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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04화 (204/528)

〈 204화 〉 [203화]상투스 도미니쿠스

* * *

도미닉 경의 파티가 승리를 거머쥘 때까지 고작 1분 남짓 남은 시간.

마왕의 파티가 나머지 파티를 초토화시키고 시가지로 변한 언덕을 오르고 있을 때, 두 명이 언덕 아래에 도착했다.

"방금 전까지 여기가 언덕이라고 생각했네만."

"...저승 세계 아니오. 이승과는 법칙이 다를 수 있지."

아르쿠스는 무너진 건물의 숲이 된 언덕을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이 언덕을 오르기만 하면 도미닉 경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아르쿠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길치에 가까운 아르쿠스가 오르기에는 이 건물의 숲은 너무나도 복잡한 미로처럼 보였다.

"이 너머에 도미닉 경이 있건만..."

아르쿠스가 씁쓸하게 손을 들어 건물의 벽을 훑어내렸다.

"...아니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이 미로를 뚫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르쿠스가 좋은 생각이라는 듯 활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스테이지에 대해서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곧 도미닉 경의 승리로 이 스테이지가 끝날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면 좋을까? 그래. 이곳이 좀 끌리는군..."

아르쿠스가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오그레손이 이상한 눈으로 아르쿠스를 바라보았다.

제3자의 눈으로 볼 때, 아르쿠스는 마치 광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때였다.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앵!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순간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귀를 찢을 듯 높고 앵앵거리는, 마치 비명과도 같은 끔찍한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 하늘을 보시오!"

오그레손이 문득 하늘이 이상해지고 있음을 깨닫고 아르쿠스에게 소리쳤다.

하늘이 불타는 피와 같이 붉은빛으로 변하며 먹구름으로 뒤덮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쿠스는 여전히 귀가 아플 정도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 때문에 오그레손의 외침을 들을 수 없었고, 하늘의 이상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신 그가 하늘의 이상을 알아차린 방법은 다른 것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은 아르쿠스는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어둠의 근원을 찾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이 보지 못했던 특이한 것이 있었다.

...

"이래도 되는 거요?"

도미닉 경이 찜찜하다는 듯 주가슈빌리를 바라보았다.

"물론. 무엇보다도 문제가 생긴다면 내게 생기겠지. 걱정 하지마시오, 콤라드."

주가슈빌리가 걱정 말라는 듯 파이프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도미닉 경은 주가슈빌리의 말에도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문득 창문 옆을 지나가던 도미닉 경이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아래에 언덕이 보였다.

그렇다.

도미닉 경과 주가슈빌리는 언덕이 아닌, 언덕 위 쪽의 하늘에 있었다.

도미닉 경의 비행선을 타고.

"그나저나 이런 건 참 멋지군. 도미닉 동무에게 이런 심미안이 있는 줄 몰랐소."

주가슈빌리가 도미닉 경의 비행선을 칭찬했다.

주가슈빌리의 특수 능력[●●●그라드]의 능력 중 하나로 소환될 수 있었던 도미닉 경의 거대한 비행선은 정작 그 크기에 비해선 공격수단이 전무했으나, 세레모니 용으로는 아주 적합했다.

"그레고리를 빼고 다 여기에 있어도 되는 겁니까?"

바체슬라브가 불안한 듯 주가슈빌리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언덕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말 조심하시오. 말이 씨가 되는 법이오, 콤라드."

주가슈빌리가 바체슬라브에게 경고했다.

바체슬라브는 주가슈빌리의 으름장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점수를 역전할 수는 없소."

바체슬라브가 현재 포인트를 바라보았다.

이미 950 포인트를 넘어간 상황이었기에, 한 명만 있더라도 1분이면 충분했다.

물론 넷이서 언덕을 점령해 남몰래 10초 내로 게임을 끝내는 방법도 있었으나, 그런 건 자기 가치 상승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눈에 띄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가치를 보여주고 더 늘릴 수 있는 법이다.

암살자들이 자기 이름값을 높이려 타겟의 몸 위에 명함을 놓듯이.

주가슈빌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30초 정도 남았군요."

바체슬라브도 남은 포인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20초라는 시간이 흘렀다.

"슬슬 준비해야겠습니다, 동무."

바체슬라브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중간에 한 번 숙청당했던 만큼, 특수 능력 스택이 좀 쌓여 있는 상태라 다소 화려할 수 있습니다."

도미닉 경은 바체슬라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시오. 가치가 높아진다면 나한테도 좋은 일이니까."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하고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붉게 변한 하늘과 검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이제 남은 시각은 약 20초.

바체슬라브가 화염병을 들고 비행선의 뒷 편, 창고 문 앞에 섰다.

도미닉 경은 하늘에 뜬 비행선의 뒷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체슬라브의 특수 능력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

"하얀 까마귀 맙소사..."

아르쿠스가 검붉은 하늘에 뜬 길쭉한 성채를 보았다.

그 성채에는 구 페럴란트의 문양이 그려진 휘장들이 치렁치렁하게 치장되어 있었는데, 지금껏 아르쿠스가 본 것들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드래곤인가? 헛 것을 보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요새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가?"

오그레손 역시 놀란 눈으로 공중 성채를 바라보았다.

그만큼 공중에 뜬 비행선은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충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

아르쿠스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 떠졌다.

그 거대한 요새는 그 자체로도 위압감이 넘쳤으나, 요새의 뒤편, 연기가 구름처럼 뿜어져 나오는 그 아래에서 불꽃으로 된 날개가 펼쳐진 것이다.

정확하게는 이때 바체슬라브가 가진 모든 화염무기를 플레어처럼 쏟아 낸 것이었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아르쿠스에게는 다소 다르게 보였다.

"...천사다."

"뭐요?"

아르쿠스의 중얼거림에 오그레손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천사란 말이다! 도미닉 경은 천사가 된 것이야!"

아르쿠스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주변에 누가 있었더라면 아르쿠스의 목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겠지만, 아쉽게도 현재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왕이 지나가면서 모든 파티를 몰살 시켰기 때문이다.

"천사란 말이오?"

오그레손이 어이가 없다는 듯 아르쿠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그레손도 내심 아르쿠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긴 전사들의 전당, 즉 저승이었고, 하얀 까마귀의 뜻에 따라 가장 전사다운 도미닉 경이 천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나름 논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저 모습을 보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요새가 불타는 날개를 펼쳤네. 이는 도미닉 경이 페럴란트에서 행한 행적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야!"

아르쿠스가 최고조로 흥분한 채로 말을 쏘아냈다.

"앨리스 백작 영애... 아니지. 지금은 여백작(Comtesse)이로군. 아무튼 페럴란트 변경백의 말에 따르면 도미닉 경은 마치 요새와도 같은 사람이라고 했네. 완고하고, 고집이 세며 방패를 들면 못 막을 것이 없다고 했지. 이는 저 공중 요새의 이미지와 일치하네. 그리고 전승에 따르면 전사들의 전당의 천사들은 불타는 날개를 펼쳐 하얀 까마귀의 대적자들을 불태웠다는 구절이 있네. 이를 통해서 본다면, 저건 바로 도미닉 경이라는 뜻이 되네!"

아르쿠스의 논리는 아는 사람이 듣는다면 허점투성이라고 욕을 할지도 몰랐으나, 정말 재밌게도 그 결과만큼은 맞춰버리고 말았다.

과정은 완전히 달랐으나 도미닉 경이라는 걸 유추해 버린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닐세."

아르쿠스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도미닉 경이 천사라는 것을 알았으니, 지금까지 했던 성인에 대한 기도가 아닌 천사들에 대한 기도문으로 바꿔서 외워야하네."

하늘에서 우리를 굽어살피는 하얀 까마귀와 그분의 천사들과 성인들이시여 나를 굽어보소서. 라고 중얼거린 아르쿠스는 이내 도미닉 경에 대한 말로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오그레손이 그런 아르쿠스를 향해 한마디 했겠으나, 오그레손은 다시 한번 펼쳐진 불꽃의 날개를 바라보며 오그레손의 말에 내심 동의했다.

"도미닉 경이... 천사가 되었다라."

아르쿠스가 남몰래 성호를 그었다.

페럴란트의 수호 성인... 아니, 수호 천사 도미닉 경이시여. 당신의 대단함을 내가 직접 보았으니­로 시작되는 엉터리 기도문을 중얼거리며.

...

그렇게 두 사람이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또 한 명, 사악한 성호를 긋는 요승이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그레고리는 언덕 위에서 히죽히죽 기분 나쁘게 웃으며 언덕에 도착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마왕님."

"!"

마왕과 참모장이었다.

그레고리의 목은 참모장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는데,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그레고리의 목이 수수깡처럼 꺾일 것은 자명한 일이었으나 참모장은 도저히 손에 힘을 줄 수 없었다.

[1000포인트를 채운 파티가 나타났습니다!]

[주가슈빌리, 바체슬라브, 그레고리, 그리고 도미닉 경의 파티가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잠시 후, 모든 인원은 스토리 모드 로비로 이동됩니다.]

참모장의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창.

이 시스템 창이 의미하는 것은... 이미 게임이 끝났다는 말이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마왕님."

참모장은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물면서도 마왕에게 다시 사과했다.

마왕이 가질 실망감은, 참모장의 억울함보다 더 클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이변은 없었다.

도미닉 경이 속한 파티가 4­1의 승자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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