 해서 나가는 길을 알지는 못했으니까.
이렇게 또 한 번,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도미닉 경과 엇갈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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