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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03화 (203/528)

〈 203화 〉 [202화]상투스 도미니쿠스

* * *

탕! 하는 소리가 언덕 위에 울려 퍼졌다.

아니, 그 소리가 정말 울려 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도미닉 경이 언덕 아래에서 쏘아 올린 수많은 포격 중 하나를 총성이라고 착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도미닉 경이 총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주가슈빌리의 권총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주가슈빌리의 총은, 적어도 한 발이 발사된 상황이었다.

"무슨 짓이오?"

도미닉 경이 사납게 외쳤다.

"어디로 총을 쏜 거요?"

도미닉 경은 멀쩡했다.

주가슈빌리도 마찬가지였다.

주가슈빌리가 품속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걱정 말게."

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연기가 총구에서 흘러나오던 탄연과 오버랩되었다.

"설마 내가 자네 같이 유능한... 동무를 숙청하겠나."

주가슈빌리가 담담하게 콧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무언가 체념한 듯,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는 듯 아리송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도대체 왜 총을 쏜 거요?"

도미닉 경이 주가슈빌리를 채근했다.

총은 발사되었다.

주가슈빌리가 총을 쏠 때는 특수 능력인 [숙청]을 쓸 때 뿐이었으니, 도미닉 경의 의심은 당연하였다.

"2번째 특수 기술일세, 콤라드."

주가슈빌리가 그 의심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알다시피 가차랜드엔 사람 수보다 많은 특성과 특수 기술들이 있고, 그것들은 비슷할 순 있어도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지."

주가슈빌리가 총을 들어 올렸다.

연기는 이제 그쳤으나, 여전히 매캐한 탄내가 났다.

"이건... 선 쿨이라고 하던가. 시작 후 시간이 좀 지나야 쓸 수 있는 기술일세."

주가슈빌리가 총을 하늘로 향해 들어 올렸다.

총구가 하늘을 위협하듯 날카롭게 빛났다.

그리고 다시금 그 총구에서 총알 하나가 발사되었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바라보고 있었다.

주가슈빌리가 총을 발사한 후, 총을 들지 않은 쪽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도미닉 경이 무심코 그 손가락의 경로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총성과 달리, 가죽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붉은빛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첫 탄은 신호일세, 콤라드. 소리로 내는 신호."

주가슈빌리가 멍하게 붉은 불빛을 바라보는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리고 5초 뒤에 시각을 통해 또 한 번 신호를 보내지."

하늘로 날아가던 붉은빛은 최고점에 달했는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주춤했다.

그리고 아래로 낙하하기 바로 전, 그대로 공중에서 팡!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신호탄인가?

도미닉 경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내 턴은 끝났네, 도미닉 동무. 방금 전 우린 무작위로 이동했다는 판정이 떴거든."

주가슈빌리가 웃었다.

[주가슈빌리가 숨겨진 특수 능력, [●●●그라드]를 발동했습니다.]

[[●●●그라드]는 현재 개발 중인 불안정한 기술입니다.]

[[●●●그라드]의 효과로 적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이라면 전장 어디에서든 원하는 위치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라드]의 효과로 무작위 전이의 위치로 '현재 위치'가 지정되었습니다.]

[[●●●그라드]의 효과로 현 스테이지의 필드를 [시가전]으로 변경합니다.]

[[●●●그라드]의 효과로 끊임없이 부활할 수 있습니다.]

[경고! 이 스테이지는 부활이 불가능한­]

[[●●●그라드]의 효과로 시스템 창을 숙청했습니다. 이번에 한하여 부활을 승인합니다.]

도미닉 경은 하늘에 끝없이 떠오르는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폭죽처럼 서서히 흩어지는 불꽃 사이에서 시스템 창은 도미닉 경의 승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기적인 특성이로군."

도미닉 경이 중얼거렸다.

시스템을 무시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이라니.

도미닉 경이 가진 특수 능력, [기수]와 [시네마틱]이 심플한 강함의 예시였다면,[●●●그라드]는 그야말로 사기적인 특수 능력의 대표처럼 보였다.

"물론 사기적인 기술은 맞네, 콤라드."

주가슈빌리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일정 시간이 지나야 쓸 수 있어서 말이지."

주가슈빌리가 슬쩍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5분. 300초. 성질 급한 사람에게는 도저히 기다릴 수 없는 시간일세. 무엇보다도 쿨타임 감소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더더욱."

도미닉 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도미닉 경은 딜이 약한 탱커라 결투에서도 10분을 다 쓰고 판정으로 넘어가는 사람이었고, 과거 트롬 레이드 솔로 플레이에서도 무려 몇십 시간을 썼을 만큼 '느린' 템포의 사나이였다.

그랬기에 주가슈빌리가 말한 5분은 상당히 짧게만 느껴지는 상황.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겐 5분도 충분히 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기술은 적에게 직접 피해를 주는 수단이 전무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기술은 충분한 페널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도미닉 경.

"아, 세상에. 여기가 저승인가, 이승인가? 파계승의 혼탁한 정신머리로는 알 수 없군."

"주가슈빌리! 쏠 때는 말하고 좀 쏘시오, 동무!"

도미닉 경이 생각에 잠긴 사이, 언덕에 세워진 무너진 건물 잔해들 사이에서 죽었던 바체슬라브와 그레고리가 나타났다.

그레고리는 특히나 주가슈빌리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죽거리며 농담을 빙자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고, 바체슬라브는 그렇게 쉽게 처형당한 것이 너무 억울했던지 볼멘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만."

주가슈빌리가 말했다.

"동무들. 이제 우린 이긴 것이나 다름없소."

주가슈빌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 세레모니를 준비합시다."

주가슈빌리가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주가슈빌리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아, 세레모니는 못 참지. 좋은 생각이오, 동무."

바체슬라브가 좋은 생각이라는 듯 주가슈빌리의 사상... 아니, 생각에 동의했다.

세레모니는 그 사람의 가치를 올리기에도 좋은 행동이었으니까.

...

"망할. 이건 계산에 없었는데."

드래곤 클랜의 사무라이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칼을 지팡이 삼아 일어났다.

"!"

마왕이 짜증이 난다는 듯 머리 셋 달린 치와와의 등 뒤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사무라이는 이미 쓰러져 사라져 버린 낭인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배에 칼이 꽂아져 있는 참모장이 있었는데, 제법 피해가 컸는지 참모장은 비틀거리고 있었다.

"네 이놈...!"

참모장이 분노에 가득 찬 이글거리는 눈으로 낭인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미 참모장의 분노를 받아 낼 낭인은 이 자리에 없었다.

참모장은 그 불합리한 짜증을 애써 참아내며 사무라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감히 마왕님의 행보를 방해하고 내게 한 방 먹이다니. 인간치고는 제법이구나."

"흥. 그러게 우리와 연합하자고 했을 때 들었어야지."

"근성은 있구나, 사무라이."

"칼로 먹고 살려면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늙은이."

사무라이는 마지막 힘을 짜내 참모장을 향해 검 끝을 들어 올렸다.

"...지금이라도 길을 비켜라."

참모장이 초조하다는 듯 마왕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마왕은 도토리를 가득 문 다람쥐처럼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현재 도미닉 경의 파티가 포인트 승리를 할 때까지 고작 1~2분 남짓.

지금 언덕을 오르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 말인 즉, 마왕님께서 마땅히 취해야 할 보상, 머리 셋 달린 치와와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었고, 당분간은 마왕님의 심기가 불편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참모장이 마왕의 분노를 상상하며 몸을 떨었다.

마왕 뚜 르 방은 한 번 분노를 일으키면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곤 했다.

무려 일주일이나 참모장을 모르는 사람 취급해 버리는 것이다.

절대 그럴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한 참모장이 결의를 다지며 사무라이를 바라보았다.

사무라이는 여전히 자세를 취하며 참모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육체는 이미 한계였으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참모장이 사무라이의 기개를 내심 인정하면서도 다급한 마음을 가지고 말했다.

"그러나 우린 최대한 빨리 가야만 한다."

참모장은 인벤토리에서 뿅망치를 꺼냈다.

데미지는 없지만, 맞으면 0.1초 정도 스턴에 걸리는 장난감.

"...이거 노템전 아니었나?"

사무라이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 신성한 싸움에 뿅망치라니.

사무라이는 저 뿅망치의 강력함을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말이 0.1초 기절이지, 지금 사무라이의 상태라면 그 0.1초만으로도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빠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무라이여, 비겁하다고 하진 않겠지."

참모장이 뿅망치를 어깨너머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직 '이건 아니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무라이를 향해 그 뿅망치를 던졌다.

순식간에 뿅망치가 사무라이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뽕! 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라이의 정신이 암전되었다.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앵!

사무라이는 쓰러지기 직전,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마왕의 파티가 건물의 숲이 된 언덕을 뛰어오르는 모습을 흐릿해져가는 시야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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